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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5/06/04 23:59:00
Name   meson
Subject   다수파의 교체는 어떻게 가능한가?
※정치공학적인 관점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winner-takes-it-all

선거란 본질적으로 말해 국가의 지배권을 두고 겨루는 내전의 온건한 형태이다. 온건한 내전이므로 시민들은 총칼로 싸우는 대신 머릿수로 싸운다. 각 진영이 동원할 수 있는 머릿수를 투표로 확인하고, 그중 가장 병력이 많은 쪽이 내전에서 승리했다고 간주한다. 물론 전쟁은 숫자로 하는 것이 아니지만 정말로 싸운다면 국가가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병력의 수만 따져서 승패를 정하자고 합의한 체제가 민주정이다. 51%를 거머쥐면 49%를 무시할 수 있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모의 전쟁이라도 전쟁이므로, 승자가 모든 것을 가진다.

근대가 도래하고 대중의 힘이 경제적으로든 군사적으로든 최고조에 다다르자, 이 원리는 정치권력의 근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오늘날 사회의 모든 제도와 기관은 기본적으로 다수의 승인에 의해 정당성을 획득한다. 정당성이 확득된다는 것은 사람들이 통치에 수긍할 만한 이유가 생겨난다는 뜻이다. 이유가 생겨났다고 해서 모두가 설득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절대 다수만 설득된다면 권력은 원활히 작동한다. 반면에 그런 설득에 실패한다면, 아무리 강제력을 적극적으로 동원하더라도 권력이 원활하게 행사되기가 어렵다.

이러한 설득의 힘을 일컬어 권위라고 한다. 권위는 전통에서 나오며, 명분에서 나오고, 근본적으로는 신뢰의 문제이다. 이것을 고려했을 때 다수의 지지를 받는다는 사실은 직관적이면서도 확고한 권위의 원천이다. 인간 1인의 역량이 평균적으로 동등하다면, 다수와 싸워서는 결국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거를 통해 집권하는 체제에서 정치권력은 상당히 안정적이다. 체제가 다수의 시민들에 의해 승인받고 있다는 세력의 여건으로 인하여, 설령 불온한 자일지라도 권위에 정면으로 항거하기보다는 선거에서 성과를 내고자 노력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기적인 선거로 누가 다수인지를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이상, 선거와 선거 사이에 권위에 대한 폭발적인 반발이 터져나오기는 힘들다. 아직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처럼 생각하고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다수가 불복하고자 하는 것이 확실하다면 불복이 성공할 수는 있다. 하지만 불복의 임계점은 사람마다 다르고, 남의 임계점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게다가 보통의 사람들은 흠결이 있는 권위라도 있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환경에서 제대로 무리를 모아 불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언제나 그러한 것은 아니다. 끓기 어려운 물은 식기도 어렵다. 따라서 다수가 임계점을 넘었다고 확신할 수 있다면, 그때부터는 권위를 불신임할 용기도 낼 수 있다. 이런 전개는 정기적인 선거를 통해 권위의 담지자가 교체되는 통상적인 과정과는 구분된다. 이미 정기적인 선거를 통해 특정 진영에 일정 기간 동안 권위를 준다는 합의가 일반화된 이후임에도, 다음 선거가 도래하기도 전에 그 합의를 뒤집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강경한 조치가 실현되기란 어려운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한국 정치사에서는 어째서인지 이러한 사례가 여러 번 있었다.

2

무엇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한국인들의 정치 성향이 수시로 바뀌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설명도 가능하다. 개개인의 정치 성향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집권자들이 정상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범국민적인 반발이 일어났다고 보는 것이다. 예컨대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와 박근혜 정권의 비선실세 논란, 그리고 윤석열 정권의 12·3 불법계엄이 그러한 경우였다. 이 세 가지 사태는 모두 국가의 정상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인식되었다. 그렇기에 당시의 집권자들에 대한 불신임은 정치 성향을 가리지 않고 지지받을 수 있었다.

이런 불신임은 당대의 다수가 체제의 파괴를 원했기에 일어난 사태가 아니다. 오히려 체제의 수호를 원했기에 일어난 것이다. 그렇기에 불신임이 성공한 뒤에도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일어나거나 게슈타포가 창설되는 일은 없었다. 눈에 띄는 치안 공백이 발생하지도 않았다. 민주공화적 질서가 그대로 준용되었고, 그 운영자가 바뀌었을 뿐이었다. 다시 말해 당대의 다수는 집권자가 체제를 올바르게 운용하지 않는다고 여겨 몰아냈던 것이지 체제 자체를 불신임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 의미에서 위의 불신임 사건들은 일종의 반정(反正)으로 파악될 수 있다.

그러한 반정의 시점에 집권자들은 대중의 신뢰를 잃었고, 국가를 제도에 맞추어 운용할 수 없다고 판단되었으며, 헌법 수호 의지가 없다고 여겨졌다. 집권 당시에는 다수의 지지를 받았던 그들이 조기 퇴진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정상성의 상실에 있었다. 1960년에는 부정선거가, 2016년에는 태블릿이, 2024년에는 비상계엄이 비정상성의 징표가 되었다. 묵과할 수 없는 계기가 나타나자 여론은 싸늘해졌다. 옹호론과 신중론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작금의 정권에게 계속 집권을 맞길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자들이 다수였다.

1960년과 2017년과 2025년에 정권 교체를 일으킨 것은 바로 이러한 다수의 의지였다. 물론 2017년과 2025년에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이 있었던 반면 1960년에는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방법의 차이에 불과하다. 1960년에는 헌법재판소가 존재하지 않았고, 그래서 시민들은 카빈총을 탈취해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면서까지 하야를 쟁취해냈다. 2017년의 다수는 처음에는 하야를 외쳤고 그 뒤에야 탄핵으로 선회했다. 2025년의 다수는 처음부터 탄핵을 촉구했지만, 끝내 헌법재판관이 임명되지 않았다면 이내 1960년을 재현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정치사에서 누차 발생한 집권자들의 조기 퇴진은 한국인들의 정치 성향이 급격히 변모한 결과가 아니다. 단지 선거에서 다수의 지지를 얻은 진영이 집권한다는 사회적 합의를 수호하려는 작용이었을 뿐이다. 그 합의가 지켜져야 정치 성향도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설령 조기 퇴진을 지지하는 정도에 정치 성향별로 차이가 있었더라도, 중요한 것은 조기 퇴진이 어느 한 정파의 찬성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반정은 이런 측면에서 공공성을 지녔고, 따라서 정치 성향의 발현으로 해석되기는 부적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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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676077

그렇다면 정치 성향은 고정된 상수이며, 한 번 형성되면 변화하기 어렵다고 보아야 하는 것일까. 통념적으로는 사실 그렇다. 행위는 감정에서 나오고 감정은 경험에서 나온다. 경험은 기억에서 나오고 기억은 사건에서 나온다. 따라서 인격의 변화는 사건을 기억으로 저장하는 과정에서 가능하겠지만, 사람은 감정에 맞추어 세상을 받아들인다. 경험과 맞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왜곡하고, 상충되는 해석들이 경합할 때면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젊은 사람이라도 한 번 호오가 정해지면 편향적으로 변해가기 쉽고, 나이가 들수록 이런 경향은 더 심해진다.

따라서 정치 지형에 가장 유의미한 변수는 시간이다. 21세기 이후의 한국 정치를 되짚어볼 때 흥미로운 점은 1980년대생의 강고한 친민주 성향이 20년 동안 지속되었다는 사실이다. 1970년대생 역시 정도는 약하지만 유사한 경향성을 유지해왔다. 2020년대에 이르러 4050으로 묶이는 이 연령대는 사회의 중추로 올라선 현재까지도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이다. 그리고 이 연속성이 인구 지형의 전환을 불러왔다. 민주당 지지층이 유지되는 동안 기존의 보수 지지층은 6070으로 밀려나 숫자가 감소했고, 2030은 성별에 따라 정치 성향이 갈렸기 때문이다.

무엇이 4050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해답은 역사에 있다. 그들이 20대였을 때 보수정권은 외환위기로 몰락했다. 때맞춰 시작된 인터넷 문화는 김대중 정권이 선사한 것이었다. 노무현의 매력에 이끌려 몰표를 던졌던 것이 이 세대였고, 그래서 2009년 노무현이 사망했을 때 가장 큰 부채감을 느꼈던 것도 이들이었다. 젊은 시절의 경험이 이렇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기성세대로 성장한 이후에도 친민주 성향을 거두지 않았던 것이다. 산업화를 경험한 6070이 보수 성향을, 문재인 정부에 실망한 2030 남성이 반민주 성향을 보이는 것도 유사한 원리에서이다.

그런데 변수에는 시간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 번 형성된 정치 성향이 바뀌기 힘든 것은 맞지만, 기존과는 다른 감정을 산출하는 경험이 새로 자리잡을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통상적인 경우라면 어떤 사건이든 기존의 경험과 잘 부합되는 형태로 기억되기 마련이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심지어 편향적인 세계관에도 균열이 일어날 수 있다. 그간의 관점과 조화되지 않는 사실들이 확실하게, 반복적으로, 또 전방위적으로 수신된다면 누구나 자신을 의심해 보기 마련이다. 그러한 사실이 유통되는 창구를 우리는 언론이라고 부른다.

물론 레거시 미디어의 영향력은 예전보다 줄어들었다. 정치 유튜버들이 막대한 수익을 내며 오피니언 리더를 자처하고, 인터넷 커뮤니티 또한 여론의 한 축으로 인정받고 있다. 탈진실의 시대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퍼지고 주류 언론의 명성은 무너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말로 그런가? 이것은 반만 맞는 말이다. 정보의 제공이라는 측면에서, 레거시 미디어는 과연 예전과 같은 특수한 지위를 잃어버렸다. 그들이 다루지 않는다고 정보를 알아낼 수 없는 세상은 아니다. 하지만 확산의 측면에서는 다르다. 사실의 확대 재생산은 여전히 레거시 미디어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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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305915

사실을 전파시키는 수완이 영향력으로 인정받는 까닭은 간단하다. 그 방법으로만 사실을 소비하는 사람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정치 고관여층이나 강성 지지자라면 웬만해서는 언론 보도에 경도되지 않는다. 다양한 방법으로 대항논리를 찾으며 부정적인 사실을 무마하고, 도리어 진영논리에 따라 언론을 포폄하곤 한다. 하지만 정치에 대한 관심이 적은 사람은 그런 수고를 하는 대신에 훨씬 더 제한적인 창구를 통해서만 사실을 소비한다. 그리고 그들이 접하게 되는 제한적인 창구는 결국 접근성이 가장 높은 매체, 다시 말해 레거시 미디어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세대가 장기적인 변수라면 언론은 단기적인 변수다. 병법으로 말하자면 전자는 형(形)이고, 후자가 세(勢)이다. 인구 지형에서 유리하더라도 언론 지형에서 불리하면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언론이 유통하는 사실이 정치 성향과 충돌할 경우, 정치 저관여층에서는 기존의 정서와 반대되는 선택을 하거나 투표를 포기하는 경우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여기서 언론 지형이란 보도의 유무나 비판의 여부 자체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언급의 횟수와 강조점의 배치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이 기준으로 보면 언론 지형은 인구 지형과는 거의 반대이다.

이것이 현재까지의 상황이다. 2016년 총선 이후 민주당이 전성기를 맞은 까닭은 인구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전성기를 맞이했음에도 민주당이 여전히 소수파의 정서를 가지고 있는 까닭은 언론 현실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두 가지 변수가 서로 절묘하게 상쇄되기에 누가 정말로 다수파인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따라서 민주당이 굳건한 다수파로 올라서 사회적 주류까지 장악할 것인지, 아니면 현재의 구도를 유지하기에 급급하다 다시 소수파로 굴러떨어질 것인지는 이제 언론에 달려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언론과 민주당의 관계에 달려 있다.

민주당은 과연 이 과제를 슬기롭게 해결하고 진정한 다수파로 발돋움할 수 있을까? 아직 예측하기는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만약 성공한다면 그것이 대한민국 정치사 최초의 다수파 교체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8
  • 므찝니다
  • -_-bb
  • 재밌게 읽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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