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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7/23 22:44:14 |
Name | sisyphus |
Subject | 반대급부라는 도덕적 의무감과 증여 사회 |
문화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에게 인간의 존재는 곧 관계입니다. 그에 따르면, 주고받음이 곧 인간 사회의 기초 입니다. 갑과 을 사이의 교환이 관계의 시작이 됩니다. 그는 메시지의 교환, 친족의 교환, 재화의 교환, 이 세 가지를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서, 인간은 [되돌려 받을 수 없는 교환], 즉 [증여]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갑은 을에게 을은 갑이 아니라 병에게 증여를 하게 됩니다. 이렇게 일방향적으로 전체가 순환이 되는 증여시스템을 이룹니다. 경제랑 비슷하지만, 준 사람과 받은 사람의 입장이 바뀌지 않습니다.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 증여는 누군가가 탕진이나 희생을 하지 않는 이상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핑퐁 게임이 아닌, 아무 대가없는 증여를 받게 된 인간은 [반대급부]라는 의무감이 생깁니다. 여기서 인간성이 생기게 됩니다. 그렇게 형성된 것이 친족제도입니다. 가족 제도는 온전히 돌려 줄 수 없는 (핑퐁이 불가능한)증여체계입니다. 배우자의 부모님께 받은 증여를 손주로 증여해줄 수 없으며, 사위나 며느리에게 증여를 하게 됩니다. 후대로 증여가 이루어지죠. 친족제도는 이런 이유로 근친상간을 금지하고, 증여 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레비스트로스의 말을 들어보면, 인류는 곧 증여이며, 좀 더 나아가서 제 느낌엔 이 증여는 반독점을 지향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쓴 글조차, 과거의 누군가에게 받은 생각을 다시 여기에 증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메시지, 친족, 재화 어느 하나 지금은 증여가 잘 되고 있는 것 같지가 않네요. 사실 언제나 그랬을겁니다. 여기서 좀 더 나가면 이 교환의 불균형을 바로잡을 때 윤리가 등장한다는 레비나스의 논리가 기가막힙니다. 이 불균형을 바로 잡는자, [책임을 타자보다 먼저 짊어지려는 고집]을 가진 자가 윤리적 당위성을 가지게 되죠. 레비스트로스 입장에선 이 또한 증여의 일부로 보지 않았을까 합니다. 윤리를 명확히 정의할 수 없지만, 증여를 받고 반대급부로 일어나는 그 어떤 의무감이 다른 증여를 하게 만들고, 그렇게 인간성이 만들어지고 인간 사회가 돌아가는 게 아닐까요?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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