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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5/04/05 23:46:47
Name   meson
Subject   조조와 광해군: 명분조차 실리의 하나인 세상에서
유비와 조조의 대립은 일반적으로 명분과 실리의 대립이라고 이해됩니다. 유비가 한실의 보위라는 당대의 도덕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반면, 조조는 이러한 도덕에 얽매이지 않고 권도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결과적으로는 난세를 안정시켰기 때문이죠. 따라서 당대의 이념에서 벗어나 판단한다면 조조가 천하에 선사한 이익은 손해보다 더 크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입장에서 유비의 활동은 도덕적인 흠결을 지적하며 실질적인 편익을 부정하는 태도로 위치지어집니다. 천하위공(天下爲公)의 관점에서 조조를 ‘초세지웅’으로 평할 수 있는 것은 여기에 근거합니다.

명분과 실리의 이항대립에서 실리에 해당하는 측이 옹호받는 경향은 한국사에서도 발견됩니다. 당대의 정서로만 따지자면, 대명의리를 저버리고 폐모살제를 자행한 광해군은 명분상 반정을 당해도 마땅한 군주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대의 이념에서 벗어나 판단한다면 광해군이 집권하는 것이 호란을 당하는 것보다는 훨씬 이익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이 입장에서 인조의 활동은 도덕적인 흠결을 지적하며 실질적인 편익을 부정하는 태도로 위치지어집니다. 조선후기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현대인들이 인조보다 광해군을 높이 평가하는 것은 여기에 근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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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와 같이 주장한다면, 조조의 활동이 권력지상주의적 풍조를 일으켜 고평릉 사변과 팔왕의 난이 야기되었기 때문에, 결국 장기적으로는 조조가 천하에 유발한 손해가 이익보다 더 컸다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광해군의 업적에 대해서도, 호란 자체는 후금의 상황에 의해 개시된 것이므로 조선의 태도는 결정적인 영향이 없었고, 궁궐병으로 대표되는 광해군의 내치는 해악이 심했으므로, 광해군이 국가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바는 크지 않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혹은 인조의 실책 중 상당수는 시대적 악조건으로 인한 것이라고 변호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엄밀히 말해 이러한 논의로 끌려들어가게 된다는 것은, 어떤 도덕이나 명분론도 결국 편익에 호소하지 않고는 자체적으로 정당화되기 어렵다는 인식을 함의합니다. 특히 삼국지나 인조반정에서 중시되던 도덕적 규준이 현대의 그것과는 다소 다르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당대의 관점을 근거로 유비나 인조를 옹호하는 것은 자칫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을 받을 가능성까지 있지요. 반대로 도덕이 특정 사회가 편익을 산출하기 위해 합의한 체계일 뿐이라고 파악할 경우, 도덕의 위반은 그것이 사회적으로 더 큰 편익을 선사하는 경우에 한하여 정당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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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부분은 이러한 관점을 인정하고 사회적 손익을 기준으로 위의 화두들을 다시 고찰할 경우, 뜻밖에도 공수의 교체가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도덕을 위반하는 근거로 편익을 강조하는 측은 자연스럽게 입증책임을 지게 되는 까닭이지요. 예컨대 조조가 협천자를 통해 여러 군벌들을 토벌하고 북중국을 안정시킨 점은 편익의 증대로 평가될 수 있지만, 이러한 공로가 조조의 황후 살해와 위국 창건까지 자동으로 정당화시켜 주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도덕을 위반하는 행보는 각각의 경우에 모두 그 편익이 입증되어야 비로소 정당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도에서 조조와 광해군은 자신들의 조치가 어떤 면에서 기존 도덕의 방법보다 더 나은지를 해명해야 하는 입장에 놓입니다. 그리고 대표적인 비판점들을 검토할 경우 이 해명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후한이 150년 이상 안정적이었던 반면 조위는 45년을 겨우 유지했으며, 광해군의 인목대비 유폐는 반대파의 결집을 촉발하여 정권의 수명을 단축시키고 대외정책의 지속을 어렵게 했기 때문이죠. 다시 말해 위국 창건은 천하의 안정에 오히려 해가 되었고, 인목대비 유폐 역시 호란의 방지에 오히려 해가 되었습니다. 편익의 관점으로 이를 옹호하기란 어려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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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우리는 이 지점에서 명분과 실리의 이항대립이 상당 부분 개념적인 것이며, 실질적으로는 ‘도덕 준수의 편익’과 ‘도덕 위반의 편익’ 사이의 선택이 있을 뿐이라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때 전자를 택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안전하며, 책임이 분산되고, 일정량의 편익은 확실히 보장되는 방법입니다. 반면에 후자를 택하는 것은 보다 모험적이고, 책임이 커지며, 편익이 산출될지도 불확실한 방법이지요. 그렇기에 도덕의 위반은 실행 즉시 비난받기 마련이며 단기적 성과를 내더라도 여전히 의심받고, 장기적으로도 더 큰 편익을 산출한다는 것이 입증되어야만 정당화되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의 난제는 과연 장기적인 편익이 산출될지의 여부를 당대에는 알기 힘들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실 정치에서 도덕을 위반하는 측은 늘 ‘실리’의 편을 자처하고, 이를 비판하는 측은 ‘명분’의 편으로 위치지어지곤 하지요. 이러한 인식론조차 없이 도덕을 위반하기란 심리적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항대립 구도는 실제로 유용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결과적으로 편익을 증대시킬 가능성이 있음을 고려하더라도, 분명한 점은 그 입증책임이 도덕을 위반하는 측에게 있지 이를 비판하는 측에게 있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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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역사를 돌이켜 포폄한다면, 조조의 위국 창건은 난세의 극복에 별다른 기여가 없었으므로 사회적인 편익이 모호했으며, 따라서 이에 대한 비판은 정당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광해군의 인목대비 유폐는 대외정책에 동력을 제공하기는커녕 그 약화를 야기했으므로 사회적인 편익을 오히려 감소시켰으며, 따라서 이에 대한 비판도 정당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도덕을 위반하는 행보는 그 자체로 혼란과 반발을 초래하여 사회적인 편익을 감퇴시키기에, 이를 능가하는 편익의 증가가 입증되지 않는 이상에는 늘 손해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명분을 비웃으며 실리를 택하자는 자들을 도리어 비웃을 수 있고, 편익을 약속하며 도덕을 위반하는 자들을 떳떳히 비판할 수 있으며, 미래를 추단하여 현재의 부도덕을 옹호하는 자들을 배격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한 태도를 합리적이고 정석적인 것으로서 중시할 수 있게 됩니다. 나중에 가서 평가하기에 실제로 그때의 도덕 위반이 편익을 증대시켰더라도, 정당성은 그것이 입증된 뒤에야 비로소 부여되는 까닭이죠. 그러므로 당대의 상황에서 판단한다면, 도덕 위반을 비판하는 입장은 언제나 더 큰 정당성을 가진다고 안전하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는 결코 역사가의 것이 아니라는 말과 같은 원리로, 장기적 편익의 산정은 결코 당대인의 일이 아닐 터이니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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