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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5/05/11 13:07:07 |
Name | 메존일각 |
Subject | 사진 촬영의 전문성을 인정하자는 것. |
* 영상 얘기를 같이 쓰려다가 내용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오늘은 웨딩 스냅 촬영을 바탕으로 사진 위주의 글을 전개하겠습니다. 카메라가 매우 흔해진 시대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카메라를 품에 항상 갖고 있고, 아주 간편한 절차로 사진이든 영상이든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쉽게 오해합니다. 사진을 찍는 건 별 거 아니라고. 많은 사람들이 사진에 익숙합니다. 이론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지 않았더라도 대략 이런 느낌에서 사진이 잘 나오고, 어떤 상황에서 사진이 좀 더 예쁘고 어떨 때 별로인지도 경험치적으로 어느 정도 압니다. 그런 사고의 흐름에서 흔히들 착각하는 게 있습니다. 주변에서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즉시 좋은 사진을 얻어낸다고 생각하는 게 그것이죠. 웨딩 스냅을 예로 들겠습니다. 최소한 당사자가 아니라도, 주변의 누군가 결혼을 하면서 카메라를 잘 다루는 지인에게 사진을 부탁했다거나 이런 걸 들어보신 적 있을 겁니다. 부탁할 수 있죠. 한데 정당한 대가를 지불했는가? 솔직히 말해보죠. 사진에 돈을 들이기 싫어서 주변 지인에게 부탁하는 경우가 다수일 겁니다. 하지만 평소 카메라에 익숙한 사람이라고 웨딩 스냅도 잘 찍을 것인가? 우리는 흔하게 결혼식장을 가서 축의금을 내 봤습니다. 그래서 식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압니다. 그리고 하객석에 앉아서 사진 찍는 모습이 너무 익숙합니다. 그래서 그냥 사진을 찍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놓치는 게 있습니다. 이렇게 하객으로 찍는 분들은 책임을 질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이렇게 찍은 사진을 신랑신부에게 꼭 전달해 줄 필요가 없고, 내가 잘못 찍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안 주면 그만이고요. 그리고 적극적으로 움직이면서 찍는 게 아니기 때문에 구도도 고만고만합니다. 웨딩 스냅 촬영에 아주 대단한 기술이 필요한 건 아닙니다. 실제로 웨딩 스냅 작가들도 몇 주간 식장을 따라다니면서 훈련을 받고 바로 현장에 투입 됩니다. 단 전제가 있죠. 카메라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있을 것. 속을 조금 더 들여다 보면, 웨딩 스냅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일단, 식 흐름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기본 중 기본이죠. 어떤 타이밍에 어떤 자리에 이 샷으로 사진을 찍고, 어떤 타이밍이 어떤 구도에서 찍어야 사진이 잘 나오는지 꿰고 있어야 합니다. 하객으로 갈 때는 사진을 찍어도 그만이고 안 찍어도 그만입니다. 반면 웨딩 스냅 작가는 무조건 찍어야 하고, 그럴 듯한 그림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단 한 번 뿐인 그 결혼식에서 어떻게든 결과물을 뽑아내야 합니다. 처음 간 장소에서 안정적으로 좋은 사진을 뽑아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경험치가 높은 사진 작가라면 처음 간 장소에서도 경험치에 의해, 그리고 공식에 의해 어느 정도의 결과물은 도출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미리 사전 답사를 통해 이 웨딩홀의 조명 상태가 어떻고, 어떤 타이밍에 어떤 조명이 켜지고, 어떤 흐름대로 진행하고 등등이 파악되어야 더 좋은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이를 테면, 신부 입장 장면을 못 찍으면 그건 배상감입니다. 때문에 경험이 풍부한 웨딩 스냅 작가와 투입된지 얼마 안 된 작가의 퀄리티 차이도 상당합니다. 그리고 웨딩 스냅은 혼자 찍는 게 아닙니다. 보통 웨딩 스냅 작가가 2명 이상 붙기도 하고, 영상 감독도 투 캠 이상으로 붙으니 수시로 동업자들의 동선도 같이 파악해야 합니다. 카메라에 끼운 렌즈를 보며 대략적으로 화각을 파악하면서 움직이는 건 기본이고, 좋은 자리를 혼자 계속 차지하면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때때로 SNS 등을 통해 하객 중 어떤 이가(혹은 아이폰 스냅 작가 중 누군가가) 버진로드를 점령하고 계속 사진을 찍는 모습이 올라오며 질타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사실상 망한, 최악의 상황이죠. 이런 경우 사진 작가 쪽에서 돈을 토해내는 정도를 넘어서 배상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당연하지만 본식 촬영만 있는 게 아닙니다. 사전에 예비신랑신부와 조율하는 절차가 있고, 리허설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식이 끝난 다음엔 보정을 해야 하고, 보정의 수정도 진행합니다. 딱 한 번 그날 가서 찍는 게 끝이 아니란 거죠. 예전에는 저도, 지인 상업 작가님과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일정을 빡빡하게 잡았습니다. 전문가니까 그냥 가보면 좋은 결과물을 뚝딱 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진짜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려면, 그 전문가적인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오랫동안 현장을 파악하는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그래야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8년쯤 전인 것 같아요. 이 작가님과 어떤 장소를 출장갔는데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사전 답사 가보고 "오늘은 여기 끝났네요. 해가 저기로 넘어가서 내일 오전 10시쯤 다시 오죠." 그런데 저희 일정이 그렇게는 좀 어려웠기 때문에 동선을 좀 비틀어서 오전 10시에 오는 시간을 따로 빼냈습니다. 처음에는 작가님의 이 말이 이해되지 않았어요. '어? 그냥 찍으면 되는 거 아냐?' 절대 그렇지 않죠. 공간 특성을 이해하고, 빛을 이해하고, 그래야 이 공간에 맞는 근사한 느낌을 낼 수 있죠. 사진을 어느 정도 알게 된 이후로도 현실적으로 사전 답사 일정을 약간 추가하는 이상은 어렵지만, 아무튼 그거라도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상당하죠. 사진 작가들이 전시회에 거는 그런 작품들은 몇 날 며칠, 혹은 몇 달, 몇 년을 파고드는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그 감각과 경험치를 갖고서도 사진을 촬영한 공간을 아주 오랫동안 이해하고, 필요하다면 뭔가 더 가미하여 촬영하게 되는 것이죠. 바로 찍어도 일반인보다 더 잘 찍을 확률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아주 드라마틱한 차이는 없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일반인은 오랜 시간을 들인다고 해도 그 사진 작가처럼 최고로 멋진 결과물을 뽑아낼 수는 없습니다. 사회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각각 자기가 맡은 전문 분야가 있습니다. 본인의 전문 분야를 누군가 쉽게 말한다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겠죠. 그리고 전문성을 활용해서 일을 해야 한다면 거기에는 정당한 대가가 지불되어야 합니다. 웨딩 스냅의 경우도 막상 예비 신랑신부가 지인 취미 작가에게 부탁은 했는데, 지인 작가가 거기에 흔쾌히 수락까지 했더라도 결과물에 대해서는 무리하게 요구하면 안 됩니다. 지인 작가도 좋은 마음으로 수락을 하고 알아보는 도중에 사안의 심각성(?)을 눈치챌 가능성도 있고요. 부탁한 쪽에서 제대로 대가를 지불하지도 않으면서 웨딩 스냅에 대해서는 전문성이 없는 지인에게 모든 것을 책임지게 하려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건 대단히 파렴치한 행위죠. 아주 사소한 디테일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사람들이 전문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본인도 좀 안다(?)는 이유로 촬영에 대해 쉽게 생각하고, 무작정 비용을 아끼려고 하는 건 지양되어야 하겠죠.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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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예술적인 측면도 있지만 기술적인 측면 또한 엄청 클텐데
현대 한국 사회는 인건비와 전문성에 대한 존중을 하지 않죠
제대로 된 비용을 지불하려 하지 않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만연해서...
현대 한국 사회는 인건비와 전문성에 대한 존중을 하지 않죠
제대로 된 비용을 지불하려 하지 않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만연해서...
맞습니다. 오래 전부터 나오는 얘기고 지금도 나오는 얘기죠. 하지만 사람들이 실제로 잘 모르면서 지인에게 물어보는 경우도 있고 어설피 알면서 물어보는 경우도 있어서 써봤습니다. 지인도 그런 부탁을 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서브 작가 정도로 들어가는 것도 다소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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