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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5/06/19 14:24:03 |
Name | 큐리스 |
Subject | 경험의 주관성에 대해서 |
"여기 진짜 맛집입니다." 친구가 열띤 추천을 합니다. 온라인 리뷰는 별점 4.8을 기록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은 기대에 부풀어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음식을 입에 넣기 전까지, 그곳은 저에게 '맛집'이 아닙니다. 더 정확히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객관적' 기준이 존재합니다. 미슐랭 가이드의 별점, 구글 평점, 블로거들의 극찬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지만 제 혀가 그 맛을 확인하지 않는 한, 그것은 타인의 경험을 숫자로 압축한 추상적 개념에 불과합니다. 사진으로만 본 일몰이 실제의 감동과 다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는 종종 평균을 진리처럼 받아들이곤 합니다. '평균적으로 좋다'는 말이 절대적 가치를 지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000명이 '맛있다'고 평가한 음식이라도, 만약 제가 1001번째가 되어 '별로'라고 느낀다면, 그 순간 저에게 평균은 의미를 잃게 됩니다. 문득 연인과 함께 먹었던 평범한 치킨이 떠오릅니다. 유명한 브랜드도, 특별한 양념도 아니었지만 그날 밤 나눠 먹던 맛은 어떤 맛집보다 진했습니다. 웃음과 대화가 양념이 되고,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소스가 된 순간의 맛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직 우리만의 기억 속에 살아있는 맛입니다. 다른 누구도 그 밤의 온도를 알 수는 없습니다. 평균이란 결국 타인의 경험을 모아 만든 가상의 기준점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평균적인 한국인'처럼,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체는 없는 허상인 것입니다. 천 개의 별이 만드는 평균 밝기가, 제 눈에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한 개의 별보다 더 의미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직접 겪지 않은 경험은 저에게 '정보'일 뿐입니다. 정보와 경험 사이에는 분명한 강이 흐릅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에베레스트의 장엄함을 묘사해도, 제가 그 정상에 서보지 않는 한 그것은 제 경험이 아닙니다. 지난봄, 벚꽃이 만개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SNS는 온통 벚꽃 사진으로 가득했고, 모두가 감탄사를 남겼습니다. 하지만 그날 오후 공원을 걷다가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 하나가 어깨에 내려앉았을 때의 그 감각은, 수천 장의 사진이 전해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 존재의 근본적 고독이자, 동시에 특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감각기관, 기억, 감정 필터를 통해 세상을 고유하게 재구성합니다. 10킬로를 뛰고 와서 마시는 캔맥주와 배부른 상태에서 마시는 똑같은 브랜드의 캔맥주는 완전히 다른 음료가 됩니다. 땀 흘린 뒤의 첫 모금은 큰 쾌감을 주지만, 과식 후에 마시는 그것은 부담스러운 액체일 뿐입니다. 같은 제품임에도 제 몸의 상태와 마음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차이는 틀린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타인의 경험과 평가를 무시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것들을 참고자료로 활용하되, 최종 판단의 주체는 반드시 나 자신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맛집 추천을 받아도 결국 제가 가서 먹어봐야 하고, 영화 평점이 높아도 제가 직접 봐야 재미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타인의 경험은 나침반 역할을 할 뿐, 목적지는 직접 걸어가서 확인해야만 합니다. 모든 경험은 그 자체로 평등합니다. 미식가의 입맛도, 일반인의 입맛도 각자에게는 절대적 기준입니다. 1000명이 '맛있다'고 한 음식을 혼자 '맛없다'고 느끼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입니다. 결국 인생이란 직접 경험해보는 용기를 내는 과정입니다.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감각을 믿으며, 고유의 기준을 세워가는 것입니다. 그 유명한 맛집이 저에게는 별로일 수도 있고, 모두가 외면하는 곳이 저만의 숨은 맛집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직접 확인해보는 행위 그 자체입니다. 언젠가 혼자 떠난 여행에서 우연히 들어간 작은 식당이 있었습니다. 간판도 낡고 손님도 많지 않았지만, 그곳에서 먹은 김치찌개는 지금도 혀끝에 선명하게 남아있습니다. 그날의 배고픔, 날씨, 마음이 모두 섞여 만들어진 그 맛은 어떤 평점 사이트에도 기록되지 않은 저만의 보물이 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평점과 추천보다 소중한 것은, 제가 직접 쌓아가는 경험의 데이터베이스입니다. 그것만이 온전한 저만의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기준으로 살아가는 것이, 진정으로 나답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평균적으로 좋다'는 말보다 '저는 좋았습니다'라는 말이 훨씬 진실에 가깝습니다. 9
이 게시판에 등록된 큐리스님의 최근 게시물 |
취지는 이해하고 동의합니다만 어디까지나 논리의 차원에서 원론적인 얘기를 하자면.. 그런 간접 정보와 추상적 개념을 인식하는 것도 실은 경험이고, 추상적 개념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것을 포기하거나 배제한 채 물리적 인식만을 실질적 경험으로 간주할 경우 지나치게 협소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더 파고들면 사실 물리적 인식이란 것 부터도 사실은 이미 추상화된 필터를 거친 것이라서..
저도 그래서 판단할 때 외부지식은 30%정도만 참조하고, 경험 40% 직관 30% 정도로 조합하려고 노력합니다.
셋 다 부정확하지만, 섞으면 크게 어긋나진 않는 느낌이라..
셋 다 부정확하지만, 섞으면 크게 어긋나진 않는 느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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