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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5/04/29 23:21:50
Name   골든햄스
Subject   나아가고 있겠죠?
안녕하세요. 홍차넷에 계속 아버지의 가정폭력 및 사회의 방관으로 인한 이야기를 적은 골든햄스입니다. 많은 분들의 성원 덕에 정말 많이 나아졌습니다.

이제는 학원 강사로 강단에 선 지 두 달이 되었습니다.
학창시절에 어두운 모습에 모두가 쉽게 알고 성범죄까지 행할 정도로 대대적인 학교폭력과 왕따를 했기 때문에 제게는 아이들 앞에 나서는 것도 꽤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대인공포증 때문에 눈앞이 까만 기분이었고 한마디 한마디를 할 때마다 모든 것이 의식되어 미칠 것 같았습니다. 제가 핏줄 하나까지 의지로 조종하려하는 기분이었고 과거의 안 좋은 경험들이 몰아치더군요.
그런데 아이들이 하나같이 순한 얼굴로, 조금의 의문도 없이 제 수업을 듣는 겁니다. 뭐 하라고 하면 하고, 어디 책 펴라면 펴고… 조금의 의심의 기색도 없이.

처음에는 퇴근 후 허벅지가 세 시간 가량 떨기도 했는데요.
어느새인가 그냥 학원에는 긴장 없이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시험기간이라고 우루루 빠진다는데 제가 맡은 수업은 전체 출석이랍니다. 기쁩니다.
아이들을 보는 게 기뻐서 계속 간식을 주고, 루트비어 맛을 보라고 나눠주고는 합니다. (루트비어는 죄다 이상하다고 하며 애들이 버리더군요.) 제 어린 시절 결핍이 기억이 나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만날 때마다 더 잘해주고 싶은데 실수도 종종 합니다.

비버는 제가 가계 경제를 돌리며 버티는 동안 멋진 개업 변호사로 늠름하게 성장했습니다. 제가 보아도 가슴이 선덕선덕.. 아 아니, 멋있습니다.

이제야말로 미루던 EMDR (트라우마 기억 재처리 치료) 를 받기로 하고 병원을 찾고 있습니다.

오늘 든 생각.
맞다. 나 이제 30대인데..

왜 아직도 2019년, 로스쿨 합격과 동시에 희귀병 발발, 아버지께 버림받고 친구들도 이럴 때는 의지할 수 없구나 느끼며 보풀 인 옷으로 복지 찾아 길거리 헤매던 때의 느낌이 자꾸 선득선득 팔다리에 기어오르는 건지.. 이제 제발 그만, 그만 내 안에 머물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가끔 108배를 막 하기도 합니다. 성경도 진지하게 읽고 있습니다.

하루를 평온히 보내고 즐겁게 보내려고도 노력합니다. 그래도 이제는 꽤 할일을 하는데, 그 대신 밤에 마치 미뤄둔 숙제를 하라는 식으로 그날 치 공포감과 불안감이 또 밀려드네요. 제 생각에 학원을 출강한 게 인간관계에 있어 좋은 노출치료가 된 거 같아서… 그래! 차라리 더 이상 소극적인 약물치료로는 안 되겠다. 노출치료로 가자! 폭로요법이든 뭐든. 이라는 생각입니다.

제가 아는 많은 사람들이 정신과에 자기가 당한 학대 내역을 말하는 데도 잘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정체성화하기가 힘든 기억들인데 그래도 이정도면 잘해온 거라고 스스로 토닥여봅니다. 다행히 잘 들어주는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기도 하였습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스마일 센터 등을 통해 진작 아버지를 형사고소하는 것이었을 것 같지만… 어릴 때는 경찰이 신고를 무시하고 집에 와서 20분 가량 비웃고 가는 등 히스테리적으로 저를 오히려 몰아세웠고 커서는 경찰서에 신고기록 달라고 정보공개청구한 것이 로스쿨 다닐 때 부작위 처리되어.. 하필 가난하고 정신없을 때라 행정소송을 할 기력이 없는 채로 그리 시간이 지나버렸습니다

다행히 아버지가 제 주소나 가족관계를 못보도록 주소열람제한/가족관계열람제한 처리는 되어있습니다. 여성의 전화 덕분입니다. 여성의 전화가 내준 서류로 주민센터 등에서 업무를 하는데 가족관계열림제한까지 필요하냐고 눈치를 주긴 하더군요. 다행히 그때는 어른이 되어 저는 ‘귀찮아하는 어른’을 덜 무서워하던 때라 속행했습니다.

어린 햄스에게 오늘도 편지를 씁니다. (이러라고 AI들이 많이 제안을 합니다. 근데 동양식 트라우마 치료에 이게 맞을까? 싶다만 뭐라도 해봅니다.)

그때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했어. 넌 정말 눈부신 아이야. 멋진 미래가 기다리고 있어.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니. 몰라줘서 미안했어. 계속 성취를 내라고 채근해서 미안했어.

너는 하나님이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이었어. 그런데 하나님이 널 위해 사람들을 계속 보내게 된단다. 하나님은 널 절대 포기하지 않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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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춫천


절름발이이리수정됨
권해드리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이미 하고 계실 수도 있습니다만, 운동입니다. 산책 같은 것도 물론 좋은데, 가급적이면 헉헉거려서 몇분간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고강도의 운동들을 권하고 싶습니다. 고강도 운동을 하면서 느껴볼 수 있는 것은, 마치 내 신체와는 분리되어 따로 존재하는 듯여겨왔던 정신이, 사실은 신체와 일체한다는 감각입니다. 관념적으로 가늠하던 나의 정신이, 그냥 산소 부족과 근육의 atp 고갈로 인해 헐떡이는 신체에 그저 물리적으로 붙어있는, 다분히 기계적인 시스템의 일부라고 느끼는 것입니다. 이게 의외로 정신적 ... 더 보기
권해드리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이미 하고 계실 수도 있습니다만, 운동입니다. 산책 같은 것도 물론 좋은데, 가급적이면 헉헉거려서 몇분간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고강도의 운동들을 권하고 싶습니다. 고강도 운동을 하면서 느껴볼 수 있는 것은, 마치 내 신체와는 분리되어 따로 존재하는 듯여겨왔던 정신이, 사실은 신체와 일체한다는 감각입니다. 관념적으로 가늠하던 나의 정신이, 그냥 산소 부족과 근육의 atp 고갈로 인해 헐떡이는 신체에 그저 물리적으로 붙어있는, 다분히 기계적인 시스템의 일부라고 느끼는 것입니다. 이게 의외로 정신적 건강의 상당한 발판이 됩니다. 정신이 괴로울 때, 이러한 운동 후 내가 느끼는 정신적 통증이 사실 자아가 아닌 신체적 통증으로 격하되고, 그냥 나는 그와는 물리적으로 떨어져서 지금 이 바닥에 있는 물체일 뿐이라는 느낌을 받으실수'도' 있습니다. 쉬운 말로 '머리를 비운다'는 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뭐 이런 관념적인 소리를 떠나서 신체는 고강도 운동을 하면 다양한 기전으로 정신건강을 증진시킵니다. 제 몫을 하면서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나아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원하시는 상태에 더 빠르고 잘 가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뻔한 얘기 해 봤습니다.
16
골든햄스
매우 감사합니다. 이것도 트라우마 관련인지는 모르겠는데 근육통이 매우 말도 안 될 정도로 심각하고 정신적으로도 고통이 오도록 요즘 바뀌어서 운동을 쉬었었는데요. 어쩌면 그것도 노출치료일지도.. (몸 안의 이전의 감각들이 올라오는 거라면)
절름발이이리
고통이 지나치다고 느끼시면 무리하지 않는게 좋습니다. 적정 강도를 찾아보시면 좋겠네요.
1
위의 이리님 댓글에 이어, 조금 더 안정되시고 나면 서사를 잠시 '끊는'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내가 이야기를 쓰는 건 좋지만, 이야기가 나를 쓰는 건 노우노우. 물론 그건 적절한 운동, 적절한 수입, 적절한 영양공급, 적절한 사회적 지지망 등등이 어느 정도 확보된 이후이고요. 적어주신 정보를 바탕으로 볼 때 곧 균형에 도달하실 수 있을 것 같읍니다 ㅎㅎ

이 공간에 여러 이야기들을 풀어놓으셨으니, 이야기를 더 이어나가야 한다는 압박이 드실 수도 있을텐데, 그러지 않으셔도 되요. 이 공간을 찾는 많은 분들은 - 공간이 더 나아서... 더 보기
위의 이리님 댓글에 이어, 조금 더 안정되시고 나면 서사를 잠시 '끊는'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내가 이야기를 쓰는 건 좋지만, 이야기가 나를 쓰는 건 노우노우. 물론 그건 적절한 운동, 적절한 수입, 적절한 영양공급, 적절한 사회적 지지망 등등이 어느 정도 확보된 이후이고요. 적어주신 정보를 바탕으로 볼 때 곧 균형에 도달하실 수 있을 것 같읍니다 ㅎㅎ

이 공간에 여러 이야기들을 풀어놓으셨으니, 이야기를 더 이어나가야 한다는 압박이 드실 수도 있을텐데, 그러지 않으셔도 되요. 이 공간을 찾는 많은 분들은 - 공간이 더 나아서가 아니라 다들 연세가 있으시기에 ㅋㅋㅋ - 인간의 삶이 이야기를 통해서만 전달 가능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삶은 이야기로 포착되는 그 이상의 모순과 복잡함을 담고 있다는 걸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아실 거거든요.

근육통 관련이라면 의사 분께서 더 잘 아시겠지만, 소마틱스 관련된 영상을 찾아보시고 해당 동작을 따라해보시는 것도 추천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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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의청솔모
선생님 루트비어 좋아하십니까? 혹시 그럼 닥터페퍼도 좋아하세요? (저는 둘다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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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햄스
둘 다 매우 좋아합니다 ㅎㅎ
무적의청솔모
바람직한 취향을 가지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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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운
행복으로 나아가는 중이신 거 같아 부러워요. 나도 행복해지고 싶다... 응원합니당
1
파란아게하
분명한 한걸음 한걸음이라 더 더 나아지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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