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5/02/14 23:42:37
Name   골든햄스
Subject   불이 켜진 밖을 비틀비틀 걸어 나오며
*Previous on 골든햄스.. 긴 학대를 겪고 무언가 세상과 나를 바꿔보고자 서울대 로스쿨에 진학, 캠퍼스 커플로 김비버(역시 홍차넷 회원)을 만나 7년에 가까운 연애를 하였으나 아버지의 학대와 배신의 후유증으로 섬유근육통 등을 앓으며 치료비도 왕창 쓰고 과외하고 실정법 공부에도 적응을 못해 김비버는 변호사가 되었으나 햄스는 똑 떨어지고 만다.. 그 후에도 여러가지 후유증으로 홍차넷에서 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지지와 위로를 받으며 회복해나가고 있었다...

여기서부터 이야기 시작... 두서없이..


사실 비버와 엄청 싸운다
근데 비버와 싸운 걸 구구절절 적자니
연인들끼리의 싸움이 그렇듯 너무도 개인적이고 치졸해서 적기가 그렇다

좋았던 일만 적으니 비버가 굉장히 좋은 사람처럼 보이는데
비버도 치졸하고 골든햄스도 치졸한 사람이다
이 점을 다들 잊지 않으면 좋겠다 (...) 그래서 가끔 일부러 글도 더 잘 쓸 수 있는데 못쓰려고 한다
다들 환상을 가졌다 상처 입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음 하여간 .. 근데 이번에도 또 비버와의 감동적인 일화를 가져왔다.. ㅎ... 하지만 이런 이야기니까 글로 쓰는 거지 현실은 구질구질한 빨래와의 싸움이란 걸 다들 잊지 않길 바란다!!

대략 일주일 전.. 나는 집에 혼자 쉬고 있으면 점점 숨이 가빠지고 집이 나를 조여오는 느낌이 들곤 했다
남들은 와 땡큐 젤다하면 되겠네! 이러는데 이상하게 난 힘든데 왜 힘든지도 모르겠고
옛날에 서운했던 일들이 떠오르며 분노와 질투와 망상과 시기가 판을 쳤다

그러다가 비버가 퇴근했다
나는 비버에게 내 감정을 용기내서 다 이야기했고 비버도 얘기해보라 했다
그런데 비버가 전과 태도가 달라졌다.. 이번에 좀 개같이 싸우고 비버가 잘못한 걸 내가 용서해줬더니
비버는 자신이 imperfect 한 걸 알게 됐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불완전한 자신이 누굴 판단하겠냐고
나에 대해 완전히 판단과 평가를 내려놓게 되었다고 했다

비버는 정말 그냥 .. 숨도 가쁘게 안 쉬고
부드럽게.. 그냥 차분하게
호흡을 하면서...
무언가 정말 바람처럼 산뜻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줬다
그냥 그곳에 있어주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러고 나서 내 마음 속에 불이 켜졌다
계속해서 있던 우울감.. 뭔가 알 수 없는 노이즈.. 그 모든 것들이 사라지면서...
집에 있어도 밝게 되었고 뭔가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도 적어지고 더 속한단 느낌이 들게 되었고
이상하지만 내가 더 튼튼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음 속에 정말 촛불이 켜지듯
처음엔 노란 불빛이 조금 있다가 점점 그 촛불이 일렁이며 커지며...
나는 세상에 걸어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밖에서 혼밥을 해도 스스로 초라한 느낌이 들거나 위축된 느낌 없이 익숙하게 씩 웃으며 김치볶음밥 하나요-를 할 수 있게 됐고
맛있게 냠냠 즐기며 먹게 됐고
(아 그러고보니 현대사회는 얼마나 많은 사람과의 관계로 이루어져있는지)
길거리를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카페를 가거나 이런 것들이 덜 두려워졌다
예전에는,, 아버지랑 살 때는 억지로 뭔가 이상하게 삐걱거리면서 다니는 느낌이었고 고려대 안암골짜기에선 이상한 학생이 있어도 좀 공부가 힘든 애인가보다 하고 다들 이해해주는 문화기 때문에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그렇지만 성신여대만 놀러가도 이상하게 그 나이에도 시비를 걸리거나 앞담을 당하거나 하는 일이 많을 정도로 위축된 아우라가 있던 게 나였다
(오우.. 놀 줄 아는 놈들인가?? 농담이고 그렇게 하는 가해자들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연구결과상..)

하여간.. 그 따스함이 내게 들어왔다

그리고 그 따스함.. 그 느낌 속에서.. 아마 처음으로 가져본 가족이란 존재의 그 느낌..
그리고 어떻게든 앞으로 사교육 강사로라도 먹고 살 수 있으리란 기대
처음으로 회복된 몸상태

이런 것 속에서 나도 처음으로 '보통의 한국인이 갖는 정서적 주파수'를 감을 잡게 됐다
그들의 그 느낌.. 폭이 좁고 안정적인..

그래서 고용복지 상담사 등과도 원활한 인간관계를 맺었고 (복지를 받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평온한 마음가짐으로 상담사와의 라포를 형성할 태도.. 근데 그걸 갖기가 쉽나;)

학원 일 과외 일 등도 쭉쭉 진척시켜나갔다
사람들과 만나는 일도 잦아졌고 전보다는 훨씬 안정적으로 술자리도 가졌던 거 같다
맡은 친한 변호사님 블로그 마케팅 일도 꼬박꼬박.. 조금 비틀거리면서도 공부삼아 하고 있다

이제는 누굴 만나 내 외로움을 풀어야 하는지 고민하기보다,
앞으로 쌓인 약속들을 다 처리할 수 있을까 가 고민이 되었다..
그만큼 많은 분들이 날 꺼리진 않고 찾아준단 것에 너무나도 너무나도 기쁘고 행복하고 감사한 기분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용복지 상담사님 앞에서 어쩔 수 없이 공백기 등을 설명하기 위해 내 가정사를 설명할 때...
이전까지 실패한 9999번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고
정확하게 몸과 자세를 정련한 채 (말의 내용보다 태도와 목소리가 훨씬 소통에 중요한 걸 아시나요?)
나를 인형처럼 어디다 팔과 목을 묶어놓고
이제는 문과대학을 다닐 때처럼 글과 발표, 과제만 제도권에 맞추는 게 아니라
내 영혼까지 제도권에 맞춰서 팔딱팔딱 잠시간은 어떤 연기를 하고 와야 한다.

그 결과 그녀는 너무나도 만족하고 내 삶에 감동을 받고 나는 내 인생에서 그토록 받고 싶었던 '연민과 격려, 감탄'을 드디어 받지만...........
그건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모든 것을 극복하고 나의 보통 사람들에 대한 편견과 미움을 다 세세히 연구하고 용서하고 화해한 결과 ...
즉 모든 이야기가 끝난 후에 돌아오는 허무한 메아리다.

하지만 나는 제도권에 살기로 마음 먹었다. 요즘은 가정폭력이나 관계 고민 등을 주제로 모이던 온라인 오픈카톡방도 다 나왔다. 그쪽 사람들을 다 끊었다. 그냥 이제 그 사람들을 보고 싶지가 않았다.

뭔지 모르겠지만 .. 이 사회와 숨쉬며 같이 살아가며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내가 나를 속이고 꺾고,
사랑받아보지도 않았으면서 사랑받은 척 연기하고 학창시절을 잘 보낸 사람들을 따라 습관과 행동을 교정하며...
그렇게 나를 교정하고 교정해서 도달하는 곳에 정말 '사랑'이 있을까?
정말 세상을 더 낫게 할 방법이 있을까?

나는 그냥 노력이 습관이 돼서 오늘도 노력을 하는 게 아닐까?
나는 뭐가 되고 있는 걸까?
다들 변호사가 되었음 좋겠다고 위로를 해준다. 나도 미련이 있다.
그런데 판례평석을 적다보면.. 아 정말 법률가들과 나는 사실 기본적으로 머리 회로가 다르긴 하구나 뭔가 생각법이나 사회에 대한 수용성 사회와의 섞임, 사회에 대한 지식 정도가 차원이 다르다 느낀다.

무엇보다 나는 사각지대, 한국의 뒷골목을 헤매고 다닐 때, 이 사회의 어둠과 그림자를 맛보았고
그것을 로스쿨에 돌아와 증언했을 때 갑자기 다들 못 들은 척 하던 동료 법률가들의 모습에 큰 상처를 맛보았다.

그렇지만 비버는 꾸준히 법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을 잊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법과 사회의 가치를 말했고,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일을 해나간다.
물론 집에서는 게으르게 맨날 문명 게임만 돌리고 있지만....

나는 내 안에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이, 법치주의에 대한 환상이,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이 많이 깨져있단 걸 느낀다.
하층민을 움직이게 하는 건 정신적 아편이 되어주는 사상이다.
그것이 예전에는 종교였다면 언제는 산업화였고 언제는 민주화였다.
나는 어쩔 수 없는 하층민 출신으로서 매순간 정신적인 기도로 삶을 버텼었다.
그건 언젠가 사람들과 함께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는, 나의 이 삶도, 어둠 속의 사람들도 빛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었다.

문학에는 애초에 재능도 없는 거 같고..
에세이도 솔직히 말해 난 심술궂어서 남들이 감동받는 내용의 에세이를 써주기가 싫다 (??)

요즘 비버는 상류층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다닌다. 그들은 또 중산층을 싫어한단다. 많은 중산층은 하층민을 무서워하거나 경멸한다.
기생충 영화에서 그려진 그 구도대로.. 하층민은 중산층을 꿈꾸지만 되지 못하고 차라리 상류층을 리스펙! 머리를 숙이며 존경한다.
있는 사람들은 계속 선을 긋고 다니고 싶어하고 없는 사람들은 슬며시 그 선을 넘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요즘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때마다 나는 마음 속에서 심장이 뜀뛰기를 하는 게 느껴진다. 한 절벽에서 다른 절벽으로 뛰어가듯 아주 처절하게 치열하게 상대의 마음 궤도에 맞는 나를 연기해내기 위해 심장이 하루에도 수십 번 위기를 넘긴다.

그러고나서 작은 불안 증상 같은 게 올라오면 약을 먹고 비버를 기다린다. 이 모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한 명을 ...

그럼에도.. 무언가 멋진 일을 해낼 수 있으리라고
탁월한 건 계급이나 그 어떤 것도 초월하는 보편적인 것으로
그 어떤 빛나는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는 정말 근거도 없는 어떤 이상한 낭만으로 나는 삶을 버텨나간다

법리를 하나 배우기만 해도 세상을 좋게 할 걸 배웠다고 뛰어난 걸 배웠다고 방방 뛰던 철없던 학부생 시절의 나는 없지만,
이제 나를 인내하며 달궈낼 연장과 스승님들과 좋은 여건이 다 갖춰졌다.
다만 목적이 무엇인가 그건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 누구도 결국 미래를 알 수 없으므로.

동굴 속에서 이데아를 흉내내며 즐거워하기만 하는 사람들이 어쩌면 더 완전한 우정, 완전한 애정, 완전한 국가를 손에 쥔 듯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동굴 밖으로 나와 불완전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선택했다. 릴케의 말대로 쉬운 길과 어려운 길이 있으면 언제고 어려운 길을 택해야 하기에. 그건 왠지 모르지만 어떤 인간의 훌륭한 사명과 같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이런 말 따위를 쓰고 있는 시점에서 여전히 나는 제대로 된 사회인이라기보단 방황하는 청춘 같아 민망하다.)

조금씩 회복되어가는 인지능력과 몸을 느끼며, 그래도 사람들과 같이 잠시간은 즐거운 분위기를 흉내낼 수 있게 되는 능력도 느는 걸 느끼며,
더는 병적으로 남을 도와주려고 다니지 않는 나에 대해 감사함도 느끼며,

오늘도 비버와 하루를 끝마치는 대화시간을 갖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1명분의 삶을 사는 데 지나치게 많은 고뇌는 사치인 것도 맞다.

그럼에도 미국의 정치체제도 흔들리고 포스트 2차세계대전 체제가 흔들릴 수 있는 지금, 한국도 전후 고도성장의 불꽃이 꺼져가고 분열과 계급화가 자글자글 끓고 있는 지금, 어쩔 수 없이 글밥 먹고 사는 사람으로서 나는 다음 글의 소재가 어쩔 수 없이 너무나도 필요한 것이다.

내가 무엇을 위해 또다시 시련의 길을 가야할지 고행의 목적이 또다시 필요한 것이다...

바보 같지만 햄스터는 너무 작고 겁이 많아서 큰 꿈이 없으면 움직일 수 없다.





17
  • 모두가 알아줘야 할 낭만이 필요한 건 아니지요.나와 나의 주변만이 알아주더라도 충분히 괜찮은 것.
  • 나를 바라보는게 항상 두렵기에, 나를 바라보는 사람을 존경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성장이든 치유든 변화든 뭐든 그 결과로 서서 걸을 수 있게 된 자신을 거짓이라고 생각하지 마셨으면 하네요.
아니 연결과 소통 공감이 필요했던 건 예전의 나인데, 심지어 그 나는 여기 그대로 있는데...? 그러니까 이거 다 가짜 아니야...? 라는 기분도 공감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걸 모른다는 게 분노를 자아낼 때가 있습니다. 그 분노에 몸을 맡겨도 곤란하지만 억눌러도 곤란하죠.
새로운 내가 따뜻함이든 빛이든 사랑이든 받을 만큼 받아서 지금 여기 나와 함께 있는 과거의 나(사라지지 않습니다)에게 주면 됩니다.
그 요령만 알면 좀 수월해지는 것 같습니다.
1
골든햄스
늘 섬세히 독해하고 배려해주시고 표현력도 좋으신 바쿠님께 감사드립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제가 말씀처럼 선해서라기보다는 제 상황과도 겹쳐볼 수 있는 말들이라 나오는 것 같아요. 제가 햄스님 같은 큰 상처를 받은 사람은 아니지만요. 그런 의미에서 쉽지 않은 이야기를 풀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해주셨으니 햄스님께 감사하다고 말해야 하는 건 저일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렇고요. -- 햄스님 그 '과거의 나'가 글을 쓰도록 해보세요. 그 나에 '대해서' 쓰거나 '그 나의 이야기를' 쓰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 있는 '과거의 나'가 하고 싶은 말을 아무 거나 적어보는 거예요. 날것으로. 남한테 보여주지 말고.
1
골든햄스
근데 이 경험을 통해 저는 피해자가 피해자다움을 결국은 의도적이진 않더라도 바라고 그것만 인풋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의 사람들이 많은 (아닌 현명한 사람도 있어요) 사회에서 어떻게 자신을 비춰보이게 연출해야 되는지에 대한 통찰과 how to 를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
궁금한 분은 문의 주십시오 ..
부모에게 학대받은 사람 중 아마 제가 한국에서 제일 이해받은 사람일 것입니다
1
whenyouinRome...
햄스터 마이 컸네.
이제 나가도 되겠어~
1
골든햄스
롬형 비버랑 홍차넷하면 롬형 칭찬만 해
whenyouinRome...
왜죠??
요즘 스노보드랑 맥주 뱃살 야구 이야기밖에 안하는데..
진짜 이해가 어렵네요ㅡㅡㅋ
1
골든햄스
비버 왈 시원시원하다 라고 함
FTHR컨설팅
[즉 모든 이야기가 끝난 후에 돌아오는 허무한 메아리다]
라고하셨지만,
어떻게보면 상장 내지 트로피, 자격증, 면허증 같은 거라 생각하셔도 좋을것 같습니다.

시험이나 경기전에도 사실 그에 걸맞는 충분한 실력이 있을거에요. 그럼에도 우리가 시험같은 걸 보는 이유는 “이제 그만힌 능력과 자격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과 특히 자기자신에게 알려주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 결과물(자격증, 메달, 합격증..)은 받으면 원래
좀 허무해요. 내가 이 쪼가리 하나 받으려고 그 고생... 더 보기
[즉 모든 이야기가 끝난 후에 돌아오는 허무한 메아리다]
라고하셨지만,
어떻게보면 상장 내지 트로피, 자격증, 면허증 같은 거라 생각하셔도 좋을것 같습니다.

시험이나 경기전에도 사실 그에 걸맞는 충분한 실력이 있을거에요. 그럼에도 우리가 시험같은 걸 보는 이유는 “이제 그만힌 능력과 자격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과 특히 자기자신에게 알려주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그런 결과물(자격증, 메달, 합격증..)은 받으면 원래
좀 허무해요. 내가 이 쪼가리 하나 받으려고 그 고생했나..
그러나 맞습니다. 그 쪼가리 하나가 그만큼 값어치가 있는 거에요. 무엇보다도 거기까지 도달하기위한 과정의 노력과 어려움은 누구도 알아주지 못하는 영역이거든요.

잘하신 거고 앞으로도 잘하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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