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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4/09/19 18:18:13수정됨
Name   카르스
File #1   20240915_185553.jpg (173.2 KB), Download : 1
Subject   이영훈 『한국경제사 1,2』 서평 - 식근론과 뉴라이트 핵심 이영훈의 의의와 한계


박사과정 연구를 진행해야하는데 잘 되질 않아서 시간 내서 연휴에 읽은 책 서평을 올립니다 ㅎㅎ

이 책은 한국의 저명한 경제사학자이자, 식민지 근대화론과 뉴라이트 핵심 인물이었던 이영훈이
은퇴 기념으로 2016년에 자신의 30여년 연구성과를 한국경제사 개론의 틀로 집대성한 역작입니다.
양 권 합쳐서 1300페이지 분량인 이 책은 전체가 학술서다운 묵직한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근래 이영훈은 학술적 엄밀성을 잃어버린 채 반일종족주의 저술과 이승만학당 활동 등 정파적인 활동만 하고 있습니다만,
이 책은 학술적 엄밀성을 잃어버리기 전 마지막 역작이라 하여 읽었습니다.
흑화(?)하기 전의 이영훈은 그에 비판적인 진보좌파 학자들조차 지적 성과로는 인정하는 체급이기 때문입니다.

추석연휴 전까지 300페이지 정도를 읽었는데, 이 김에 추석연휴에 전부 완독하기로 해서 약한 속독을 통해 전부 읽었습니다.
요약하자면, 이영훈의 한계와 극복해야 할 지점들도 많이 보이지만,
각 권 45000원씩 총 9만원이라는 매우 비싼 책값이 아깝지 않은 대작입니다.  
길고 어려운 책을 잘 읽으면서 한국경제사에 관심 있는 분들은 한번씩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내용의 방대성과 깊이로 인해 주제 하나하나를 비평하기엔 시간도 역량도 되지 않습니다.
그걸 다 쓰면 논문급 분량이 나올 것이고, 다른 대가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글 전체의 짜임새와 이영훈의 사관을 위주로 비평하려고 합니다.

이 책의 의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것조차 구체적으로 짚긴 너무 길어지니 요약해서 말하자면

첫째, 3000년 한국경제사 전체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드문 역작입니다.
이 책은 한국경제사 전체를 개별 경제활동 단위의 변화(연烟->정丁->호戶->개인個人)를 기준으로 
삼국시대까지, 통일신라시대~고려시대, 조선시대, 일정기(日政期; 그는 일제 강점기 대신 이 표현을 씁니다)~현대 대한민국까지 제1-제4시대로 구분합니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시대구분 기준조차 매우 심오한데, 그 기준 하에서 한국경제사 전체를 2권 1300페이지 분량으로 상세하게 포괄할 줄 아는 책입니다. 
제가 아는 한 이걸 해낼 역량이 있는 경제사가는 국내에 몇 없습니다. 이영훈 말고 있긴 한가 싶기도 하고요. 

특히 조선시대 이전 부분까지 충분히 포괄해서 서술한 부분을 높게 평가합니다.
이영훈의 주 세부연구분야는 조선 후기-일제강점기의 한국경제사이기에 우선 주 전공이 아닌데다.
더욱이, 한국경제사에서 조선시기 이전은 데이터와 자료의 부족으로 생활수준은 고사하고 인구에 대한 구체적인 데이터도 희박합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타 학자들의 연구를 많이 참고하여, 한국경제사를 한 학자의 독창적인 틀로 개괄하여 서술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둘째, 시대 간 연속성을 매우 강조하여, 한국사를 근본 없는 단절의 반복으로만 이해하는 통속적 견해에 도전합니다.
비록 그는 한국경제사 전체를 제1-제4시대로 나누긴 하나, 변화가 매우 연속적이고 점진적임을 1300페이지 내내 강조합니다.
심지어 제1->제2, 제2->제3, 제3->제4시대로 이어지는 순간도 매우 점진적으로 그려냅니다.

삼국시대 초기 족장사회 수준이었던 정치체가 점차 왕국으로 성장하고, 왕토국가론이 어떻게 통일신라의 국가 이데올로기가 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조선 건국을 몽골올루스(몽골 제국) 시대의 연장선에서 설명하고, 15-16세기에 조선 건국세력의 이상이 시도되고 변질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식근론자로서 일제강점기의 경제발전을 적극적으로 인정하지만, 이 발전을 개항기의 경제적 성장의 연장에서 설명할 줄 압니다.  
더 나아가, 현대 한국의 눈부신 성장도 조선후기 소농사회가 일궈낸 성취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는 뉴라이트라고 하면 떠올리는, '조선 후기의 변화를 무조건 폄하하며, 근현대 한국의 모든 발전은 일제와 이승만-박정희 덕이라 본다'는 식의 이미지와는 많이 다릅니다. 
실제로 그는 2000년대에 쓴 책 『대한민국 이야기』 에서도 소농사회의 발전이 현재 한국의 눈부신 발전으로 이어진 부분을 인정합니다.

제일 인상깊은 부분은 농지개혁의 큰 흐름을 일제강점기 말기부터 짚어낸 부분입니다.
미군정때 귀속재산 매각으로 이루어진 미약한 농지개혁은 학자라면 안 짚어낼 수 없지만,
그 이전 2차 세계대전기에 총독부의 반지주 정책으로 지주 세력이 느리게나마 쇠퇴하는 트렌드를 짚어낸 건 인상깊습니다.
알 사람은 다 알지만 이영훈은 이승만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농지개혁으로 현대 한국의 기초를 닦은 건 핵심 이유 중 하나입니다. 
농지개혁 전체를 이승만의 공으로 돌리고 싶을텐데(물론 많이 돌리긴 합니다만), 이것조차 점진적인 변화 속에서 설명할 줄 아는 그의 지적 정직성은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 독창적인 견해가 매우 많아서 생각할 부분을 많이 남깁니다.
위에서 말한 제1-제4시대 구분법부터 다른 학자들에게 찾아보기 힘든 독특하고도 심오한 시대구분법입니다.
세부적인 이슈도 그러한데, 학자들에서 설이 갈리는 이슈는 물론, 다수설이 있는 부분에서도 거침없이 지적을 합니다. 아예 몇페이지동안 자기 견해를 논증하는 부분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고려시기 토지제도의 특성, 조선 노비제의 특성, 조선 후기 지주전호제론에 대한 반박, 19세기 위기론 등이 있습니다.
충분한 계량적 데이터 없이 추측해본 독자적인 견해가 나중에 학술적으로 입증된 것도 있어서 더 그렇습니다.
대표적으로 이승만 정부의 경제정책이 막판에 한계를 보였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의의를 인정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는 김두얼(2016)의 이승만 정부 경제성과에 대한 수정주의적 학설로 이어집니다.
설령 여기 나온 견해 중 잘못된 게 있다고 쳐도, 이런 견해도 있다는 database의 측면에서는 매우 훌륭합니다.

다만 종종 독창적인 견해표출을 넘어 타 학자들을 비난하는 표현도 적지 않습니다. 
이는 19세기부터 20세기로 이어지는 근현대사 부분에서 심각한데, 이는 후술할 책의 한계로 이어집니다.


일단 위의 세 부분만 해도 매우 값진 개론서, 학술서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다음같은 근원적인 한계 및 논쟁점도 적지 않습니다. 
심지어 왜 이영훈이 정파적인 활동에 몰두하고 최소한의 학술적 엄밀함조차 잃어버렸는지 짐작이 가는 부분조차 있습니다.
세부적으로 파고들면 더 있겠지만, 일단 제가 발견한 건 이 정도입니다.

1. 19세기 위기론 문제
한국의 자생적 근대화 가능성을 이영훈은 꾸준히 반박하는데, 그 과정에서 19세기 위기론을 길게 서술합니다. 
조선 후기에 인구 증가 등으로 산림이 황폐화되면서 농업 생산성 등 생활수준이 크게 낮아졌고, 
조선의 재분배와 미곡의 보관기능 등을 담당한 환곡시장 등이 흔들리면서 조선의 경제체제가 위기를 겪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19세기의 위기는 개항기 시절 시장 개방 이후에야 극복되었다고 봅니다.

문제는 이 이영훈의 견해가 학계에서는 논쟁 중이고, 반박도 만만치 않게 나오는 데 있습니다. 
19세기 위기론 자체를 반박하는 경우도 적지 않고, 19세기 위기론을 인정하더라도 이영훈이 말한 수준의 위기론은 과장이라는 견해도 적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견해가 배항섭(2010).
이 부분은 조선후기와 개학이를 잇는 근현대사의 중요한 기점이기에, 19세기 위기론이 학계에서 어떻게 합의되냐에 따라 책의 큰 스토리라인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2. 지나치게 단선적인 휘그 사관, 뉴라이트 사관 특유의 문제
저는 식민지 근대화론, 뉴라이트 사관도 한때나마 한국사의 이해를 넓히는 데 기여했다고 보는 편입니다.
사실 라이트하고 범용적인 버전의 식민지 근대화론/뉴라이트 사관은 (근래 시끄러운 정치 논란에도 불구하고) 과거보다는 대중에 스며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대표적으로 일제시기의 일부 사회발전, 이승만 정부의 농지개혁, 한미동맹 체결 같은 공을 과거에 비해 인정을 많이 받는 추세죠. 
최소한 이 책에 나온 식민지 근대화론과 뉴라이트 사관은 식민지 시혜론이라던가 이승만 국부론 같은건 안 나와서 선을 넘은 수준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걸 감안해도 지나치게 단순무식한 도식에 기댄 사관에 있습니다. 
대륙세력 및 해양세력의 조악한 구도, 근대화에 대한 과도한 강조, 개인 개념과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집착 등등
일제와 이승만-박정희 정부의 공을 인정하는 걸 넘어섰어요. 
그리고 이 구도를 현 대한민국을 인정하고 조선총독부와 반공독재자의 공을 인정하는 데 써먹습니다.
경제학도가 보기에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단순무식한 도식이라, 사학계 학부수업에서도 비판받겠다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예를 들어 북한이 사회주의 체제를 도입한 걸 일제가 준 근대적 유산을 전부 내다 버렸다는 식으로 서술하던데,
비록 북한식 사회주의가 매우 왜곡된 형태이지만 사회주의를 근대화와 떼어서 볼 수 있는지. 
사회주의가 비록 시장경제적 근대화는 아니지만. 
이런 사례를 많이 봐서 그런지, 사학자가 아닌 제가 보기에도 너무 나간 느낌입니다.  
요즘은 경제학계조차 최전선의 연구는 이런 단순무식함에서 벗어난지 좀 된 상태라 더더욱. 
 
특히 한국 지식인계의 무분별한 반일감정을 성토하는 부분이 많이 보이는데, 동의하는 부분도 일부 있지만(예: 자본주의 맹아론 비판, 총독부 토지조사의 수탈설 비판),
몇몇 부분은 인정투쟁스럽게 느껴져서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입니다.
제일 압권이었던 건 한일 외교 회담에서, 한국 측 외교관(觀)이 지나치게 일본의 공을 무시하고 과도하게 식민통치를 폄하했다고 비판한 부분이었는데
한숨만 나왔습니다. 이 사람은 경제사가라서 레토릭과 진담을 구분 못하고, 경제와 정치 영역의 차이조차 모르나 싶네요.  
과거에 그가 반대세력에 부당한 인신공격을 당한 건 맞지만, 그걸 감안해도 그의 책에서 인정투쟁적인 마인드가 너무 강하게 남습니다. 

이런 걸 보자니 식민지 근대화론과 뉴라이트 사관이 의의가 있지만 지금은 극복해야겠다는 제 생각이 확실해졌습니다.
평소에도 이런 가치관을 가졌으니, 반일종족주의 쓰고 이승만학당에 참여하는 학술적 엄밀성을 냅다 버린 부류로 전락한 이유가 짚일 정도입니다. . 


3. 민주화 이후 한국에 대한 과도한 비판?
그는 박정희-전두환기의 고도성장을 뒷받침한 국가적 혁신경제체제를 찬양하지만, 김영삼때부터 이것이 쇠퇴하기 시작했고 IMF 위기로 그것이 완전히 꺾였다고 비판합니다.
잘 나아가던 국가주의적 경제발전을 어설프게 시장 개방화했다고 건드렸다가 IMF 위기 맞고 혁신체제를 해체시켰다고.
김영삼이야 IMF 금융위기의 원죄가 있으니 비판은 어쩔 수 없지만, 이런 비판은 너무 나갔습니다.

첫째로 박정희부터 전두환기까지 이어지는 국가적 혁신경제체제가 지속가능한지를 짚고 넘어가지 않았고
둘째로 IMF 금융위기의 개혁의 의의를 아예 무시하였고(물론 부작용도 컸긴 했습니다만)
셋째로 2000년대 이후의 경제발전과 한국 대기업들의 혁신을 과소평가했고
넷째로 200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변화 및 현주소를 부정 일변도로 설명하는 뉘앙스가 느껴진다는 겁니다. 

사실 이 부분은 시대를 감안하면 그나마 이해할 만합니다.
이런 식의 IMF 경제위기 만악의 근원론, 한국 위기론은 좌우파를 무관하고 책이 쓰여졌던 2010년대 중반까지 유행했었거든요. 
한국이 선진국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지식인들이 많았던 시기였고.
IMF 경제위기 이후 한국경제가 불평등과 사회 안전성의 측면에서 악화된 게 맞긴 하고(2010년 즈음 반환점을 돌아 지금은 개선되고 있지만) 
학술적 엄밀성을 잃지 않은 채로 한국경제사를 지금 썼다면, 2000년대 이후를 더 긍정적으로 썼을 것입니다.
근래 몇 년 새 있었던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 여러 위기의 성공적 극복, 그리고 국가 위상의 완전한 부상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으니.

그럼에도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에 대한 비판이 껄끄러운 것은, 이것이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시기를 높게 평가한 뉴라이트 사관의 잔해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예를들어 새마을운동을 박정희의 인상깊은 사회공학이라고 높게 치켜세우면서, 권위주의정치 해체 이후 과거로 원상복귀했다고 한탄한 부분이라던가.

어찌보면 이것도 그의 시대적 한계이겠죠. 
하지만 분명한 것은, 현대의 연구자 입장에서는 극복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는 겁니다.


할 말은 더 있지만 글이 이미 많이 길어진터라 여기서 그치겠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어봤던 건 공부의 차원이 크지만, 
기존의 한국경제사 연구의 의의와 한계를 생각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걸 보면서 이영훈의 긍정적인 성취와 그 한계, 극복 방향성을 많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저의 연구 방향성까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아마 이 책이 올해의 책이 될 것 같습니다.

요즘 제가 속한 경제학계에서는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국제적 연구가 끊임없이 쏟아지는 상황입니다.
기존의 경제사 연구의 틀을 뛰어넘어 관심분야는 크게 넓어졌고 관점이나 방법론은 참신합니다.
그 속에서, 한국사와 한국사회에 대한 통념과 분석틀을 뛰어넘어 혁신한 연구가 상당히 많습니다. 

이 연구들도 언젠가 소개하고 싶은데... 기회가 될지 모르겠네요. 

참고문헌
김두얼. (2016). 한국의 산업화와 근대경제성장의 기원, 1953–1965 - 전통설과 새로운 해석 -. 경제발전연구, 22(4), 29-68. 
배항섭. (2012). 19세기를 바라보는 시각. 역사비평, 101, 217-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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