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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03/01 16:23:14
Name   은머리
Subject   죽음으로 향하는 펭귄
제가 좋아하는 펭귄다큐의 아주 짧은 일부예요. 저도 딱 요부분만 봤어요. 펭귄은 거대집단(colony)을 형성하고 살고 바닷가에 서식해야지만 먹이를 얻을 수가 있어요. 개중 정신이 온전치 못한 펭귄 한 마리가 무리가 있는 바닷가가 아니라 광활한 대지로 수십킬로 이상 혼자 나아가고 있어요. 눈 덮힌 평야를 오천킬로 가로지르면 눈 덮힌 산이 있을 뿐. 죽음이 기다리는 길을 고집스럽게 나아가는 펭귄의 모습입니다. 음악과 대사가 극적효과를 더해서 단편영화 뺨치는 비장함, 어떤 강한 감성을 불러일으켜요. 발번역 주의.

https://youtu.be/zWH_9VRWn8Y
Penguin, Depressed...


나레이터 : 펭귄이 미친다고나 할까 집단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광기를 보이는 경우도 있나요.
펭귄박사 : 펭귄이 미쳐서 바위에 자기 머리를 치거나 하는 걸 본 적은 없지만 방향감각을 잃고 바닷가를 한참 벗어난 위험한 곳에 이르기도 합니다.

나레이터 : These penguins are all heading to the open water to the right. [이 펭귄들은 바다가 있는 오른쪽방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But one of them caught our eye. [그런데 한 녀석이 눈에 띕니다.] The one in the center [가운데 있는 녀석입니다.] He would neither go towards the feeding grounds at the edge of the ice nor return to the colony. [녀석은 양식이 있는 빙하 끄트머리로 향하지도 않고 동족들에게 돌아가지도 않습니다.] Shortly afterwards, we saw him heading straight towards the mountains some 70 kilometers away. [곧 녀석이 70여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산간방향으로 걸어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Dr. ?? explained even if you caught him and brought him back to the colony, he would immediately head right back to the mountains. [펭귄박사는 말하길, 우리가 녀석을 잡아다 무리에 데려다 주어도 바로 산으로 방향을 틀어서 나아간다고 합니다.] But why. [왜 그러는 걸까요.] One of this disoriented or deranged penguins showed up at the New Harbor Diving Camp already some 80 kilometers away from where it should be. [그런 펭귄 한 녀석이 이미 바닷가에서 8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뉴하버 다이빙 캠프에 나타났습니다.] The rules for the humans are do not disturb or hold up the penguin stand still and let him go on his way. [이 경우 인간이 지켜야 할 규정이란 '결코 방해하거나 잡지 말 것, 가만히 서서 펭귄이 갈 길을 가게 내버려 둘 것'입니다.] And here he's heading onto the interior of the vast continent with 5000 kilometers ahead of him. [그리고 지금 녀석은 자기 앞으로 오천킬로미터나 펼쳐져 있는 광활한 내륙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He's heading towards a certain death.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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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성글은 추천


와인하우스
자살하는 동물의 사례라고 해야할까요?
어렸을 때 레밍이 (인간 외에 유일하게) 자살한댔다가 그냥 미끄러져 죽는거라고 하는 내용을 읽은 기억이..
은머리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이든 친구든 그 누구도 안중에 없이 그저 삶을 끝내고 싶은 이의 고집이 펭귄에 거울같이 투영되어 있어요. 이 영상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퍼요.
다시갑시다
제인 구달 박사가 침팬지 연구를 시작했을때 받았던 조언이 갑자기 생각나네요.
제인 구달의 연구일지를 읽어본 한 교수가:
"제인, 여기 이 부분 이런식으로 쓰면 안되. '[침팬지] A는 질투를했다.' A의 질투심을 증명할 방법이 없자나. 오히려 'A의 행동은 그녀가 사람이였다면 질투심이라고 표현할 모습을 보였다'라고 표현해야지"

유사한 점이 많기도하지만 또 확연히 다른 사회구조와 본능에 의거해 행동하는 동물들을 온전히 사람의 언어로 표현하는건 복잡하고 많은 생각을하게 되는것 같아요.
은머리
존 쿳시가 쓴 <동물로 산다는 것>이란 소설이 생각났어요. 매우 급진적인 동물보호권을 주장하는 교수 엘리자베스가 등장하거든요. 강연에서 이런 말을 해요. 과학자들이 침팬지가 도구를 사용하는 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바나나를 천장에 매달아 놓고 실험실 안에 의자도 두었다가 치웠다가 등의 실험을 해요. 침팬지가 영리하게 바나나를 획득해서 먹으면 도구를 이용할 줄 아는 침팬지의 지적 능력은 높게 기록되고요. 엘리자베스는 이런 말을 해요. 동물들에게 인간을 투영시켜 해석한 그들의 행동은 단지 바나나를 먹기 위해 얼만큼의 지능을 발휘... 더 보기
존 쿳시가 쓴 <동물로 산다는 것>이란 소설이 생각났어요. 매우 급진적인 동물보호권을 주장하는 교수 엘리자베스가 등장하거든요. 강연에서 이런 말을 해요. 과학자들이 침팬지가 도구를 사용하는 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바나나를 천장에 매달아 놓고 실험실 안에 의자도 두었다가 치웠다가 등의 실험을 해요. 침팬지가 영리하게 바나나를 획득해서 먹으면 도구를 이용할 줄 아는 침팬지의 지적 능력은 높게 기록되고요. 엘리자베스는 이런 말을 해요. 동물들에게 인간을 투영시켜 해석한 그들의 행동은 단지 바나나를 먹기 위해 얼만큼의 지능을 발휘할 수 있냐는 거였지만 정작 그들은 판이하게 다른 사고를 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요. '난 이미 바나나를 몇 개나 먹었고 더 이상 먹고 싶은 생각도 없는데 제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지요? 아무래도 내가 바나나를 더 먹길 원하는 것 같아요. 그걸 간절히 바라는 것 같아요. 알았어요. 하나 더 먹을게요' 이렇게요. 이거 재밌죠.
다시갑시다
전 이런 meme 밖에 본적이 없는데, 소설이 원형인가보네요. 언젠가 한번 찾아 읽어봐야겠어요 ㅎㅎ
베누진A
동물도 집단생활의 답답함을 느끼는 걸까요. 생존하고 싶은 생각보다 그냥 무언가로부터 "벗어나고픈" 갈망이 저 펭귄을 지배하는 것이 아닐까요.
은머리
글쎄요.. 선천적인 정신질환이었을까.. 환경적인 요인이었을까... 알 수가 없는..
나쁜피
저도 슬퍼요...ㅠㅠ
은머리
무슨 일인지 이거 보고 많이 울었어요 ㅠㅠ
감정이입되여 펭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여
은머리
저도 감정이입이 되더라고요. 제가 펭귄인 느낌은 아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는 안중에 없고 삶에 일그램의 미련도 없어진 상태요.
가진 모든것을 버리더라도, 자기 혼자만 떠나는 길라는 걸 알면서도 그길로 가는 묵묵한 선구자/장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요...
은머리
배경음악도 그렇고 특히 나레이터의 목소리 정말 좋지 않나요. 저 사람 목소리 가장 좋아해요.
저렇게 귀여운 종종걸음으로 죽음을 향해 나아가다니...
은머리
그죠.... ㅠㅠㅠㅠ
엄마곰도 귀엽다
인간식으로 해석하니깐 넘 슬퍼요.
아마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게 아닐거예요. 그럴거예요...
은머리
동물의 세계니까 아마 가다가 배고프면 헉! 하고 돌아올지도 ㅎ...
김치찌개
에고 펭귄아ㅜㅜ
은머리
김치찌개 님도 우시는....ㅎ..
좋은 글/번역 감사합니다. 전공 공부에 있어서 어떤... 영감을 받았어요.
걷는 펭귄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은머리
재미있게 보셨다니 저도 참 기쁩니다.
녹색문
영상은 못봤지만 의연하네요 저 펭귄은.
은머리
영상을 꼭 보세요. 뒤뚱뒤뚱 걸어가는 귀여운 펭귄이 가는 길이 죽음의 길이라는 극적인 대립이 심금을 울려요.
어떤 게 있는 걸까요;; 놀랍네요. 잘 읽었습니다
은머리
옛날에 지나가다 본 남극다큐에 펭귄들이 촬영팀에게 다가와서 순진한 호기심을 보이던 장면이 있었어요. 우리나라 촬영팀이었어요. 인간의 안식처인 캠프에 펭귄이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길을 잃고 굶어죽는 것 같아 보여도 결코 도와줘선 안된다는 남극의 불문률이 있거든요. 마치 영화나 드라마에서와 같이 유독 인간에 대한 호기심을 떨치지 못하고 계속 찾아오는 펭귄이 있대도 결코 마음을 주어선 안되는 거예요. 걔네들을 아끼는만큼 냉정히 돌아서야하는 불문률 이거 디게 드라마틱하져.
그렇군요. 불문율이라는 게 참... 슬프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네요. 바로 옆까지 가면서도 그냥 지켜만 보는 게 참...
캠프에 와도 도와줘선 안 된다니... 최소한 시청자들보단 펭귄을 좋아하실 분들일 텐데요. 네 정말 드라마틱하네요 ㅠ
O Happy Dagger
미친 감독인 헤어조크가 미친 펭귄이 어쩌니하니... 흠...

근데 헤어조크는 펭귄을 많이 좋아하나봐요. 마다가스카르의 펭귄에서 성우도 했다고 하던데.
은머리
!!!! 저 사람이 전문나레이터가 아니라 감독이었군요!
넷플릭스에서 다른 다큐보다가 들은 목소리이기도 한데 오.....!
O Happy Dagger
이 인간이 어떤 인간인가 보려면...

https://www.youtube.com/watch?v=H-WT0w-kIbI
The 10 Most Insane Direction Decisions by Werner Herzog


워낙에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 인물이기도 해요. 누가 영화를 완성하면 자기 신발을 먹겠다고 했다가, 그가 영화를 완성하자 공개적으로 신발을 요리해서 먹었다던가... 클라우스 킨스키와의 관계는 워낙에 유명하고요.
은머리
오 마이 굿니스......
세인트
혹시 예전 눈부심님이신가요? 문체나 유익함과 재미 둘 다를 잡는 모습도 그렇고... 뭔가 비슷해서요 흐흐.
은머리
넹 ㅋㅋ. 세인트 님 넘나 넘나 오랜만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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