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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9/04/25 20:18:44 |
Name | 메아리 |
Subject | 서평 『나사의 회전』 – 헨리 제임스 |
시작은 '더글라스'라는 남자가 가져온 원고로 시작한다. 그 원고는 '가정교사' 본인이 쓴 글이며 그녀 자신이 목격하고 진술하는 형식의 글이었다. 그녀가 시골의 저택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유령을 마주치거나 혹은 그 밖의 기괴한 현상들을 마주하면서 결국 그녀가 돌보던 아이가 죽고 그녀 자신도 정서적으로 파멸하게 되는 비극적인 결말로 이 책은 끝이 난다. 이 소설을 읽으며 어린 시절 읽었던 19세기 영국과 미국의 소설들이 생각났다. 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 키다리 아저씨 등. 그 소설들과 비슷한 분위기의 문체로 써진 이 소설의 화자는, 그 소설들과는 조금 다르게 이야기 속으로 나를 안내했다. 보통 소설의 화자는 이야기에 몰입하는 걸 도와주는 친절한 안내자 역할을 한다. 적절한 묘사와 상황 설명, 때로는 해석과 감정을 곁들여 독자가 이야기 속으로 몰입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고전적으로는 독자는 화자를 믿어야 한다. 그 신뢰는 몰입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일종의 대가이다. 화자를 신뢰하지 않고서 이야기에 몰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일 화자를 의심하기 시작한다면, 소설을 이루는 한줄한줄을 다시 검토해가며 읽어야 한다. 피곤한 독서가 기다리는 것이다. ‘믿을 수 없는 화자’ 기법은 꽤 자주 쓰이는 소설 기법 중에 하나이다. 반전을 통한 아이러니를 꾀하는 작품에서 흔히 등장한다. 이러한 작품에서 화자에 대한 의심은 모든 궁금증을 풀 수 있는 열쇠 역할을 한다. 화자를 신뢰했기 때문에 불편하고 이해가 되지 않던 부분들이 의심을 하면서부터 풀리기 시작한다. ‘믿을 수 없는 화자’는 화자의 입장에 몰입하는 것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이것은 일종의 연습 역할을 한다. 메타 사고의 연습인데, 우리 역시 현실에서 ‘믿을 수 없는 화자’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믿을 수 없는 화자로 설정하기. 이것은 자신이 지금 몰입되어 하는 상황을 다시 검토할 수 있게 해준다. 성장한다는 것은 이 메타 사고와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몰입이 일종의 추진력이라면 메타 사고는 운전이라고 할 수 있다. 내 경우엔 어린 시절일수록 몰입이 잘 됐고,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부터야 메타 사고에 더 익숙해진 것 같다. 이것은 자기 검토와 반성을 할 수 있는 능력인데, 지금 처한 상황에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해야할 때, 몰입에서부터 벗어나 그것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 소설을 읽을 때, 몰입도 필요하고 메타 사고도 필요한 듯싶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소설이 주는 참 면목을 만날 수 없다. 혹시,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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