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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1/01/05 11:21:09 |
Name | 꿀래디에이터 |
Subject | 단칸방 라이프 |
질게에 있는 글을 보고 생각나서 써 봅니다. 어린시절 제가 살았던 동네는 못살기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국민학교 가는 길에 여왕벌, 불잉걸, 오렌지, 장미 등등의 빨간불 유흥업소가 버젓히 영업하는 곳 지금은 가보면 로우 퀄리티의 벽화가 그려져 있는동네 그 중에서도 5학년 무렵 단칸방에 살았던 시절이 있습니다. ㅇㅇ주택 1호~20호 정도가 모여있는 동네(aka 아래동네) 파란대문 하나에 2층은 주인집, 1층 메인은 다른 전세집, 우리집은 2층 올라가는 계단아래 방한칸 문열고 들어가면 허리 펼수 없는 어설픈 주방하나가 나오고 거기에 문하나 더 들어가면 단칸방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화장실은 안에 없죠 어린시절에 주1회 목욕탕 갔던것은 생각해보면 집에서 샤워라는 것을 할 수 없었던 우리집에서는 필수적 행위였습니다. 거기에서 부모님 저 동생 넷이 잠도자고 밥도먹고 아버지는 담배도 피시고 술도 드시고... 어떻게 살았나 모르겠네요 초등학교 사진을 보면 일년 내내 옷이 3벌입니다 ㅋㅋ 춘하추동이 없음 다행히 다들 가난해서 별 차별은 없었습니다. (제가 당시에는 성격이 모나서 그랬을지도) 하지만 땅값이 싸서 그런가 중학교 무렵부터 동네에 아파트가 들어오기 시작하고 우리집도 어케어케 청약 받아서 지금도 부모님은 거기 사시네요(이 불장에도 가격이 요지부동인것은 왜 그런지) 요즘 젊은 사람들이 이런데서 왜 시작 안하는지 모르겠다구요? 당장 저부터 제 자식을 그런 환경에서 키우고 싶지 않아요 ㅠㅠ 신혼부부가 사랑이라도 나눌라면 씻기라도 해야되는데 샤워도 못하는 그런데서 어케 삽니까 PS 안그래도 좁은 단칸방에 혼수로 들여온 자개장을 떡 하니 넣어놔서 공간이 더 없었음... 어케 살았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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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집이 애기가 돌아댕기다 부뚜막의 솥에 빠지기 딱 좋았죠. 그래서 솥에 아기가 죽어있더라는 이야기도 많았고(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실제 화상입은 애들 참 많았어요. 손가락이 엉겨붙은 친구녀석 생각나네요. 이 때문에 뜨거운 솥에 일부러 애기 손을 살짝 데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럼 애들이 기겁을 해서 솥 근처에도 안가니까.
이런 일들 때문에 애기나 꼬맹이 두고 집 비워야 할 땐 방문을 밖에서 잠가두고 다녔죠. 그랬더니 안에서 불장난하다 타죽고...
자다가 연탄가스 마시고 간 사람도 많았고, 살기 힘들어서 연탄불 피우고 간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 시절을 모르니까 요즘 애들이 옛날 사람들 꿀 빨았다는 소리가 나오지....
이런 일들 때문에 애기나 꼬맹이 두고 집 비워야 할 땐 방문을 밖에서 잠가두고 다녔죠. 그랬더니 안에서 불장난하다 타죽고...
자다가 연탄가스 마시고 간 사람도 많았고, 살기 힘들어서 연탄불 피우고 간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 시절을 모르니까 요즘 애들이 옛날 사람들 꿀 빨았다는 소리가 나오지....
고도성장기라서 희망이 있어서 좋았다는 애새기들 다 타임머신으로 그시대로 보내버려야합니다.. 어디 지옥에서 희망 가지고 살아 보라지..
지금이나 고도성장기 인지 아닌지 알수있었지 저당시에는 그러한 추세를 알 방법도 부족했고 그냥 사는가 보다 하며 살았죠 ㅋ 꿀 빨며 사는구나 라고 누구도 생각 안했을듯
그 시절에서 약간만 거슬러 올라가면 연탄 아궁이, 겨울엔 얼어붙는 수도꼭지, 그나마 좀 나은 집은 곤로가 있었죠.
한평이나 될까 싶은 단칸방에 네식구 누으면 꽉차던... 전화도 없어 주인집으로 연락 오면 받으러 가는 게 일상이고 목욕은 한달에 한번이나 겨우 했을까요. 세들어 사는 가구 전체가 대문 옆 화장실 하나로 해결하느라 출근시간엔 북새통...
그 시절 자란 사람들 중에 꿀빨고 자산을 일군 사람이 몇 프로나 될까요? 지금 4-50대 남성 900만명 중에 꿀빨러에 해당될 몇십억 아파트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런지... 통계치가 없어 제 주위로 한정하면 5% 10%도 안될겁니다. 일제시대 전후세대와 구분해 4-50대 꿀빨러론을 보면 늘 의문인게 무슨꿀을 빨고 살아왔는지 도통 모르겠다는거에요.
한평이나 될까 싶은 단칸방에 네식구 누으면 꽉차던... 전화도 없어 주인집으로 연락 오면 받으러 가는 게 일상이고 목욕은 한달에 한번이나 겨우 했을까요. 세들어 사는 가구 전체가 대문 옆 화장실 하나로 해결하느라 출근시간엔 북새통...
그 시절 자란 사람들 중에 꿀빨고 자산을 일군 사람이 몇 프로나 될까요? 지금 4-50대 남성 900만명 중에 꿀빨러에 해당될 몇십억 아파트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런지... 통계치가 없어 제 주위로 한정하면 5% 10%도 안될겁니다. 일제시대 전후세대와 구분해 4-50대 꿀빨러론을 보면 늘 의문인게 무슨꿀을 빨고 살아왔는지 도통 모르겠다는거에요.
한방에 훅 갔습니다만, 신경숙선생의 자전 소설이 정말 좋죠.
신경숙선생이 옛날 공순이 시절 자료를 찾아보다가, 우리 정말 어떻게 살았지? 그 월급으로 집에 돈까지 부쳐가며? 이해가 안가더랍니다.
같이 일했던 공순이 언니에게 전화해서 물어보니 하는 말
치약 하나로 삼년 썼다! 됐니?
아, 왜정 때 겪으신 분들이 보면 꿀 빤 거 맞죠. 그건 인정합니다.
신경숙선생이 옛날 공순이 시절 자료를 찾아보다가, 우리 정말 어떻게 살았지? 그 월급으로 집에 돈까지 부쳐가며? 이해가 안가더랍니다.
같이 일했던 공순이 언니에게 전화해서 물어보니 하는 말
치약 하나로 삼년 썼다! 됐니?
아, 왜정 때 겪으신 분들이 보면 꿀 빤 거 맞죠. 그건 인정합니다.
남일이 아니죠. 전에 잠깐 얘기했던 우리 큰고모님이 열 여섯에 방직공장에 들어가셨어요. 정확한 금액은 모르지만 어른들 말씀으론 월급이 100이면 90을 집으로 보내셨대요.. 할아버지는 기숙사에서 먹고 자는데 기집년이 어디다 돈을 쓴다고 더 안보내느냐 불효막심한 년이라 화를 내셨대요.
아버지 고등학교 대학교 마치는 동안 그렇게 90을 집으로 부치고 남은 10으로 기숙사 살면서 안쓰고 안입고 안먹으면서 모으고 모아 겨우 방한칸 전세 만드셨는데... 할아버지가 혼처 잡아 반강제 결혼하게 되시며 그 전셋돈도 할아버지 드리고 가셨다고... 더 보기
아버지 고등학교 대학교 마치는 동안 그렇게 90을 집으로 부치고 남은 10으로 기숙사 살면서 안쓰고 안입고 안먹으면서 모으고 모아 겨우 방한칸 전세 만드셨는데... 할아버지가 혼처 잡아 반강제 결혼하게 되시며 그 전셋돈도 할아버지 드리고 가셨다고... 더 보기
남일이 아니죠. 전에 잠깐 얘기했던 우리 큰고모님이 열 여섯에 방직공장에 들어가셨어요. 정확한 금액은 모르지만 어른들 말씀으론 월급이 100이면 90을 집으로 보내셨대요.. 할아버지는 기숙사에서 먹고 자는데 기집년이 어디다 돈을 쓴다고 더 안보내느냐 불효막심한 년이라 화를 내셨대요.
아버지 고등학교 대학교 마치는 동안 그렇게 90을 집으로 부치고 남은 10으로 기숙사 살면서 안쓰고 안입고 안먹으면서 모으고 모아 겨우 방한칸 전세 만드셨는데... 할아버지가 혼처 잡아 반강제 결혼하게 되시며 그 전셋돈도 할아버지 드리고 가셨다고... ㅜㅜ
이번 설에 가지는 못해도 뭐라도 보내드려야겠어요.
물론 왜정-625 코스 앞에선 깨갱해야져. 이히히
아버지 고등학교 대학교 마치는 동안 그렇게 90을 집으로 부치고 남은 10으로 기숙사 살면서 안쓰고 안입고 안먹으면서 모으고 모아 겨우 방한칸 전세 만드셨는데... 할아버지가 혼처 잡아 반강제 결혼하게 되시며 그 전셋돈도 할아버지 드리고 가셨다고... ㅜㅜ
이번 설에 가지는 못해도 뭐라도 보내드려야겠어요.
물론 왜정-625 코스 앞에선 깨갱해야져. 이히히
탄광촌에 있던 일제시대 지었던 사택이 집이었는데
방은 단칸에 연탄보일러였습니다.
그래도 부족함이 있다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따뜻했고 사랑이 있었거든요
근데 분명히 세상 물정에는 어두웠던것 같아요
어느 정도 어두웠냐면...
제가 대학때까지도 부모님은 거기 사셨는데
저는 제 집이 불편하거나 부끄럽다는 생각을 전혀 못했거든요
그런데 그 집이 수세식 화장실이 아니었어요. 집 안에 있긴 한데 푸세식이었어요.
변기를 뚜껑으로 덮어놓았다가 응가를 하면 저 밑으로 떨어지고 다시 뚜껑을 닫는. 정기적으로 똥차가 와서 치워주는 ... 더 보기
방은 단칸에 연탄보일러였습니다.
그래도 부족함이 있다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따뜻했고 사랑이 있었거든요
근데 분명히 세상 물정에는 어두웠던것 같아요
어느 정도 어두웠냐면...
제가 대학때까지도 부모님은 거기 사셨는데
저는 제 집이 불편하거나 부끄럽다는 생각을 전혀 못했거든요
그런데 그 집이 수세식 화장실이 아니었어요. 집 안에 있긴 한데 푸세식이었어요.
변기를 뚜껑으로 덮어놓았다가 응가를 하면 저 밑으로 떨어지고 다시 뚜껑을 닫는. 정기적으로 똥차가 와서 치워주는 ... 더 보기
탄광촌에 있던 일제시대 지었던 사택이 집이었는데
방은 단칸에 연탄보일러였습니다.
그래도 부족함이 있다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따뜻했고 사랑이 있었거든요
근데 분명히 세상 물정에는 어두웠던것 같아요
어느 정도 어두웠냐면...
제가 대학때까지도 부모님은 거기 사셨는데
저는 제 집이 불편하거나 부끄럽다는 생각을 전혀 못했거든요
그런데 그 집이 수세식 화장실이 아니었어요. 집 안에 있긴 한데 푸세식이었어요.
변기를 뚜껑으로 덮어놓았다가 응가를 하면 저 밑으로 떨어지고 다시 뚜껑을 닫는. 정기적으로 똥차가 와서 치워주는 그런 화장실.
그런 고향집에 대학에서 사귄 여자친구를 데리고 갔어요
여자친구도 당연히 그 화장실을 사용했고요.
지금 생각하니 저의 좀 그 순진하다못한 멍청함에 헛웃음이 나오네요
그 여자친구와는 해피엔딩은 안나고 헤어졌습니다. 다만 그런 제 가정환경을 본 이유는 아니었어요. 제가 군대가고 상병때까지 기다려줬거든요.
갑자기 두서없어지네요 ㅋㅋㅋ
방은 단칸에 연탄보일러였습니다.
그래도 부족함이 있다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따뜻했고 사랑이 있었거든요
근데 분명히 세상 물정에는 어두웠던것 같아요
어느 정도 어두웠냐면...
제가 대학때까지도 부모님은 거기 사셨는데
저는 제 집이 불편하거나 부끄럽다는 생각을 전혀 못했거든요
그런데 그 집이 수세식 화장실이 아니었어요. 집 안에 있긴 한데 푸세식이었어요.
변기를 뚜껑으로 덮어놓았다가 응가를 하면 저 밑으로 떨어지고 다시 뚜껑을 닫는. 정기적으로 똥차가 와서 치워주는 그런 화장실.
그런 고향집에 대학에서 사귄 여자친구를 데리고 갔어요
여자친구도 당연히 그 화장실을 사용했고요.
지금 생각하니 저의 좀 그 순진하다못한 멍청함에 헛웃음이 나오네요
그 여자친구와는 해피엔딩은 안나고 헤어졌습니다. 다만 그런 제 가정환경을 본 이유는 아니었어요. 제가 군대가고 상병때까지 기다려줬거든요.
갑자기 두서없어지네요 ㅋㅋㅋ
제가 국민학교 2학년까지 살던 데가 2층 주인집 + 세든 집 하나(전센지 월센지는 워낙 어려서 몰랐어요. ) 그리고 그 아래 1층에 일자로 늘어선 단칸방 여섯개에 여섯집이 살았죠. 대문에서 젤 먼 집이 저희 집이었고... 물론 장롱도 있었고 티비도 하나 있었던 게 기억납니다. MBC는 안 나왔었던. 그래서 저는 은하철도999나 천년여왕같은 만화는 본 적이 없네요.
그래도 그나마 여섯 집 중 저희 집만 부엌 크고 마루도 있어서 젖먹이 동생 포함 네 식구가 살기에는 좁지 않았던 거 같네요. 워낙 어려서 그랬나.. 동네 골목길도 그때... 더 보기
그래도 그나마 여섯 집 중 저희 집만 부엌 크고 마루도 있어서 젖먹이 동생 포함 네 식구가 살기에는 좁지 않았던 거 같네요. 워낙 어려서 그랬나.. 동네 골목길도 그때... 더 보기
제가 국민학교 2학년까지 살던 데가 2층 주인집 + 세든 집 하나(전센지 월센지는 워낙 어려서 몰랐어요. ) 그리고 그 아래 1층에 일자로 늘어선 단칸방 여섯개에 여섯집이 살았죠. 대문에서 젤 먼 집이 저희 집이었고... 물론 장롱도 있었고 티비도 하나 있었던 게 기억납니다. MBC는 안 나왔었던. 그래서 저는 은하철도999나 천년여왕같은 만화는 본 적이 없네요.
그래도 그나마 여섯 집 중 저희 집만 부엌 크고 마루도 있어서 젖먹이 동생 포함 네 식구가 살기에는 좁지 않았던 거 같네요. 워낙 어려서 그랬나.. 동네 골목길도 그때는 넓어보였는데 지금 가 보면 평범한 골목이더라고요. 생각보다 좁은.
어렸어서 그 때가 저한테는 즐거운 추억이 되는데, 부모님한테는 안 그렇더라고요. 뭐 저는 재밌었어요. 고물 버스가 잠깐 동네 골목에 대어져 있을 때 거기 들어가서 놀기도 했었고, 맨 흙땅에서 땅따먹기 비석치기 1234 한발뛰기 열발뛰기 얼음땡 등등 이런 거 하고 놀았고 어느날은 밤 열시까지 골목에서 동네 또래들이랑 놀았던 기억도 납니다. 어느날은 골목 한쪽 담에 송충이떼가 잔뜩 붙어서 올라가는 걸 집게로 잡아다가 태워죽이기도 했었고, 또 언제는 그 담 너머에 있는 아카시아나무에서 아카시아 따다가들 먹는 거 구경했고(넘 여러서 뭐... 형들이 안 주더라고요) 뭐 그런 일상이었죠. 그때는...
그래도 그나마 여섯 집 중 저희 집만 부엌 크고 마루도 있어서 젖먹이 동생 포함 네 식구가 살기에는 좁지 않았던 거 같네요. 워낙 어려서 그랬나.. 동네 골목길도 그때는 넓어보였는데 지금 가 보면 평범한 골목이더라고요. 생각보다 좁은.
어렸어서 그 때가 저한테는 즐거운 추억이 되는데, 부모님한테는 안 그렇더라고요. 뭐 저는 재밌었어요. 고물 버스가 잠깐 동네 골목에 대어져 있을 때 거기 들어가서 놀기도 했었고, 맨 흙땅에서 땅따먹기 비석치기 1234 한발뛰기 열발뛰기 얼음땡 등등 이런 거 하고 놀았고 어느날은 밤 열시까지 골목에서 동네 또래들이랑 놀았던 기억도 납니다. 어느날은 골목 한쪽 담에 송충이떼가 잔뜩 붙어서 올라가는 걸 집게로 잡아다가 태워죽이기도 했었고, 또 언제는 그 담 너머에 있는 아카시아나무에서 아카시아 따다가들 먹는 거 구경했고(넘 여러서 뭐... 형들이 안 주더라고요) 뭐 그런 일상이었죠. 그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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