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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5/04/07 10:17:28
Name   The xian
Subject   역적을 파면했다 - 순한 맛 버전
※ '순한 맛 버전' 이라는 것은 이 세상 어딘가에 좀 더 가공되지 않은 날것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혹여나 이 '순한 맛'조차 홍차넷의 규범에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만, 그것은 판단에 맡기고 존중하겠습니다.

※ 이번 글 이후로 다시 글을 쓰지 않을 것은 아니겠지만 다음 글까지는 아마도 최소한 한두 달이 더 걸릴 것이고, 정치 이야기는 더더욱 오래도록 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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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적을 파면했다.

너무도 당연한 결론이 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누군가가 5:3이나 4:4를 외치든 말든, 내가 초중고등학교, 아니, 국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배운 정치, 사회, 경제, 그리고 역사의 지식이 사실 그대로였다면, 그리고 불과 8년 전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박근혜씨를 파면했을 때를 돌이켜 보면, 사실 윤석열이라는 내란 우두머리에게 기각이 내려질 가능성은 절대로 없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청구인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주문이 나오기 전까지 불안했던 것은 과거 이명박-박근혜 시절보다 훨씬 더 비상식적이고 제정신이 아닌 일들이 많이 일어났던 것이 지난 윤석열 정부의 3년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의 숱한 실책 이전에, 공적인 자리든 사적인 자리든 가리지 않고 빈번하게 쌍소리를 하는 악습을 가지고 있고 그로 인해 심각한 외교적 결례로 번질 만한 사건을 저지른 것부터가 윤석열이라는 자의 사람됨이 얼마나 밑바닥인지, 그리고 왜 그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데에 있어서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는지 증명하는 것이었다.

고작 말뽄새 하나 가지고 왜 그렇게 민감하느냐는 반응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되, 말은 사람의 그릇을 판별하는 가장 분명하고 간단한 답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노무현 대통령의 화법 하나하나 가지고 대통령 전부터, 그리고 임기 내내 까댔던 언론들과 그 언론에 부화뇌동하여 노무현은 대통령 깜이 아니라고 무시하고 그런 여론을 부채질하던 당시 야당 한나라당(그 당은 국민을 배반한 탄핵 대통령을 둘이나 배출한 국민의힘이기도 하고)의 행실 + 환생경제까지 이어지는 당시의 환장할 콜라보를 보면 더욱 명명백백하다.

당시에 노무현 대통령을 까대던 수준으로 지금의 윤석열씨를 까댔으면, 윤석열씨는 대통령이 되기는 고사하고 자기의 설화로 망가진 정치인들처럼 정치판에 입문하고 나서 얼마 안 가 스스로 도태되거나 정치적으로 자폭했을 것이다. 윤석열이 대통령이 된 것은 그것이 이재명씨의 비호감도 때문이든, 민주당에 대한 증오심에 눈이 멀었기 때문이든, 어떤 사람이 양두구육을 했든, 그 근원에는 윤석열을 후보로 올린 국민의힘의 검증과 언론의 비판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았던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보고, 정확히는 검증할 생각도, 비판할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윤석열 시절이 이명박-박근혜 시절보다 훨씬 더 위험할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윤석열이 계엄이라는 도구를 남용해 친위 쿠데타를 저질러 스스로 반역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계획만 하고 실행에는 옮기지 않았던 친위 쿠데타를 저지른 것은 헌법재판소의 결정 요지를 빌리면 계엄을 선포함으로써 국가긴급권 남용의 역사를 재현한 것이고, 그로 인해 국민을 충격에 빠뜨리고 사회, 경제, 정치, 외교 전 분야에 혼란을 야기한 행동을 한 것인데, 이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파괴하겠다고 기도한 것이든 자기 사리사욕으로 권력을 남용한 것이든 단죄되어야 마땅하다. 윤석열은 내란을 기도한 우두머리이며 대한민국과 대한국민에 대해 반역을 저지른 자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윤석열의 반역에 '역설적으로'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면 이제는 더 이상 이런 국가 권력자가 헌법을 벗어난 형태의 군사행동을 했을 때, 이것이 정당하다고 들먹일 수 있는 여지를 남기지 않을 정도로 윤석열의 행동이 명명백백하게 잘못이라는 최종 판결이 나온 것 정도라고 해야 할 것이다. 차기 대통령이 누구이든 간에 자기 뜻대로 안 된다고, 나라를 뒤집겠다고 지금의 윤석열과 같은 행동을 벌인다면 진영이 어디든 정당이 어디든 그냥 반역자이고 내란 우두머리가 된다는 것은 이번 파면으로 분명해졌다.


파면 이후 이번 사태를 놓고 보도한 언론을 보면 국민 통합을 이야기하는 언론도 있고 유튜버들이 확증편향을 부추겼다는 언론도 있는 듯 하다. 혹은 이제 와서 윤석열씨의 잘못을 조명하는 언론들도 있다. 그런데 나는 언론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부터가 의심된다. 대한민국의 법질서를 대놓고 위협하면서 '틀린 목소리'를 내는 반역 세력에 대해서는 좌우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가당치도 않은 이유로 '틀린 목소리'를 '다른 목소리'처럼 보이도록 판을 깔아주고, 반대로 법적으로 명명백백하게 잘못된 행위에 대해서는 잘못을 잘못 그대로 이야기하기는 커녕 이것을 마치 찬반이 갈리는 정치적 논란처럼 이야기하면서 어그로를 끌고 장사를 해먹을 기회로만 보고, 윤석열씨의 잘못에 대해서는 그 동안 눈을 가리고 귀를 막은 것들이 대한민국 대다수의 언론의 민낯이었기 때문이다.

기성 언론이 옳고 그름을 소신대로 말하지도 않고, 자기 입맛에 맞는 듯한 정권과 그렇지 않은 듯한 정권에 대한 태도가 180도 달라진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에게 기자들이 바락바락 대들고 대놓고 얼굴을 구기던 것과 박근혜, 윤석열에게 참으로 공손한 태도를 취하면서 형광등 100개 아우라 / 작은 파우치 운운한 것을 비교해 보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니 윤석열이 파면되고 나서야 그들이 꽁꽁 싸매고 있던 윤석열의 문제점을 읊어놓는 대다수 언론들의 모습을 보면 그런 언론이 있으니 그런 대통령이 나왔다는 생각만 들 뿐이다.

그러니 언론이 이제 와서 유튜버들이나 거리의 사교집단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고, 통합을 운운하는 것은 더더욱 말이 안 되며, 이제와서 자기들이 알고 있던 윤석열의 치부를 꺼내드는 것은 너무 늦은 손절에 불과하다. 윤석열에 대한 검증은 둘째치고서라도, 내란행위에 대해서는 헌법만 문자 그대로 읽었어도 윤석열의 잘못을 잘못이라고 명백히 규정했어야 하는 게 언론과 정치 세력의 책무였지만 다수의 언론들은 그 책무를 깡그리 저버렸다. 지금처럼 정치 세력과 정치인들의 검증에 한낱 연예인들보다 못한 잣대를 들이대고, 심지어 아예 눈을 감아버린 정치 세력과 언론들이 있는 한 다른 윤석열, 아니, 윤석열보다 더한 윤석열이 또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사실 나는 8년 전에도 주위에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나와 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박근혜가 이미 탄핵이 되었으니 그들도 정신 차리고 앞으로는 그럴 일 없을 거라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고, 나는 그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며 내가 지지하지 않는 정치세력이지만 그러기를 바랐다. 그러나 탄핵이 되었으니 이제는 그럴 일 없다는 말도, 슬프지만 이제는 정당성이 없게 되었다. 박근혜 다음에 윤석열이 나왔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새는 한 쪽 날개로만 날 수 없다느니, 견제와 균형이 있어야 한다느니 하는 말은 한동안 발을 붙일 수 없을 것이고 내 개인적으로도 동의하기 어려울 것 같다. 견제와 균형을 위한답시고 이미 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했던 자들을 선택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이번 내란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나는 윤석열의 파면, 그리고 내란죄에 대한 명확한 단죄를 통하여 대한민국에서 군사정권에 대한 올려치기나 강력한 지도자에 대한 환상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제대로 된 단죄 없이 흐지부지되어 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악을 주고 있는 친일파 청산처럼, 이번 내란을 기도한 자들, 그리고 그에 동조한 자들에 대한 청산이 흐지부지되면 이런 일은, 그리고 이보다 더한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박근혜 다음에 윤석열이 나온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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