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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9/01/11 12:59:00수정됨 |
Name | 구밀복검 |
Subject | 율법주의 : 최후의 유혹 |
https://youtu.be/H0IRLjIomYI Martin Scorsese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이란 스코세시의 영화가 있죠.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인데, '인간 예수'를 묘사해서 크게 논란이 일었던 작품입니다. 이 영화에서 예수는 성욕이나 공명심이나 명예욕 같은 인간적 욕망에 휘둘리다가 그것을 극복하고 스스로 순교를 결단하는 인물로 그려지는데, 당연히 신성모독이란 비판이 가해졌죠. 심지어 몇몇 개신교계 극장 체인에서는 영화 상영을 보이콧 할 정도였어요. 개독들이라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교황청과 정교회에서도 비슷하게 비판을 했고, 실제로 그리스, 아르헨티나, 칠레 등등 크리스트교가 국교인 국가들은 대부분 이 영화의 상영을 금지했습니다. 심지어 파리에서는 몇몇 카톨릭 신자들이 작당해서 이 영화를 상영하고 있던 생 미셸 극장에 방화 테러를 벌이기도 했어요. 사실 당연한 게, 애시당초 카잔차키스의 원작 자체가 교황청과 정교회로부터 금서로 지정되었거든요. 심지어 정교회에서는 카잔차키스를 파문했으며, 사후에 카잔차키스가 정교식 장례를 치르는 것도 금지했고, 아테네에 매장하지도 못하게 막았습니다. 한 마디로 '최후의 유혹'은 기독교계에서 독성瀆聖이라고 공인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잖은 크리스천들이 원작과 영화를 감상했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죠. 레프 톨스토이는 러시아의 국민 작가입니다. 심지어 2016년 러시아 전역의 1600명의 시민을 대상으로 치러진 설문 조사에서도 45%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러시아 최고의 작가로 공인받았죠. 그런데 정작 톨스토이는 정교회 신자가 아닙니다. 이는 톨스토이가 '부활' 등의 작품에서 공공연하게 러시아 정교회를 비판했기 때문이죠. 기실 톨스토이는 크리스트교의 근본적인 가르침과 정교회의 교리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삼위일체론도 부정했고, 제례 형식들이나 교회 조직도 신앙과 하등 관계가 없다고 말했어요. 당연히 정교회 입장에서는 배교자라 여길 수밖에 없었죠. 심지어 100년이 지난 지금조차도 정교회는 톨스토이에게 내린 파문을 철회하지 않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일이죠. 러시아인들이 톨스토이를 최고의 작가로 꼽는 이유는 그의 작품들이 신앙적이기 때문인데 정작 러시아 정교회에서는 톨스토이를 불신자로 간주하고 있으니. 이처럼 어떤 종교든지 종교인 이상 세속의 논리와 이질적인 자신들만의 내적 이념체계를 갖고 있기 마련이고, 이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독실함과는 상이한 구석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이런저런 내부 알력이 발생하고요. 부외자의 시선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고, 내부에서도 철두철미하게 지켜지는 규범은 아니지만, 어쨌든 명시적으로는 해당 종교의 금기로서 간주되는 것들이 있고 그것을 관철하려는 유무형의 압박이 뒤따르죠. 당연히 이건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종교의 근간이 도그마인 이상 근본주의적 원칙을 고수한다는 이유로 해당 종교를 비판할 수 없어요. 그건 그들만의 로컬 룰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그 로컬 룰을 지키지 않는 모든 신자가 신심이 얕다고 말할 수도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이건 결국 인간의 신앙일 따름이거든요. 신자들이란 불신자들과 유전구조가 다르다거나 욕구 체계가 호환 불가능한 이계인이나 초월자가 아니란 것입니다. 모두 다 똑같이 욕망하고 의욕하며 희노애락을 느끼는 사람의 아들이고, 인간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선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근간을 지키기로 결단한 사람들이죠. 마치 '최후의 유혹'을 느낀 예수가 그러했던 것처럼. 보다 비근한 사례를 들어볼까요. 개신교에서는 이런저런 탈속적인 규범들이 통용됩니다. 흔하게는 술이나 담배가 있죠. 가장 민감한 건 혼전순결이나 수음, 동성애, 중절 같은 성적 문제들일 겁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성서에 명시되었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어요. 그러나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않듯 종교적 규범 역시도 경전으로만 구성되지 않습니다. 수도 이전이 관습헌법과 관련된 문제인 것과 마찬가지로 종교적 규범은 해당 종교의 내부적 전통에 크게 의존하죠. 법전이 다가 아니라 판례도 그만치로 중요한 겁니다. 특히 개신교처럼 개교회주의를 고수하고 있고 경전 해석의 자유가 만인에게 주어져 있으며 사제의 계급성을 인정하지 않는 평민적 종교는 그런 전통 규칙의 지위가 높을 수밖에 없죠. 실제로 상당수의 개신교인은 카톨릭 신부들이 술과 담배를 기호로 즐긴다는 이유로 존경하지 않아요. 자신들은 평신도인데도 안 하고 사는데 저 치들은 사제 주제에 방종하게 산다는 거죠. 그 정도의 구속력이 있는 지침이란 겁니다. 마찬가지로 혼전순결, 반동성애, 중절 금지, 수음 금지 등은 한국이든 미국이든 유럽이든 크리스트교계에서 공공연하게 천명되는 원칙이에요. 지키는 사람이 많지 않아 사실상 사문화 되었다고 한들 '사실상 사문화'와 진짜 사문화는 광년 단위의 격차가 있습니다. 어쨌든 오늘날까지도 저런 규범들이 각 교인에게 위압과 제약을 가하고 있거든요. 예컨대 저만해도 사춘기 이전부터 혼전순결과 수음 금지를 부모님께 권면 받았어요. 심지어 어머니는 수음이 뭔지도 모른 채 몽정을 한 초등학교 6학년을 데리고서 혹시 수음을 한 거라면 다음부턴 그래선 안 된다고 일깨우셨죠. 그게 관성이 되어서 지금까지도 수음을 한 적이 없어요. 물론 이건 이례적인 사례지만 여하간 그 정도의 정서적 압박이 가해졌다는 겁니다. 이게 저만의 개인적인 사례도 아닐 테고요. 아마 여성의 경우 특히 성적 억압을 더 강하게 받았겠죠. 실제로 저희 집도 여동생에게 더 엄격했으니까요. 이외에도 금기는 다양했어요. 일요일엔 상품 구매가 금지되었고, 스타크래프트나 창세기전 시리즈 같은 배교적 게임도 제재를 받았고, 교회 끝나고 애들하고 PC방 가면 욕을 먹었고.. 그런 게 신심을 증명하는 제례였죠. http://www.healthlife.co.kr/month02_section01_view.html?no=767&PHPSESSID=8ff37fe9d888570e34982501b4eb8886 이러한 규범들은 해당 종교에서 내적으로 불문법적 체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신심의 척도로 기능할 수 있느냐, 그로부터 이탈했을 경우 불신이나 배교 행위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단언하기 어려운 문제일 겁니다. 최소한도 해당 종교 내에서 제의적 맥락을 체득하고 있는 이들 사이에서 가까스로 가늠할까 말까 할 문제이지, 종교적 열정이란 것이 어떤 조건에 놓여 있는지 알기 어려운 외부자들이 논해봐야 변죽을 울릴 수밖에 없지요. 당연히 논할 수는 있지만 장님 코끼리 만지기 이상이 안 될 겁니다. 그 이상을 논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타인의 삶을 이해해야겠다는 결의가 있어야 합니다. 내부를 논하기 위해선 먼저 내부를 알아야 하는 것이죠. 어떤 면에서는 도리어 신자'임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신자'이기에' 일탈적일 수 있어요. 지금까지 암시했던 것처럼 신앙을 유지한다는 것은 상당한 극기와 자기부정을 요합니다. 특히 크리스트교 계열 같은 일신교는 인본주의가 아니라 신본주의이기 때문에 본인의 욕망에 정직한 것 자체가 죄악이고 세상만사를 신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하죠. 자기 결정이란 있을 수 없으며 자신을 배반하고 섭리에 순응해야 해요. 이건 당연히 내적으로 상당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가하고요. 스스로의 사고와 욕구와 갈망을 부인하고 윤리적 규범에 자신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해체의 과정입니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그것에는 적절한 해방구가 필요합니다. 현대로 올수록 기성종교들의 교조성은 약화되고 신도와 사제에게 적용되던 이런저런 금기들도 해체되고 있는데, 그런 것들 역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우리 모두 '사람의 아들'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이죠. 그렇게 종래에는 거부되었던 인문적 관습들도 하나의 삶의 방식이자 구원에 이르는 길로 승인되고요. 사도 바울은 유태교 전통 율법의 허상성을 논하면서 오직 행위자 본인의 믿음만이 구원의 척도라고 주장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신앙과 윤리라는 명분으로 제도적 억압을 가하여 궁극적으로는 이국인과 불신자를 배척하고 민족주의적 패권주의를 관철하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로 전락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남을 가혹하게 단죄하면서 스스로의 도덕적 확신을 확증편향적으로 강화시키는 위선을 율법주의가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런 폐쇄성을 탈피하여 모두에게 입교의 문을 열어주는 방법이 각자의 신앙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존중이었고요. 구원은 각기 내적으로 감당할 문제이지, 타인이 규범적 잣대로 측량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즉 자기 부정을 근간으로 삼는 폐쇄적인 도그마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 역설적으로 자기 긍정의 근거를 찾아냈다는 것이죠. 그런 급진적 전회를 통해서 크리스트교는 소수의 사제만이 카르텔을 이루는 민족 종교가 아니라 빈자도 죄인도 악인도 포괄하는 보편 종교가 될 수 있었고요. 이렇게 성취한 보편성을 다시 그들만의 천국으로 축소하려는 시도야말로 배교적인 신성모독일 겁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 토비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9-01-22 22:56)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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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속에 길어질 여러 상념이 떠오르는데 키배력을 새벽에 다 소진해서 키워드만 남기자면...
- 온전한 기독교인
- 왜 '텍스트로 돌아가자'는 교리 개혁(혹은 도그마로의 반동 회귀)은 주기적으로 일어나는가
- 역시 단백질 손실이 없어야 똘똘해진다
언제나 그렇듯 리플은 미괄식을 지향합니다.
- 온전한 기독교인
- 왜 '텍스트로 돌아가자'는 교리 개혁(혹은 도그마로의 반동 회귀)은 주기적으로 일어나는가
- 역시 단백질 손실이 없어야 똘똘해진다
언제나 그렇듯 리플은 미괄식을 지향합니다.
금딸과 전립선암의 상관관계는 어느 정도 인정되고 있습니다. 아 금딸하면 전립선암 확률이 중가한다고요.
https://www.webmd.com/prostate-cancer/ejaculation-prostate-cancer-risk
“The exact number of times didn’t matter. Basically, the more men ejaculated in a month, the less likely they were to get prostate cancer”
https://www.webmd.com/prostate-cancer/ejaculation-prostate-cancer-ri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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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주의는 사실 각 '아브라함 계열의 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차지하는 위상에 따라 달라집니다.
'아브라함 계열 종교'에서 중요한 것은 '구원'입니다. 그리고 각 신자에게 묻죠. '너는 구원에 합당한 사람인가?'
그리고 각 종교들은 신자들에게 '구원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그것이 율법입니다.
거기에는 도둑질 하지 말라, 거짓말 하지 말라와 같은 보편적인 윤리 뿐만 아니라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 안식일에는 물건을 들고 이동하지 말라와 같은 해당 종교에만 통용되는 계율까지 포함이 됩... 더 보기
'아브라함 계열 종교'에서 중요한 것은 '구원'입니다. 그리고 각 신자에게 묻죠. '너는 구원에 합당한 사람인가?'
그리고 각 종교들은 신자들에게 '구원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그것이 율법입니다.
거기에는 도둑질 하지 말라, 거짓말 하지 말라와 같은 보편적인 윤리 뿐만 아니라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 안식일에는 물건을 들고 이동하지 말라와 같은 해당 종교에만 통용되는 계율까지 포함이 됩... 더 보기
율법주의는 사실 각 '아브라함 계열의 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차지하는 위상에 따라 달라집니다.
'아브라함 계열 종교'에서 중요한 것은 '구원'입니다. 그리고 각 신자에게 묻죠. '너는 구원에 합당한 사람인가?'
그리고 각 종교들은 신자들에게 '구원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그것이 율법입니다.
거기에는 도둑질 하지 말라, 거짓말 하지 말라와 같은 보편적인 윤리 뿐만 아니라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 안식일에는 물건을 들고 이동하지 말라와 같은 해당 종교에만 통용되는 계율까지 포함이 됩니다.
여기서 같은 '아브라함 계열 종교'라 해도 '그리스도교'와 그 외가 나뉘어 집니다.
'그리스도 교'라는 것은 인간 스스로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구원에 합당한 기준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댓가를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 자신'인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으로써 치뤘다는 것이거든요. (피조물인 인간의 구원을 위해 창조주가 제물로 바쳐짐)
그래서 그리스도교인들은 "상대적"으로 율법에서 자유롭습니다.
하루에 4번 어딘가를 향해 절을 하지 않아도,
돼지고기, 소고기, 오징어 상관없이 먹어도,
어떤 경전이나 기도문을 몇백번씩 암송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채찍질하거나 굶지 않아도
구원의 문은 열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인들은 다른 아브라함 계열 종교인들보다 나이브합니다. 비 종교인과 별 차이가 없는 경우도 많죠.
왜냐면 그리스도교에서는 선(先) 구원 후(後) 변화 를 말하고 있거든요.
즉, 천국행 티켓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누구나에게 주어집니다.
하지만 그 티켓에 합당하게 되도록 (평생에 걸쳐) 성장하게 됩니다.
다른 '아브라함 계열 종교"는 선(先) 변화 후(後) 구원을 말합니다.
수백가지의 율법을 지켜야 하고, 그것에 평생에 걸쳐 어긋남이 없을 경우 천국행 티켓을 받는 다는 거죠.
그것을 지키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이슬람교에서는 '일발역전'으로 성전(聖戰)에 참여해서 죽을 경우 바로 직행한다고도 하죠.
여호와의 증인도 다른 아브라함 계열 종교에 속합니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천사들의 대장이고 하나님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그들도 그들만의 율법이 매우 강합니다.
이번에 제주도 양벙거자들에 대해 게임여부를 조사한 것은 "정말 여증 신도라면 게임을 할 리가 없기 때문"에 조사를 한 겁니다.
"여증이라며 게임을 하다니 그게 맞느냐?"를 밝히려고 조사를 한게 아니라는 거죠. (약간의 뉘앙스 차이가 있죠.)
'아브라함 계열 종교'에서 중요한 것은 '구원'입니다. 그리고 각 신자에게 묻죠. '너는 구원에 합당한 사람인가?'
그리고 각 종교들은 신자들에게 '구원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그것이 율법입니다.
거기에는 도둑질 하지 말라, 거짓말 하지 말라와 같은 보편적인 윤리 뿐만 아니라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 안식일에는 물건을 들고 이동하지 말라와 같은 해당 종교에만 통용되는 계율까지 포함이 됩니다.
여기서 같은 '아브라함 계열 종교'라 해도 '그리스도교'와 그 외가 나뉘어 집니다.
'그리스도 교'라는 것은 인간 스스로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구원에 합당한 기준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댓가를 '하나님의 아들이자 하나님 자신'인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으로써 치뤘다는 것이거든요. (피조물인 인간의 구원을 위해 창조주가 제물로 바쳐짐)
그래서 그리스도교인들은 "상대적"으로 율법에서 자유롭습니다.
하루에 4번 어딘가를 향해 절을 하지 않아도,
돼지고기, 소고기, 오징어 상관없이 먹어도,
어떤 경전이나 기도문을 몇백번씩 암송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채찍질하거나 굶지 않아도
구원의 문은 열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인들은 다른 아브라함 계열 종교인들보다 나이브합니다. 비 종교인과 별 차이가 없는 경우도 많죠.
왜냐면 그리스도교에서는 선(先) 구원 후(後) 변화 를 말하고 있거든요.
즉, 천국행 티켓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누구나에게 주어집니다.
하지만 그 티켓에 합당하게 되도록 (평생에 걸쳐) 성장하게 됩니다.
다른 '아브라함 계열 종교"는 선(先) 변화 후(後) 구원을 말합니다.
수백가지의 율법을 지켜야 하고, 그것에 평생에 걸쳐 어긋남이 없을 경우 천국행 티켓을 받는 다는 거죠.
그것을 지키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이슬람교에서는 '일발역전'으로 성전(聖戰)에 참여해서 죽을 경우 바로 직행한다고도 하죠.
여호와의 증인도 다른 아브라함 계열 종교에 속합니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천사들의 대장이고 하나님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그들도 그들만의 율법이 매우 강합니다.
이번에 제주도 양벙거자들에 대해 게임여부를 조사한 것은 "정말 여증 신도라면 게임을 할 리가 없기 때문"에 조사를 한 겁니다.
"여증이라며 게임을 하다니 그게 맞느냐?"를 밝히려고 조사를 한게 아니라는 거죠. (약간의 뉘앙스 차이가 있죠.)
다른 글에도 달았지만 게임-여증의 관계는 꼭 그러하지 않습니다. 여증이 여타 기독교 종파에 비해서 교리로 생활을 억죄는 걸 더 빈번하게 행하고 그래서 게임에 대한 터부가 보통의 기독교인보다 높긴 합니다만, 수혈금지나 이교 숭배 행위 금지같이 강력한 교리에 두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음주보다도 더 낮은 수준에서 건드리고 있으며, 게임 그 자체를 죄악시하기보다는 내용에 기반해서 부모가 자녀를 교육해야 하는 것으로 다루고 있죠. 보통의 기독교인이 음주, 흡연, 혹은 로큰롤 음악을 다루는 정도로 다루고 있습니다. 단적으로 저는 병역 거부로 징역을 살았지만 카스를 했던 여호와의 증인 신도를 둘 알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검찰이 게임과 여호와의 증인의 신앙의 깊이와 종교적 병역거부의 순수성에 대한 충분한 고찰을 통해 조사를 시도했다고 볼 근거가 약합니다. 그냥 조사를 시도했다라는 것만 알려져있죠.
상대적으로 율법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말씀이 맞지만, 교리 준행을 명분으로 하여 개별 신도의 신심 부족을 질책하는 압박이 어떤 식으로든 존재한다 점에서 근간은 같지요. 그러니까 이건 정도의 차이일 뿐, 세속적 관습과 충돌하는 탈속적 규약으로 신자를 옭아매고 있다는 종교적 본질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특히나 위에서 사례를 들어가며 언급했듯이 개신교는 개교회주의를 천명하고 있는 종교고, 그런만큼 교회마다 신자마다 전통과 문화가 다르기도 하죠. 그런 것들은 제도적으로 이단이라고 규정되기 전까지는 교리에 위배된다고 말할 수도 없고요... 더 보기
상대적으로 율법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말씀이 맞지만, 교리 준행을 명분으로 하여 개별 신도의 신심 부족을 질책하는 압박이 어떤 식으로든 존재한다 점에서 근간은 같지요. 그러니까 이건 정도의 차이일 뿐, 세속적 관습과 충돌하는 탈속적 규약으로 신자를 옭아매고 있다는 종교적 본질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특히나 위에서 사례를 들어가며 언급했듯이 개신교는 개교회주의를 천명하고 있는 종교고, 그런만큼 교회마다 신자마다 전통과 문화가 다르기도 하죠. 그런 것들은 제도적으로 이단이라고 규정되기 전까지는 교리에 위배된다고 말할 수도 없고요. 물론 감리교는 장로교 틀렸다 하고 합동은 통합 틀렸다 하지만 다 자기들 기준에 불과한 거고.. 그러니만큼, 평균적으로야 개신교가 여증보다 신앙적 프레셔가 낮다고 할 수 있지만 개별 교구나 가정이나 특정 소재에 대해서 꼭 그렇다고는 단언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니 여증과 개신교가 마냥 다르다고 이원적으로 접근할 수는 없을 겁니다. 따지고 보면 여증은 초대교회를 모델로 삼는 회복주의적 개신교 이단이니 이슬람이나 유태교와는 입장이 다르기도 하고요.
돌아와서, 여증 신자가 FPS 게임을 플레이 하지 않을 공산이 다른 종교보다 크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아예 안 한다거나 하면 나이롱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죠. 실제로 팔순 넘으신 첫째 이모 가계가 여호와의 증인인데, 부모인 제 외조부모님과 절연하다시피 하면서 신앙을 고수했죠. 저하고 나이 비슷한 그 집 손자도 여증이고 이런저런 워게임 합니다. 물론 당연히 드러내놓고 당당하게는 안 하지만요. 제가 스타크래프트 할 때 주변으로부터 신앙의 이름으로 비슷한 압력을 받았듯.
돌아와서, 여증 신자가 FPS 게임을 플레이 하지 않을 공산이 다른 종교보다 크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아예 안 한다거나 하면 나이롱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죠. 실제로 팔순 넘으신 첫째 이모 가계가 여호와의 증인인데, 부모인 제 외조부모님과 절연하다시피 하면서 신앙을 고수했죠. 저하고 나이 비슷한 그 집 손자도 여증이고 이런저런 워게임 합니다. 물론 당연히 드러내놓고 당당하게는 안 하지만요. 제가 스타크래프트 할 때 주변으로부터 신앙의 이름으로 비슷한 압력을 받았듯.
사람은 기본적으로 남보다 우월해 지고 싶은 욕망을 지닌 존재다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아랫사람, 어린사람, 뉴비에게 어떤 형태로든 규약과 제한을 가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죠. 그게 군대면 똥군기, 종교에서는 율법, 사회에서도...군대문화 같이.
군대나 사회 조직에서는 어느 한 사람이 작정을 하고 그런 규율을 철폐하지 않는 한 지속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예전에 그 부조리를 몸으로 감당하고 나서도 뒷 사람들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희생과 양보를 하면서
"적폐청산"을 이뤄내죠.
그리고 그 사람이 제대하거나 떠나고 나면, 또 스멀스... 더 보기
군대나 사회 조직에서는 어느 한 사람이 작정을 하고 그런 규율을 철폐하지 않는 한 지속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예전에 그 부조리를 몸으로 감당하고 나서도 뒷 사람들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희생과 양보를 하면서
"적폐청산"을 이뤄내죠.
그리고 그 사람이 제대하거나 떠나고 나면, 또 스멀스... 더 보기
사람은 기본적으로 남보다 우월해 지고 싶은 욕망을 지닌 존재다보니 시간이 흐를수록 아랫사람, 어린사람, 뉴비에게 어떤 형태로든 규약과 제한을 가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죠. 그게 군대면 똥군기, 종교에서는 율법, 사회에서도...군대문화 같이.
군대나 사회 조직에서는 어느 한 사람이 작정을 하고 그런 규율을 철폐하지 않는 한 지속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예전에 그 부조리를 몸으로 감당하고 나서도 뒷 사람들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희생과 양보를 하면서
"적폐청산"을 이뤄내죠.
그리고 그 사람이 제대하거나 떠나고 나면, 또 스멀스멀 기어올라오고..
반면, 레퍼런스가 명확한 그리스도교에서는 성경에 써있죠. 그런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와야 한다고.
그럼에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제도를 만들죠.
에전엔 강대상 위에 올라가지도 못했죠. 어딜 지성소에 들어가냐고...
드럼도 못치고, 기타도 못치고...
하지만 레퍼런스가 있기 때문에, 또 자유로워지려는 움직임은 계속 일어나고..점차적으로 유연해지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군대나 사회 조직에서는 어느 한 사람이 작정을 하고 그런 규율을 철폐하지 않는 한 지속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예전에 그 부조리를 몸으로 감당하고 나서도 뒷 사람들에게는 적용하지 않는 희생과 양보를 하면서
"적폐청산"을 이뤄내죠.
그리고 그 사람이 제대하거나 떠나고 나면, 또 스멀스멀 기어올라오고..
반면, 레퍼런스가 명확한 그리스도교에서는 성경에 써있죠. 그런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와야 한다고.
그럼에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제도를 만들죠.
에전엔 강대상 위에 올라가지도 못했죠. 어딜 지성소에 들어가냐고...
드럼도 못치고, 기타도 못치고...
하지만 레퍼런스가 있기 때문에, 또 자유로워지려는 움직임은 계속 일어나고..점차적으로 유연해지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본문과는 연관이 없긴하지만, 살만 루슈디의 소설 [악마의시]이 발표된 후 작가의 운명과 작품과 연관된 여러 인물의 생사는 종교인들에게 텍스트의 권위를 손상받을 수 있는 여지가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였어요. 오래묵은 허구를 숭배하는 일이나 소설속의 허구를 두고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로 여겨 작품의 유통을 방해하는 일은 너무나 닮아있지요. 사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세속의 일을 두고 끊임없이 의미를 생산해내고, 그 의미에 도취되며, 도취함을 표상하는 언어에 또 도취하는 일이 문명을 살아가는 인간의 숙명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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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가장 민감한 건 혼전순결이나 수음, 동성애, 중절 같은 성적 문제들일 겁니다
이러한 규범들은 해당 종교에서 내적으로 불문법적 체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현대로 올수록 기성종교들의 교조성은 약화되고 신도와 사제에게 적용되던 이런저런 금기들도 해체되고 있는데, 그런 것들 역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역시 AI는 입력 데이터가 좋아야
좀 더 가장 민감한 건 혼전순결이나 수음, 동성애, 중절 같은 성적 문제들일 겁니다
이러한 규범들은 해당 종교에서 내적으로 불문법적 체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현대로 올수록 기성종교들의 교조성은 약화되고 신도와 사제에게 적용되던 이런저런 금기들도 해체되고 있는데, 그런 것들 역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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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영화는 영화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평소 종교권력의 지나친 배타성에는 반대하는 편이지만... 이 영화가 정통 기독교 교리에 부합하는 영화인가만 보면 그건 또 아닌 것도 사실이고, 톨스토이의 작품도 종교적인 색체야 담아냈지만 개인 신앙으로 보면 말씀하신 삼위일체에 대한 내용처럼 정통 교회 입장에선 이단적 성향이 있었던 것도 맞죠. 그의 문학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나 그렇다고 그를 정죄하는 방식이 옳은가에 대한 생각과는 별개로요.
그리고 사실 우려하시는 바와 달리 지금 우리나라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칼빈주의 장로교 분들은... 더 보기
그리고 사실 우려하시는 바와 달리 지금 우리나라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칼빈주의 장로교 분들은... 더 보기
저도 영화는 영화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평소 종교권력의 지나친 배타성에는 반대하는 편이지만... 이 영화가 정통 기독교 교리에 부합하는 영화인가만 보면 그건 또 아닌 것도 사실이고, 톨스토이의 작품도 종교적인 색체야 담아냈지만 개인 신앙으로 보면 말씀하신 삼위일체에 대한 내용처럼 정통 교회 입장에선 이단적 성향이 있었던 것도 맞죠. 그의 문학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나 그렇다고 그를 정죄하는 방식이 옳은가에 대한 생각과는 별개로요.
그리고 사실 우려하시는 바와 달리 지금 우리나라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칼빈주의 장로교 분들은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이신칭의에 대해서만은 확고 합니다. 걱정하시는 율법주의나 행위구원론을 철저히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죠. 그래서 '믿음'이 중요한 만큼 무엇을 믿는가에 대한 즉 '교리'에 대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양보가 없는 거구요. 그건 삼위일체를 까대던 세르베투스의 사형에 동의했던 칼빈도 이단들에 대해선 노답이라 생각하던 바울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오히려 그들을 대하던 방식만 놓고 보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더 잔인하고 야만적이었죠. (지금 관점으로 보았을 때...)
탈속적 규범이라고 하신 것들도 남들한테 보이기에 안좋게 행동하지 말라는 이야기이고 이건 시대가 변함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바울도 율법은 구원의 수단이 아니라 죄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는 역할만 한다고 하였고 유대인 계열 신자들과 이방인 계열 신자들이 음식에 대해 논쟁을 벌일 때도 둥글게 이야기하면서 그런 뉘앙스를 풍기죠. 그럼에도 본인은 그런 걸 안먹긴 한다고 하기도 했고... 진리와 무관한 것에 대해서는 꽤 융통성이 있었던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우려하시는 바와 달리 지금 우리나라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칼빈주의 장로교 분들은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이신칭의에 대해서만은 확고 합니다. 걱정하시는 율법주의나 행위구원론을 철저히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죠. 그래서 '믿음'이 중요한 만큼 무엇을 믿는가에 대한 즉 '교리'에 대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양보가 없는 거구요. 그건 삼위일체를 까대던 세르베투스의 사형에 동의했던 칼빈도 이단들에 대해선 노답이라 생각하던 바울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오히려 그들을 대하던 방식만 놓고 보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더 잔인하고 야만적이었죠. (지금 관점으로 보았을 때...)
탈속적 규범이라고 하신 것들도 남들한테 보이기에 안좋게 행동하지 말라는 이야기이고 이건 시대가 변함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바울도 율법은 구원의 수단이 아니라 죄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는 역할만 한다고 하였고 유대인 계열 신자들과 이방인 계열 신자들이 음식에 대해 논쟁을 벌일 때도 둥글게 이야기하면서 그런 뉘앙스를 풍기죠. 그럼에도 본인은 그런 걸 안먹긴 한다고 하기도 했고... 진리와 무관한 것에 대해서는 꽤 융통성이 있었던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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