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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6/09/21 19:06:57 |
Name | 기쁨평안 |
Subject | 다윗왕과 밧세바 이야기 구약 시대의 가장 큰 섹스 스캔들 |
안녕하세요. 눈팅족에 가까운 회원입니다. 개인적으로 오랜 시간 종교적인 방황을 하다가, 군 제대후 개신교인이 되었고 신앙안에 정착을 했습니다. 성경에 대해서도, 교리에 대해서도 나름 치열하다면 치열한 과정을 거쳐왔기 때문에, 한국 교회에 대한 비판과 비난, 조롱에 대해서도 동의하는 부분도 있고 해서 그냥 넘기는 편입니다만, 최근 들어 거의 한달마다 유명 목회자의 성추문이 발생하는데도 이제는 교단도 사회도 인터넷 커뮤니티도(!!) '그려려니' 하면서 무덤덤해지는 수준까지 간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참담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죄와 회개와 구원"에 대해 실제로 성경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에 대해 조금 나눌까 합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 중에서도 정확하게 모르시는 분들이 상당히 있습니다. 해서, 이 주제에 대해 사실 예전부터 조금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사실 인터넷 커뮤니티 특성상 파이어되기 쉽고 저도 그럴 경우 수많은 물량을 상대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냥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어쩌면...어쩌면 홍차넷에서는 그것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번 시도를 해보고자 합니다. 저는 이 글이 쓸데 없는 분쟁으로 발전하길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만약 특정 종교에 대해 평소 미움과 분노가 많이 있는 분들이 계시다고 해도, 굳이 이 글의 댓글에서 드러내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 혼자서 일일히 답변을 달기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피드백이 부족해도 양해부탁드립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려고는 합니다. 여러분과의 이야기를 통해 부족한 이 글의 내용이 보완되길 바랍니다. 그럼 시작하죠. --------------------------------- ![]() 다윗 왕입니다. (아...아름다운가요?) 다윗과 골리앗의 바로 그 다윗이죠. 키가 3미터에 가까웠다는 거인 골리앗의 대갈빡에 짱돌을 박아넣은 소년 다윗은 이후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의 질투와 미움을 사 온갖 죽을 고생을 하며 도망다니게 됩니다. 이후 도망자들, 부랑자들을 모아 일종의 외인부대 군단을 형성한 그는 여러지역을 돌아다니며 어지러워진 민심을 규합하며 세력을 불리다가, 사울왕이 죽자 서른 살의 나이로 이스라엘의 두번째 왕으로 추대를 받게 됩니다. 이 후 이스라엘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여러 전투에 승승장구를 하고 나라는 부강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동안 전투에 항상 앞장서던 다윗도 전쟁이 벌어지는 중에도 이제 수도에 머물며 통치를 하게 되죠. 그러던 중, 다윗은 저녁에 왕궁을 거닐다가 멀리 떨어진 건물("우리아"라는 장수의 집) 옥상에서 우리아의 부인 "밧세바"가 목욕을 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 <램브란트가 그린 '밧세바'> 이 모습을 본 다윗왕은 눈이 뒤집혀 밧세바를 잡아오게 한다음 동침을 합니다. (위력에 의한 강간) 남편인 우리아를 포함하여 상당수의 인원들이 전장에 투입된 터라 그냥 두 사람의 관계는 일회성으로 끝날 것으로 보였지만, 이 날의 관계를 통해 밧세바가 임신을 해버립니다. 충격과 공포의 임신 소식을 들은 다윗은 다급히 우리아를 수도로 불러들입니다. 그래서 전쟁의 현황과, 군대의 상태를 물어보는 척 하고 집으로 돌아가 쉬도록 "휴가"를 줍니다. 휴가 뿐만 아니라 음식물까지도 하사합니다. 오랫만에 집에 돌아가서 먹고 마시고 부인과 거사(?)도 치르도록 유도를 한거죠. 그런데, 이 충성스럽고 우직한 우리아는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왕궁 문에서 부하들과 잠을 잡니다. 애가 타기 시작한 다윗 왕은 우리아를 불러 말합니다. "오랫만에 나갔다 들어왔는데, 왜 집으로 들아지 않느냐?" 눈치없는 우리아는 아직 전쟁 중이고 동료들이 고생하고 있는데 어찌 집으로 가곘느냐며 고집을 부립니다. 이에 다윗왕은 우리아에게 하루 더 강제 휴가를 주고 왕궁에 데리고 있다가, 저녁때에 같이 식사를 하면서 술을 먹여 취하게 만들어 내보냈는데, 그래도 그는 집으로 가지 않고 부하들과 잠을 잡니다. 결국, 초조해진 다윗은 해서는 안될 짓까지 저지르게 되는데, 전투를 지휘하고 있는 총사령관 요압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씁니다. "너희는 우리아를 가장 격렬한 전투에 선두에 두게 하고 뒤로 물러나서 그를 죽게 해라." 그리고 잔인하게도 그 편지를 우리아의 손에 들려 보내면서 우리아로 하여금 전선에 복귀를 시키죠. 이 편지를 본 사령관 요압은 편지대로 우리아를 최전선에 내보내어 죽게 합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이 총사령관은 패전 사실을 보고하고자 전령을 보내면서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만약 네가 왕에게 패전의 소식을 전하여서 왕께서 분노하거든, '왕의 신하 우리아도 죽었습니다.' 라고 말해라." 전령은 위와 같이 지시받은 대로 다윗왕에게 보고하였고 다윗왕은 더이상 이 사실을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밧세바는 "그의 남편을 위하여 소리내어 우니라."(사무엘하 11장 26절) 라고 기록될 만큼 슬퍼했지만, 결국 다윗왕에 의해 왕궁으로 들어가고, 아들을 낳게 됩니다. 이상의 내용이 바로 사무엘하 11장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11장은 다음과 같이 끝맺고 있죠.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구약에는 여호와의 메세지를 대신 전한다고 여겨지던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다윗 왕 시절 선지자들 사이에서 메인 급으로 활약했던 자는 나단이라는 사람이었는데, 그가 다윗왕에게 가서 다음과 같이 말을 합니다. "어느 마을에 양과 소가 많은 부자가 있고 가난하여 양한마리만 겨우 키우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가난한 사람은 자기의 양을 마치 딸처럼 품에 안아 키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자는 자신의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서 자기 소유의 양을 잡지 않고 이 가난한 자의 양을 빼앗아다가 접대를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다윗 왕은 분노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니, 이 일을 행한 그 부자는 마땅히 죽어야 할 자다! 그리고 가난한 자에게 네 배로 갚아줘야 할 것이다!" 그러자 나단이 말합니다. "당신이 바로 그사람이오!" 그리고 계속해서 쏟아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고 계시오. '내가 너에게 온 이스라엘을 맡겼고,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으므로 네 집에 칼이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소!" "또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대낮에 동침할 것이다.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백성들 앞에서 대낮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습니다." 이렇게 매우 무시무시한 징벌을 예고하게 되지요. ![]() <패기 돋는 나단> 이 말을 들은 다윗은 그 즉시 "회개"를 합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사무엘하 12장 13절) 그 당시 왕정시대에 왕의 범죄사실을 만인 앞에 적시했음에도 다윗 왕은 나단 선지자를 죽이거나 가두거나 하지 않고 바로 잘못을 인정하며 회개를 한 사실을 신자들 사이에서는 매우 높게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만, 그렇지 않은 분들은 '역시 회개만 하면 장땡이냐!!'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이런 빠른 GG에 나단 선지자는 다시 말합니다.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그리고는, 실제로 그 아이가 7일 동안 앓다가 죽습니다. 그 7일동안 다윗왕은 아무것도 먹지않고 땅에 엎드려 계속 용서를 구하지만, 결국 아이는 죽게 되었죠. 아이가 결국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왕은 몸을 추스리고 씻고 의복을 갈아입고 경배한 뒤 음식을 먹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밧세바를 위로하고, 또 어느정도 시간이 흐른 뒤 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는데, 그 아이의 이름이 바로 그 유명한 "솔로몬"입니다. ![]() <출신이 비천했던 솔로몬. - 자 여기까지가 성경에서 말하는 섹스 스캔들의 전말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범죄 -> 회개 -> 용서"의 기독교 대표적인 싸이클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많은 목회자가 성범죄를 저지르고 난 다음, 스스로를 면피하고자 가장 많이 언급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는 위와같은 자기합리화를 접할 때마다 어이없음을 느끼곤 합니다. 왜냐면 성경에서 말하는 "회개"는 그렇게 만만하게 아니기 때문이지요. 다윗이 저지른 위력에 의한 강간(으로 인한 간음)과 살인교사는 매우 큰 죄 입니다. 요즘 시대같으면 최대 사형까지 가능한 중범죄죠. ( 하지만 다윗은 "회개"를 합니다. 그리고 용서를 받습니다. 많은 분들이 분노하는 지점이 이 지점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만, 사실 여기서 용서는 "죽이지는 않는 용서"입니다. 즉, 용서가 되긴 된건데, 이건 정말 말 그대로 죽이지만 않은 용서인거지 그에 대한 댓가는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이후에 다윗이 겪게되는 상황을 짤막하게 요약을 하자면, 다윗의 아들들 사이에 소위 '왕자의 난'이 일어나 한 아들 압살롬이 형제중 한명을 죽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 뒤에 이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겨우 목숨만 부지해서 도망가게 되고, 이 압살롬이 다윗의 후궁들을 대낮에 사람들 보는데서 강제 동침을 합니다. 다윗은 거의, 거의 죽을 뻔한 위기에 처했다가 정말 천재일우의 기회로 반란을 진압하게 되고 이 압살롬마저 죽게 됩니다. (앞서 말한 예언이 다 이뤄지죠. 솔로몬을 어려서 살아남음) 그리고 이러한 댓가가 이렇게 외적인 환경에서만 발생한 것은 아닙니다. 다윗의 내면에도 범죄에 대한 징계가 일어나는데, 그 내용은 그 당시 다윗이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 시(시편 51편)에서 엿볼수 있습니다. (시 51:10) 하나님이시여, 내 속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확고한 정신을 새롭게 하소서. (시 51: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고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시 51:12) 나에게 주의 구원의 기쁨을 다시 주셔서 기꺼이 주께 순종하게 하소서. 여기 문장을 잘 뜯어보면, 다윗의 내면 상황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우선, 1. 여호와 앞에서 쫓겨나지는 않았습니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고) 그리고, 2. 성령이 거두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그런데, 3. 구원의 기쁨이 사라졌습니다. (나에게 주의 구원의 기쁨을 다시 주셔서...) 이 부분은 사실 신앙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사이에 가장 큰 온도 차가 발생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만, 사실 신앙이 있는 사람의 입장에선 이게 가장 큰 형벌입니다. 기독교인의 삶에 대한 입장은 영원 불멸한 삶을 꿈꾸고, 이 땅에서의 삶은 스쳐지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이거든요. 그런데 구원의 기쁨이 없다는 것은, "(구원은 받았으나) 영원한 시간 속에 수 많은 기뻐하는 영혼의 무리 가운데 홀로 아무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영원히 있어야 되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죠. 물론 성경에서 말하는 영원한 불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는 나을지 몰라도 말이죠. ---------------------------- 업무시간 틈틈히 쓰느라 사실 구성이 좀 뒤죽박죽인데요. 제가 하고싶었던 진짜 이야기는, 성경에서 말하는 "회개"라는 것은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 저도 "어떤 죄를 저질러도 회개만 하면 구원받느냐?" 라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 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그 "회개"라는 것이 여기서 말하는 "회개만" 이라는 표현처럼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물론 전적인 용서가 있습니다. 사실 다윗의 저지른 범죄는 정말 용서받지 못할 죄이지만, 용서가 있습니다. 이러한 용서가 없으면 살아남을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용서가 없다면 인간의 삶이 너무나 절망적이지 않을까요? 우리가 의도했던 의도치 않았던 저질렀던 크고 작은 수많은 실수들, 어리석음들, 무능함들과, 또 크고 작은 범죄와 죄악에 가까웠던 것들, 또는 그것을 보고도 모른 척 했던 것들,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철저한 인과응보를 치룬다면, 인류에게 희망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성경에서 말하는 용서는 사실 "회복"에 가까운 개념입니다. 속죄와, 원상복구와, 화해와, 그와 연관된 총체적인 개념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회복을 위해서는 정말 기나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고요. 그래서 기독교는 먼저 용서를 합니다. 무조건적인 용서지요. 그것을 받아들이면, 그 뒤에 숨어있는 죄악들과 그에 대한 속죄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이 후의 삶에서는 그것을 이뤄내는 삶을 사는 것. 그것이 진정한 기독교 정신입니다. 물론 사람들은 그러면 분노할 수 있죠. "어떻게 저러고도 용서를 받을수 있느냐?!!!!" 다 댓가를 치룹니다. 시간의 선후가 존재할 수는 있겠지요.. 많은 분들이 성경에서 말하는 회개와 용서의 개념을 보다 명확하게 이해하셨으면 하는 바램에서 주제 넘게 몇글자 적어봅니다. 감사합니다. * 수박이두통에게보린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6-10-01 09:39)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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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구약에서는 우리가 사용하는 개념으로써의 용서란 존재하지... 않다고 봐도 무방하죠.
용서라는게 직접적인 형벌, 그러니까 죽음 (구약에서는 뭐만 하면 일단 다 죽어야하는...) 을 면하게 해준다는 것이지,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댓가는 어떻게든 치루게 됩니다.
다윗의 경우도 죄의 댓가를 뼈저리게 치뤘고, 다윗 뿐만이겠습니까. 솔로몬부터 시작해서... 수도없이 많죠. 다만 그것이 '차후에 형벌과 관련없이 일어난' 사건으로 생각될 뿐입니다. 분단국가가 되어 나라의 반이상을 빼앗긴게 용서라기에는 현대의 관점에서는 맞지 않죠. 받을 ... 더 보기
용서라는게 직접적인 형벌, 그러니까 죽음 (구약에서는 뭐만 하면 일단 다 죽어야하는...) 을 면하게 해준다는 것이지,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댓가는 어떻게든 치루게 됩니다.
다윗의 경우도 죄의 댓가를 뼈저리게 치뤘고, 다윗 뿐만이겠습니까. 솔로몬부터 시작해서... 수도없이 많죠. 다만 그것이 '차후에 형벌과 관련없이 일어난' 사건으로 생각될 뿐입니다. 분단국가가 되어 나라의 반이상을 빼앗긴게 용서라기에는 현대의 관점에서는 맞지 않죠. 받을 ... 더 보기
사실 구약에서는 우리가 사용하는 개념으로써의 용서란 존재하지... 않다고 봐도 무방하죠.
용서라는게 직접적인 형벌, 그러니까 죽음 (구약에서는 뭐만 하면 일단 다 죽어야하는...) 을 면하게 해준다는 것이지,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댓가는 어떻게든 치루게 됩니다.
다윗의 경우도 죄의 댓가를 뼈저리게 치뤘고, 다윗 뿐만이겠습니까. 솔로몬부터 시작해서... 수도없이 많죠. 다만 그것이 '차후에 형벌과 관련없이 일어난' 사건으로 생각될 뿐입니다. 분단국가가 되어 나라의 반이상을 빼앗긴게 용서라기에는 현대의 관점에서는 맞지 않죠. 받을 벌은 다 받습니다....
우리가 아는 용서의 개념이 재대로 등장한건 신약인데, 이것은 다들 아는 이야기니...
뭐 아무튼 용서를 받지 못하는 것은 구원이 없는 상태가 되는것이고, 용서를 받는 것은 구원이 있는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며, 현대의 기독교에서 용서를 하는 이유는 현대법에서 사적복수를 허용하지 않는것처럼, 형벌은 사람이 주지 않는것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범죄는 영원히 꼬리표에 남고, 배상은 해야하고, 사실은 모두가 알게 되고, 명예가 실추하는것까지 용서로 덮을수 있는것은 아닙니다. 이정도는 해야 회개를 했다는 느낌을 받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 옷은 안 찟어도 됩니다(...)
용서라는게 직접적인 형벌, 그러니까 죽음 (구약에서는 뭐만 하면 일단 다 죽어야하는...) 을 면하게 해준다는 것이지,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댓가는 어떻게든 치루게 됩니다.
다윗의 경우도 죄의 댓가를 뼈저리게 치뤘고, 다윗 뿐만이겠습니까. 솔로몬부터 시작해서... 수도없이 많죠. 다만 그것이 '차후에 형벌과 관련없이 일어난' 사건으로 생각될 뿐입니다. 분단국가가 되어 나라의 반이상을 빼앗긴게 용서라기에는 현대의 관점에서는 맞지 않죠. 받을 벌은 다 받습니다....
우리가 아는 용서의 개념이 재대로 등장한건 신약인데, 이것은 다들 아는 이야기니...
뭐 아무튼 용서를 받지 못하는 것은 구원이 없는 상태가 되는것이고, 용서를 받는 것은 구원이 있는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며, 현대의 기독교에서 용서를 하는 이유는 현대법에서 사적복수를 허용하지 않는것처럼, 형벌은 사람이 주지 않는것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범죄는 영원히 꼬리표에 남고, 배상은 해야하고, 사실은 모두가 알게 되고, 명예가 실추하는것까지 용서로 덮을수 있는것은 아닙니다. 이정도는 해야 회개를 했다는 느낌을 받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 옷은 안 찟어도 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 아는 이야기임에도 간략하게 풀어주셔서 거시적으로 보니 새롭게 보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이 있고 그렇네요.
목사들의 성추문이 계속해서 나타나는걸 보면서 이게 더 이상 일부의 일이 아니라는 느낌이 듭니다.
말도 안되는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네요. 안타깝고 한 명의 기독교인으로서 사회에 송구한 일입니다.
제가 출석하는 교회의 목사님이 자주 이야기하시는 속담이 생각나네요.
Don't throw the baby out with the bathwater. '목욕물과 함께 아이를 버리지 마십시오'... 더 보기
잘 아는 이야기임에도 간략하게 풀어주셔서 거시적으로 보니 새롭게 보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이 있고 그렇네요.
목사들의 성추문이 계속해서 나타나는걸 보면서 이게 더 이상 일부의 일이 아니라는 느낌이 듭니다.
말도 안되는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네요. 안타깝고 한 명의 기독교인으로서 사회에 송구한 일입니다.
제가 출석하는 교회의 목사님이 자주 이야기하시는 속담이 생각나네요.
Don't throw the baby out with the bathwater. '목욕물과 함께 아이를 버리지 마십시오'... 더 보기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 아는 이야기임에도 간략하게 풀어주셔서 거시적으로 보니 새롭게 보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이 있고 그렇네요.
목사들의 성추문이 계속해서 나타나는걸 보면서 이게 더 이상 일부의 일이 아니라는 느낌이 듭니다.
말도 안되는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네요. 안타깝고 한 명의 기독교인으로서 사회에 송구한 일입니다.
제가 출석하는 교회의 목사님이 자주 이야기하시는 속담이 생각나네요.
Don't throw the baby out with the bathwater. '목욕물과 함께 아이를 버리지 마십시오'
기독교계에서의 많은 구정물들로 인해 복음의 가치가 드러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홍차넷에서도 타임라인을 보다보면 인생의 고통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자주 보이는데, 그 분들에게도 복음을 통해 얻는 새로운 삶이 있다면 좋을텐데 싶거든요.
하지만 많은 구정물들 덕분에 쉽게 복음을 이야기 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지요.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더 간절히 필요한 시대입니다.
잘 아는 이야기임에도 간략하게 풀어주셔서 거시적으로 보니 새롭게 보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이 있고 그렇네요.
목사들의 성추문이 계속해서 나타나는걸 보면서 이게 더 이상 일부의 일이 아니라는 느낌이 듭니다.
말도 안되는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네요. 안타깝고 한 명의 기독교인으로서 사회에 송구한 일입니다.
제가 출석하는 교회의 목사님이 자주 이야기하시는 속담이 생각나네요.
Don't throw the baby out with the bathwater. '목욕물과 함께 아이를 버리지 마십시오'
기독교계에서의 많은 구정물들로 인해 복음의 가치가 드러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홍차넷에서도 타임라인을 보다보면 인생의 고통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자주 보이는데, 그 분들에게도 복음을 통해 얻는 새로운 삶이 있다면 좋을텐데 싶거든요.
하지만 많은 구정물들 덕분에 쉽게 복음을 이야기 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지요.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더 간절히 필요한 시대입니다.
개신교는 카톨릭처럼 전체를 아우르는 권위가 있는 대표단체가 없습니다.
각 교단끼리 간섭할 수 없는 구조고, 교단 속에 속해있는 교회들도 모두 독립된 개체라서 누가봐도 심각해서 교단에서 제명시켜야 할 수준의 명분이 없는 이상 각 개교회의 사안에 간섭하기 어렵기도 하구요.
특히나 교리의 해석과 같은 부분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교단들이 나뉜 것들이 그런 식의 이유라서, 따지기 시작하면 나노단위로 쪼개지는 결과를 낳을 뿐이지요.
그래서 '개신교 차원의 어떤 움직임'이란 것은 이명박 시절의 광우병 시위처럼 어떠한 사건을 계기로 대중들에 의해 자연 발생하지 않는 이상 어렵다고 봅니다.
각 교단끼리 간섭할 수 없는 구조고, 교단 속에 속해있는 교회들도 모두 독립된 개체라서 누가봐도 심각해서 교단에서 제명시켜야 할 수준의 명분이 없는 이상 각 개교회의 사안에 간섭하기 어렵기도 하구요.
특히나 교리의 해석과 같은 부분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교단들이 나뉜 것들이 그런 식의 이유라서, 따지기 시작하면 나노단위로 쪼개지는 결과를 낳을 뿐이지요.
그래서 '개신교 차원의 어떤 움직임'이란 것은 이명박 시절의 광우병 시위처럼 어떠한 사건을 계기로 대중들에 의해 자연 발생하지 않는 이상 어렵다고 봅니다.
제가 중학생 시절 담임선생께서 기독교의 잘못된 점을 말해 주겠다며 하신 말씀입니다.
'기독교는 월요일에 사기치고, 화요일에 간음하고, 수요일에 폭행하고, 목요일에 도둑질하고, 금요일에 남 욕하고, 토요일에 술 마시고(당시는 주6일이었습니다), 일요일에 교회 가서 회개하면 되는 종교이다.'
당시는 중학생이었으니 선생님 말씀에 반박할 수도 없었고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회개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회개가 기도 몇 번으로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다윗은 엄청난 회개를 하였기에 하나님이 ... 더 보기
'기독교는 월요일에 사기치고, 화요일에 간음하고, 수요일에 폭행하고, 목요일에 도둑질하고, 금요일에 남 욕하고, 토요일에 술 마시고(당시는 주6일이었습니다), 일요일에 교회 가서 회개하면 되는 종교이다.'
당시는 중학생이었으니 선생님 말씀에 반박할 수도 없었고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회개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회개가 기도 몇 번으로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다윗은 엄청난 회개를 하였기에 하나님이 ... 더 보기
제가 중학생 시절 담임선생께서 기독교의 잘못된 점을 말해 주겠다며 하신 말씀입니다.
'기독교는 월요일에 사기치고, 화요일에 간음하고, 수요일에 폭행하고, 목요일에 도둑질하고, 금요일에 남 욕하고, 토요일에 술 마시고(당시는 주6일이었습니다), 일요일에 교회 가서 회개하면 되는 종교이다.'
당시는 중학생이었으니 선생님 말씀에 반박할 수도 없었고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회개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회개가 기도 몇 번으로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다윗은 엄청난 회개를 하였기에 하나님이 그 마음을 보시고 용서하신 것입니다. 어떠한 악행에 대해 진심으로 회개를 하게 된다면 먼저 그 악행에 대한 보상을 치루고 다시는 그 악행을 되풀이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예를 들어 다윗은 우리아를 죽이고 밧세바와 동침한 악행을, 자신의 고통이 수반된 회개와 그 후에 이루어진 행위들로 보상을 치룹니다. 그리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습니다.
저는 회개의 표본으로 삭개오를 꼽습니다. 삭개오는 로마제국에게 바칠 세금을 모으는 일을 하던 세리였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에 바칠 세금을 조선에서 모았던 조선인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는 매국노였고 세금을 걷으며 자신의 것을 따로 모았습니다. 당연히 돈과 권력은 있으나 유대인들에게 멸시 당하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를 만나고 회개를 하게 됩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누가복음 19장 8절)] 이 파트를 잘못 이해하면 돈으로 해결되는 것으로 오해 할 수 있습니다. 삭개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회개를 한 것입니다. 돈으로 자기 동족을 괴롭혔으니 괴롭힌 것의 4배로 갚겠다는 뜻입니다. 회개는 자신의 짐을 벗어 버리는 것도 있지만 회개 이후 달라진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어떤 개인에게 잘못을 하였다면 그 피해자에게 먼저 용서를 받아야합니다.
회개는 쉬운 것이 아닙니다. 말 몇 번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자신의 마음가짐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 진 후에 주변 사람들에게 달라짐이 인정받아야 합니다. 잘못은 순식간에 이루어지나 회개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기독교는 월요일에 사기치고, 화요일에 간음하고, 수요일에 폭행하고, 목요일에 도둑질하고, 금요일에 남 욕하고, 토요일에 술 마시고(당시는 주6일이었습니다), 일요일에 교회 가서 회개하면 되는 종교이다.'
당시는 중학생이었으니 선생님 말씀에 반박할 수도 없었고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 회개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회개가 기도 몇 번으로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다윗은 엄청난 회개를 하였기에 하나님이 그 마음을 보시고 용서하신 것입니다. 어떠한 악행에 대해 진심으로 회개를 하게 된다면 먼저 그 악행에 대한 보상을 치루고 다시는 그 악행을 되풀이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예를 들어 다윗은 우리아를 죽이고 밧세바와 동침한 악행을, 자신의 고통이 수반된 회개와 그 후에 이루어진 행위들로 보상을 치룹니다. 그리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습니다.
저는 회개의 표본으로 삭개오를 꼽습니다. 삭개오는 로마제국에게 바칠 세금을 모으는 일을 하던 세리였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에 바칠 세금을 조선에서 모았던 조선인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는 매국노였고 세금을 걷으며 자신의 것을 따로 모았습니다. 당연히 돈과 권력은 있으나 유대인들에게 멸시 당하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를 만나고 회개를 하게 됩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누가복음 19장 8절)] 이 파트를 잘못 이해하면 돈으로 해결되는 것으로 오해 할 수 있습니다. 삭개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회개를 한 것입니다. 돈으로 자기 동족을 괴롭혔으니 괴롭힌 것의 4배로 갚겠다는 뜻입니다. 회개는 자신의 짐을 벗어 버리는 것도 있지만 회개 이후 달라진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어떤 개인에게 잘못을 하였다면 그 피해자에게 먼저 용서를 받아야합니다.
회개는 쉬운 것이 아닙니다. 말 몇 번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자신의 마음가짐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 진 후에 주변 사람들에게 달라짐이 인정받아야 합니다. 잘못은 순식간에 이루어지나 회개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어 잘못 쓰신 부분이 있네요. 압살롬 부분입니다. 압살롬은 다윗의 아들중 가장 장자인 암논을 죽였죠. 그리고, 암논만! 죽였습니다. 다른 아들들을 건드리지 않았지요. 왜냐하면, 암논에게 큰 원한을 가졌기 때문인데, 이 암논이 배다른 의붓여동생인 다말을 강간합니다. 근데 이 다말의 친오빠가 압살롬이죠. 그러니까 다말과 압살롬은 같은 어머니 소생이고, 암논은 다른 어머니인거죠. 다말은 이스라엘 전체에서 가장 소문날만큼 아름다운 미녀였고, 이를 암논이 짝사랑하다가 계략을 써서 다말을 자기한테 찾아오게 했는데, 그후 고백하였으나 다말이 거... 더 보기
어 잘못 쓰신 부분이 있네요. 압살롬 부분입니다. 압살롬은 다윗의 아들중 가장 장자인 암논을 죽였죠. 그리고, 암논만! 죽였습니다. 다른 아들들을 건드리지 않았지요. 왜냐하면, 암논에게 큰 원한을 가졌기 때문인데, 이 암논이 배다른 의붓여동생인 다말을 강간합니다. 근데 이 다말의 친오빠가 압살롬이죠. 그러니까 다말과 압살롬은 같은 어머니 소생이고, 암논은 다른 어머니인거죠. 다말은 이스라엘 전체에서 가장 소문날만큼 아름다운 미녀였고, 이를 암논이 짝사랑하다가 계략을 써서 다말을 자기한테 찾아오게 했는데, 그후 고백하였으나 다말이 거부하자 강간합니다. 게다가 강간 후에 암논은 다말을 쫒아내버립니다.
당시가 고대인데다 성적으로 순결을 중시하던 이스라엘, 게다가 또 공주인걸 감안하면 강간피해자지만 오히려 본인은 아예 혼사길이 막혀 평생 혼자 살아야될 신세가 된겁니다. 그러므로 이 압살롬이 암논에게 너무나 큰 원한을 품었죠. 아울러, 암논이 무려 여동생을 강간한게 알려졌음에도, 당시 율법에 의하면 암논은 돌로 쳐죽여야 마땅할 죄를 저질렀음에도 아버지인 왕이 그냥 화만 내고 암논에게 아무런 벌도 내리지 아니함을 보고 아버지에게도 원한(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을 품게 되고 이때부터 야망을 가졌을 가능성이 있게되죠. 그후 압살롬도 잔치를 열어 모든 형제를 초청한뒤, 그후 자기 부하들을 시켜 암논을 죽여버립니다. 다른 왕자들은 도망쳤죠. 이게 와전되어 다윗에게는 처음에 "압살롬이 모든 왕자들을 죽였답니다" 라고 듣고 망연자실 하였으나, 나중에 "암논만 죽였을겁니다" 라는 신하의 말도 듣고 실제로 그러함을 보고... 압살롬에게도 화는 냈지만 사실상 압살롬이 나름 명분있는 살인을 한고로 역시... 벌을 묻지 않고 그냥 먼곳에 좌천만 시킵니다.(사실 다윗이 아들들의 큰죄에 너무 무르게 한 것이 반역의 빌미를 준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이는 다윗이 자신의 죄로 인해 아들들의 죄를 묻기가 망설여졌던 것 같습니다. 도찐개찐 느낌이었을라나요. 그러나 어쨌건 자식들에게는 왕으로서 공평무사함을 잃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성경은 이 여파를 전혀 기록하지 않았으나, 이 소문들이 다윗의 밧세바사건과 합쳐 퍼졌을 것을 생각하면, 이는 다윗이 민심을 잃는데 상당히 큰 공헌을 했을거라 추측합니다.)
즉 압살롬은 여동생 다말을 강간하고 일생을 망친데 대한 복수 개념에서 자기의 큰형을 죽이고, 다른 형제는 건들지 않았습니다. 수정 부탁드려요.
(글쓴분은 다 아시는 내용이지만, 기왕 모르는 분들을 위해 풀어쓰셨으니, 제가 조금 길게 첨삭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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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에 제가 다윗의 밧세바 강간사건으로 인한 여파에 나름 재밌다고 생각한 부분을 첨언하겠습니다. 본문에 나오다시피, 압살롬은 자기 친아버지에게 반역을 해버리는데, 초기에 아주 강력하게 거의 성공 90% 상황까지 이르렀습니다. 첫째로 수도를 점령하였고, 둘째 다윗의 세력은 급습에 의해서 제대로 모이지 못해 소수였고, 셋째, 압살롬에게 아주 매우 유능한 책사가 있었습니다. 그 책사의 이름은 "아히도벨"인데, 당연히 원래는 다윗의 책사였는데,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키자 압살롬 편에 섭니다. 어느정도 유능했냐고 하면, 사무엘하16:23에 보면 "아히도벨이 베푸는 계략은 사람이 하나님께 물어서 받은 말씀과 같은 것이라" 라고 나옵니다. 즉 소위말해 신급 레벨의 전략, 전술가이다. 이런 극찬을 받은 성경인물은 아히도벨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적어도 전략, 책략 쪽에서는요.
그리고 그 책사가 다윗을 확실하게 죽여버릴 계책을 압살롬에게 말하지만, 다윗이 거짓 항복시킨 신하 후새의 교란책에 의해 압살롬이 받아들이지 않게되죠. 이로 인해 압살롬은 아버지를 죽일 결정적 찬스를 놓쳐버렸고, 다윗은 피해없이 최고위급 인사들을 보존하고 탈출한 뒤, 자기 세력을 집결시켜 나중에 전투 한방으로 반란을 진압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성경의 제갈량, "아히도벨"이 왜 자기의 원래 왕인 다윗을 배신했을까요. 그것도 역시 밧세바 사건 때문입니다. 밧세바가.... 아히도벨 조카입니다.
즉 그 머리좋은 제갈량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해도 다윗이 조카의 남편 우리아를 어떻게 죽여버린건지 모를리가 없었겠죠. 자연스럽게... 다윗에 대한 감정이 안좋았겠죠? 그래서 압살롬의 반역에 옳다쿠나 가담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죠. 사실상 초반 반란이 성공직전까지 갔던 것은 이 아히도벨 덕분일 겁니다.
종합하면, 하나님께 진실로 회개하면 당연히 용서하시지만, 죄의 댓가가 싹 없었던거마냥 사라지지 않고, 살아생전에 아주 뼈아픈 댓가를 다윗은 두고두고 치르죠.
작은 죄가 아니었고, 다윗은 게다가 왕이었기 때문에 그 죄의 여파는 엄청났고요. 친딸이 다른 친아들에게 강간당했고, 친아들이 다른 친아들 살인하고, 그 아들은 아버지 죽여버리겠다고 달려들었고, 또 자기 의붓어머니들을 강간하질 않나.. 그로 인해 나라는 한동안 두개로 쪼개졌지요. 솔로몬도 즉위후 배다른 형을 죽인 것은 부록입니다.
이는 역사에 흔히 일어난 왕권을 둘러싼 상잔으로 볼 수 있지만, 성경은 이 모든 다윗의 비극을 "다윗의 죄로 한 댓가" 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도 글쓴분이 말씀하신, 회개하면 땡, 이건 기독교에서 말하는 회개는 아니란 말에 동의합니다. 이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 라는 말씀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데, 즉 죄에 대해서 하나님께 용서받는 것과 법에 의해 처벌받는 것은 전혀 별개인 것이죠. 그래서 가령 강간죄를 저질렀다면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과 별개로, 강간피해 당사자에게도 반드시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는 행위가 필요합니다. 용서를 해주던 안해주던. 그리고 법에 의해 댓가(가령 징역)도 받아야 하는 것이죠.
당시가 고대인데다 성적으로 순결을 중시하던 이스라엘, 게다가 또 공주인걸 감안하면 강간피해자지만 오히려 본인은 아예 혼사길이 막혀 평생 혼자 살아야될 신세가 된겁니다. 그러므로 이 압살롬이 암논에게 너무나 큰 원한을 품었죠. 아울러, 암논이 무려 여동생을 강간한게 알려졌음에도, 당시 율법에 의하면 암논은 돌로 쳐죽여야 마땅할 죄를 저질렀음에도 아버지인 왕이 그냥 화만 내고 암논에게 아무런 벌도 내리지 아니함을 보고 아버지에게도 원한(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을 품게 되고 이때부터 야망을 가졌을 가능성이 있게되죠. 그후 압살롬도 잔치를 열어 모든 형제를 초청한뒤, 그후 자기 부하들을 시켜 암논을 죽여버립니다. 다른 왕자들은 도망쳤죠. 이게 와전되어 다윗에게는 처음에 "압살롬이 모든 왕자들을 죽였답니다" 라고 듣고 망연자실 하였으나, 나중에 "암논만 죽였을겁니다" 라는 신하의 말도 듣고 실제로 그러함을 보고... 압살롬에게도 화는 냈지만 사실상 압살롬이 나름 명분있는 살인을 한고로 역시... 벌을 묻지 않고 그냥 먼곳에 좌천만 시킵니다.(사실 다윗이 아들들의 큰죄에 너무 무르게 한 것이 반역의 빌미를 준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이는 다윗이 자신의 죄로 인해 아들들의 죄를 묻기가 망설여졌던 것 같습니다. 도찐개찐 느낌이었을라나요. 그러나 어쨌건 자식들에게는 왕으로서 공평무사함을 잃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성경은 이 여파를 전혀 기록하지 않았으나, 이 소문들이 다윗의 밧세바사건과 합쳐 퍼졌을 것을 생각하면, 이는 다윗이 민심을 잃는데 상당히 큰 공헌을 했을거라 추측합니다.)
즉 압살롬은 여동생 다말을 강간하고 일생을 망친데 대한 복수 개념에서 자기의 큰형을 죽이고, 다른 형제는 건들지 않았습니다. 수정 부탁드려요.
(글쓴분은 다 아시는 내용이지만, 기왕 모르는 분들을 위해 풀어쓰셨으니, 제가 조금 길게 첨삭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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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에 제가 다윗의 밧세바 강간사건으로 인한 여파에 나름 재밌다고 생각한 부분을 첨언하겠습니다. 본문에 나오다시피, 압살롬은 자기 친아버지에게 반역을 해버리는데, 초기에 아주 강력하게 거의 성공 90% 상황까지 이르렀습니다. 첫째로 수도를 점령하였고, 둘째 다윗의 세력은 급습에 의해서 제대로 모이지 못해 소수였고, 셋째, 압살롬에게 아주 매우 유능한 책사가 있었습니다. 그 책사의 이름은 "아히도벨"인데, 당연히 원래는 다윗의 책사였는데,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키자 압살롬 편에 섭니다. 어느정도 유능했냐고 하면, 사무엘하16:23에 보면 "아히도벨이 베푸는 계략은 사람이 하나님께 물어서 받은 말씀과 같은 것이라" 라고 나옵니다. 즉 소위말해 신급 레벨의 전략, 전술가이다. 이런 극찬을 받은 성경인물은 아히도벨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적어도 전략, 책략 쪽에서는요.
그리고 그 책사가 다윗을 확실하게 죽여버릴 계책을 압살롬에게 말하지만, 다윗이 거짓 항복시킨 신하 후새의 교란책에 의해 압살롬이 받아들이지 않게되죠. 이로 인해 압살롬은 아버지를 죽일 결정적 찬스를 놓쳐버렸고, 다윗은 피해없이 최고위급 인사들을 보존하고 탈출한 뒤, 자기 세력을 집결시켜 나중에 전투 한방으로 반란을 진압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성경의 제갈량, "아히도벨"이 왜 자기의 원래 왕인 다윗을 배신했을까요. 그것도 역시 밧세바 사건 때문입니다. 밧세바가.... 아히도벨 조카입니다.
즉 그 머리좋은 제갈량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해도 다윗이 조카의 남편 우리아를 어떻게 죽여버린건지 모를리가 없었겠죠. 자연스럽게... 다윗에 대한 감정이 안좋았겠죠? 그래서 압살롬의 반역에 옳다쿠나 가담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죠. 사실상 초반 반란이 성공직전까지 갔던 것은 이 아히도벨 덕분일 겁니다.
종합하면, 하나님께 진실로 회개하면 당연히 용서하시지만, 죄의 댓가가 싹 없었던거마냥 사라지지 않고, 살아생전에 아주 뼈아픈 댓가를 다윗은 두고두고 치르죠.
작은 죄가 아니었고, 다윗은 게다가 왕이었기 때문에 그 죄의 여파는 엄청났고요. 친딸이 다른 친아들에게 강간당했고, 친아들이 다른 친아들 살인하고, 그 아들은 아버지 죽여버리겠다고 달려들었고, 또 자기 의붓어머니들을 강간하질 않나.. 그로 인해 나라는 한동안 두개로 쪼개졌지요. 솔로몬도 즉위후 배다른 형을 죽인 것은 부록입니다.
이는 역사에 흔히 일어난 왕권을 둘러싼 상잔으로 볼 수 있지만, 성경은 이 모든 다윗의 비극을 "다윗의 죄로 한 댓가" 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도 글쓴분이 말씀하신, 회개하면 땡, 이건 기독교에서 말하는 회개는 아니란 말에 동의합니다. 이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 라는 말씀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데, 즉 죄에 대해서 하나님께 용서받는 것과 법에 의해 처벌받는 것은 전혀 별개인 것이죠. 그래서 가령 강간죄를 저질렀다면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과 별개로, 강간피해 당사자에게도 반드시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는 행위가 필요합니다. 용서를 해주던 안해주던. 그리고 법에 의해 댓가(가령 징역)도 받아야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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