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20/08/31 14:28:28
Name   T.Robin
Subject   나이롱 신자가 써보는 비대면예배에 대한 단상
제가 이런저런 곳에서 밝혔듯이, 전 기독교인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아무리 좋게 말해도 제 믿음이 신실하다고는 하지 못하겠습니다. 전 제가 믿는 하나님을 경외하지만 나쁜 짓도 많이 하고(hmpf), 평소에도 예배 출석률이 좋지 않았을 뿐더러,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유행한 뒤부터는 잠시 잠잠해졌을 때조차도 혹시나 애들에게 뭔가 문제가 생길까봐 교회에 안 나갔거든요.

요즘 비대면 예배에 대해서 말들이 참 많습니다. 꼭 대면예배가 필요하느냐는 입장부터 예배는 무조건 공예배(=대면예배)여야 한다는 주장까지 스펙트럼도 참 넓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신도들조차 헷갈리는 판국에, 이를 지켜보는 비신자들에게는 정말 '도대체 저게 뭔 짓거리여'라는 생각밖에 안 들 겁니다.

아무쪼록, 예배 출석조차 잘 안 하는 나이롱 신도의 권위라고는 일절 없는 뻘생각에 불과합니다만, 저는 비대면 예배와 관련한 논쟁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로 귀결된다고 생각합니다.

1) 공예배가 정말로 중요한가
2) 예배는 무조건 공예배여야 하는가

그럼, 가장 근본적인 것부터 가죠. 일단, 공예배가 정말 중요한가부터 좀 살펴보자면...... 예. 중요합니다. 성경 말씀에서는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행위가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모이기에 힘쓰라'는 거죠.

[사도행전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Acts 2:46]
And day by day, gattending the temple together and breaking bread in their homes, they received their food with glad and generous hearts,
[히브리서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Hebrews 10:25]
not neglecting to meet together, as is the habit of some, but encouraging one another, and all the more as you see the Day drawing near.

그런데 말입니다...... 이 말씀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어조가 비교적 부드럽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이기에 힘쓰기를 극도로 권장하긴 하는데, 말 그대로 어디까지나 권장사항이지, 강제사항은 아니라는 거죠. 만일 무언가가 기독교인이 꼭 지켜야 할 의무사항이었다면 아래처럼 명령으로 표시되었을 겁니다.

[요한복음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John 13:34]
A new commandment I give to you, that you love one another: just as I have loved you, you also are to love one another.

할렐루야. 멋지지 않습니까? 서로 사랑하라. 이것이 내가 주는 계명이니라. 주님께서는 마음에서 진실로 우러나와 네 태도를 바꾸라 하십니다. 이건 권장이 아니라 강제입니다. 의무에요. 기독교인이라면 무조건 지켜야 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한편, 성경에는 또다른 재미있는(?) 내용도 있습니다. 구약의 "다니엘"서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다니엘 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Daniel 6:10]
When Daniel knew that the document had been signed, he went to his house where he had windows in his upper chamber open ftoward Jerusalem. He got down on his knees three times a day and prayed and gave thanks before his God, as he had done previously.

이 내용을 이해하려면 약간의 배경지식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나오는 다니엘이란 양반은 당시 이스라엘을 무너뜨리고 다수의 유대인을 포로로 잡아간 바빌론의 왕이었던 느부갓네살 2세의 눈에 띄여서 본의 아니게 수도 바빌로니아로 끌려와(?) 높은 직책을 맡은 젊은 유대인입니다. 성경을 조금이라도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이 사람은 우상을 숭배하는 국가에서 우상화의 대상이 되는 왕을 위해 일하는 유대인입니다. 그것도 왕의 총애를 받아서요. 그런데 이 양반은 하나님께서 직접 사자를 보내시어 이 친구를 아끼고 보호하시는 장면이 곳곳에 등장할 정도로 믿음이 신실합니다. 그리고 이 장면은 다니엘이 점점 왕의 총애를 받자 이를 시기한 사람들이 왕에게 '앞으로 30일동안 왕을 제외하고, 다른 어떤 사람을 경배하는 것이 발각되면 사자굴에 넣겠음'이라는 칙명을 내린 바로 그 때 발생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장면은 다니엘이 왕의 명령을 어긴 채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면이고, 다음 장면은 왕이 다니엘을 어쩔 수 없이 사자굴에 던져넣는 장면이지요.

자......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 믿음이 신실한 다니엘은 어디 예배당을 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빌로니아에 있는 다른 유대인들과 만나서 함께 공예배를 드리지도 않았습니다.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감사의 기도를 올린게 전부입니다. 다니엘은 이미 왕의 총애를 받고 있었으므로, 자신이 사는 집도 꽤 넓었을 것이고, 따라서 공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하면 자기 집을 교회처럼 사용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니엘이 그랬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습니다. 혹자는 저게 사실 내용이 생략되었을 뿐 저 창문 열린 방에서 모여서 공예배를 드린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으나, 다음 장면에서 사자굴에 던져지는 것은 다니엘 본인 뿐이고, 다른 사람이 같이 던져졌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저는 여기서 비대면 예배를 봅니다. 예배당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곳에서(예루살렘↔바빌로니아) 기도를 올렸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비대면 예배라는 것이죠. 공예배보다는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신실한 마음이 주님께 닿을 수 있으면 부족하다 한들 주님께서는 흡족하게 받으신다는 겁니다. [평소에 하던 대로]라고 하였으므로, 다니엘은 계속 이렇게 예배를 드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다음 장면에서 천사를 보내시어 다니엘을 잡아먹으려는 사자의 입을 틀어막아 다니엘이 사자에게 잡아먹히지 않도록 그를 보호하셨습니다. 다니엘의 믿음과 신실함을 증명하는데 이보다 더한 것은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다니엘이 이 국가가 우상을 숭배하기 때문에 국가의 일을 소홀히 했느냐...... 그건 아닙니다. 그랬다면 다니엘이 왕의 총애를 받을 일도, 사자굴에 던져질 일도 없었겠죠. 다니엘은 유능할 뿐 아니라 정직하고 신실하여 왕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이는 아래의 내용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 6:3~4]
3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4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Daniel 6:3~4]
3 Then this Daniel became distinguished above all the other high officials and satraps, because an excellent spirit was in him. And the king planned to set him over the whole kingdom.
4 Then the high officials and the satraps sought to find a ground for complaint against Daniel with regard to the kingdom, but they could find no ground for complaint or any fault, because he was faithful, and no error or fault was found in him.

사실 놀랄 일은 아닙니다. 성경은 정부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권위를 따르라고 가르칩니다.

[로마서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Roman 13:1]
Let evey person be subject to the governing authorities. For there is no authority except from God, and those that exist have been instituted by God.

한글로는 "위에 있는 권세"라고 되어있어서 해석이 좀 애매할 수 있습니다만, 영문 성경에서는 아예 "governing authorities"라고 못을 딱 박아놨습니다. 요는 정부에서 말하면 좀 들으라는 거죠. 괜히 엄하게 뻘짓하다가 정부가 행정명령같은걸 내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하지 말라는 겁니다.

정리하자면, 공예배가 가장 중요한건 맞지만, 그렇다고 공예배를 절대화시키는 것 또한 위험하다 하겠습니다. 전염병에 있어서는 당연히 정부가 교회보다 더 전문가이고, 교회는 하나님께서 정부에게 주신 권세를 따라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서양 중세에서 전염병을 피해 교회에 모였다가 되려 전염병을 더 확산시킨(-_-) 역사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P.S:
다시 한 번 강조드립니다만, 저는 그냥 예배 빠지는걸 밥먹듯 하는(주님, 죄지은 어린양에게 용서를...... OTL) 나이롱 신자입니다. 제 말에는 그 어떤 권위도 없고, 기독교나 교계를 대표한다거나 하는건 더더욱 아닙니다. 그냥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정도로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0-09-15 13:10)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6
  • 이건 나이롱이 아니에요.ㅋㅋㅋㅋ 성경 1독가지고 나오지 않을 신실하신 분일세 ㅋㅋㅋㅋ


순수한글닉
나일롱이라고 하시지만 성경을 깊이 읽으신 것같아요. 전 언론에서 몇몇 기독교인이 대면예배를 중요시하며 말하는 성경구절은 그저 아전인수라고밖에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 언급들을볼때마다 성전에서 장사치를 내쫓으며 썽을 내는 예수님 구절이 떠오르더군요. (전 진짜나일롱가톨릭 신자라 정확한 성경 구절은 모르겠지만)
T.Robin
부끄럽지만 아직 성경 통독 한 번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 부끄러움을 최근에야 깨달아서 이제서야 창세기부터 조금씩 읽어나가고 있어요.
비 신자이긴 한데 어디에나 계신 신에게 어디서나 예배드리고 기도 드리는게 왜 이상한지 이해가 잘 안갑니다.

작금의 일들은 자기들을 보러 오지 않으면 자신에 대한 신도들의 믿음과 헌금이 감소될걸 우려한 목사들이 난리쳐서 발생하는 일 들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네요.
T.Robin
공예배가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신자와 신자 사이의 교제입니다. 기독교는 신과 신도 사이의 교제만큼이나 신도와 신도 사이의 교제 또한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뭐 만나서 이것저것 같이 해야 정도 들고 그러죠. 맨날 말로만 형제님 자매님 해봐야......

게다가 이건 주님께서 내리긴 명령이시기도 합니다(본문에 씌여있다시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라고 명령하셨죠).

제 얄팍한 생각으로는, [서로 사랑하라]가 법률이면 [모이기를 힘써 행하라]는 시행령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1
스테비아
이번 주 제가 다니는 교회 말고 좋아하던 동네교회 온라인예배로 대체했는데 다음 본문으로 설교 진행하더라구요.

(요 4:21)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요 4:22)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요 4:23)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 4:24)하나님은 영이... 더 보기
이번 주 제가 다니는 교회 말고 좋아하던 동네교회 온라인예배로 대체했는데 다음 본문으로 설교 진행하더라구요.

(요 4:21)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요 4:22)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요 4:23)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 4: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여기서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시절 예배장소가 달랐던 것 이야기구요. 요지는 예배에 장소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방향이었습니다. 해당 교회 입장은 가장 우선시해야 할 것은 이웃의 생명과 방역이라는 쪽이었습니다.

아 옮기고싶다..
2
T.Robin
구약시대가 하나님께서 직접 임재하셔서 역사하시는 시기였다면, 신약시대는 신도의 마음과 마음이 모여서 기적을 일구어내고, 주님께서 그것을 보며 기뻐하시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기적은 사실 주님께서 임재하신 내 손에서 시작되는 거죠.

P. S.: 기회가 되신다면, 개척교회를 섬겨보세요. 정말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가정교회에서 출발하는 개척교회라면 더 좋습니다. 그 길은 정말로 좁고 힘든 길이라, 웬만한 목회자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개척에 실패할 확률 또한 높습니다만, 최소한 알곡과 가라지를 분류하는데에 있어서는 그만한 방... 더 보기
구약시대가 하나님께서 직접 임재하셔서 역사하시는 시기였다면, 신약시대는 신도의 마음과 마음이 모여서 기적을 일구어내고, 주님께서 그것을 보며 기뻐하시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기적은 사실 주님께서 임재하신 내 손에서 시작되는 거죠.

P. S.: 기회가 되신다면, 개척교회를 섬겨보세요. 정말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가정교회에서 출발하는 개척교회라면 더 좋습니다. 그 길은 정말로 좁고 힘든 길이라, 웬만한 목회자들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개척에 실패할 확률 또한 높습니다만, 최소한 알곡과 가라지를 분류하는데에 있어서는 그만한 방법이 없다고 봅니다.

제가 왜 이 말씀을 드리냐 하면...... 제가 현재 섬기는 교회가 가정교회에서 출발한 합신 교단 교회거든요. 전 비록 저는 나이롱일지언정 섬기는 교회만큼은 자랑스럽습니다.
스테비아
세 번 도망쳤는데 결국 제 손과 발에 달린 게 아니라는 결론과 함께 GG치고 본교회로 왔습니다....ㅠㅠ
T.Robin
...... OTL
코리몬테아스
[로마서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로마서의 이 부분은 정말 굉장한 신학적 논쟁이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어요. 그래서 본문처럼 단순하게 '정부에서 말하면 좀 들으라는 것'으로 해석하는 데 동의할 수가 없네요. 예수님의 해방적이고 반정부적인 행보를 감안할 때, 로마서의 저 구절을 당대 기독교인의 현실에 맞춘 고백이라고 볼 수도 있고, 반어적으로 하나님의 영적권세를 강조하려했다고 해... 더 보기
[로마서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로마서의 이 부분은 정말 굉장한 신학적 논쟁이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어요. 그래서 본문처럼 단순하게 '정부에서 말하면 좀 들으라는 것'으로 해석하는 데 동의할 수가 없네요. 예수님의 해방적이고 반정부적인 행보를 감안할 때, 로마서의 저 구절을 당대 기독교인의 현실에 맞춘 고백이라고 볼 수도 있고, 반어적으로 하나님의 영적권세를 강조하려했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본문처럼 권세에 대한 복종을 강조하여, 나쁜 권세에도 순종으로서 하나님 일을 성취하라는 해석도 있는데 이런 해석에서는 해방신학은 모두 이설이되죠.

그래서 저 구절을 비롯해 로마서 전반에 나타난 권세에 대한 바울의 말들은, 권세가 영적으로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느냐에 대한 해설로 머무르는 게 가장 옳지 않나 싶어요. 만약 누군가가 로마서의 구절을 인용하며 넌 기독교인으로서 뻘짓해서 행정명령 받지 말아야한다고 말한다면 전 따를 생각이 전혀 없어요.
T.Robin
일단, 본문 중 일부 내용이 불쾌하셨거나 모욕적으로 들리셨다면 사과드립니다. 만일 그랬다면, 제 표현이 부족한 것이 원인일 것입니다.

반복적으로 말씀드리지만, 전 그냥 교회에 이름만 올리고 있는 나이롱 신자일 뿐입니다. 그리고 전 단지 나이롱 신자에 불과한 제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강제하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같은 구절에 대해서도 교단마다, 심지어는 같은 교단 내에서도 목회자마다 서로 다른 해석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는 코리몬테아스님의 댓글이 성경에 대한 이해에... 더 보기
일단, 본문 중 일부 내용이 불쾌하셨거나 모욕적으로 들리셨다면 사과드립니다. 만일 그랬다면, 제 표현이 부족한 것이 원인일 것입니다.

반복적으로 말씀드리지만, 전 그냥 교회에 이름만 올리고 있는 나이롱 신자일 뿐입니다. 그리고 전 단지 나이롱 신자에 불과한 제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강제하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같은 구절에 대해서도 교단마다, 심지어는 같은 교단 내에서도 목회자마다 서로 다른 해석을 보이는 경우가 많은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는 코리몬테아스님의 댓글이 성경에 대한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은 그 자체로 기존의 모든 권세를 부정하는 행보를 보이셨죠. 성전을 엎으시고, 바리새인들을 부정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로마서에서는 권세에 복종하라는 말씀이 있는걸 보면 도대체 이게 뭔가 싶긴 합니다. 여기에서 다시 제 짧은 생각을 전개하자면, 저 권세는 개체(entity)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개별 명령에 따라 주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즉, 정부의 권세는 정부 그 자체에 있는게 아니라 정부의 개별 명령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말씀에서 보는 것처럼, 주님 안에 있다면 순종하고, 그렇지 않으면 주님의 대의를 알아야 하는 것이 먼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변함없이 말에 두서가 없습니다. 혹시 언짢은 부분이 있으셨다면 넓은 아량으로 양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코리몬테아스
아녜요 불쾌하거나 모욕적으로 들리지 않았어요. 다만, 로마서 13장을 저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독재정권과 영합했던 전통과 결부되어 관습적으로 내려왔기 때문에 반발심에 욱하고 ㅋㅋ 권세를 따르라는 말의 중심이 명령에 있다는 해석에는 좀 더 설명이 결부되어야 할텐데, 비슷하게 로마서에서 인정하는 권세는 '직위'를 말하는 것이지 그 직위를 보유하고 있는 권세자를 가리키는게 아니라는 건 꽤 유명한 설이긴 해요. 대통령직의 존재자체는 하나님이 세상권세에 결부하여 내려준 것이니 인정하고 따르되, 대통령 자체는 권세를 쥐고 있는 사람일 뿐이므로 나쁜 권세인지 아닌지 판단해 따르겠다는 식이죠.
... 더 보기
아녜요 불쾌하거나 모욕적으로 들리지 않았어요. 다만, 로마서 13장을 저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독재정권과 영합했던 전통과 결부되어 관습적으로 내려왔기 때문에 반발심에 욱하고 ㅋㅋ 권세를 따르라는 말의 중심이 명령에 있다는 해석에는 좀 더 설명이 결부되어야 할텐데, 비슷하게 로마서에서 인정하는 권세는 '직위'를 말하는 것이지 그 직위를 보유하고 있는 권세자를 가리키는게 아니라는 건 꽤 유명한 설이긴 해요. 대통령직의 존재자체는 하나님이 세상권세에 결부하여 내려준 것이니 인정하고 따르되, 대통령 자체는 권세를 쥐고 있는 사람일 뿐이므로 나쁜 권세인지 아닌지 판단해 따르겠다는 식이죠.

이것 말고도 전반적으로 로마서를 둘러싼 논쟁에 대해 얼마전에 좋은 글을 봐서 발췌해봅니다 춍춍

https://blog.naver.com/idream2030/140190250843



2) 칼 바르트와 본 회퍼의 국가와 정치적 권위


1930년대 초부터 나치정권 성립 후에 개시된 교회투쟁의 전초전에서 기준을 제공한 것이 칼 바르트의 <로마서(초판 1919, 개정 1922)>였다. 이곳에서 바르트는 로마서 13장이 ‘기존질서’에 대한 엄격한 규탄을 표명한다면서 이는 곧 ‘하나님께 저항해 인간을 새롭게 강화하고 옹호하는 것’이다 라고 강조하고 있다.

칼 바르트는 결코 제도로서 국가 권위의 본질에 관한 교설로서 로마서 13장을 보지 않았다. 그는 국가의 현실을 앞둔 인간이 기독교의 자유의 약속과 요구에 근거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라는 권고적 지시였기 때문이다.

칼 바르트는 로마서 13장의 복종에 대해 결코 추상적, 절대적 순종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의 세우심’에 근거해 ‘일정한 질서에 의해 규정되고 한계를 지닌 복종’인 것이다. 따라서 국가권력에 대한 복종도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된 위탁을 수행하는 한에서 타당하다. 그것은 복종이 ‘양심(로마서 13:5)’ 때문에 이루어진다는 이유로도 확증된다. 양심은 칼 바르트에게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고, 신앙에서 기독교인의 하나님에 대한 구속성이다.


한편 국가가 ‘하나님의 세우심’을 위반해서 탄압할 경우 기독교인은 인간에게 복종하기 보다는 하나님께 복종해야만 한다(행 5:29). 그러나 이것도 ‘국가에 반대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국가를 위한 교회의 행위’다. 기독교인들은 바로 ‘복종’하는 자로서 국가권력을 존경하기 때문에 이렇게 왜곡된 국가의 행동에 책임을 지며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참여를 할 수 없음을 공표해야 한다.

그리하여 바르트는 국가를 위한 교회의 행동을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중보의 기도(딤전 2:1)라고 본다. 즉 국가가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국가는 스스로가 짊어진 책임 때문에 중보의 기도를 필요로 한다.

복종을 공동책임으로서 파악한 바르트는 적극적인 정치참여, 나아가 정치투쟁 등을 포함해서 로마서 13장의 올바른 연장선에서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스코틀랜드 신조의 폭정에 대한 저항이나 츠빙글리의 폭군추방 등 모든 결론과 함께 국가권력의 제반사항을 한 사람 한 사람의 주체적인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하여 신약성서의 선이 민주주의 국가개념으로 연장될 때만이 올바른 해석이 된다고 결론냈다.

끝으로 바르트와 함께 바르멘 선언에 가장 충실하고 급진적인 소신을 걸어간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or, 1906-1945)는 교회투쟁 중에 간행된 <복종(1936)>에서 로마서 13장의 해석을 언급하고 있다.

본회퍼는 하나님께 의하지 않는 권위가 없다는 것이 기독교인에 대한 것이지 국가권력 담당자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사실상 존재하는 정치적 권위에 대한 기독교인의 태도에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하나님 자신이 권위를 통해 기독교인들에게 유익하도록 움직이라 하는 것, 하나님은 권위 위에 서신 주님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어떠한 정치적 권위도 이 말씀에서 자기 존재에 대해 신적 정당화를 도출할 수 없다.

통치자들은 악을 행하는 자에게나 두려운 존재이지 선을 행하는 사람들에게는 두려울 것이 없다. 통치자를 두려워하지 않으려거든 선을 행하라, 그러면 그에게서 칭찬받을 것이다(로마서 13:3).
1
저는 올초에 읽게된 마틴 루터의 대교리문답 책에서 큰 감명을 받았는데요. 교회에 가서 앉아있다가 오는 일로 반복하던 저에게 평소 제가 가지고 있던 많은 질문들을 평소 목사님 설교에서 못찾았는데 대교리문답 책에서 찾을 수 있었거든요. 말씀하시는 교리 이야기들이 대교리문답과도 많은 부분 일치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 옛날 독일에서 부패된 교회들의 목사님과 교회들에게 새로이 성경적으로 돌아가자고 이야기하던 마틴루터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요즘 듣기 좋은 말씀은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님 설교말씀이 가장 맘에 와닿는데 이곳에서 예전에 한 번 목사님 말씀 추천해주신 글 덕분에 김목사님 말씀도 알게되었습니다. 좋은 말씀 많이 추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T.Robin
그거 저도 그냥 얻어걸린 거라서요...... -_-;
좋은 글 찾으면 또 올려보겠습니다.
kivalan
구약성서 창세기 제6장 제6절에는 <땅 위에 사람을 만드셨음을 한탄하시어 마음에 근심을 하시고>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여호와가 걱정거리가 생기게 된 것은 인간을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장래의 걱정거리를 자기 스스로가 만들어 행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자들의 소행인 것입니다.
일체의 지자(知者)이시며 또한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 장래의 걱정거리를 선택한다는 것은 어느 면으로 보아도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것을 보아도 여호와는 미래를 보는 성스러운 지혜를 가지고 있지 ... 더 보기
구약성서 창세기 제6장 제6절에는 <땅 위에 사람을 만드셨음을 한탄하시어 마음에 근심을 하시고>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여호와가 걱정거리가 생기게 된 것은 인간을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장래의 걱정거리를 자기 스스로가 만들어 행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자들의 소행인 것입니다.
일체의 지자(知者)이시며 또한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 장래의 걱정거리를 선택한다는 것은 어느 면으로 보아도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것을 보아도 여호와는 미래를 보는 성스러운 지혜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 확실합니다. 이렇게 지혜를 가지고 있지 않은 자를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가 행한 어떠한 일로 후에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사람을 전지전능한 자로서, 그리고 우주의 창조자로서 믿고 의지하는 것은 결코 올바른 행동이 아닌 것입니다.

--
파아나두라 대논쟁’ -스리랑카 불교와 기독교의 종교논쟁 중...

기독교가 아닌 사람에겐 대면이고 비대면이고 기독교 자체의 정화 시스템을 만들어야 될거 같습니다.
그 기록이 진실인지도 의심되는 성경과 논리 싸움과
수많은 종파와 수많은 사이비는 신께서 또 후회하는 모습에 현화일까요.
우리와 우리의 이웃에 생명과 삶을 위협하는 순간. 그 종교는 존재 가치를 의심받게 됩니다.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416 철학/종교비 내리는 진창을 믿음으로 인내하며 걷는 자. 8 심해냉장고 24/10/30 1459 21
1077 철학/종교사는 게 x같을 때 떠올려보면 좋은 말들 34 기아트윈스 21/04/02 8374 31
1018 철학/종교타이완바 세계사중국편 (5.4운동) 6 celestine 20/10/15 4883 11
1004 철학/종교나이롱 신자가 써보는 비대면예배에 대한 단상 14 T.Robin 20/08/31 5335 6
994 철학/종교최소한 시신은 없었다 6 아침커피 20/08/10 5664 17
981 철학/종교자제력, 지배력, 그리고 이해력 13 기아트윈스 20/07/10 6631 30
757 철학/종교율법주의 : 최후의 유혹 34 구밀복검 19/01/11 9044 28
742 철학/종교인생은 아름다워 22 기아트윈스 18/12/08 7922 50
717 철학/종교은탄환의 딜레마 15 메아리 18/10/16 7952 24
653 철학/종교칸트 전집 번역 논쟁은 왜때문에 생겼나. 76 기아트윈스 18/06/28 8833 16
605 철학/종교감동(感動) 23 기아트윈스 18/03/22 7810 31
596 철학/종교옛날 즁궈런의 도덕관 하나 6 기아트윈스 18/02/23 7148 21
592 철학/종교푸코의 자기 배려와 철학상담(1) 3 메아리 18/02/11 6927 10
591 철학/종교한국 사회주의의 역사적 기원과 종말. 9 quip 18/02/11 8462 18
501 철학/종교정상영웅 vs 비정상영웅 93 기아트윈스 17/08/26 10553 25
335 철학/종교산타가 없다는 걸 언제쯤 아셨어요? 51 기아트윈스 16/12/30 8474 11
268 철학/종교다윗왕과 밧세바 이야기 구약 시대의 가장 큰 섹스 스캔들 20 기쁨평안 16/09/21 10590 14
261 철학/종교손오공과 프로도 배긴스 32 기아트윈스 16/09/04 8629 18
253 철학/종교주디 버틀러가 말하는 혐오언어의 해체 75 눈부심 16/08/21 11028 3
162 철학/종교매너의 진화 11 눈부심 16/02/28 7880 7
130 철학/종교과학의 역사로 읽어보는 형이상학의 구성과 해체 30 뤼야 15/12/13 8825 5
53 철학/종교보수, 진보, 도덕, 공리주의 23 눈부심 15/07/27 10512 0
14 철학/종교[서평] 빅데이터 시대 : 알고리즘적 자아와 존재론적 위기, <만물의 공식> 4 그녀생각 15/06/07 10528 1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