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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5/07/27 04:32:50 |
Name | 눈부심 |
Subject | 보수, 진보, 도덕, 공리주의 |
책이나 기사를 읽으면 지루하고 귀찮은데 누가 또렷하게 설명해주면 귀에 쏙쏙 들어와요. 아래 강의를 정말 재미있게 들었어요. 도덕은 법리적 해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인간의 직관적이고 보편적인 판단에 따라 해석이 되기도 합니다. 도덕을 논리적으로 정의하려고 노력하는 분야가 철학이에요. 보통 도덕적 가치관은 크게 어떤 사람의 성향이 보수적이냐 진보적이냐에 따라서도 달라요. 이제 강의이야기를 해 봅시다. 구글 본사에서 강의하는 주인공은 하버드 대학 심리학교수인 조슈아 그린(Joshua Greene)입니다. 그는 'Moral Tribes' 라는 저서의 작가이기도 한데요. 자신의 책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요. 이렇게 간략버전의 책 하나 뚝딱 읽게 되는.. 크킁 미국의 공화당진영 대통령후보로 자주 거론되었던 론 폴이 CNN에 출연했을 때 진행자로부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어요. 당시 토론주제는 미국의 국민의료보험제도인 오바마케어였어요. 한 건강한 젊은이가 있는데 자신은 건강하니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겠다며 보험을 거부했어요. 그러다 사고가 생겨 반 년동안 코마상태에 빠집니다. 진행자의 질문은 누가 그 젊은이를 돌보아야 하냐였어요. 론 폴은 직답을 회피하고 처음에는 (사보험이든 아니든) 의료보험에 가입했어야 했다라고 대답을 해요. 진행자는 끈기있게 '그래 그래 그건 아는데 보험가입을 안 했어. 이제 우린 어떻게 해야 하지? 젊은이가 죽도록 내버려 둬야 하나?'라는 질문을 던졌죠. 순간 보수진영의 론 폴에게는 까다로운 질문이었을 수 있겠죠. 방청석에서는 보수인 듯한 사람이 '죽게 내버려 둬!'라고 외치고 있구요. 폴로선 그 방청객에 동의할 수도 반박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는데 상당히 흥미로운 대답을 합니다. 그의 대답은 젊은이를 죽게 내버려 두란 것도 아니었고 정부가 보살펴 줘야한다도 아니었어요. 젊은이의 가족이나 친구, 다니는 교회 같은 작은 커뮤니티가 그를 도와야 한다는 거였어요. 그의 대답은 보수성향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을 잘 반영해 주는데요.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의미로서는 개인주의적(individualism)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부족주의(tribalism)라고나 할까 약갼의 집단주의적 가치관을 내포하고 있기도 합니다. 단 더 큰 커뮤니티나 정부라는 커다란 개념으로는 발전하지 않구요. 한편, 진보진영의 아이콘인 엘리자베스 워렌이 당시 연설로 열광적인 주목을 받았는데요. 보수는, 개인은 사유재산권을 가지고 있고 정부가 그 권리를 억압, 통제할 수는 없는 거라고 말하지만 엘리자베스 워렌은 이렇게 반박을 합니다. '누군가가 공장을 짓고 사업에 크게 성공했다면 그 혜택을 마땅히 누려야 하겠지만 그 사람이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그는 우리 모두의 세금으로 지은 공공도로를 이용해 물류를 운반했고, 그의 사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우리 세금으로 교육시킨 인재들이었으며 그의 사업장이 안전한 건 경찰이나 소방서가 지켜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간접적인 혜택을 잊어서는 안되며 이는 곧 사회와 우리 다음 세대에 환원해야 할 이유가 된다.' 이 두 가지 예가 보수와 진보를 상당히 적절하게 표현한 에피소드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그린은 말해요. 그린 왈 도덕이란 협력의 문제라고 합니다. 그리고 협력은 이타주의의 문제고요. 이타주의란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것인데 내 희생이 타인이 받는 혜택에 비해 미미하다면 우리 모두 약간의 희생을 감당했을 땐 결과적으로 전체가 더 나은 혜택을 누리게 되니까 매우 이롭죠. 협력의 문제를 가장 잘 표현한 논문이 바로 Garret Hardin의 'The Tragedy of the Commons' 그럼 이제 이런 목동들의 커뮤니티 외에 다른 숲에 사는 다른 목동 커뮤니티들에게까지 시야를 넓히고 그 보다 더 큰 집단에까지 눈을 돌리면 협력은 더더욱 어려운 문제가 됩니다. 각자의 커뮤니티 내에서는 협력이 잘 이루어지고 있을 지 모르나 커뮤니티 간에는 상극의 가치관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죠. 어떤 커뮤니티는 성차별이 보편적이면서 나름의 협력을 이루고 살 수도 있고 어떤 커뮤니티는 동성애를 금지하면서도 나름의 협력을 이루고 살기도 하구요.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커뮤니티도 있을 수 있고요.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커뮤니티에선 공공재산은 없을 지라도 서로의 사유재산을 철저히 존중하는 협력정신 하나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뛰어날 수 있을 거고요. 종교로도 커뮤니티가 나뉘어지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렇게 서로 다르지만 나름의 도덕가치관이나 협력정신을 이루고 살고 있는 커뮤니티들이 한 데 모인다면... 여성이 양을 소유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목동은 여성이 양을 소유해선 안된다고 믿는 목동을 전혀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 상대방 목동은 여성이 양을 소유할 수 없는 것이 너무도 마땅하게만 느껴집니다. 이런 목동들의 조합이 바로 우리 현대의 모습이기도 한데요. 따라서 현대의 도덕은 단순히 '나'와 '우리' 간의 문제 또는 이기심과 도덕심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와 '저들'의 문제입니다. '나의 가치관'과 '우리의 가치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가치관'과 '저들의 가치관'의 문제인 것이죠. 현대의 문제를 그린씨는 '상식의 비극'이라고 칭하고자 하는데요. 상식은 그 자체로 보편성을 띄지만 그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벗어나면 상식이 아닌 경우가 많아요. 러시아에선 동성애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미국 외 다른 몇몇 나라들은 동성결혼을 허용하기도 합니다. 러시아의 상식은 미국에선 차별이고 증오범죄가 됩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와 '저들'을 뛰어 넘는 보편타당성을 적용해야 합니다. 도덕적인 판단을 하려면 심사숙고하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직관적인 판단이 더 도덕적인 경우도 많다는군요. 두 가지를 적절하게 혼용하여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인간의 빠른 직관이 더 도덕적인 경우는 다음과 같은 실험에 의해 증명이 되었어요. 한 그룹의 사람들에게 각각 10불씩 나누어 줍니다. 그 중 자기가 취하고 싶은 만큼 취하고 그룹에 기부를 하고 싶은 사람은 기부를 합니다. 기부한 돈은 모두 모아 실험자가 두 배로 불려주어 모든 구성원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아무도 기부를 하지 않으면 모두 10불씩 가지는 것이 되지만 모두 전 금액을 기부하면 그 돈이 두 배로 불어나 자신에게 돌아오므로 20불을 거머쥘 수 있어요. 만약 구성원이 다섯 명이고 어떤 사람이 7불을 기부하고 3불만 가진 상태에서 전체 기부금이 10불 이어서 그 두 배인 20불의 배당금을 전체가 골고루 나눴다면 3+5=8불이 되겠죠. 이 선택은 애초에 10불을 손에 다 쥐고 있는 것보다는 적고요. 이 실험에 시간제약을 둡니다. 촉박한 시간 내에서 사람들은 보통 이기적인 선택을 할까요 아니면 기부를 더 많이 할까요? 실험 결과 시간적 압박이 가해졌을 때 사람들은 기부를 더 많이 하더라는군요. 반면에 10초 간 판단할 시간을 주니 이기적인 선택을 더 많이 했다고 합니다. 실험을 여러 번 거쳤는데 결과는 한결 같이 시간적 제약을 가할 때 우리는 보통 '나' 보다는 '우리'를 더 고려하는 사회도덕적 본능을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일명 '공공재 게임'을 여러 나라에서 해 보았어요. 이번 게임은 내용이 조금 다른데 일단 각자 원하는만큼 개인취득을 할 수도 공공기부를 할 수도 있습니다. 대신 이 게임을 반복해서 여러번 하는데 개인취득을 했거나 공공기부를 한 사람을 두고 어떤 기준을 정해 자기네들끼리 상 주거나 벌하는 것이 가능했어요. 예를 들면 너는 어느 정도까지 기부를 했으니 1불을 더 받아 가고 너는 기부를 너무 안 했으니 3불을 손해봐야 한다는 규칙같은 것으로요. 그 반대도 가능하고요. 코펜하겐에서 서로 모르는 사람들을 모아 공공재 게임을 시켰더니 처음부터 기부를 많이들 해서 그것이 반복되자 결과적으로 모두가 상당한 이익을 챙겨갔습니다. 호주와 중국 같은 경우, 처음엔 적절하게 기부하는 정도에서 기부가 적다 싶으면 서로 벌점을 줌으로써 기부금을 늘려 반복실험결과 결국 코펜하겐 같은 비율높은 기부를 이루어냈다고 하고요. 웃긴 건...그리스 아테네에서는 처음부터 그렇게 기부를 안 하더랍니다. 그런데 반복실험을 해도 계속 기부를 안 하더랍니다. 아테네사람들은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기부를 잘 하지 않는 사람들이 고액의 기부자들을 비난하는 풍경을 연출했다고 해요. 그래서 게임이 끝난 후 왜 그랬냐고 물어봤대요. 그랬더니 그냥 그 게임이 짜증나고 싫었답니다 하하하하. 이 사람들 다 누구냐. 이런 게임 짜증나게 왜 하냐... 그린씨는 그들에겐 협력이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부족적인 개념이지 않았나 그런 얘길 해요. 쉽게 말하면 내 가족, 친척의 문제에 한해선 협력이 상식이지만 이방인과 협력을 통해 기부금을 늘이는 일은 생소하고 불편한 일이었던 거예요. (이 부족개념이 우리나라의 학연, 지연 개념과 뭔가 일맥상통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코펜하겐은 이방인에 대한 직관적인 신뢰도가 높았고 아테네는 그렇지 않았던 거죠. 도덕을 이야기할 때 직관적인 면뿐 아니라 이성적인 면도 잘 고려해야 하는 이유는 철학자 피터 싱어가 잘 이야기해주고 있어요. 명품으로 잘 차려입은 신사가 연못을 지나가는데 어린 아이가 연못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걸 보았다고 합시다. 비싼 옷과 구두를 망칠까봐 아이를 구하지 않는다면 비난을 면치 못하겠죠. 한편 유니세프에서 편지를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소액의 기부를 통해 아이를 기아에서 구할 수 있다고 하는 내용입니다. 새 신발 한 켤레 덜 사면 한 아이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내가 기부를 않고 새 신발을 한 켤레 더 사 신는다고 해서 이 사람이 도덕적 비난을 면치 못할까요? 보통 이럴 땐 연못에 빠진 아이를 구하지 않는 신사만큼이나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굳이 내가 기부하지 않아도 다른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그런 논리대로라면 만약 여러 명의 신사들이 연못에 빠진 아이를 보고도 구하지 않으면 도덕적 비난을 피해갈 수 있냐는 질문에는 대답이 궁색해 집니다. 이런 도덕적 판단의 괴리는 다른 예를 통해서도 설명할 수 있어요. 못사는 개발도상국의 근사한 해변휴양지에 관광을 갔는데 마침 태풍이 몰아닥쳐 내 눈앞에서 많은 생명과 재산을 앗아갔습니다. 이 상황에서는 사람들이 재앙을 당한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할 확률이 높아요. 그런데 이 상황에 있는 사람이 내가 아니고 내 친구이면 조금 다릅니다. 내 친구가 태풍피해상황을 전화로 실시간중계를 해주면 내가 나서서 기부를 해야하냐는 질문에는 사람들은 전자의 상황보다 마땅함을 덜 느낍니다. 이렇듯 지리학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 소원할수록 협력의 개념도 희박해지는 것이 보통인데 오늘날의 우리는 지리학적, 생물학적 장애물을 고려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윤택한 삶을 누립니다(미국 입장에서). 현대(미국)의 넘치는 부는 우리에게 멀리서도 사람들을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는 커다란 기회를 자동으로 부여해 줍니다. 그런데 인간사고의 특징 중 이런 것이 있어요.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 수백, 수천명의 생명을 구하는 일보다 더 크게 다가옵니다. (온라인 상에서 특이질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아이는 굶어 죽어가는 수천명의 아프리카 아이들의 생명을 구하자는 호소보다 더욱 센세이셔널하게 다가와서 수만 불의 기부금이 순식간에 모이기도 하듯이요). 이런 Insensitivity to quantity의 특성이 인간의 뇌에서 본능과도 감지된다고 합니다. 동물에게서도 마찬가지로 발견되는 특성이라고 해요. 이를테면, 쥐가 먹이를 확보하고 있어 봤자 냉장고가 있는 것도 아니니 먹을 것이 많다고 해서 그에 대한 가치가 증가하는 것이 아니고 '다량'에 무감각해지는 거죠. 쥐에게 다량의 음식에 대한 가치상승이 머릿속에서 진화하지 않았듯이 인간에게도 수많은 생명을 구하는 일에 대한 가치상승이 진화적으로 각인되지 않은 거예요. 그런데 직관적으로야 그렇지만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으면 도덕적으로 좋은 거예요. 이 때 바로 우리는 직관적인 도덕판단보다는 시간을 할애하여 이성적이고 실용적인 사고를 꾀하는 것이 더 도덕적일 수 있다고 그린씨는 말합니다. 결과적으로 장점이 더 크니 이런 도덕적 판단을 consequentialism(이게 우리말로는 뭔가요..?)이라고도 하고 다른 말로는 공리주의(utilitarianism)라고도 합니다. 그린씨는 공리주의야말로 넓은 의미의 도덕문제, 즉 '상식의 비극'을 극복하는 개념이라고 말합니다. (그린씨는 utilitarianism이란 용어에 불만이 많군요. 마치 세속주의란 말이 단지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의미할 뿐인데 꼭 세속적이란 뜻처럼 들리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요). 그린씨의 주장에 의하면 지구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덕개념은 공리주의가 가장 적절하다고 합니다. 이 공리주의의 창시자는 Jeremy Bentham이에요. 제레미는 동성애권리를 처음으로 주창한 사람이기도 한데요. 당시가 18세기였어요. 동성애는 죽음으로 벌하던 시대였죠. 제레미는 아무리 생각해도 동성애를 차별해야 할 마땅한 이유가 생각이 안 났대요. 제레미는 그 효용성을 따져봤을 때 동성애를 차별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를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봐도 생각해 낼 수가 없었던 거예요. 그가 적용한 공리주의에 의하면 우리가 최대 다수의 최고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도덕의 실현인데 동성애를 차별하면 동성애자들이 불행한만큼 최대 다수의 행복을 추구하지 못하게 되거든요. 공리주의에 의하면 나, 내 가족, 내 친척들의 안위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똑같은 정도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어요. 그럼 그 행복은 어떻게 측정이 되느냐. 결과적으로 개인의 경험이 질적으로 행복하면 되는 것이라고 벤담은 말합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궁극적인 답에 도달할 때까지 질문을 던지면 된대요. 왜 직장에 가느냐 -> 직장이 좋다 -> 왜 좋냐 -> 일이 재밌고 돈을 벌 수 있으니까 좋다 -> 돈이 왜 좋냐 -> 살 곳이 필요하고..-> 왜 살 곳이 필요하냐 -> 집 없으면 겨울에 춥고.. -> 추운게 어때서 -> 추우면 불행해 -> 불행한 게 어때서? -> 이렇게 할말이 없어질 때까지 질문을 하다보면 결국 다 '그래서 내가 좋더라'거든요. 그런 경험이 좋더라란 의미죠. 벤담은 질적으로 좋은 경험을 최대한으로 실현시키는 것 또는 최대다수의 행복이 도덕이라고 이야기하고 있구요. 벤담이 이런 논리전개를 따르다 보니 동성애자라고 해서 문제될 것이 아무것도 없더란 거죠. 벤담의 철학을 계승한 사람이 존 스튜어트 밀이고 이런 공리주의자들이 노예제도를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고 언론의 자유, 자유주의 시장을 주장하기도 했어요. 이런 사고는 모두 직관적 도덕이 아닌 slow thinking에 의한 도덕판단에 속합니다. 그린씨는 이 공리주의가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유명한 반박이 트롤리 문제예요. 트롤리트랙에 다섯명이 묶여 있고 다리 위에 뚱뚱한 남자가 있어서 그 남자를 아래로 밀어버리면 기차가 다섯명을 치기 전에 멈출 것이라고 해서 뚱뚱한 남자를 밀어죽이는 것이 과연 옳은가와 같은 문제에 직면하면 공리주의가 마냥 답이 될 순 없어요. 그에 대한 그린씨의 반응은 사람을 죽이는 일에 죄의식을 느끼는 자체는 우리가 도덕적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 말은 왜 했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이까지가 제가 들은 내용입니다. 저의 협소한 인터넷 경험에 의하면 어떤 서구인텔리들은 공리주의를 최고의 도덕철학이라고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공리주의는 결과가 중요하기 때문에 못산다고 무조건 퍼주는 건 지양해요. 실효성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서 과학적인 접근을 시도합니다. 즉 단지 give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give well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give하는 것의 결과가 형편없으면 제 아무리 불행에 처한 이들이라도 give를 고려하는 데 더 뜸을 들인다고나 할까요. 저도 공리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의 주장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더 공부해봐야 알 것 같아요. 서구사상이 그러니 우리도 그리 생각해야 한다는 말씀은 아니에요. 그네들의 어떤 담론에서 동양을 상대로 서구가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걸 목격하기도 해서 불편하기도 했던지라. 이 동영상은 듣고 배운 점이 많았어요^^. * Toby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5-08-06 20:23)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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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이란게.. 옛날에는 권선징악의 개념이 웬만하면 직관적으로 답을 낼 수 있었을 정도로 아주 단순했을 거예요. 요즘은 전통과 인습을 답습하던 버릇에서 벗어나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수고가 따라주어야 도덕이 겨우 실현되는 것 같습니다(동성애차별문제도 서로 논리로 이기려고 키보드베틀을 하잖아요. 이거 이기려면 똑똑해야 하구요). 자기 부족만 신경쓰면 되었던 옛날보다 도덕적 보편성을 도출해야하는 환경적 요인이 훨씬 다양하니까요. 도덕적 판단이 더 복잡한 사고를 요하는만큼 IQ, 즉 지능이 높을수록 도덕적인 판단이 더 용이하다는 말을 어느 ... 더 보기
도덕이란게.. 옛날에는 권선징악의 개념이 웬만하면 직관적으로 답을 낼 수 있었을 정도로 아주 단순했을 거예요. 요즘은 전통과 인습을 답습하던 버릇에서 벗어나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수고가 따라주어야 도덕이 겨우 실현되는 것 같습니다(동성애차별문제도 서로 논리로 이기려고 키보드베틀을 하잖아요. 이거 이기려면 똑똑해야 하구요). 자기 부족만 신경쓰면 되었던 옛날보다 도덕적 보편성을 도출해야하는 환경적 요인이 훨씬 다양하니까요. 도덕적 판단이 더 복잡한 사고를 요하는만큼 IQ, 즉 지능이 높을수록 도덕적인 판단이 더 용이하다는 말을 어느 미국커뮤니티에서 아주 진지하게 하던데 그네들이 확실히 머리도 좋고 덕분에 사회, 경제적 지위가 높은 편이며 윤택한 삶을 살면서 종종 어떻게 하면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까를 의논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 미국사람들이 IQ와 도덕성의 상관관계는 비례한다고 꺼리낌없이 이야기하는 모습이 전 좀 충격이었어요. 그거 politically incorrect한 거 같은데. 그리고 제가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거든요 -_- 학벌이 높을수록 도덕적이기도 하단 말도 데이타를 가지고 얘기하기도 하더군요.
그거 보고 있는데 저건 미국에선 해당되는 이야기일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이야기는 확실하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토론장에서 누가 고학력자일수록 도덕적이라고 말하면 아조 시원하게 박살이 났을 거예요. 그렇다면 왜 미국은 그렇다고 하는데 한국은 아닐까란 생각까지 굳이 해보니 교육의 문제가 큰 것 같더라구요..
그거 보고 있는데 저건 미국에선 해당되는 이야기일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이야기는 확실하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토론장에서 누가 고학력자일수록 도덕적이라고 말하면 아조 시원하게 박살이 났을 거예요. 그렇다면 왜 미국은 그렇다고 하는데 한국은 아닐까란 생각까지 굳이 해보니 교육의 문제가 큰 것 같더라구요..
오, 공유지의 비극이 더 정확하네요. 고맙습니다.
\'어떤\' 미국사이트 엿보다가 느낀 건 팔자 좋은 나라 사람들이 나누는 대의의 스케일이 상당히 크고 이타적인데 곳간에서 인심나는 것 같아요. 그네들이 자주 나누는 이야기가 효율적인 기부, 착한 인공지능의 실현, 트랜스휴머니즘(기술의 힘을 빌어 젊고 행복하게 오래 사는 만능인간형 추구) 등이에요. 어떤 사람이 트랜스휴머니즘을 추구하는 이가 미국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도록 만불을 기부했으며 자신의 선택은 가장 이성적인 선택이었다고 하길래 인간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효율적 기부... 더 보기
\'어떤\' 미국사이트 엿보다가 느낀 건 팔자 좋은 나라 사람들이 나누는 대의의 스케일이 상당히 크고 이타적인데 곳간에서 인심나는 것 같아요. 그네들이 자주 나누는 이야기가 효율적인 기부, 착한 인공지능의 실현, 트랜스휴머니즘(기술의 힘을 빌어 젊고 행복하게 오래 사는 만능인간형 추구) 등이에요. 어떤 사람이 트랜스휴머니즘을 추구하는 이가 미국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도록 만불을 기부했으며 자신의 선택은 가장 이성적인 선택이었다고 하길래 인간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효율적 기부... 더 보기
오, 공유지의 비극이 더 정확하네요. 고맙습니다.
\'어떤\' 미국사이트 엿보다가 느낀 건 팔자 좋은 나라 사람들이 나누는 대의의 스케일이 상당히 크고 이타적인데 곳간에서 인심나는 것 같아요. 그네들이 자주 나누는 이야기가 효율적인 기부, 착한 인공지능의 실현, 트랜스휴머니즘(기술의 힘을 빌어 젊고 행복하게 오래 사는 만능인간형 추구) 등이에요. 어떤 사람이 트랜스휴머니즘을 추구하는 이가 미국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도록 만불을 기부했으며 자신의 선택은 가장 이성적인 선택이었다고 하길래 인간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효율적 기부와 영생을 추구하는 트랜스휴머니즘이 어찌 같은 커뮤니티에서 양립가능하냐고 물었어요. 지구의 자원은 유한한데 영생을 추구하려면 영생을 감당할 수 없는 가난한 이들이 일찍 죽어줘야 가능한 것이 아니냐고요. 저의 댓글에 비추천이 후두둑 달렸어요(우씨). 그 아래 달린 댓글에서 누가 말하길 인간의 고통은 죽음과 우울증, 질병에서 오는 거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암연구센터나 노화지연연구에 기부를 하는 것은 그만큼 인간의 고통을 줄이고자 하는 바람직한 일이라고요.
한국에선 세 모녀가 생활고를 못견뎌 집단자살을 하는 현실 앞에서 구조적 모순을 고쳐보겠다고 아둥바둥인데 이 사람들의 가장 큰 고통은 늙어서 죽는다는 사실이었어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죽으면 죽는거지 죽는 사실 자체는 그냥 그런가부다 하잖아요. 사는 게 바쁘니까요. 패리스 힐튼의 소원이 오래 오래 사는 거라더니.. 지나가는 댓글에서 중국이 세계패권을 차지하면 끔찍한 세상이 될 거라고 했어요. 이네들의 도덕은 언론의 자유, 법치국가 등의 실현이지만 중국은 민주적인 잣대를 갖다 대었을 땐 아직은 미개하니까요. 그런데 지금의 미국과 선진 유럽국가들이 과거에 어떤 짓을 저지르고서야 현재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는지에 대한 언급은 아무도 안 하더라고요. 그냥 자기네들이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믿는 것 같았어요. 이건 아주 작은 샘플에 불과하지만 좀 불편했어요. 이건 동영상이랑은 상관없는 이야기예요..^^
\'어떤\' 미국사이트 엿보다가 느낀 건 팔자 좋은 나라 사람들이 나누는 대의의 스케일이 상당히 크고 이타적인데 곳간에서 인심나는 것 같아요. 그네들이 자주 나누는 이야기가 효율적인 기부, 착한 인공지능의 실현, 트랜스휴머니즘(기술의 힘을 빌어 젊고 행복하게 오래 사는 만능인간형 추구) 등이에요. 어떤 사람이 트랜스휴머니즘을 추구하는 이가 미국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도록 만불을 기부했으며 자신의 선택은 가장 이성적인 선택이었다고 하길래 인간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효율적 기부와 영생을 추구하는 트랜스휴머니즘이 어찌 같은 커뮤니티에서 양립가능하냐고 물었어요. 지구의 자원은 유한한데 영생을 추구하려면 영생을 감당할 수 없는 가난한 이들이 일찍 죽어줘야 가능한 것이 아니냐고요. 저의 댓글에 비추천이 후두둑 달렸어요(우씨). 그 아래 달린 댓글에서 누가 말하길 인간의 고통은 죽음과 우울증, 질병에서 오는 거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암연구센터나 노화지연연구에 기부를 하는 것은 그만큼 인간의 고통을 줄이고자 하는 바람직한 일이라고요.
한국에선 세 모녀가 생활고를 못견뎌 집단자살을 하는 현실 앞에서 구조적 모순을 고쳐보겠다고 아둥바둥인데 이 사람들의 가장 큰 고통은 늙어서 죽는다는 사실이었어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죽으면 죽는거지 죽는 사실 자체는 그냥 그런가부다 하잖아요. 사는 게 바쁘니까요. 패리스 힐튼의 소원이 오래 오래 사는 거라더니.. 지나가는 댓글에서 중국이 세계패권을 차지하면 끔찍한 세상이 될 거라고 했어요. 이네들의 도덕은 언론의 자유, 법치국가 등의 실현이지만 중국은 민주적인 잣대를 갖다 대었을 땐 아직은 미개하니까요. 그런데 지금의 미국과 선진 유럽국가들이 과거에 어떤 짓을 저지르고서야 현재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는지에 대한 언급은 아무도 안 하더라고요. 그냥 자기네들이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믿는 것 같았어요. 이건 아주 작은 샘플에 불과하지만 좀 불편했어요. 이건 동영상이랑은 상관없는 이야기예요..^^
과거의 역사를 잊는 건 어디나 그러는 거니까요. 비교적 최근에 문제를 일으켰고, 사건만 있으면 너네가 지은 죄를 기억하라고 꼬박꼬박 화내는 이웃을 여럿 둔 일본조차도 불과 두어세대만에 단지 가르치지 않는 것만으로 국민들에게 자신들의 제국주의를 잊게 만들었죠. 하물며 더 오래 전부터 그래왔고, 제국주의가 더욱 당연했으며, 피해자들의 영향력도 훨씬 낮은 서구 국가들에게 제국주의의 문제는 그와 관련된 연구를 하는 사람들 수준이 아니고서야 그냥 아예 아무도 [모르는] 일일 겁니다. 더구나 다른 국가보다 직접적인 식민지 경영을 아주 적게 한 미국인들이라면 제국주의는 우리랑 아무 관계없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지 싶어요.
고생하셨네요. 그들은 모르기 때문에 당연히 의도하지 않고 그러는 것이겠지만 저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알고 하는 사람은 의도와 목적이 분명하기에 외려 대응하는 입장에서는 쟁점이 호도되는 일이 더 적을 수 있지요. 하지만 여기에 무지한 다수가 끼어들면 논의는 불투명해지고 감정적인 반응만이 남아 [왜 나를 공격하냐]는 식이 되고, 다수라는 점을 이용해 자신에게 불편한 소리를 하는 소수를 탄압하죠. 그런데 이거, 잘 보면 이게 딱 파시즘의 재림입니다. 자기 집단의 목적을 ... 더 보기
알고 하는 사람은 의도와 목적이 분명하기에 외려 대응하는 입장에서는 쟁점이 호도되는 일이 더 적을 수 있지요. 하지만 여기에 무지한 다수가 끼어들면 논의는 불투명해지고 감정적인 반응만이 남아 [왜 나를 공격하냐]는 식이 되고, 다수라는 점을 이용해 자신에게 불편한 소리를 하는 소수를 탄압하죠. 그런데 이거, 잘 보면 이게 딱 파시즘의 재림입니다. 자기 집단의 목적을 ... 더 보기
고생하셨네요. 그들은 모르기 때문에 당연히 의도하지 않고 그러는 것이겠지만 저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알고 하는 사람은 의도와 목적이 분명하기에 외려 대응하는 입장에서는 쟁점이 호도되는 일이 더 적을 수 있지요. 하지만 여기에 무지한 다수가 끼어들면 논의는 불투명해지고 감정적인 반응만이 남아 [왜 나를 공격하냐]는 식이 되고, 다수라는 점을 이용해 자신에게 불편한 소리를 하는 소수를 탄압하죠. 그런데 이거, 잘 보면 이게 딱 파시즘의 재림입니다. 자기 집단의 목적을 위해 사회 전체의 미래는 도외시하는 세력과 스스로의 사고와 성찰은 방기한 채 일차원적 감정에 충실해서 움직일 뿐인 다수의 대중.
개인에게 신체와 정신의 자유가 없고 날 때부터 신분으로 예속된 사회의 백성이라면 모를까, 현대 사회의 시민으로서는 몰랐으니까 용서해달라는 말을 받아들이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풍족한 환경과 가장 다채로운 문화를 향유하는 시대의 사람들이라면 적어도 지난 시간, 가장 큰 비극을 불러왔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는 있어야겠죠 :)
알고 하는 사람은 의도와 목적이 분명하기에 외려 대응하는 입장에서는 쟁점이 호도되는 일이 더 적을 수 있지요. 하지만 여기에 무지한 다수가 끼어들면 논의는 불투명해지고 감정적인 반응만이 남아 [왜 나를 공격하냐]는 식이 되고, 다수라는 점을 이용해 자신에게 불편한 소리를 하는 소수를 탄압하죠. 그런데 이거, 잘 보면 이게 딱 파시즘의 재림입니다. 자기 집단의 목적을 위해 사회 전체의 미래는 도외시하는 세력과 스스로의 사고와 성찰은 방기한 채 일차원적 감정에 충실해서 움직일 뿐인 다수의 대중.
개인에게 신체와 정신의 자유가 없고 날 때부터 신분으로 예속된 사회의 백성이라면 모를까, 현대 사회의 시민으로서는 몰랐으니까 용서해달라는 말을 받아들이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풍족한 환경과 가장 다채로운 문화를 향유하는 시대의 사람들이라면 적어도 지난 시간, 가장 큰 비극을 불러왔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는 있어야겠죠 :)
근데 이 공리주의의 정의를 찾아보면 \'인간 행위의 윤리적 기초를 개인의 이익과 쾌락\'에 두고 있다고 되어 있잖아요. 전 공리주의가 뭔지 잘 몰랐을땐 (고딩 때 배우긴 하지만) 개인의 이익과 쾌락이 윤리기초라니 디기 안 좋은 거네 이렇게 생각했었어요 으크크. 그린씨가 \'공리주의\'가 영어로 utilitarianism인 걸 끔찍해 하는 것도 그렇고 우리말로도 공리주의의 정의가 개인의 이익과 쾌락이라고밖에 정의할 수 없는 것도 그렇고 언어의 한계란 건 생각보다 큰 것 같아요. 저는 원래 기부를 잘 안 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기부단체에 대한 불신도 굉장히 심한 편이에요. 특히 유니세프 이런 곳에 대한 의심과 불신이 매우 심한 것 같아요. 그치만 피터 싱어아저씨가 추천해주는 곳이라면 믿고 기부할 수 있을 것 같긴 해요 흐.
피터는 물론 개인적으로 공리주의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입장에서 피터가 과연 어디를 추천해줄 수 있을지 의문스럽네요. 결국 자신의 선택으로 자신의 주장을 반박해버린 사람이잖아요. 그 외에도 실망스런 모습이 많은 사람이긴 하지만 그래도 주장한 사람과 주장한 내용을 분리해서 평가해야한다는 기조 하에 공리주의의 문제점을 몇 가지 더 말해보자면, 이건 철학이라기보다는 더이상의 철학적 의문을 던지고 싶지 않은 자연과학자들, 혹은 사회과학자들을 위한 다이제스트판 도덕교과서에 가깝다는 게 일단 가장 큰 불만이에요.
물론 해당 영역에서는 꽤 ... 더 보기
물론 해당 영역에서는 꽤 ... 더 보기
피터는 물론 개인적으로 공리주의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입장에서 피터가 과연 어디를 추천해줄 수 있을지 의문스럽네요. 결국 자신의 선택으로 자신의 주장을 반박해버린 사람이잖아요. 그 외에도 실망스런 모습이 많은 사람이긴 하지만 그래도 주장한 사람과 주장한 내용을 분리해서 평가해야한다는 기조 하에 공리주의의 문제점을 몇 가지 더 말해보자면, 이건 철학이라기보다는 더이상의 철학적 의문을 던지고 싶지 않은 자연과학자들, 혹은 사회과학자들을 위한 다이제스트판 도덕교과서에 가깝다는 게 일단 가장 큰 불만이에요.
물론 해당 영역에서는 꽤 좋은 논의 기반을 마련해주지요. 예컨대 정책을 입안할 때 40명에게 불리하고 60명에게 유리한 정책과 40명에게 유리하고 60명에게 불리한 정책이 있다면 공리주의 원칙에 기반해서 전자를 택할 수 있겠지요. 그 어떤 원칙이 이보다 더 심플하고 명확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다시 철학의 영역으로 돌아와서 말하자면 공리주의의 약점과 한계도 분명해져요. 일단 엄밀히 따지고 보면 도덕을 해명한 게 아니라 도덕이 들어갈 자리를 삭제해버린 거나 마찬가지에요. 거칠게 환원해서 말하자면 [삶의 질을 높이는 게 도덕이다] 정도가 되는데, 사실 여기 [도덕이다]를 빼도 공리주의자에겐 하등 문제될 게 없어지거든요. 시험삼아 아무거나 좋은 말을 [도덕]의 자리에 넣어보세요. [삶의 질을 높이는 게 최고다] 라든가 [삶의 질을 높이는 게 장땡이다] 라든가, [삶의 질을 높이는 게 정치다] 라든가, [삶의 질을 높이는 게 과학이다] 라든가, [삶의 질을 높이는 게 우리의 목표이니 에너지를 분산시키지 말고 이렇게 나아가자] 라든가 등등. 말이 좋아 도덕이지 사실은 [좋은게 좋은거다]에 가까워요.
마지막으로 예제를 하나 더 들어보자면, 까뮈의 이방인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좋아요. 공리주의는 뫼르소의 살인행위를 심판하는 법관들의 태도이지요. [사람을 죽였어? 사형이네.] 하지만 이 냉철하고 합리적인 시스템은 뫼르소가 방아쇠를 당긴 이유를 해명하지도 납득하지도 못하지요. 심지어 뫼르소를 불안하고 불만스럽게 만든 그 모든 것들을 설명하지도 못해요. 애인도 있고 돈도 있고... 공리주의자에겐 뫼르소가 가진 모든 조건들이 [쾌]에 해당할 지언정 [불쾌]일 수 없거든요.
물론 해당 영역에서는 꽤 좋은 논의 기반을 마련해주지요. 예컨대 정책을 입안할 때 40명에게 불리하고 60명에게 유리한 정책과 40명에게 유리하고 60명에게 불리한 정책이 있다면 공리주의 원칙에 기반해서 전자를 택할 수 있겠지요. 그 어떤 원칙이 이보다 더 심플하고 명확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다시 철학의 영역으로 돌아와서 말하자면 공리주의의 약점과 한계도 분명해져요. 일단 엄밀히 따지고 보면 도덕을 해명한 게 아니라 도덕이 들어갈 자리를 삭제해버린 거나 마찬가지에요. 거칠게 환원해서 말하자면 [삶의 질을 높이는 게 도덕이다] 정도가 되는데, 사실 여기 [도덕이다]를 빼도 공리주의자에겐 하등 문제될 게 없어지거든요. 시험삼아 아무거나 좋은 말을 [도덕]의 자리에 넣어보세요. [삶의 질을 높이는 게 최고다] 라든가 [삶의 질을 높이는 게 장땡이다] 라든가, [삶의 질을 높이는 게 정치다] 라든가, [삶의 질을 높이는 게 과학이다] 라든가, [삶의 질을 높이는 게 우리의 목표이니 에너지를 분산시키지 말고 이렇게 나아가자] 라든가 등등. 말이 좋아 도덕이지 사실은 [좋은게 좋은거다]에 가까워요.
마지막으로 예제를 하나 더 들어보자면, 까뮈의 이방인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좋아요. 공리주의는 뫼르소의 살인행위를 심판하는 법관들의 태도이지요. [사람을 죽였어? 사형이네.] 하지만 이 냉철하고 합리적인 시스템은 뫼르소가 방아쇠를 당긴 이유를 해명하지도 납득하지도 못하지요. 심지어 뫼르소를 불안하고 불만스럽게 만든 그 모든 것들을 설명하지도 못해요. 애인도 있고 돈도 있고... 공리주의자에겐 뫼르소가 가진 모든 조건들이 [쾌]에 해당할 지언정 [불쾌]일 수 없거든요.
음.... 오늘을 기하여 공리주의를 표방하며 효율적인 기부철학을 고양시키던 그 커뮤니티에 대한 존경심을 접기로 했어요.
lesswrong.com 이란 곳인데 이 사이트에서 두 명의 회원이 많은 회원팬들을 거느리고 있어요. 그 중 한 명의 블로그글이 이거예요.
http://slatestarcodex.com/2013/03/03/reactionary-philo...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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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오늘을 기하여 공리주의를 표방하며 효율적인 기부철학을 고양시키던 그 커뮤니티에 대한 존경심을 접기로 했어요.
lesswrong.com 이란 곳인데 이 사이트에서 두 명의 회원이 많은 회원팬들을 거느리고 있어요. 그 중 한 명의 블로그글이 이거예요.
http://slatestarcodex.com/2013/03/03/reactionary-philosophy-in-an-enormous-planet-sized-nutshell/
뭔 하고 싶은 말이 그리 많은지 글을 무진장 길게 쓰는데 읽다 포기하고 나서 느낀 점은 저 사람은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란 거였어요.
이 사람에 의하면 백인이 왜 항상 흑인보다 잘 나가느냐에 대한 질문에 세 가지 답이 있을 수 있는데 하나는 보통 진보가 이야기하는 환경적 요인, 하나는 문화적 요인, 다른 하나는 우생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유전적 요인이라나요. 이 사람은 우생학자들의 이야기는 찬성하지 않는 편이라 이야기를 꺼리지만 문화적 요인의 입장에 서 있는 모양인데 법치가 잘 실현되고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는 등의 선진문화가 있고 그에 덜 합당한 문화가 있다고 믿는 것 같아요. 그가 진보를 비판하는 예를 들어 보면 라티노나 흑인학생들의 성적이 저조한데 진보들은, 교사가 다 백인일색이라 서로 익숙한 문화권 내에서 아이들을 더 잘 교육시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므로 라티노나 흑인교사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하죠. 블로거는 고유한 문화나 인종적, 민족적 특성을 살리려고 하는 진보의 태도가 맹목적이라고 보는 것 같아요. 그는 또한 미국은 melting pot이어야 하지만 샐러드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하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면 어떤 선진문화에 모두 동화되어야 마땅한데 서로가 다양성이라는 미명 하에 따로국밥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이민자들 중 북유럽 인종이나 아시안들은 미국(선진)문화에 쉽게 동화되어 나름 무난하게 성공적인 삶을 많이들 살지만 라티노나 흑인들은 세월이 얼마가 흘렀건 제아무리 차별정책이 줄어들었건 사회경제적으로 열등함을 벗어나지 못하는 건 백인선진문화에 동화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 같아요. \'백인선진문화\'란 말을 쓰고 있지는 않지만 줄곧 culture와 assimilation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어요.
지금 미국에서 Sandra Bland사건이 이슈예요. 흑인인권을 위해 열심이던 여성인데 텍사스에 갔다가 방향등을 켜지 않은 채 차선을 바꿨다는 별 대단치도 않은 이유로 딱지를 떼였죠. 경찰이 기분이 나쁘냐는 둥, 담뱃불 꺼라는 둥 쓸데없는 말을 하더니 담뱃불 안 끄고 차에서 나오라는데 안 나왔다고 체포를 해서 감금시켜요. 그녀는 삼일 후 감옥에서 자살을 했어요. 이에 대한 어떤 사설글을 읽다가 문득 저 블로거가 생각났어요. 남의 입장에 서 보는 방법을 참 모르는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http://www.nytimes.com/2015/07/25/opinion/on-the-death-of-sandra-bland-and-our-vulnerable-bodies.html ) 사설을 쓴 흑인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편일텐데 운전하기 전에 면허증이며 뭐며 빠진 것 없나 단도리를 엄청 철저하게 한다고 했어요. 자신의 피부가 까맣기 때문에 더 신경을 쓰는 거예요. 그리고 인터넷에서 잠깐 지나가다 읽은 댓글에서 본 건데 흑인아들을 둔 엄마들은 바깥에 나가면 절대 조심하라고 그렇게 주의를 시킨대요. 세상은 네 편이 아니란 걸 철저하게 가르친대요.
문화차이를 언급했던 블로거가 제임스 플린이라는 학자를 언급해요. 플린 효과에 의하면 현대의 우리는 옛날 사람들보다 지능적으로 더 발달해서 보다 더 추상적인 사고라든지, A가 B라면, C가 D라면과 같은 가정적 사고도 월등히 잘 해서 남의 입장에 서 보는 공감력도 더 좋아지는 거라고요. 곧 지능의 발달이 도덕적 진화를 꾀한다고 이야기를 했죠. 그 블로거는 자신의 높은 지능과 도덕심을 등치시키면서도 여전히 흑인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그런 모순이 저는 실망스럽구요. 이 사람은 피터 싱어랑은 아무 관련이 없고 그냥 팬을 많이 거느리고 다니는 사람인가 보더라고요. 근데 전 그닥...
아...넘 길다는...이만해야겠어요 크크킁.
lesswrong.com 이란 곳인데 이 사이트에서 두 명의 회원이 많은 회원팬들을 거느리고 있어요. 그 중 한 명의 블로그글이 이거예요.
http://slatestarcodex.com/2013/03/03/reactionary-philosophy-in-an-enormous-planet-sized-nutshell/
뭔 하고 싶은 말이 그리 많은지 글을 무진장 길게 쓰는데 읽다 포기하고 나서 느낀 점은 저 사람은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란 거였어요.
이 사람에 의하면 백인이 왜 항상 흑인보다 잘 나가느냐에 대한 질문에 세 가지 답이 있을 수 있는데 하나는 보통 진보가 이야기하는 환경적 요인, 하나는 문화적 요인, 다른 하나는 우생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유전적 요인이라나요. 이 사람은 우생학자들의 이야기는 찬성하지 않는 편이라 이야기를 꺼리지만 문화적 요인의 입장에 서 있는 모양인데 법치가 잘 실현되고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는 등의 선진문화가 있고 그에 덜 합당한 문화가 있다고 믿는 것 같아요. 그가 진보를 비판하는 예를 들어 보면 라티노나 흑인학생들의 성적이 저조한데 진보들은, 교사가 다 백인일색이라 서로 익숙한 문화권 내에서 아이들을 더 잘 교육시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이므로 라티노나 흑인교사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하죠. 블로거는 고유한 문화나 인종적, 민족적 특성을 살리려고 하는 진보의 태도가 맹목적이라고 보는 것 같아요. 그는 또한 미국은 melting pot이어야 하지만 샐러드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하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면 어떤 선진문화에 모두 동화되어야 마땅한데 서로가 다양성이라는 미명 하에 따로국밥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이민자들 중 북유럽 인종이나 아시안들은 미국(선진)문화에 쉽게 동화되어 나름 무난하게 성공적인 삶을 많이들 살지만 라티노나 흑인들은 세월이 얼마가 흘렀건 제아무리 차별정책이 줄어들었건 사회경제적으로 열등함을 벗어나지 못하는 건 백인선진문화에 동화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 같아요. \'백인선진문화\'란 말을 쓰고 있지는 않지만 줄곧 culture와 assimilation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어요.
지금 미국에서 Sandra Bland사건이 이슈예요. 흑인인권을 위해 열심이던 여성인데 텍사스에 갔다가 방향등을 켜지 않은 채 차선을 바꿨다는 별 대단치도 않은 이유로 딱지를 떼였죠. 경찰이 기분이 나쁘냐는 둥, 담뱃불 꺼라는 둥 쓸데없는 말을 하더니 담뱃불 안 끄고 차에서 나오라는데 안 나왔다고 체포를 해서 감금시켜요. 그녀는 삼일 후 감옥에서 자살을 했어요. 이에 대한 어떤 사설글을 읽다가 문득 저 블로거가 생각났어요. 남의 입장에 서 보는 방법을 참 모르는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http://www.nytimes.com/2015/07/25/opinion/on-the-death-of-sandra-bland-and-our-vulnerable-bodies.html ) 사설을 쓴 흑인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편일텐데 운전하기 전에 면허증이며 뭐며 빠진 것 없나 단도리를 엄청 철저하게 한다고 했어요. 자신의 피부가 까맣기 때문에 더 신경을 쓰는 거예요. 그리고 인터넷에서 잠깐 지나가다 읽은 댓글에서 본 건데 흑인아들을 둔 엄마들은 바깥에 나가면 절대 조심하라고 그렇게 주의를 시킨대요. 세상은 네 편이 아니란 걸 철저하게 가르친대요.
문화차이를 언급했던 블로거가 제임스 플린이라는 학자를 언급해요. 플린 효과에 의하면 현대의 우리는 옛날 사람들보다 지능적으로 더 발달해서 보다 더 추상적인 사고라든지, A가 B라면, C가 D라면과 같은 가정적 사고도 월등히 잘 해서 남의 입장에 서 보는 공감력도 더 좋아지는 거라고요. 곧 지능의 발달이 도덕적 진화를 꾀한다고 이야기를 했죠. 그 블로거는 자신의 높은 지능과 도덕심을 등치시키면서도 여전히 흑인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그런 모순이 저는 실망스럽구요. 이 사람은 피터 싱어랑은 아무 관련이 없고 그냥 팬을 많이 거느리고 다니는 사람인가 보더라고요. 근데 전 그닥...
아...넘 길다는...이만해야겠어요 크크킁.
재밌는 Talks at Google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다른 테드쇼 계통인가했는데, 구글 본사에서 직원들을 위한 강의 세미나 자료이네요. 요즘은 인터넷으로 석학들의 강의를 쉽게 접할 수 있어서 참 좋은 세상입니다.
일반적으로 미국의 1%와 가지지 못한 자들, us vs them 이라는 흑인과 백인 혹은 타인종과의 갈등은 한국에서는 속사정을 잘 알지 못하므로 실제로 피부로 와닿기가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주제입니다. 우리나라에도 us vs them 이 있고 어느 문화에도 있겠지만서도 us 안에 속한 사람들이 them 이나... 더 보기
일반적으로 미국의 1%와 가지지 못한 자들, us vs them 이라는 흑인과 백인 혹은 타인종과의 갈등은 한국에서는 속사정을 잘 알지 못하므로 실제로 피부로 와닿기가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주제입니다. 우리나라에도 us vs them 이 있고 어느 문화에도 있겠지만서도 us 안에 속한 사람들이 them 이나... 더 보기
재밌는 Talks at Google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다른 테드쇼 계통인가했는데, 구글 본사에서 직원들을 위한 강의 세미나 자료이네요. 요즘은 인터넷으로 석학들의 강의를 쉽게 접할 수 있어서 참 좋은 세상입니다.
일반적으로 미국의 1%와 가지지 못한 자들, us vs them 이라는 흑인과 백인 혹은 타인종과의 갈등은 한국에서는 속사정을 잘 알지 못하므로 실제로 피부로 와닿기가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주제입니다. 우리나라에도 us vs them 이 있고 어느 문화에도 있겠지만서도 us 안에 속한 사람들이 them 이나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거나 교류할때의 이질감이 있기 마련인데 위의 강의에서도 결국 us 일 경우에는 them 에 대해서 어떻게 대하느냐가 이야기의 주제인것 같은데요. 개인의 도덕성이 나와 우리의 커뮤니티를 위해서는 의협심을 발휘하지만 내가 아닌 타커뮤니티와의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에 대해서는? 이러한 질문만 던져주는 것 같네요. 가장 교과서적인 강의인데요... 또한 한편의 심리학 교수님이 가장 심리학스러운 강의를 하신 것 같아요.
그런데 흥미로운건 듣는 게스트들이 강의대상이 구글 본사직원들이기때문에 여러가지 가정을 생각하고 들어야 하는 것 같아요.
중간에 민주당을 예로 들었는 것을 좀 더 확대해보면.... 구글이라는 가장 개인의 이익추구를 극대화해서 취직에 성공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성공은 과연 어떤 의미인가를
우회적으로 돌려서 이야기한 것 같은데요... 과연 그들 혼자만의 성공인가? 아니면 사회시스템이 있어서 가능한것이니 사회로 환원 돌려주어야 하는가..
미국의 아이비에서 늘 공통적으로 대학입시에서도 이야기하는 주제인... 나의 개인의 성취가 사회와 어떤식으로 환원이 될것인지 기여할 것인지 이런 문제를 생각해보게 하는 토크인데요.
반대로 우리나라 현실에서 본다면, 개인의 입신이 단지 가족과 개인의 노력에 의해서 결정된 후에 걱정없이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취직을 하더라도 교수가 되든 엔지니어가 되든지 온갖 스트레스와 사회질서가 무너진 혼돈 속에서 살기 때문에 개인의 안전이나 번영 이익도 겨우 유지하기때문에 그 이상을 논할처지가 어려운 것이 현실인것 같습니다.
반면에 미국에서는 어느 엘리트 직군에 이르게되면
커뮤니티 자체가 우리나라의 강남대치동과 같은....특정 커뮤니티에서 in-group, us 라는 동질감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안전 이익 번영은 사회시스템이 어느 정도 기본적으로 받혀주기때문에 개인은 그 이상의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white group 이나 중산층 이상의 커뮤니티에서는 altruism 기부를 할 수 있는 마음이 여건이 되는 것이구요.
흑인이나 소수 인종들은 사회 어디에서든지 늘 minority 라는 지위에서 자신의 위치를 위협받는 위치이니 투쟁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구요.
복잡한 미국 사회를 어찌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겠습니까만서도.... 결국 사회적으로 안정된 커뮤니티에 속해있는 구글 직원들에게 them 이라는 타커뮤니티와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
한 명의 피해자를 두고 5명을 구할 것인지 아니면 스위치만 까닥 눌러서 나 개인의 양심에 덜 가책을 느끼고 5인을 희생하면서 살것인지 적어도 안되었다는 그런 moral guilty 를 가지고 사니깐 괜찮은것 아닌가라고 보편적인 동의하에 살것인지를 개인의 선택으로 묻는데요.
우리나라든지 미국이든지 어디서든지 us vs them 을 따지지않고 전인류애적인 마음으로 타인을 배려하고 사랑하며 기부하고 돕는 사람들 그런 커뮤니티가 가장 이상적일터인데...
그런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 수록 건강한 사회가 되겠지요. 처음 실험에 나온 덴마크가 그래도 국민 복지 시스템이 잘 되어 있으니 국민들 마음이 너그러운 것 배려나 이타심 혹은 신뢰가 더 많게 데이타가 나오는 게 전혀 이상할것도 없구요. 미국은 철저하게 자본주의 사회이니 덴마크처럼 되기는 어렵겠지요.
일반적으로 미국의 1%와 가지지 못한 자들, us vs them 이라는 흑인과 백인 혹은 타인종과의 갈등은 한국에서는 속사정을 잘 알지 못하므로 실제로 피부로 와닿기가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주제입니다. 우리나라에도 us vs them 이 있고 어느 문화에도 있겠지만서도 us 안에 속한 사람들이 them 이나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거나 교류할때의 이질감이 있기 마련인데 위의 강의에서도 결국 us 일 경우에는 them 에 대해서 어떻게 대하느냐가 이야기의 주제인것 같은데요. 개인의 도덕성이 나와 우리의 커뮤니티를 위해서는 의협심을 발휘하지만 내가 아닌 타커뮤니티와의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에 대해서는? 이러한 질문만 던져주는 것 같네요. 가장 교과서적인 강의인데요... 또한 한편의 심리학 교수님이 가장 심리학스러운 강의를 하신 것 같아요.
그런데 흥미로운건 듣는 게스트들이 강의대상이 구글 본사직원들이기때문에 여러가지 가정을 생각하고 들어야 하는 것 같아요.
중간에 민주당을 예로 들었는 것을 좀 더 확대해보면.... 구글이라는 가장 개인의 이익추구를 극대화해서 취직에 성공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성공은 과연 어떤 의미인가를
우회적으로 돌려서 이야기한 것 같은데요... 과연 그들 혼자만의 성공인가? 아니면 사회시스템이 있어서 가능한것이니 사회로 환원 돌려주어야 하는가..
미국의 아이비에서 늘 공통적으로 대학입시에서도 이야기하는 주제인... 나의 개인의 성취가 사회와 어떤식으로 환원이 될것인지 기여할 것인지 이런 문제를 생각해보게 하는 토크인데요.
반대로 우리나라 현실에서 본다면, 개인의 입신이 단지 가족과 개인의 노력에 의해서 결정된 후에 걱정없이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취직을 하더라도 교수가 되든 엔지니어가 되든지 온갖 스트레스와 사회질서가 무너진 혼돈 속에서 살기 때문에 개인의 안전이나 번영 이익도 겨우 유지하기때문에 그 이상을 논할처지가 어려운 것이 현실인것 같습니다.
반면에 미국에서는 어느 엘리트 직군에 이르게되면
커뮤니티 자체가 우리나라의 강남대치동과 같은....특정 커뮤니티에서 in-group, us 라는 동질감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안전 이익 번영은 사회시스템이 어느 정도 기본적으로 받혀주기때문에 개인은 그 이상의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white group 이나 중산층 이상의 커뮤니티에서는 altruism 기부를 할 수 있는 마음이 여건이 되는 것이구요.
흑인이나 소수 인종들은 사회 어디에서든지 늘 minority 라는 지위에서 자신의 위치를 위협받는 위치이니 투쟁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구요.
복잡한 미국 사회를 어찌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겠습니까만서도.... 결국 사회적으로 안정된 커뮤니티에 속해있는 구글 직원들에게 them 이라는 타커뮤니티와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
한 명의 피해자를 두고 5명을 구할 것인지 아니면 스위치만 까닥 눌러서 나 개인의 양심에 덜 가책을 느끼고 5인을 희생하면서 살것인지 적어도 안되었다는 그런 moral guilty 를 가지고 사니깐 괜찮은것 아닌가라고 보편적인 동의하에 살것인지를 개인의 선택으로 묻는데요.
우리나라든지 미국이든지 어디서든지 us vs them 을 따지지않고 전인류애적인 마음으로 타인을 배려하고 사랑하며 기부하고 돕는 사람들 그런 커뮤니티가 가장 이상적일터인데...
그런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 수록 건강한 사회가 되겠지요. 처음 실험에 나온 덴마크가 그래도 국민 복지 시스템이 잘 되어 있으니 국민들 마음이 너그러운 것 배려나 이타심 혹은 신뢰가 더 많게 데이타가 나오는 게 전혀 이상할것도 없구요. 미국은 철저하게 자본주의 사회이니 덴마크처럼 되기는 어렵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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