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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3/01/17 11:34:23 |
Name | 몸맘 |
Subject | 글이 너무 깁니다. 티타임게시판에 쓸까요? |
먹먹하다는 말이 유행한 건 2015년쯤부터이지 않나 싶어요. 정확하진 않아요. 예전엔 소설 속에서나 가끔 나오던 표현이었는데 그때쯤부터 온라인에서 무슨 뉴스만 있으면 먹먹하다는 댓글이 달리더라고요. 그때 누군가에게 "먹먹하다는 말이 너무 싫다."라고 얘기했는데 "나도."라는 사람이 있어서 친해진 기억이 나요. 그런데 왜 싫은지에 대해 얘기하진 않았어요. 몰랐거든요. 먹먹하다는 문장이 싫은데 왜 싫은지 설명을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생각이 났어요. 먹먹하다가 왜 싫은 걸까. 작년에 눈치 채서 지금 글을 써요. 먹먹하다는 체념의 언어인데 그걸 연민의 언어로 써서 싫어한 거였어요. 먹먹한 마음은 예를 들면, 아무 잘못 없는 사위가, 가령 국가적으로 호랑이도 무서워했던 70년대 국가보안법으로, 경찰들에게 잡혀가는데 장모가 손주를 업고 그걸 지켜볼 수밖에 없을 때 장모의 마음이 먹먹한 거라고 생각해요. 부정과 분노를 거쳐 타협을 해야만 하는 마음, 어쩔 수 없을 때, 이때 먹먹하죠. 그런데 부정과 분노가 있어야 할 곳에 먹먹하다는 표현들이 뒤덥었어요. 노동자가 산재로 죽었다는 뉴스에 먹먹하다, 복지 사각지대에 자살한 사람들이 뉴스에 나왔을 때 먹먹하다.... 아니 화를 내고 싸우자고..... 그냥 손 놓고 먹먹하다면 어쩌자고, 댓글로만이라도 힘이 되면 좋겠다고? 장난? https://kongcha.net/timeline3/30730 이 글 보고 생각이 나서 끄적이는 건데, 타인에 대한 연민이 있다면 자신이 가진 힘으로 싸우면 좋겠어요. 덧. 레비나스의 '조건 없는 환대' 개념도 이때쯤부터 알려지지 않았나 싶어요. 연민이 소득탄력성 1을 넘은 때 같기도 하네요.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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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연민이 바로 연대로 이어져서 자신의 힘을 모아 행동할 수 있을 테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타협에 타협을 거듭하다 행동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마도 저?)
그럼 먹먹하다는 일순간 타협이였지만 행동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같은 표현이 될 수도 있죠.
그저 타협에 머무는 단어라기엔 공감을 토대로 하고 있으니까요.
그나저나 요즘 세상은 연민을 사치라고 하는군요.
하지만 제가 그저 알고 있는 것은 상황이 어찌될 지 모를 때일수록 우린 서로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점이죠.
연민은...친절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고요.
타협에 타협을 거듭하다 행동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마도 저?)
그럼 먹먹하다는 일순간 타협이였지만 행동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같은 표현이 될 수도 있죠.
그저 타협에 머무는 단어라기엔 공감을 토대로 하고 있으니까요.
그나저나 요즘 세상은 연민을 사치라고 하는군요.
하지만 제가 그저 알고 있는 것은 상황이 어찌될 지 모를 때일수록 우린 서로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점이죠.
연민은...친절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고요.
저는 연민이나 그런 감상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니지만 한마디 얹어봅니다. 여튼 세상은 온/오프가 아닌것 같습니다. 빨강과 파랑 사이에 무수한 색이 있듯이 분노와 무관심 사이에도 다양한 포지션과 감정이 있을거에요.
그리고 보수주의자로서는 부정과 분노 같은 극단적인 감정/행동 보다는 연대나 연민 같은 것들이 느리지만 더 강하고 확실하게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보수주의자로서는 부정과 분노 같은 극단적인 감정/행동 보다는 연대나 연민 같은 것들이 느리지만 더 강하고 확실하게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합니다.
되게 성의없게 쓴 글인데 티타임에 소환되서 좀 민망하네요ㅋㅋㅋ... 제가 좀 쫄보 기질이 있어서 발칙한 생각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무서워합니다. 그런 경우 보통 하는 짓이 결론을 지우고 그 결론에 도달하게끔 만들어준 전제만 아주 희미하게 던져놓고 도망가는 것이죠. 저 글이 대표적인데 사실 저는 연민과 소득탄력성과의 관계에는 큰 관심이 없었어요. 사치재라는 단어의 통상적인 쓰임을 생각해보면 누가 그런 것을 떠올릴까요. 일반인의 관념체계에서 사치재는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과도한 계급적 소비로 표상될 뿐이죠. 그렇다면 과연 한국에서... 더 보기
되게 성의없게 쓴 글인데 티타임에 소환되서 좀 민망하네요ㅋㅋㅋ... 제가 좀 쫄보 기질이 있어서 발칙한 생각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무서워합니다. 그런 경우 보통 하는 짓이 결론을 지우고 그 결론에 도달하게끔 만들어준 전제만 아주 희미하게 던져놓고 도망가는 것이죠. 저 글이 대표적인데 사실 저는 연민과 소득탄력성과의 관계에는 큰 관심이 없었어요. 사치재라는 단어의 통상적인 쓰임을 생각해보면 누가 그런 것을 떠올릴까요. 일반인의 관념체계에서 사치재는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과도한 계급적 소비로 표상될 뿐이죠. 그렇다면 과연 한국에서 명품은 사치재일까라는 의문이 드는 것입니다. 모두가 사고 싶은데 돈 없어서 못 사는 재화라면 그건 사치재가 아니니까요. 명품 뿐만 아니라 해외여행, 오마카세도 마찬가지죠.
저는 꼬꼬마 시절(90~00년대) 골프라는 스포츠를 혐오했습니다. 그 혐오를 정당화하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근원을 파고들어가 보면 개노잼처럼 보여서 그런게 제일 컸지 않나 싶어요. 골프는 운동의 90%가 걷기거든요. 나는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저런 개노잼 운동을 할 것 같지는 않은데 수억원짜리 회원권을 보고 있으면 돈지랄이다 싶은거죠. 사치재라는 단어에는 이처럼 "돈 벌고 고작 하는 일이 저딴거라니" 와 같은 분노가 응축되어 있는 것이죠.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와 여기는 정말 쓰레기장이구나 싶은 곳들이 많아요. 좀 변태같지만 저는 그런 곳을 자주 눈팅합니다. 저는 화를 잘 못 느끼는 성격(이라기 보다는 화라는 감정을 빨리 메타화하는 것에 가깝지만)이라서 누군가의 주체하지 못하는 분노가 터져나오는 것을 보는 것이 정말 신기하고 그 배경을 분석하고 가설을 세워보는 것에 재미를 느끼거든요. 근데 그런 댓글들 속에 연민, 그리고 그 언저리에 있는 감정들을 향하는 레토릭을 보면 아 이 사람들은 이걸 사치라고 인식하고 있구나 싶을 때가 많아요.
그러면서 서로의 패러다임 차이를 인식하는 것이죠. 그리고 시대에 따른 패러다임의 쉬프트도 인식하게 되고요.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는데 정작 쓴 글은 이상한 소득탄력성 운운하다 끝나는게 좀 웃기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연해 봤네요.
추가로 저는 먹먹하다는 표현을 좋아합니다. 저는 화 만큼이나 슬픔도 정말 경이로운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꼬꼬마 시절(90~00년대) 골프라는 스포츠를 혐오했습니다. 그 혐오를 정당화하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근원을 파고들어가 보면 개노잼처럼 보여서 그런게 제일 컸지 않나 싶어요. 골프는 운동의 90%가 걷기거든요. 나는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저런 개노잼 운동을 할 것 같지는 않은데 수억원짜리 회원권을 보고 있으면 돈지랄이다 싶은거죠. 사치재라는 단어에는 이처럼 "돈 벌고 고작 하는 일이 저딴거라니" 와 같은 분노가 응축되어 있는 것이죠.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와 여기는 정말 쓰레기장이구나 싶은 곳들이 많아요. 좀 변태같지만 저는 그런 곳을 자주 눈팅합니다. 저는 화를 잘 못 느끼는 성격(이라기 보다는 화라는 감정을 빨리 메타화하는 것에 가깝지만)이라서 누군가의 주체하지 못하는 분노가 터져나오는 것을 보는 것이 정말 신기하고 그 배경을 분석하고 가설을 세워보는 것에 재미를 느끼거든요. 근데 그런 댓글들 속에 연민, 그리고 그 언저리에 있는 감정들을 향하는 레토릭을 보면 아 이 사람들은 이걸 사치라고 인식하고 있구나 싶을 때가 많아요.
그러면서 서로의 패러다임 차이를 인식하는 것이죠. 그리고 시대에 따른 패러다임의 쉬프트도 인식하게 되고요.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는데 정작 쓴 글은 이상한 소득탄력성 운운하다 끝나는게 좀 웃기다는 생각이 들어서 부연해 봤네요.
추가로 저는 먹먹하다는 표현을 좋아합니다. 저는 화 만큼이나 슬픔도 정말 경이로운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음, 덧붙입니다.
폭포가 아름다운데 자신이 폭포 안에 있으면 생의 위협이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스펙타클한 모습이 아름답죠. 저는 먹먹하다도 비슷하다고 봐요. 거리감. 멀리서 보는 이가 하는 이야기. 천인공노할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화가 나거나, 애가 닳거나 하겠지요. 그럼 그런 표현을 쓰면 되겠지요. 근데 왜 먹먹하다라는 표현을 쓸까요?
자신의 안정을 헤치지 않는 한에서 슬픔을 '과장'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먹먹하다는 사전적으로 보면 가슴이 답답한 거예요. 하지만 심혈관질환으로 가슴이 답답하다고 먹먹하다는 표현을... 더 보기
폭포가 아름다운데 자신이 폭포 안에 있으면 생의 위협이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스펙타클한 모습이 아름답죠. 저는 먹먹하다도 비슷하다고 봐요. 거리감. 멀리서 보는 이가 하는 이야기. 천인공노할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화가 나거나, 애가 닳거나 하겠지요. 그럼 그런 표현을 쓰면 되겠지요. 근데 왜 먹먹하다라는 표현을 쓸까요?
자신의 안정을 헤치지 않는 한에서 슬픔을 '과장'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먹먹하다는 사전적으로 보면 가슴이 답답한 거예요. 하지만 심혈관질환으로 가슴이 답답하다고 먹먹하다는 표현을... 더 보기
음, 덧붙입니다.
폭포가 아름다운데 자신이 폭포 안에 있으면 생의 위협이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스펙타클한 모습이 아름답죠. 저는 먹먹하다도 비슷하다고 봐요. 거리감. 멀리서 보는 이가 하는 이야기. 천인공노할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화가 나거나, 애가 닳거나 하겠지요. 그럼 그런 표현을 쓰면 되겠지요. 근데 왜 먹먹하다라는 표현을 쓸까요?
자신의 안정을 헤치지 않는 한에서 슬픔을 '과장'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먹먹하다는 사전적으로 보면 가슴이 답답한 거예요. 하지만 심혈관질환으로 가슴이 답답하다고 먹먹하다는 표현을 쓰진 않아요. 자신에게 벌어진 어떤 사건에 대한 체념이고 자신이 어찌할 수 없을 때 먹먹하죠. 먹먹하다는 그런 표현이에요. 싸울 수 있음에도 안 싸우고 일단 화가 날 때, 혹은 싸움을 준비할 때 쓰는 표현이 아니에요. (싸우려면 연민이 아닌 연대를 해야 해요.) 물론 개인적으로 그런 분들도 있겠죠. 먹먹함에 머무는 건지, 그 이상을 예비하는지 저는 몰라요.
제가 하는 이야기는 먹먹하다가 원래 쓰이던 맥락이 있었는데 그걸 차용해서 자신을 치장하는 데 쓰는 게 전 사회적으로 유행이 되었다, 그 심리가 밉다는 얘기예요. 저 멀리서 먹먹하다 먹먹하다 하는데, 실제로는 당한 사람들만 먹먹해요.
슬프면 슬픈 말을 쓰면 되고, 화가 나면 화를 뜻하는 말을 쓰면 돼요. 그걸 먹먹하다로 표현하는 건 당한 사람들의 감정을 뺏어다가 자신의 감정인 것처럼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거죠.
폭포가 아름다운데 자신이 폭포 안에 있으면 생의 위협이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스펙타클한 모습이 아름답죠. 저는 먹먹하다도 비슷하다고 봐요. 거리감. 멀리서 보는 이가 하는 이야기. 천인공노할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화가 나거나, 애가 닳거나 하겠지요. 그럼 그런 표현을 쓰면 되겠지요. 근데 왜 먹먹하다라는 표현을 쓸까요?
자신의 안정을 헤치지 않는 한에서 슬픔을 '과장'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먹먹하다는 사전적으로 보면 가슴이 답답한 거예요. 하지만 심혈관질환으로 가슴이 답답하다고 먹먹하다는 표현을 쓰진 않아요. 자신에게 벌어진 어떤 사건에 대한 체념이고 자신이 어찌할 수 없을 때 먹먹하죠. 먹먹하다는 그런 표현이에요. 싸울 수 있음에도 안 싸우고 일단 화가 날 때, 혹은 싸움을 준비할 때 쓰는 표현이 아니에요. (싸우려면 연민이 아닌 연대를 해야 해요.) 물론 개인적으로 그런 분들도 있겠죠. 먹먹함에 머무는 건지, 그 이상을 예비하는지 저는 몰라요.
제가 하는 이야기는 먹먹하다가 원래 쓰이던 맥락이 있었는데 그걸 차용해서 자신을 치장하는 데 쓰는 게 전 사회적으로 유행이 되었다, 그 심리가 밉다는 얘기예요. 저 멀리서 먹먹하다 먹먹하다 하는데, 실제로는 당한 사람들만 먹먹해요.
슬프면 슬픈 말을 쓰면 되고, 화가 나면 화를 뜻하는 말을 쓰면 돼요. 그걸 먹먹하다로 표현하는 건 당한 사람들의 감정을 뺏어다가 자신의 감정인 것처럼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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