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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8/17 12:10:41수정됨
Name   호타루
Subject   교회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여기에 적습니다.

저는 교회와 연을 끊은 지 좀 오래 되었습니다. 심적으로 등을 돌린 건 2009년. 그 뒤로 약 3ㅡ4년간은 열렬한 반기독교주의자로 살았고, 세상의 풍파를 겪은 지금은 글쎄요. 불가지론자와 이신론자 그 사이 어디쯤에 있습니다.

저의 신에 대한 관점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그걸 내가 어찌 앎? 근데 비록 고전역학에 한정되긴 하지만 수식이 매우 깔끔하게 떨어지는 걸 보면 무신론자도 신이라는 게 있긴 한가보구나 싶어질 정도일 듯. 그래서 나는 신은 일단 있다고 생각. 그 신이 기독교계에서 말하는 야훼일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보고 예수도 인정. 요세푸스 플라비우스의 기록도 기록이지만 전세계 많은 사람들의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성인이 실제로는 그런 거 없었던 존재라면 그건 좀 쵸큼 슬플 듯. 다만, 난 적어도 신이 자비로운 존재인지는 모르겠음. 즉 성경에서 찬양하는 것처럼 신이 자애롭고 모두를 사랑한다? 난 이건 못 믿겠음. 나중에 염라대왕이건 야훼건 부처님이건 누구건 만나게 된다면 차 한 잔 하며 따지고 싶음. 말해봐요. 대체 내게 아니 인간에게 왜 그랬어요?



원래부터 이런 스탠스는 당연히 아니었습니다. 저에게는 교회는 귀찮아도 가기는 가야 하는 곳이었죠. 아침잠이 많아서 가족과는 따로 오후 예배를 드려서 그렇지. 그런 저를 등돌리게 만든 설교가 하나 있었고, 또 같은 해에 저런 분이 목회자라면 얼마나 좋았을꼬 하며 매우 안타까워했던 설교가 있었습니다. (전자는 담임목사가, 후자는 다른 전도사가 설교를 진행하였습니다.) 시기상으로는 교계에 등을 돌린 게 먼저입니다만 가족들에게 대놓고 반기독교임을 공언할 수는 없어서 어거지로 교회를 가던 시기에 들은 너무 좋은 설교라 그런지 안타까움이 더했던 것 같습니다.



먼저 저를 등돌리게 만든 설교의 내용입니다.

09년 여름날 아마 7월쯤이었을 겁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에 대한 충격이 가시지 않던 그 해 그 문제의 설교 내용은 지옥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평범한 믿지 않는 자 지옥 가리라는 설교에서 문제의 부분은 부처도 지옥간다, 자살한 사람도 지옥간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믿지 않고 자살했으니 지옥에 간다. 그 순간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보를 몇 번이고 다시 읽을 수밖에 없었죠.

아 이건 아닌데. 가뜩이나 신이라는 존재에 조금씩 회의가 들고 있었는데 이걸 여기서 확신을 시켜주네. 이런 소리를 하는 사람이 목회자고 이게 현실이야? 내가 아는 신이라면 이런 소리를 했을까? 그건 아닐 것 같은데...

저는 그 순간 반기독교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저에게 안타까움을 주었던 설교 내용입니다.

성경에 보면 여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죠. 남편이 다섯이 있으나 그 중 누구도 너의 진짜 남편이 아니다. 대부분 여기에서 그 여인이 창녀였다고 해석을 합니다만, 그 전도사님이였나 부목사님이였나 아무튼 그분은 새로운 해석을 하시더군요.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오늘날의 잣대로 성경 말씀을 해석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당시 시대상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여기서 1차로 뒤통수를 크게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죠.

이어서...

[당시 사회상으로는 결혼을 일찍 하는 편이었고 사망률도 높았던 시기입니다. 그러므로 이 여자가 꼭 창녀였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어요. 가능성이 높은 건 결혼하는 족족 남편이 죽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젊은 나이에 남편을 계속 잃은 이 여인의 심적인 고통이 얼마나 컸을 것이며, 또 주변에서는 얼마나 손가락질을 했겠습니까. 불운한 여자, 신의 징벌이라며 수군대고 누구도 가까이 하는 사람이 없으니 남들이 안 보는 시간대에 슬그머니 혼자 나와서 낑낑대며 물을 뜨니 연약한 여인이 또 얼마나 힘들게 물을 뜨겠습니까. 그렇게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데 예수님이 나타나시는 겁니다. 그리고 대화를 하고, 위로를 받고, 여인은 힘들게 길던 물까지 내동댕이치고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존재를 알리죠? 예수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힘겨운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 위로가 되시고 참된 기쁨을 주시는 분입니다...] (후략)

진심으로 이 때 안타까움이 들었습니다. 내가 이런 분께 설교를 들었으면 반기독교자가 되어 신을 배반하고 야훼의 이름을 저주하며 부정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왜 이런 분을 이토록 늦게 만났을까. 이미 돌아선 마음 다시 되돌아가려면 한 10년 걸리겠지만 참으로 얄궃구나.

그 분은 임시 땜빵설교 정도의 역할이었던지라 그 분을 다시 뵐 수는 없었습니다만, 만에 하나 아니 억의 하나라 해도 다시 만나게 된다면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네요. 그 때 참으로 위안이 많이 되는 설교를 들었노라고, 그리고 그 때 그 설교를 하시던 목사님의 얼굴은 참으로 즐거워 보였노라고. 참된 신의 증언자가 있으면 아마도 그런 모습이었을 거라고요.



최근 개신교계를 보고 있자니 많은 안타까움과 착잡함이 들어서 개인적인 경험을 썼습니다.



아, 지금은 야훼에 대한 반감이 많이 누그러진 상태인데... 이건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역할이 큽니다. 아르헨티나였나요 무신론자인 아버지를 잃은 꼬마의 눈물을 위로해 주는 영상도 있었고, 이전보다 동성애 등에 대해서 좀더 열리고 넓은 마음을 가지신 분인 듯하여 제가 매우 존경하는 분입니다. 천주교에 대한 호감이 생긴 것은 덤이구요. 물론 그도 인간이니 항상 옳을 수는 없고 희로애락과 생로병사를 달고 사는 운명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시는 분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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