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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 25/07/19 13:44:38 |
| Name | 카르스 |
| Subject | 서구 지식인의 통제를 벗어난 다양성의 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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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지구촌을 여러가지 관점으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키워드 하나를 고르자면 '통제를 벗어난, 날것의 다양성의 시대'을 택하겠습니다. 분명히 지금 세계는 다양합니다.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중동과 북아프리카, 남아시아, 유럽, 북아메리카/오세아니아, 중남미 아메리카는 각기 다른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한때 지구촌이 생활수준이 (높은 지점에서) 수렴할 것이라는 Solow, 세계가 자유민주주의로 수렴할 것이라는 Fukuyama, 생활수준이 올라가면 민주화가 된다는 Lipset, 자유주의적이고 세속적인 문화로 수렴할 것이라는 Inglehart 등 석학들의 기대는 기껏해야 부분적인 성립에 그쳤습니다. 그렇게 지역별로 다른 국가체제, 경제, 사회, 문화구조를 맛볼 수 있지요. 문제는 '다양함'의 양상에 있습니다. 서구의 좌파 내지 리버럴 지식인들은 세계의 다양성을 높게 평가했지만, 그 다양성도 사실은 세계의 자유주의, 민주주의, 세속주의, 생활수준의 수렴이 전제된 것이었죠. 그들은 역사나 문화/종교적 양상의 다양성을 원했지만,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비서구의 '서구식 보편주의로 나아가는 씨앗'에 (지금 보기엔 무리하게) 희망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위의 학자들의 이론이 성립하지 않으면서, 다양성은 역사나 문화/종교적 양상을 넘어서 정말로 모든 것의 영역으로 나아갔습니다. 서구 지식인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1) 생활 수준의 격차(냉전 붕괴 이후 나아지는 듯 했더니 다시 정체했습니다)의 좁혀지지 못함, 2) 보편적인 가치 즉 자유민주주의, 자유주의적이고 세속적인 문화가 보편화되는데 실패함이 현실이 되었거든요. 그래서 지금 지구촌의 '다양성'은 서구 지식인들의 관점에서 '선진/후진' 내지 '옳음/틀림'의 구도로 받아들여야 할 영역까지 '다름' '개성'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생활수준이 낮은 나라' vs '생활수준이 높은 나라' '자유민주주의 체제' vs '권위주의적인 체제' '(성문법이나 노동관례, 노조의 협상력 등의 관점에서) 노동권이 낮은 나라' vs '노동권이 높은 나라' '여성의 권리가 가정에 머무르고 남성과 분리된 나라' vs '여성이 거의 남성과 동등하게 사회에서 활동하는 나라' 'LGBT에 사회가 적대적이며 심지어 처벌까지 하는 문화' vs 'LGBT를 사회가 수용하며 법적 보호를 받는 동거, 더 나아가 결혼까지 허용하는 문화' 더 나아가서, 자유민주주의적이고 세속적인 지역의 문화가 그 반대쪽으로부터 악영향을 받기에 이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통제를 벗어난 다양성'의 시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만일 문제가 맞다면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우선 서구 지식인들의 오만을 버리는 데 생각해야 합니다. 비서구가 잘못되었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설명하기 전에, 왜 그들의 이론과 기대가 현실화되지 못했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도덕적인 성찰은 덤이고요. 더 나아가, 서구가 우월하다는 전제를 버리고 비서구에서 서구가 배울 건 배워야겠다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한 예로, 동북아시아 민주주의 지역의 코로나 성취나 혁신경제는 유럽에서도 생각해볼 만한 게 많지요. 그러면 통제를 벗어난 다양성이라고 하지만, 거기에서도 서로가 서로를 배운다는 진정한 의미의 다양성을 찾게 될 지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과 말레이시아는 통제를 벗어난 다양성의 관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사례들입니다. 전자는 생활수준이 올라가면서 큰 틀에서는 서구로 수렴했는데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애매한 면도 있는 나라고, 후자는 생활수준이 올라갔는데도 노골적으로 서구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나라입니다. 한국은 서구 바깥의 동북아시아 국가로서 선진국 수준의 생활수준을 가지고 있고,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세속주의의 큰 틀은 지켜지는 나라입니다. '아시아에서는 자유민주주의가 맞지 않는다'는 주장을 헛소리로 만들어버리는 나라죠. 하지만 동시에 위에서 노동권, 여성 권리, LGBT에 있어서 불완전한 수준의 성취를 보이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한국은 과거 지식인들이 이야기한 수렴론을 대체로 지지하면서도, 다소 애매한 면도 있는 나라입니다. 말레이시아는 한국보다 '다양성'의 측면에서 더 나아가는 케이스입니다. 서구 바깥의 동남아시아 국가로서, 한국보단 아래여도 꽤나 잘 사는 나라입니다. 하지만 독특한 근현대사와 Nation Building 과정에서 기인한 다종다양한 민족/종교분포와 부미푸트라, 강한 이슬람 정체성, 불완전한 민주주의 체제에서 볼 수 있듯이 민주주의, 자유주의, 세속주의 등의 큰 틀이 지켜지지 않고, 지켜지더라도 서구와는 다른 방식인 나라입니다. 그리고 노동권은 모르겠고 여성 권리, LGBT 권리는 많이 낮습니다. LGBT는 동성 간 성행위로 형사처벌 가능한 나라에다에서 끝이고, 여성 권리는 고용률 등에서는 아주 나쁘지 않은데(여행하면서 히잡 쓰고 일하는 말레이 여성들을 적지 않게 봅니다) 몇몇 법적, 제도적 권리에서 극도로 나쁘게 나쁩니다. 한국이 생활수준 대비 이런 권리가 낮다 정도라면, 말레이시아는 그냥 outlier 수준으로 뒤떨어집니다. 한국인으로서 말라카->쿠알라룸푸르->이포->페낭으로의 말레이시아 여행을 선택한 건 갈 데가 없기도 했지만 위와 같은 '다양성'을 보기 위한 것도 있습니다. 저의 정체성인 한국 국적의 한국도 세계적으로 특이하고, 여행 대상인 말레이시아도 특이합니다. 실제로 위 틀이 근거가 있었는지, 말레이시아는 지금까지 해외여행했던 일본, 중국, 대만, 몽골,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등의 국가들과도 확실히 다르다는 느낌을 줬습니다. 문화/종교는 기본이고 근현대사나 국가 형성 과정, 다문화사회성 자체가 많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이는 경제사와 경제발전, 문화에 관심이 많은 저에게 큰 충격이 되었습니다. 이런 Big Question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 건 이런 게 컸습니다. 이 이야기를 티타임에서 자세히 풀어보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풀어야할지 고민이 되네요.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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