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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1/07/21 20:43:31수정됨 |
Name | 순수한글닉 |
File #1 | 스크린샷_2021_07_21_오후_8.27.39.png (1.42 MB), Download : 30 |
Subject | 소우주를 여행하는 아미를 위한 안내서: 2 |
제 귀에 꽂힌 방탄소년단의 노래는 〈00:00(zero o’clock)〉입니다. (이전에도 〈불타오르네(FIRE)〉, 〈작은 것들을 위한 시〉, 〈IDOL〉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주의 깊게 듣진 않았어요.) 이걸 하필이면 [자정]에 그것도 [침대에서] 들은 것이 입덕행 급행열차를 탄 것과 진배없었죠. “곳곳에 덜컥거리는 과속방지턱” “집에 와 침대에 누워 생각해 봐 내 잘못이었을까 어지러운 밤 문득 시곌 봐 곧 12시” “초침과 분침이 겹칠 때 세상은 아주 잠깐 숨을 참아” 원래 멜로디에 취해 가사를 잘 못 듣는 타입인데, 묘하게 그 노래는 가사가 귀에 콕콕 박히더라고요. 아마 그날 제가 수많은 과속방지턱을 마주 했기 때문이겠죠. 일생 처음으로 알고리즘이 골라 준 노래를 알아보려 스마트폰 화면을 다시 들춰보고 가수와 작사가를 찾아봤습니다. 방탄소년단의 노래였고, 작사가는 RM이었다는 것에 적잖은 충격을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 방탄소년단이라는 이름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뉴스에서 듣는 유명인의 이름이 아니라 한 아티스트로 다시 봤던 것 같아요. 〈00:00(zero o’clock)〉을 계기로 『MAP OF THE SOUL : 7』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는데, 다 듣고 나서 생각하니 제가 1시간 이상을 오직 음악을 듣는 데만 사용한 것이 무려 5년만이더라고요. 언니네이발관의 『홀로 있는 사람들』 이후로 처음이었습니다. 그전에는 그저 일상의 브금, 흥을 돋는 도구로 음악을 ‘이용’했어요. 이런 저에게 음악을 다시 느끼는 기쁨을 준 것이니, 이건 정말 귀하군요.... 튼 그러고나서 의문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내가 이것을 1시간 동안 들을 수 있던 원동력이 무엇일까? 내 마음이 이렇게 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의외로 이 답은 방탄소년단의 데뷔 음반을 듣는 것에서 풀렸습니다. 방탄소년단의 음악은 한 곡 한 곡 떼어서 들어도 좋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앨범 통으로, 실린 순서대로 들어 보기를 추천합니다. 요즘 시대 아이돌 답지 않게 Intro ⇒ Interlude ⇒ Outro 형식을 따르고 있고 그래서 곡을 순서대로 들으면 나름의 서사를 가집니다. 『MAP OF THE SOUL : 7』 앨범의 서사는 7년간의 자신들을 돌아보는 거였죠. (서사의 자세한 내용은 최대한 자제하고 소개할게요. 제 주관이 강해 다른 분들의 감상을 해칠까 염려되어서요.) RM의 〈Intro : Persona〉, 슈가의 〈Interlude : Shadow〉 제이홉의 〈Outro : Ego〉는 각각 방탄 초창기 음악을 샘플링하고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요. 〈Intro : Persona〉: 〈Intro : Skool Luv Affair〉 (2014년 작 『Skool Luv Affair』 1번 트랙) 〈Interlude : Shadow〉: 〈Intro : O!RUL8,2?〉 (2013년 작 『O!RUL8,2?』의 1번 트랙) *스피드웨건 ‘O!RUL8,2?’는 ‘oh! are you late, too?’ 의 줄임말입니다.〈Outro : Ego〉: 〈Intro : 2 COOL 4 SKOOL (Feat. DJ Friz)〉 (2013년 데뷔 싱글 『2 COOL 4 SKOOL』 1번 트랙) 제가 방탄의 데뷔 음반을 듣는 순간! 『MAP OF THE SOUL : 7』 앨범의 마지막 곡 〈Outro : Ego〉와 동일한 인트로가 데뷔 싱글의 첫 곡으로 나오더군요. 자신들의 현재는 과거와 연결되어 있으나 같지 않고, 오히려 더 발전하고 있음을 곡의 가사와 멜로디 뿐 아니라 앨범 구성, 구조로도 보여 준 셈입니다. 저는 이것을 듣고는 “이거 미친 그룹 아니야?”라고 육성으로 내뱉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 또한 (방시혁을 필두로 한) 누군가의 기획이겠습니다만, 적어도 방탄소년단 기획의 출발점은 일곱 명 멤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곱이 노래하고 싶은 날것 그대로의 원석을 기획사는 상품의 꼴을 갖출 수 있게 세공하는 느낌이었죠. 이쯤에서 저의 못났던 점을 하나 고백하자면, 저는 사실 ‘아이돌 음악이 음악이냐?(Agust D의 두 번째 믹스테이프 『D-2』 〈어떻게 생각해〉를 인용했습니다)’며 무시하던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기획사는 아티스트가 무엇을 노래하고 싶은지 그건 모르겠고 그저 대중들에게 멋있어 보이는 껍데기를 짠 다음 아이돌은 유명세를 쌓기 위해 비판 의식 없이 그 껍데기를 걸친 것에 다름없다는 선입견이 강했죠. (사실 지금이라고 이 선입견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아이돌은 나이가 들거나 혹은 불의의 사고로 지금과 같은 실력과 외모를 잃어버리면 언제든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는 인형 같은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MAP OF THE SOUL : 7』을 듣고 방탄소년단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들의 음악은 누군가가 만들어 낸 껍데기를 쓰고 있다고 하기에는 속에 자아가 너무 많아요. 〈Intro : Persona〉, 〈Interlude : Shadow〉, 〈Outro : Ego〉의 멜로디는 각자의 성격을 너무도 잘 표현하고 있고, 가사 또한 자신의 속내를 가감 없이 선보입니다. 제가 인상 깊었던 점은 세 노래의 가사에 모두 [유명세의 어둠]을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 언어가 너무도 다르다는 거예요. “나는 내가 개인지 돼진지 뭔지도 아직 잘 모르겠는데 / 남들이 와서 진주목걸일 거네” “내 그림자, 나는 망설임이라 쓰고 불렀네 / 걘 그게 되고 나서 망설인 적이 없었네.” 〈Intro : Persona〉 “도망쳐봤자 날 따라오는 저 빛과 / 비례하는 내 그림자 / 두려워 높게 나는 게 난 무섭지” “사람들은 뭐 말하지 저 빛 속은 찬란하네 / 근데 내 그림자는 되려 더 커져 나를 삼켜 괴물이 돼” “가장 밑바닥의 나를 마주하는 순간 / 공교롭게도 여긴 창공이잖아” 〈Interlude : Shadow〉 “문득 스쳐 가는 j-hope이 아닌 정호석의 삶 / 희망이란 없고 후회만 가득했겠지 till I die / 내 춤은 뜬구름을 잡을 뿐” “이젠 I don’t care 전부 내 / 운명의 선택 so we’re here” 〈Outro : Ego〉 저는 음악은 잘 모르지만 언어는 알아요. 10년 가까이 수많은 사람들의 못난 글 잘난 글 들여다보고 그 행간의 속뜻을 미뤄 짐작해 오면서 쓰는 단어, 문장 말미, 어순, 구두점을 보고 필자와 화자를 어느 정도 예측하는 힘을 길렀다고 믿어요. 이런 저의 능력(?)을 바탕으로 저 각 노래들의 화자가 자연인으로서의 멤버들과 매칭이 되더라고요.『MAP OF THE SOUL : 7』 앨범은 제게 덕질을 하면 할수록 더 애틋하고 귀한 음반인데, 덕질을 하면서 알게 되는 자연인으로서의 멤버 모습이 노래 속에서 절절히 느껴지기 때문이겠죠. 또 하나 절 미치게 만든 것이 전설의 [우함사바]입니다. 이게 갑자기 뭔 소린가 싶으실 텐데, ‘우리가 함께라면 사막도 바다가 돼’라는 문구의 줄임말이죠. 방탄소년단의 데뷔 음반에는 〈Skit : On The Start Line〉과 〈길〉이라는 트랙이 있어요. 멜론에서는 찾을 수 없을 텐데요, CD 음반에만 있는 히든 트랙이거든요. 스킷에서는 RM(그 당시 활동명 랩몬스터)이 독백해요. 연습생에서 드디어 데뷔하는 소감을 나직히 말하는데, “꼭 마치 내 앞에 푸르른 바다가 있다가도 뒤를 돌아보면라고 합니다. (가사 그대로 가져오는 것을 망설였는데, 이것은 어떻게 자를 수가 없네요. ㅠ_ㅠ 팬심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이 스킷과 연결되는 〈길〉도 아미라면 들어 보시길 추천해요. 처음 음악을 시작하던 멤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거든요.) 제 생각에는 RM도 이걸 쓰면서 바다와 사막 이야기가 데뷔 8년차까지 계속될 줄은 몰랐을 거예요. 하지만 자신의 마음에 살아 있는 상징은 어디서든 나오게 마련이죠. 데뷔 후 한 달이 지나서 사클에 발표한 곡 〈Born Singer〉에는 ‘신기루’라는 3음절로, 화양연화 pt.2의 수록곡 〈Whailen 52〉에서는 자신들을 바다에서 노래하는 고래로 비유하며, 사막과 바다 서사를 이어가요. 사막이나 바다 비유는 많은 아티스트들이 차용하니까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어요. 그 지점에서 이것을 진짜 방탄만의 의미를 더해 상징으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아미였습니다. 방탄소년단은 2015년 ‘Begins’ 콘서트에서 〈Born Singer〉를 무대에서 선보여요. 그리고 2017년 12월 ‘THE WINGS TOUR THE FINAL(이하 윙파콘)’에서 한 번 더 선보여요. (두 버전의 RM 파트 가사가 다르답니다. 데뷔하고 한 달 뒤, 빌보드를 처음으로 밟은 뒤 심정이 다르단 걸 반영한 거겠죠?) 윙파콘의 진짜 마지막 공연 날 아미들은 이벤트를 준비했어요. 〈Born Singer〉가 나오는 순간 다 같이 슬로건 피켓을 든 거예요. 그 슬로건 문구가 ‘[우리 함께라면 사막도 바다가 돼]’입니다. (사진으로 보시는 그것!) 슬로건의 앞면은 황금색인데요, 뒷면은 바다처럼 물결이 인쇄되어 있어요. 아미들은 노래 중간에 다 같이 슬로건을 뒤집어 방탄소년단에게 바다를 보여 주죠. 그렇게 신기루 3음절로만 사막을 어렴풋이 읊조리던 노래는 방탄과 아미의 관계 속에서 사막과 바다라는 서사와 상징을 갖게 됩니다. 2017년에 발표한 음반 『LOVE YOURSELF 承 'Her'』에도 히든 트랙이 있는데요, 이건 제목이 아예 〈바다〉랍니다. 이 곡의 가사는 한 부분만 가져 올게요. 아마 이 한 문장만으로 사막과 바다 서사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결국 신기루는 잡히고 현실이 됐고 두렵던 사막은 우리의 피땀눈물로 채워 바다가 됐어” 그럼 여기서 사막과 바다 이야기는 끝일까요? 사막과 바다는 이제 뭔가를 하나씩 더 얹으면서 방탄 노래에서 재창조되고 있어요. 2018년에 나온 『LOVE YOURSELF 轉 'Tear'』의 수록곡 〈Love Maze〉는 윙파콘에서 선보인 아미들의 슬로건 문구를 차용해 “우리가 함께면 끝이 없는 미로조차 낙원”이라고 말하고 『MAP OF THE SOUL : 7』 앨범의 〈Make It Right〉에서는 “사막과 바다들을 건너 넓고 넓은 세계를”이라고 말합니다.사실 이 두 노래는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사랑 노래 같지만 아미에게는 애절한 팬 송으로 들려요. (1편에서 말했듯이 방탄소년단의 음악을 다각도로 해석할 수 있어서 정말 매력적이랍니다.) 그리고 최근 열린 여섯 번째 머스터 소우주(SOWOZOO)의 비디오 자료는 화성 사막에서 바다가 보이는 낙원으로 가는 이야기예요. *스피드웨건: 머스터(MUSTER)는 원래 병사 소집을 말하는 군대 용어죠. ================================================================================================= 얼마 전 엄마와 드라이브를 하는데, 엄마가 이렇게 묻더라고요. “세월이 흘러서, 정말 많이 흘러서 말이야. 방탄소년단의 노래가 비틀즈의 음악처럼 고전으로 남을까? 세대를 넘어서도 듣는 사람들이 있을까?”저는 망설임 없이 그럴 것이라고 말했어요. 팬심도 있겠지만 ㅎㅎ 멜로디, 가사를 뛰어 넘어서 소년단은 소년단이 [그 당시 현재 하고 싶은 노래]를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하고 있거든요. 그들의 음악은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대체가 안 되는 걸 확신해요. 나이가 들거나 혹은 불의의 사고로 지금과 같은 모습을 잃어버리더라도 말이죠. 사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 많아요. 〈상남자〉와 〈작은 것들을 위한 시〉는 방탄소년단의 성장을 단번에 보여 줘요. 그리고 방탄과 아미가 우주에 진심으로 된 계기도 있고요. 독서를 하면 앨범의 컨셉과 구조를 더 잘 이해할 건덕지도 생깁니다. (방탄소년단 굿즈 쇼핑몰에서 고전 도서를 판 적도 있어요.) 이걸 한 편에 다 넣으려고 했는데, 전 안내서를 만들기엔 너무도 내 얘기가 하고 싶은가 봐요. ㅜㅜ 우선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혹시 홍차넷 선생님들께서 괜찮으시다면 마음에 남은 이야기를 또 하나둘 풀어 볼게요.저번 글에 보내 준 응원과 리플은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텍스트로만 전한다는 게 염치없을 정도로 감사해요. 안티테제 편집자로 있는 직장이 사막이면 홍차넷은 바다일지도.....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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