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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1/02/04 09:27:53 |
Name | 순수한글닉 |
Subject | 오늘부터 5월까지 덕수궁미술관에서는 |
*우선 저는 전시회 관계자가 아님을 밝힙니다 ㅎㅎ 5월 30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에서는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전시가 열립니다. 업무상 개관 전에 볼 기회가 있었어요. 업무니까 털레털레 갔다가 '어머 이건 꼭 봐야 해' 라는 눈빛이 되어 미술관을 나섰습니다. 1930~40년대 활동했던 1900년대생, 1910년대 생 [예술가] 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미술가 화가가 아니라 [예술가]라고 콕짚어 명시한 것은 이 전시가 그림만을 소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에요. 미술을 필두로 문학, 그리고 수집가까지 일제 강점기 서슬 퍼런 시기에도 예술을 멈추지 않았던 다양한 사람과 작품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전시는 이상의 제비 다방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이상은 그 시기 에술의 판을 짠 일종의 기획자였습니다. 그가 만든 터에서 구본웅 박태원 김기림 등이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고 소설을 씁니다. 박태원은 소설가로 유명하지만, 사실 그는 자신의 소설 장면을 삽화를 직접 그리기도 했고 자신의 소설을 신문에 연재할 때 삽화가는 꼭 '이상'으로 써야 한다고 콕 짚어 편집부에게 말할 정도로 스토리의 시각화에 일찍이 눈을 뜬 사람입니다. 박태원의 삽화가 전시되어 있는데 어떤 기시감이 든다면 착각이 아닙니다. 저는 봉준호 감독의 스토리보드(콘티)가 오버랩되더군요. 유전자는 무섭습니다 ㄷㄷㄷ 일제강점기 예술가들은 그림을 그렸다가 글을 쓰기도 하는 전방위적 예술을 선보였고, 글을 쓰는 사람과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학예사는 일제 강점기 문학 연구자와 함께 그 연결되어 있던 지점을 찾아 선으로 이었습니다. 시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그림들 그림에서 시작되어 활자로 태어난 글들 그림과 시가 함께 탄생한 시화들 을 일목요연하게 배치해 두었습니다. 홍차넷 게시물에 사진을 올릴 수 없는 것이 아쉽네요. 구상의 가족을 그린 이중섭의 그림과 이중섭이 그 시절 썼던 편지, 이중섭의 아내가 구상에게 보낸 편지가 함께 전시되어 있는데 그 전시물 앞에서 하마터먼 눈물을 쏟을 뻔했어요. 전시회가 실패로 끝나 경제적으로 힘들어진 이중섭은 왜관에 있는 구상의 집에 얹혀 살게 됩니다. 구상은 아내가 의사여서 여유가 있었거든요. 절망에 빠진 이중섭은 가족들과도 연락을 끊었죠. (그래서 이중섭의 아내는 구상에게까지 그의 소식을 전해달라고 편지로 호소합니다.) 이와중에 구상이 아들에게 자전거를 선물해 줬어요. 이중섭은 이 장면을 그림으로 담았습니다. 사실 이중섭은 기존까지 전시회로 돈을 많이 벌면 아들에게 자전거를 사주겠노라 편지로 수없이 이야기했더랬습니다. 그러니 구상과 그 아들을 보는 마음이 힘들었을 거예요. 그 당시 지인들이 물감을 선물하면 붉은색을 다 버렸다고 하죠. 자기 그림에는 이제 이 색을 쓸 수 없다면서 그래서 구상의 가족을 그린 그림은 노랗기만 합니다. 노래서 더 마음이 아파요. 옆에 구구절절한 편지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으니, 코가 시큰했습니다.(과몰입 장난아님) 김환기 그림 앞에서는 넋을 놓고 한참을 있었습니다. 김환기의 수필과 편짓글도 함께 전시해 두었는데 글 속에는 애환 힘듦 설움 걱정이 휘몰아치는 반면 그림은 그저 평화롭고 진짜 아름답더라고요. 그 갭 차이를 오가며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사실 저는 그림을 잘 모릅니다. 이런 저도 빠져들었으니, 다른 분들도 즐길 수 있을 거예요. 월간지 <현대문학>의 표지가 일렬 종대로 전시되어 있는 벽면이 있는데, 천경자, 장욱진, 김환기 등의 주옥같은 화가들이 표지를 그렸어요. 김환기가 외국으로 나간 이후로는 그가 표지를 계속 담당하게 되는데 표지의 변화만으로도 그의 화풍이 변화되는 것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재밌는 것이, 김환기는 가족들에게 한 푼 남기지 않고 유럽으로 떠났거든요. 가족이 돈을 달라고 편지를 보내면 <현대문학>에 표지를 그리고 있으니 <현대문학>에 가서 돈 달라고 해라라고 답장했다고 합니다. ㅎㅎ 어제 새롭게 알게된 사실인데 일제의 문화 통치, 민족 말살 통치 시절에 그림에 소를 그리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해요. 그 당시 조선인들에게 소는 자신들의 상징이었거든요. 그래서 자신의 서명을 소 모양으로 남긴 화가가 있답니다. (어떻게든 몰래 소를 그리겠다는 의지) 혹시 이번 전시를 가게 된다면 찾아 보세요.ㅎㅎ 참고로 제2전시장에는 그림이 한 점도 없습니다. 대신 그 당시 신문, 잡지 삽화와 함께 실린 소설 내용이 책처럼 전시되어 있어요. 실제 전시장도 도서관 같고요. 시와 시화를 소개하는 곳에는 오디오로 시를 낭송해 주기도 합니다. 그림이 없다고 지나치지 마시고 꼭 보시길 권합니다. 백석의 <사슴> 시집 (발행 당시 100부밖에 없었다는) 진품도 있고-진짜 예쁨니다. 책이...예뻐요. 김소월의 <진달래꽃> 초판본도 있습니다. 혹시 근대 한국 예술가를 모르더라도 정말 추천합니다. 숨만 쉬어도 다 아는 절친을 만나는 것도 재밌지만 한번도 만나 보지 못한 낯선이와 밥 먹는 소개팅도 그만의 재미가 있지 않나요. 관람에 시간 소요가 많이 걸리니 사람이 없을 시간에 혼자 넉넉히 보고 오세요.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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