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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5/01/22 11:42:42 |
Name | 골든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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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밭에 묶여있던 개를 풀어줬다 다시 묶는 사람들 |
한창 외로울 때였다. 나는 인터넷으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마침 학교 커뮤니티 졸업생 게시판에 ‘남들의 이야기를 들어드리고 싶다’라고 적은 한 사람이 있었다. 느낌이 오묘했다. 아니나 다를까. 비슷한 신세였다. 졸업하고 애매하게 자리를 못 잡고 있고 고시 공부를 잡았다 놨다 하며, 가정형편이 좋지 않고 성장기에는 아빠가 집을 나가버리기까지 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곧 메신저로 상당히 친밀한 내용의 대화를 나누었고, 각자가 느낀 가정폭력 경험 등을 공유하며 급속도로 친해졌다. 그런데 그 사람이 마침 자리잡은 곳(지역)이 당시 내가 살던 경상북도 구미와 가까웠다. 가까우니 마침 와서 하루 자고 가지 않겠냐고 그 사람이 그랬다. 그때부터 어쩌면 인터넷 사람들 표현대로라면 ‘쌔함(이상함)’을 느꼈어야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친구 한명 한명이 절실히 필요했던 나는 기차에 올랐다. 곧이어 도착하게 된 지방에서 만나게 된 그 친구는 나보다 나이가 조금 많음에도 훨씬 어려보이는 얼굴과 작은 몸집, 패션센스를 가늠하기 어려운 벙거지 모자에 구슬 팔찌를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첫인상이 귀엽다고 생각해 몸을 붙이자 친밀한 스킨십에 호불호를 떠나 반응을 못하는 모습이 있었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반드시 여기서는 해물짜장과 베스킨라빈스를 먹어야 한다고 했다. 어딘지 기계적으로 삶을 사는 듯한 동작들과 언어 -배스킨라빈스를 먹으며 배스킨라빈스를 좋아하는지 물어보는 등의- 에서 30대 여성의 느낌이 물씬 났다. 버스정류장에서 나와 그녀는 그녀의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그녀의 집은 허허벌판 한가운데 있는 공공주택이었다. 넓고 쾌적한 아파트에, 그 주인공마냥 떡하니 커다란 진도개 하나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뾰족한 귀에 날선 몸집이 귀엽다기보다는 동물적으로 민첩해보인다는 느낌이 강했다. 나는 이미 그녀가 동물권에 민감하며, 근처에서 묶여 지내던 진도개를 구조하고 그 새끼들을 받아 한 마리씩 임시보호 및 입양을 보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가져온 간식을 진도개에게 주었다. 사람을 경계하며 그르렁거리던 개는 간식은 덥썩덥썩 한 입에 잘도 삼켰다. “내가 무서워서 그러는 것일 거야. 가둬둘 필요 없어. 점점 적응할 거야.” “그런가?” 그녀가 중문을 열어주자 개는 그녀 옆에 자리잡았다. 나를 보고 경계했다가, 안 하기를 반복했다. 크기가 꽤 커서 나도 무서운 느낌이 있었지만 저런 짐승들이 경계를 하는 데는 공격하고자 하는 심리보다는 공포심이 더 작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 개는 너만 따르는구나.” “잘 봤어. 내가 구해서인가 이 개는 맨날 나만 쫓아오고 나만 따라. 그래서 걱정이야.” 남의 말을, 고민을 들어줄 수 있다며 글을 썼던 그녀는 내가 집에 찾아오자 왜인지 모르게 몇 시간을 끊임없이 그간 쌓였던 자기의 썸이 깨진 이야기, 친지와의 불화, 동물 봉사 이야기로 층층이 채워넣게 되었다. 듣고 있노라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갑자기 너무도 내밀한 이모할머니와의 갈등을 시간 순서대로 다 들려주며 ‘이럴 때 내가 어떻게 했어야 한다고 생각해’ 같은 질문을 하면, 나로서는 그저 편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알고보니 고시 공부는 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녀는 ‘그건 뭐’ 하고 픽 웃어버렸다) 다니고 있던 공익적 사업을 하는 공단에서 퇴사한 후 왠지 모르게 밭에 묶인 진도개를 주운 뒤 그 후처리에 넋이 나간듯 열심인 상태란 것이다. 그 개를 위해 집도 이곳에 구했고, 하루종일 그 개의 새끼들이 잘 입양갔는지 확인하기 위해 인스타를 하는 것이 그녀의 일상인 듯 했다. 나는 내심 나이 들어서 늦게 공부하는 사람들끼리 스터디메이트를 맺을 생각으로 여기저기 다녀보고 있었던 거라, 할말이 없어졌다. 그저 적당히 시간을 보내다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들리는 이야기가 너무 생경했다. 아래부터 한 그녀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에 대해, 미안한 맘도 들고 나는 그녀를 탓하지 않으며 동물봉사도 잘 모른단 점을 밝힌다. “밭에 이 개가 묶여있는데 너무 안 좋아 보이는 거야. 근데 오며가며 물도 주고 가끔 산책을 시키니까 너무 상태가 좋아지고 표정이 밝아지는 거야.” “(그야 당연히 그렇겠지)” “근데 개가 새끼들을 낳은 거야. 근데 나는 엄마 개까지 구할 생각은 정말 없었어. 근데 친한 동물 봉사 쪽 사람이 인스타로 계속 너는 그 개까지 구해야한다고, 안 그럼 나쁜 사람이라고 입김을 넣는 거야. 그래서 이 개까지 구해온 거야.” “(동물 봉사 쪽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그녀는 중간에 들른 편의점에서 한 아저씨를 두고 ‘내가 구해온 개의 주인’이라 했다. 그것도 당황스러웠다. 그니까 밭에 개를 묶어두고 키우던 사람이 누가 자기가 ‘구조’하겠다니까 대강 동의한 상황인 것 같은데. 그걸 ‘구조’라고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었지만 문제는 다음 단계였다. “그래서 새끼강아지들에게 이름을 이렇게 붙였는데, **이는 걱정을 안 해. 봐봐. 인스타도 매번 올려주고 대저택의 막내 같은 아이로 갔어. 보면 너무 행복해. 그리고 ++이는 국내 다른 분이 맡고 계신데 정이 들어서 입양하실 거 같아. 아마. 근데 ==이가 너무 입양이 안 돼서 해외입양을 보냈는데 구글에서 일하는 부부가 입양을 한 거야. 재택 근무도 많다고 하고 조건도 좋으니 너무 기대했어. 근데 분리불안을 이유로 파양했대. 걔가 분리불안이 조금 있단 건 미리 알려놨는데. 그리고 한달도 안 됐는데. 내가 믿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어. 그 해외입양 업체도 잘 연락이 안 되고 그 봉사 관련 연락하는 분도 내게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기분이 상하신 거 같아. ==이가 너무 걱정돼. 낯선 말하는 낯선 땅에 가면 개도 적응하기가 힘든 건데. 그래서 지금 다시 국내로 데려와야 하나 싶은 거야.” 그녀는 몇번이고 **이가 부잣집의 막내 강아지로 가서 너무 행복하다며 인스타를 보여주고 또 보여줬다. **이야말로 그녀가 꿈꾸던 동물 구조의 이상향인 것 같았다. 그 사진들을 보여줄 때 그녀는 진심으로 행복해보였다. 몇번이고 입양가는 곳들의 경제적 조건을 강조했다. 문득 아파트 안에서 나는 살이 추웠다. 가난한 집에서 그래도 노력해 명문대는 나왔지만, 삶이 잘 풀리지 않았다 생각하는듯 그녀는 대학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아했다. 그럼에도 책꽂이에는 숨길 수 없는 지성의 흔적들, 가령 보통 사람이라면 안 읽을 인도사 같은 책들이 꽂혀있었다. 나는 남들이 올리는 동물 사진의 내용이나 주기에 그녀의 삶이 지나치게 휘둘린다고 생각했다. 내가 보기엔 그녀는 더 자신의 행복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그..근데 취업은? 그니까 내 말은, 네가 널 구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아? 다른 우연한 부자가 개를 주워서 잘해주길 바라는 건 너무 행운과 요행에 기대는 거잖아. 그러느니 내가 쿠팡을 뛰어서라도 책임지는 게 맞는 거잖아.” “날 진짜 생각하는 사람들은 ‘너부터 구해라’ 라고 하더라. 신경써줘서 고마워. 할머니도 ‘누가 넌 입양 안 해주냐?’ 라더라.” 그렇게 말은 했지만 그녀는 또다시 심연에 이끌리듯 동물 구조 이야기로 이끌려갔다. 마치 보이지 않는 중력이 그녀를 이끄는 것 같았다. 인스타로 이야기를 나누는 어떤 이들의 세계로. “근데 **이는 정말 입양을 잘 갔어. 인스타도 꼬박꼬박 올려줘.” “….” “사실 내가 전 남자친구가 있었어. 진짜 똑똑한데 집안이 받쳐주지 못해서 전문직이 못 되고 기업에 취직한 경우였어. 근데 그 남자친구랑 연락을 해봤는데, 같이 키우던 강아지를 이제 결혼한다고 내가 맡아달래. 우리가 그러기로 약속했어서 나는 그 강아지를 키워야 해. 그리고 걔는 이제 노무사 준비를 하려나봐.” 우리 세대 명문대 사람들과 이야기하다보면 많은 이야기는 결국 ‘고시나 취업준비나 유학이나 대학원을 버틸 수 있는 에너지를 집안이 제공해주냐’라는 쟁점에 귀결하는 기분이다. 그녀의 전 애인은 결혼을 통해 안정을 얻고 다시 전문직에 도전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할말이 없었다. “그건 약속이니까 어쩔 수 없네.” “응. 약속했으니까. 문제는 이 개가 정말 나만 따르고 사회성이 전혀 없어.” “(그야 밭에 묶어두고 기르던 개니까 그렇겠지)” “그래서 두 개를 한번에 기르기가 어려울 거 같아. 그래서, 이 개를 다시 밭에 묶어둬야 할 거 같아.” “(응? 한번 집 안에 들여서 가정생활을 해보게 한 개를 다시 밭에 묶는다고? 그래도 되나?)” 그녀는 가족의 부족한 정서적 지지, 새 애인을 찾아보려 하다 잘 안 된 점, 이전에 아버지가 백화점에서 아이일 때 폭력을 가했던 기억 등에 대해 두서없이 말했다. 결국은 모든 게 그녀를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지난 몇달의 삶의 유일한 동력은 이 진도개를 돌보고 그 새끼들을 하나씩 입양보내는 성취감이었다. 그런데 정작 엄마 개는 너무 크고 나이도 있고 성격도 까탈스러워 입양보내기가 어려울 것 같단 것이었다. 그래서 밭에 그 개를 다시 묶는 것 외에는 방안이 없다고 그녀는 이야기했다. 나는 약간 아연해져 할말이 없었다. 개가 다시 밭에 묶이는 삶을 버틸 수 있을까? 산책 다니고 간식 먹는 삶을 느껴버렸잖아. 근데 하긴 또 묶어놓으면 적응은 하겠다만. 무언가 그녀의 동물구조 스토리는 우당탕탕 서투르고 이상했다. 동물구조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말을 아꼈다만 그건 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 무어라 반박을 하기 어려웠다. 곧 그녀는 그 해외입양업체에 파양된 강아지를 두고 데려오거나 다시 그 업체에 맡겨 주인을 찾아봐야 한다고, 그 소통을 도와달라고 했고 나는 그 당시 다른 데이트폭력 피해자를 돕고 있었기에 한정되게만 도와줄 수 있는 점을 양해할 수 있냐고 물었다. 그래도 아직 내 기준에는 개보다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러겠다고 했지만 곧이어 계속해서 감정적인 걱정과 함께 계속해서 동물 입양 건에 대해 토로를 하고 메시지에 대해 물어보고 (그녀가 적은 메시지의 초안들에는 입양업체와 그 중개인에 대한 원망이 어쩔 수 없이 녹아들어있었다) 너무도 날 피로하게 하는 터라 나는 건강이 좋지 못하다고 답했다. 우리는 그렇게 약간의 싸움을 끝으로 멀어졌고, 돌이켜보면 그 시골 아파트에 갑자기 초대해 하루를 재운 그 사람도 이상했고 그걸 동문이라지만 흔쾌히 응했을 정도로 당시의 나도 참 외롭고 공부를 같이 할 사람이 필요했구나 느꼈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와 그녀 옆에 있던 그 진도개의 모습은 망막에 박혀 잘 빠지지가 않는 것이었다. 몇 달, 또 몇 달이 지나고서야 나는 그녀를 이해하게 됐다. 이혼 후 늘 아버지를 탓하는 어머니의 힘없는 모습에 ‘자기만큼은’ 그렇게 안 되리라 최선을 다해 공부해 sky 중 하나에 입학했으나 그 뒤의 엘리트 루트들을 이어가기엔 부족했던 자원과 능력. 끝나버린 장기연애. 결혼도 취직도 답이 없어보이는 상황에 그녀에게 성취감, 소속감, 뭔가를 한다는 느낌을 주는 강아지 입양 봉사가 얼마나 간절했을까. 비록 자기는 행복한 부자 대가족의 막내는 못되어도, 내 강아지라도 그리 되는 모습, 자기가 지어준 이름을 그쪽에서 계속 부르기로 했다며 만족하던 그 모습도 그녀의 ‘최선’이 아니었을까. 경제적 지원도 해줄 수 없는 홀어머니와 음울한 친척들 사이에서 그녀가 갑자기 고시 공부를 할 수 있는 힘을 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공부를 해왔던 그녀가 갑자기 상하차 고수가 될 리도 만무하다. 당장 친한 후배 하나도 집안이 받쳐주지 않아 취업준비가 힘들어 우울증에 빠져있던 걸 내가 어르고 달래며 같이 살아줘서 성공시킨 적이 있다. 에너지의 장벽은 가혹하다. 그녀가 달리 뭘 할 수 있었을까. 외로울 때는 개를 구출하고, 다음에 곤란하니 다시 묶어두는 것뿐이다. 그게 그냥 우리 인간 모두의 모습이 아닐까. 어느 순간 그렇게 인간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고 보게 되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갑자기 나에게 자기 춤 영상을 보라고 계속 들이대던 외모에 대한 자부심과 학벌 콤플렉스가 있던 친구, 자기 가슴 크기에 왜 대기업 남자를 못 만나냐며 하소연해 내가 더럭 이상한 것 같아 겁이 나 거리를 뒀던 친구, 그들 모두 잘 살고 인스타에서 게시물도 잘 올리고 있었다. 그제야 ‘아. 그정도가 평범한 인간이구나. 아니. 오히려 평범보다 나은 사람들?’ 하고 감이 왔다. 예전엔 술자리에서 누가 혐오성 발언 하나만 해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주위에 상담하며 울던 나였다. 사람들은 자기의 추한 모습이 나올 땐 잘 모르고, 남의 티끌은 잘 보이기에 자칫하다가는 커뮤니티 식 ‘손절’ 릴레이에 빠지기 일쑤다. 그런데 인간은 글자만큼 정갈하지 않다는 걸 나는 알게 됐다. 홍차넷에서도 내가 얼마나 오락가락 하던가. 그녀는 그런 사람이었고, 그 모습 그대로 지지와 응원을 받고 싶었을 뿐이다. 내가 그에 닿지 못한 것이고. 이 깨달음은 많은 걸 내게 알려줬다. 나는 그 별이 잘 보이는 지방의 밭에 이제 그 개가 다시 잘 묶여있으려나 생각해본다. 그냥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 자체가 그렇단 걸. 아무리 궁합 좋은 연인도 서로 죽일듯 싸우다 다음날 같이 모텔을 가고, 성직자가 비위를 저지르고, 학자가 명예를 탐내 실수하고, 오판하고, 오용하고, 오해하고, 그럼에도 우리 모두가 선한 마음이 있다고 스스로 믿고 그 무엇보다도 “생생히 날것으로 내 마음을 들어주고 모두 납득해줄 다른 이”를 끊임없이 찾아 헤맨다는 걸. 그리고 그들 모두가 그런 청자를 가질 자격이, 어쩌면,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에 대해 생각할 때 그 개가 떠오를 정도로 기대를 낮춘 뒤로는, 사람을 대하는 게 꽤 편해졌다. 아. 당신은 그 개를 그렇게 하기로 했군요! 그냥 그렇게 들어주면 된다. 많은 사회 혼란이 나는 실은 그런 이유에서 벌어졌으리라 믿는다. 그들이 그들의 밭에 개를 묶어두었다 풀어주었다 묶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모두의 마음 속에 총총이 별처럼 떠있는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만은 진귀하리라 믿는다. 비록 내가 그 모두를 사랑할 정도로 마음이 넓지 못해 계속 넘어지더라도, 그럼에도 언젠가는 우리는 서로를 사랑할 수 있으리라 믿으며 살아간다. 그럼 더는 밭의 개가 괜히 고생할 일은 없을 것이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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