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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5/01/17 18:45:18 |
Name | Daniel Plainview |
Subject | 입시에 대해 과외하면서 느꼈던 것들, 최근 입시에 대한 생각 |
1 결국 수험생활의 성패는 <수용성>과 <믿음>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수용성이란 누가 하라고 했을 때 그걸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는 예전부터 강사들을 평가했다. 이 강사는 이래서 안 좋고, 저 강사는 이게 별로야. 이런 품평들을 주로 했었는데 솔직히 성적을 받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도움이 되지 않는 수준을 넘어서 네거티브다. 그보다는 아무리 구린 강사여도 그 사람이 하는 말을 곧이 곧대로 따라가는 사람이 더 결과가 좋았다. 이 사람이 정말 도움이 될까? 이런 불필요한 잡념을 지우고 그냥 이 사람을 나의 신으로 믿는 게 더 낫다고 본다. 특히 자신의 성적이 높지 않을수록 더더욱 믿음을 가지는 게 필요하다. (자기 자신을 믿으라는 게 아니다, 그냥 어느 강사를 믿으란 것) 2 이렇게 된 이유는 최근에 강사진들의 질이 급격히 상승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터무니없는 공부량을 요구하는 강사들이 많아서, 그 사람들 강의만 쫓아가다 보면 생각보다 다른 과목에 투자할 시간이 부족할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엔 진짜로 강의의 질이 대부분 고급화되었다. 이는 강사 말고도 입시판에 뛰어든 젊은 학생들이 문제를 만들어서 학원가에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사들이 이들로부터 문제를 구매하면서 창의성이 요구되는 킬러 대비문항의 퀄리티가 올라가고, 강의력은 강사들이 채우는 구조가 되었다. 3 메디컬 부모님들 아래서 자란 아이들을 과외할 때 느꼈지만, 얘들은 기본적으로 수용성이 높다. 유전자가 좋다... 고 솔직히 생각해본 적은 없다. 다 거기서 거기다. 그런데 최소한 부모들의 수입을 봐 왔고, 부모가 하라는 대로 따라가면 나도 의사 할 거라는 그런 믿음? 같은 것이 있다. 그래서 시키는 대로 잘하고 잘 따라온다. 그럼 솔직히 성적이 오를 수밖에 없다. 과외를 하면서 중요한 건 선생의 질보다 학생들의 믿음이라는 걸 느꼈다. 의심하지 말고 그냥 따라가면 같은 절대시간도 훨씬 많이 쓸 수 있다. 근본적으로 불신이 있기 때문에 몰입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김연아가 피겨에서 200점 이상을 맞는 걸 보여준 다음부터 다들 200점 이상을 받기 시작하는 것처럼. 이 길이 <된다>라는 걸 알고 시작하는 것과 <될까?>라고 생각하고 시작하는 건 천지차이다. 4 나였다면 이제 과외는 안 시킬 것 같다. 학원가의 수준이 너무 높아졌기 때문에. 대신 학원가에서 나오는 문제들을 혼자서 따라가기 힘들 때 물어보는 용도로 쓸 것 같다. 대신 요즘은 ChatGPT가 문제도 대신 풀어준다는데 이제 뭘로 먹고 사나. 자신이 지방에 있다면 최대한 더 오지로 가서 수시 전형을 확보하고, 열심히 정보격차를 해소하려고 노력하는 걸 추천한다. 5 시대인재/킬러문제 관련 논란을 돌이켜보면 솔직히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건 맞았다. 킬러문제가 overfitting되고 있었다. 실력이 뛰어나서 문제를 맞추는 게 아니라, 킬러문제를 예측하고 얼마나 많이 풀이법을 습득했는지에 따라 성적이 결정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평가원은 결국에 어렵게 내자면 충분히 어렵게 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솔직히 10년대 초반에 입시하던 사람들이 요즘 문제 풀면 진짜 어렵다고 많이 느끼게 될 거다. 특히 00년대에 입시하던 사람들은 70점대 나올거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함. 6 반대로 지금 뭔가 더 잘못되고 있다고 느끼는 곳은 탐구영역이다. 여긴 지금 심각하게 뭔가 잘못되었는데 손을 아무도 못 대는 형국이 되었다. 문제가 괴랄하기 짝이 없는데 고인물들만 남아서 47 48이 1등급이 되고 있다. 더 중요한 건 물어보는 게 탐구 문제 그 자체가 아니라는 거다. 생물 유전 문제 같은 걸 보면 이건 논리퍼즐 문제지 생물 문제가 아니다. 7 나는 텔레그램이 사회적으로 안좋다고만 생각했는데, 유일하게 사회에 기여하고있는 게 입시판 아닌가 싶다. 여긴 정말 정보의 비대칭을 용납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회운동가들(...) 시대인재 모의고사부터 온갖 자료들을 카피레프트 하고 있다 (...) 8 올해 의대증원 효과는 크게 없었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의대생들이 휴학하면서 어차피 1년 꿇을거 시험이나 다시 쳐서 대학 올리자는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보이고, 의대생들이 한번 더 재수해서 상위권 의대를 다시 가버리는 현상이 펼쳐진 것으로 보임. 정원이 2배가 늘었는데 점수컷은 그대로가 되어버린... 9 입시판 내부에서 평가하는 강사들과, 성인들 사이에서 방송 출연을 많이하는 강사들 사이의 괴리가 큰 것도 흥미롭다. 10 메디컬의 컷은 그대로지만, 반대로 약대같은 경우에는 10년대 초반에 비해 정말 정원증가나 수험생감소의 혜택을 많이 받았다고 봐야 할 듯. 누나가 약사인데, 비대면 약처방이 점점 활성화가 되면 나중에는 약국 접고 쿠팡 물류센터처럼 어디에 갇혀서 포장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11 공부에 필요한 절대량은 줄었는데, 상대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기준은 그대로라 여전히 경쟁은 피터진다. 아느냐 모르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시간 안에 최대한 많이 푸느냐가 중요해져버린 게임. 12 고등학생들의 선호도에선 완전히 메디컬이 압도해버렸고, 그나마 컴공/산공 같은 데이터 쪽의 인기도 잠깐 올라갔다가 보합세인 듯. 요즘은 반도체 계약학과 등의 인기가 높아지는데 언제나 지금 당장이 아니라 더 긴 미래를 봐야 한다. 고려대 사국 같은 경우의 미래가 펼쳐질 듯. 13 신경가소성을 고려하면, 여러 과목을 조금씩 공부하는 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그냥 하나만 두들겨 패는게 훨씬 나은 전략인 듯. 내가 과외할 때 사용하는 전략 중에 XO/XXO 전략이라는 게 있는데, 이게 최근에는 4등급 이하에게는 가혹할 수 있다는 걸 요즘 깨닫고 있다. 2~3등급이 넘어갈 때 쓰는 방법과 4이하가 넘어갈 때 쓰는 방법은 구분되어야 할 듯. (티탐은 펑이 없으니 아쉽군요)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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