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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1/04/29 15:27:32
Name   마카오톡
Subject   군대에 가지 말았어야 했던 사람
사회에서 군대에 가지 말았어야하는 사람들을 잘 못걸러주는 예외적인 케이스가 나오는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가야될 사람이 빠지기도 하고 가지말아야 하는 사람이 가기도 하지요.

또한 사회적 취약계층이 본인이 빠질수있는걸 모르고 군대에 가기도 합니다.

그에대한 비판을 하려는 생각보다는

그냥 관련 글을 읽으니 저도 예전 생각이 나서 저의 썰도 풀어보겠습니다.



모든 행정병 병장의 꿈은 부사수 똘똘한 녀석을 받아서 나는 이제 일선에서 물러나는 것입니다.

저의 꿈도 그러했지만, 다른 보통사람의 꿈이 원래 잘 이루어지지 않듯이 저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말년휴가 한달전까지 저의 부사수는 오지 않았죠.

저는 어부가 구해주었다던 항아리에 갇힌 마신이었습니다.

갓 병장일때는 누구든 오면 천사처럼 가르쳐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고

한달이 남은 그때 쯔음에는 차라리 부사수는 오지말아라. 만약 온다면 스파르타 교육으로 반 죽여버리겠다고 다짐을 하고있었습니다.

그렇게 반 죽여버리겠다던 마음을 품고있던 저에게  저의 부사수가 배정되었습니다.




응당 저희 부사수는 저의 스파르타 교육을 받았어야했으나, 저는 그 친구랑 만나자마자 저는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그냥 동네 한분씩 계시는 순박한 표정으로 초딩들이랑 놀이터에서 즐겁게 놀거같은 분이셨습니다.

이런 비하 표현쓰고 싶지 않지만 정확하게 알려드리기 쉽게 표현하자면 속칭 동네바보형입니다..

그분들 중에서는 그나마 말은 좀 덜 어눌하게 하시는 분이셔서 군대에 왔나봅니다. 일반인이랑 비교하면 어눌하긴하지만요.

말뿐은 아니고 지능도 그분들의 평균에 비해서 상위권으로 보이긴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일반인과 비교는 무리지만요.

저는 군생활 마지막 위기에 봉착했음을 직감했습니다. 내가 제대로 전역을 못하면 얘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마음을 먹었죠.

나의 부사수는 없는것이다. 나는 이 사람은 못가르친다. 나는 이 사람 몫의 일까지 묵묵히 하다가 전역하자.

저는 한톨이나마 그를 가르쳐보려는 생각이 있더라도 철저히 버렸습니다




부사수와 저의 관계는 매우 좋았습니다.

저는 그야말로 부사수의 일을 다 대신해줬으니깐요

다른 선임들은 못잡아먹어서 안달인데 저는 엄청 잘해줬으니깐요.

이상병이 제 부사수 김이병에게 내무실 주전자에 물을 떠놓으라고 지시를 한다면

김이병은 저한테 달려와서 물어봅니다. '마병장님 이상병이 주전자에 물떠오라는데 어떻게 해야합니까?'

군필자분들은 이게 얼마나 말이 안되는 이야기인지 아실겁니다.

그러면 저는 '그래? 내가 해줄게.' 혹은 '나랑 같이가자'

너 이상병한테 말하면 아마 혼날거니깐 내가 해줬다고는 하지마~

저는 그 친구에게 모든 하달받는 일을 제가 하면서 옆에서 보라고만 했고, 그는 보고만 있기 불편하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제가 그냥 다 해줬어요.

갖은 모든 편의도 다 봐줬습니다. 담배피고싶어? 피엑스 가고싶어? 전화하고싶어? 샤워하고싶어?

항상 제가 데리고 다녔고

제가 바쁠땐 혼자 보내면서 혹시 누가 물어보면 "마병장이 샤워하고 다시 사무실로 오랍니다" 라고 대답해라고 하고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의 가벼운 해프닝이 벌어졌습니다.

저는 당시 당직부관을 섰었는데 당직날 다음에도 오침을 못할때가 많았습니다.

그날도 전날 밤새고도 오침도 못하고 사무실에서 담당관이 시킨 일을 하는척 하고 있었습니다.

하는척 하고있었던건 뭐냐면 다해서 보고하면 다음 일거리를 줄거기때문에 이미 다했지만 보고자료를 갖다주지 않고 있었습니다.

담당관이 자리를 비우자 바로 자리에 보고서 올리고 오침하러 도망갔습니다.

내무실로 가면서 '나 찾으면 모른다' 그래 라고 했습니다.

특별히 김이병에게 그렇게 말하라고 전달한건 아니에요. 사무실 다른 병사들한테 말한것이지.




그렇게 내무실에 올라가 30시간정도 못잤으니 정신없이 숙면에 빠졌던 저는

투고였던 후임병장이 숨을 헐떡이며 '마병장 일어나 큰일났어'라며 저를 흔들고 있는것을 인지하면서 깨어나게 됩니다.

'마병장 니 부사수가 담당관이 마병장 어딨냐고 물었더니 마병장이 모른다고 그러랍니다 라고 말했어'

'담당관이 완전 화나서 근무지 이탈로 영창보낸다고 마병장 데려오래'

투고가 듣자마자 뛰어올라와서 숨을 헐떡인거더라고요.

저는 내려가서 죄송하다고 하다가 저도 화가나서 담당관이랑 한판 붙었습니다.

규정에 정해진 오침을 보장도 안해주면서 근무지 이탈이라니 부당합니다. 라고 따졌더니

자기도 그냥 빡쳐서 한소리니깐 가 임마 라며 보내주더군요.

담배한대 피고 다시 자러가려고 흡연장에 나왔더니 제 부사수가 오더라고요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마병장님 너무 죄송합니다'라고 하는데 사실 그 친구에게 별로 화가나진 않았습니다.

나쁜놈은 담당관이지 제 부사수는 아닐겁니다. 제 부사수는 그저 실수한 친구였을뿐.

제 사수가 제가 실수했을때 저한테 해줬던 '괜찮아 이등병은 그럴수 있어 그러니깐 이등병이야.'라는 멘트가 그 순간 생각나서

그 친구에게 해줬습니다. 괜찮아 이등병은 그럴수있어. 그러니깐 이등병이야.

물론 저는 저정도 실수는 안했어요 서류에 숫자가 틀렸다던가 뭐 그런거였지 ㅎㅎㅎ

그랬더니 그 친구가 서러워서 펑펑 우는겁니다

얘는 군생활에서 자기편이 저밖에 없었거든요. 나머지는 모두 본인을 잡아먹으려고 한다는거 잘 알고있었습니다.

그런 본인편에게 본인이 피해를 입힌거같아서 너무 슬펐겠죠.

위로는 못해줬습니다 너무 피곤해서요. 나 자러갈게. 괜찮아 신경쓰지마.




별거 아닌 해프닝이고 이정도야 군대에 특별한 레벨의 어리버리들이 하는 행동이겠죠.

이 정도가지고 군대에 가지 말았어야할 정도는 아닐겁니다.

사실 중요사건은 그 친구의 유일한 자기편이던 (솔직히 저는 저의 안위를 위해 잘대해주면서 직무유기해버린 셈인 사람이지만)

제가 전역하고 일어났습니다.

그 친구는 일주일에 한번씩 저한테 전화를 해서

마병장님 없어서 군생활이 너무 힘들다며 울었습니다.

안타까움도 있었지만 귀찮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얼르고 때로는 달래줬는데 때로는 귀찮아서 안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연락이 뚝 끊기더라고요.

이놈 잘 적응했구나 정도로 나혼자 맘편히 생각했습니다.




그가 연락이 없은지 한달정도 됐을때 부대에 전화를 해봤습니다.

그냥 부대에 있던 아까 말씀드린 투고의 소식도 궁금했고 여러사람 소식도 궁금했고 김이병의 소식도 궁금했습니다.

투고랑 통화하며 이런저런 이야기하면서 김이병은 뭐하냐고 물었습니다.

'마병장 그거 아직 못들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 오싹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일 먼저 스쳐지나간 생각은 자살이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그건 아니었습니다.



투고에게 들은 김이병의 전말은 이러했습니다.

김이병은 밑에 이등병이 하나 더 들어오자 그 이등병에게 가혹행위로 본인의 스트레스를 풀기 시작했습니다.

가혹행위의 내용은 오럴섹스를 시키는것이었습니다..

제가 얼굴도 모르는 이등병은 김이병에게 밤마다 화장실로 불려가서 오럴섹스를 강요당했고

이등병은 급기야 참지 못하고 김이병을 흠씬 두들겨팼습니다. 덩치는 훨씬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분노한 김이병은 이 일을 중대장에게 하극상으로 보고했습니다.

이등병이 감히 선임을 때렸다고요.

그래서 김이병은(전출시 일병이었을지도) 본인이 보고하고 본인이 교도소로 가게되었습니다.

범죄자가 상대를 신고해서 가는 셀프교도소는 뭐 가끔 토픽감으로 있긴하던데 저는 처음 봤습니다.

투고가 제 분대장을 물러받았는데 본인도 걔때문에 영창다녀왔고요.

피해자 이등병도 투고 손잡고 영창 다녀왔답니다.

가해자가 폭력사태를 신고해서 시작된거라 그에 대한 처리를 아예 안할수가 없었다나 뭐라나




그 뒤로 김이병의 소식은 못들었습니다.

죄질이 매우 더러우니 아마 부대로 복귀는 못했을거같습니다.

형무소에서 군역을 대신(?) 해서 마무리했겠죠.

제가 처음에 그를 잘해줌으로서 혹시 모를 위험요소를 피하려 했던건

셀프 교도소를 선택할정도로 사리분별이 안되는 사람이라서

그저 선임들 놀래키려고 내무실에서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기때문입니다.

진짜 그렇게 터트린다면 터트려서 죽기 일보직전에도 놀라는 선임들모습에 행복한 미소를 지을거같은 친구였어요.

물론 저희는 최전방은 아니라 수류탄은 시건장치 없이 보급되진않습니다만..

제가 탄약병이고 그가 제 부사수이기때문에 마음먹었을때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니었습니다.

사무실에서도 탄약업무는 안시켰어요.

다만 탄약고 보초가 보기에는 제 부사수가 탄약고에 들어가는게 이상하진 않을겁니다.

제가 말년에 그렇게 조심하려했던 이유 역시 제 부사수는 탄약병이기 때문입니다.




원래 나쁜놈이 나쁜짓하다가 벌을 받은 스토리라고 볼수도 있지만,

제 생각에는 원래 군대를 안왔어야 되는 애를 군대에 데려와서 생긴 비극이었습니다.

저는 예민한 편이라 걔가 사고를 쳐도 크게 칠거같아서 큰 사고를 피하기 위해 각별히 조심했던거고요.

제가 우려하던 방향의 사고는 아니었습니다만..

요즘 민간인 통제구역이란 웹툰이 완결을 향해 달려가는데 그거 볼때마다 김이병 생각이 났습니다.

그런 김에 비슷한 글도 올라와서 풀어본 저의 썰은 여기까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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