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07/10 15:10:25수정됨
Name   기아트윈스
Subject   자제력, 지배력, 그리고 이해력
옛날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땅으로 즐겨 비유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마음=땅에 대한 지배력이 높은데 다른 사람들은 그건 모르겠고 자기 마음=땅에 대한 이해력이 높습니다.

지배력이 높은게 뭐 나쁜 건 아닙니다. 이 세상은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것들이 참 많은데 그때그때 자기 마음 주민들을 다 설득해서 만장일치로 일하려고하면 힘들죠. 그냥 냅다 계엄령 때리고 KGB요원 풀어서 감시하면 그럭저럭 마음을 다잡고 월요일 아침에도 출근하고 등교할 수 있습니다. 대신에 완벽한 감시망이란 없기 때문에 반드시 무언가가 조금씩 샙니다. 조금 새면 그냥 넘어갈 수 있지만 줄줄 새면 돌이키기 힘들지요.

이해력이 높은 사람은 동물의숲 플레이타임 1000시간을 넘긴 고인물처럼 자기 마음=땅 구석구석을 픽셀단위로 샅샅이 압니다. 그래서 얼핏보면 울퉁불퉁하고 장애물이 많지만 눈감고 돌아다녀도 걸려넘어지지 않습니다. 지배력타입이 이런 이해력타입을 보면 철저하지 못하다라고 불평하기 쉽습니다. 니네 집 앞마당에 있는 돌뿌리는 왜 놔두냐. 뿌리를 뽑아야지. 이해력타입은 대체로 이렇게 대답합니다. '뽑을 만한 돌뿌리는 다 뽑고 남은 게 그거야 ㅇㅇ 남아있는 저 돌뿌리는 보기엔 얕아도 사실 엄청 깊은거라 뽑겠다고 덤볐다간 집 무너져. 하지만 저게 저자리에 있다는 것만 자각하고 있으면 걸려넘어질 일이 없지.'

물론 ㅋㅋㅋ 이해력타입이라고 걸려 넘어지는 일이 아예 없냐하면 그렇진 않죠. 술 마시고 비틀거리다 안방 문지방에 턱 걸려 넘어지기도 해요. 그래도 어쨌든 두 타입은 분명히 다르고, 우리는 모두 평상시에 이 두 가지를 적당히 섞어씁니다. 3:7이라든가. 6:4라든가. 다들 자기만의 비밀 칵테일이 있음.

사시도 붙고 선거전도 몇번이나 치르고 그렇게 자제력이 쩌는 사람들이 왜 고작 저걸 자제를 못하고 몰락하는지 궁금하다는 어떤 분의 말을 듣고 어젯밤에 곰곰히 생각해보다가 적어봤어요. 마음지배와 마음이해는 다른거고, 지배에 능숙한 사람일수록 오히려 바로 그때문에 이해에 소홀할 수 있어요. 지배가 이렇게 잘먹히는데 뭐하러 애써 이해력을 기르겠어요. 여러분은 그러지 마시고... 김정호가 된 심정으로 여러분 마음 구석구석을 답사해서 잘 살피고 대동여지도를 만들어두세요. 넘어지면 많이 아파요.



28
  • 지도는 역시 티맵.
  • 나비소련따우
  • 따숩읍니다. ㅠㅠ
  • 나도..나도.. 이런 필력으로 글을 쓰고 싶읍니다.
  • 비유를 인사이드 아웃 느낌으로 귀엽게 바꿔주시면 안 됩니까
  • 띵글이네요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4570 철학/종교토비와 함께한 월요일 [1편] 7 saint 24/04/01 1521 0
14393 철학/종교저는 종교는 없지만 유신론자입니다. 9 인프피남 24/01/11 1742 0
14219 철학/종교개신교 이야기가 자주 나와서 적어보는 글 (부제 : 인간은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가?) 12 Hard Rock Cafe, 23/10/23 2000 1
13966 철학/종교성경 탐구자를 위한 기초 가이드북을 만들어보았습니다.(무료) 4 스톤위키 23/06/08 2052 7
13952 철학/종교기독교가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8 컴퓨터청년 23/06/05 2317 0
13148 철학/종교뉴스레터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홍보- 3 Thy킹덤 22/09/11 2903 6
12084 철학/종교태극기 네 귀퉁이의 막대기는 무엇일까? 5 요일3장18절 21/09/17 4330 2
12021 철학/종교설문조사 결과 발표 (두둥) 9 매뉴물있뉴 21/08/27 3567 4
12012 철학/종교[설문조사 진행중] 건전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시급) 30 매뉴물있뉴 21/08/25 3509 2
11923 철학/종교덤으로 사는 인생입니다. 좋은 일 하며 살겠습니다. 7 right 21/07/26 4245 6
11819 철학/종교바라는대로 되는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16 right 21/06/25 4965 3
11543 철학/종교사는 게 x같을 때 떠올려보면 좋은 말들 32 기아트윈스 21/04/02 6017 26
11397 철학/종교(번역)자크 엘륄: 우리가 자유롭다는 환상 6 ar15Lover 21/02/06 4636 6
11164 철학/종교보증 서는 것에 대한 잠언의 이야기 2 아침커피 20/11/23 4421 6
11153 철학/종교천륜에 도전하는 과학,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철학 28 sisyphus 20/11/19 5456 4
11055 철학/종교타이완바 세계사중국편 (5.4운동) 4 celestine 20/10/15 3667 8
10959 철학/종교"꽃들도" 가사에 담긴 일본 기독교 사상 분석 3 아침커피 20/09/16 6476 4
10903 철학/종교나이롱 신자가 써보는 비대면예배에 대한 단상 8 T.Robin 20/08/31 5787 6
10894 철학/종교5월 이후 종교별 코로나 집단감염사례 6 유럽마니아 20/08/28 4812 0
10878 철학/종교이별의 시간이 정해져 있는 나는 오랜 친구에게.. 25 사나남편 20/08/24 5104 9
10865 철학/종교교회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 7 호타루 20/08/17 5095 2
10848 철학/종교최소한 시신은 없었다 6 아침커피 20/08/10 4802 17
10819 철학/종교속초, 강릉 여행 가볍게(?) 정리 30 수영 20/07/27 5667 9
10810 철학/종교반대급부라는 도덕적 의무감과 증여 사회 sisyphus 20/07/23 4408 6
10766 철학/종교자제력, 지배력, 그리고 이해력 12 기아트윈스 20/07/10 5176 28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