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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2/11/26 11:48:39
Name   아침커피
File #1   8E8A6C7D_0D71_4DD8_9FDF_B3A4C462F7FE.jpeg (192.7 KB), Download : 5
Link #1   https://crmn.tistory.com/157
Subject   세상이 굴러가게 하는 비용 5.5 달러


캘리포니아 2022 - 10. 세상이 굴러가게 하는 비용 5.5 달러

LA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블루보틀 매장에 들어갔다. 이게 그 유명하다는 푸른 병 카페란 말이지. 깔끔하고 한적한 매장에 들어가 5.5 달러 짜리 아이스 볼드 12온스 커피를 시켰다. 유명세 치고는 손님이 굉장히 적어서 대형 테이블을 나 혼자 쓰는 호사를 누렸다.

커피를 마시는데 매장 유리 밖으로 노숙자가 보였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신호에 걸린 차에게 계속해서 시비를 걸고 있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 모습을 보며 거 참 난폭하네, 하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 노숙자가 갑자기 카페 쪽으로 걸어왔다. 어?

순식간에 매장 안으로 들어온 노숙자는 손님들에게 시비를 걸지는 않았지만 대신 매장에 전시되어 있는 물건들을 괜히 건드리고 다녔고, 잠시 후 카운터로 가서 뭐라고 뭐라고 말을 하더니 커피 두 잔을 공짜로 받아서 양손에 들고 유유히 카페를 나섰다. 그러더니 지나가는 차에 커피를 뿌려대고 남은 커피는 땅에 쏟아버리고는 다른 곳으로 갔다.

그 광경을 본 후 고개를 숙여 내 커피를 보았다. 순간 나는 돈을 내고 커피를 사 마시는데 가게에 들어와서 난리친 사람은 커피 두 잔을 공짜로 받아갔다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카페 관리자 입장에서야 언제 올 지 모르는 경찰에게 신고하고, 기다리고, 그 동안 그 노숙자가 손님들에게 난동을 부리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느니 커피 두 잔 쥐어 보내는 것이 이득이었겠지. 그런데 그러면 나 같은 얌전한 손님들은 뭔가 억울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잠시 하다가 그러거나 말거나 하고 한번 풋 웃어버리고는 남은 커피를 마저 마셨다. 창 밖에서는 또 다른 노숙자가 어디선가 나타나 길 건너편에 있는 멕시코 치킨집에 들어가서 소란을 피우는가 싶더니 잠시 후 치킨을 손에 들고 나오고 있었다.

반 년도 더 지난 지금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그 때 내가 냈던 5.5 달러는 그 곳에서 내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면서 커피를 마시기 위한 비용이었다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희한하게도 그 좋은 일을 하면 내가 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돈을, 혹은 시간을, 혹은 정성을 써야 한다. 커피를 예로 들자면 남에게 폐를 끼치면 커피를 공짜로 받지만 얌전히 있으면 커피를 마시기 위해 돈을 내야 하는 것이지.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행패를 부리는 게 이득이다. 하지만 세상은 이런 계산은 치워버리고 그러거나 말거나 규칙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 덕에 굴러간다. 그렇게 나는 그 날 세상이 굴러가게 하는 비용 5.5 달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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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2-12-06 08:57)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25
  • 블루보틀 그렇게 비싼 줄 몰랐읍니다…


메타휴먼
인터넷에서 괜히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고 다니는 사람들은 사이버 노숙자라 할수 있겠군요
적당히 화풀이가 될때까지 분탕을 치고 커피 두잔정도 받으면 가게를 나서는 줄타기까지 닮았네요 더 깽판을 치면 공권력이 출동할텐데.
물론 노숙자가 생겨난 사회구조적 문제나 그들도 사회구성원으로서 존중받고 살아가기 위해 공동이 부담해야할 책임과 비용같은 더 차원높은 논점들도 있겠지만 일단 1차원적으로 인터넷 악플달고 노는 사람들 생각났어요
2
옆쪽승리
선생님, 인터넷에서 악플달고 노는 사람들은 최소한 인터넷이 인결될 수 있는 공간에서 인터넷을 연결할 수 있는 장비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누군가를 증오하기 위해 다른 누군가를 비하하진 않으셔도 됩니다.
메타휴먼
제가 누구를 증오하고 있고 누구를 비하하고 있다고 생각하셨는지 여쭈어 봐도 될까요?
일단 저는 딱히 다른분이 불편해 하실만큼 누구를 증오하거나 누구를 비하했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나름 유추를 해보면 인터넷 악플러들이 아무리 보기 싫다 해도 노숙자들은 그들보다 훨씬 불쌍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사이버 노숙자 이런건 노숙자에 대한 비하다?
또는 아무리 악플러들이라고 해도 노숙자라고 비유될만큼 저렴한 사람들은 아니다 따라서 사이버 노숙자라는건 악플러에 대한 비하다? 뭐 이렇게 둘중 하나로 해석이 되는데 맞나요?
옆쪽승리
아 말씀하신 전자가 맞습니다. 제가 다시 읽어보니 이해가 안 되게 썼는데 잘 이해해주셨네요. 선생님의 답글도 좀 오독한 거 같구요. 다음부터는 좀 더 정리하고 답글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이건 저도 어느 쪽인지 궁금합니다.
어떤 의도로 적으신 건지 설명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사람은 어느정도 돈이 있어야 남에게 폐 안끼치고 살 수 있다..
맘 아프군요
4
골든햄스
그러게요.
아침커피
벚문님, 골든햄스님. 제가 글을 쓸 때 의도했던 내용은 "그 때 내가 냈던 5.5 달러는 (그 곳에서 내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면서 커피를 마시)기 위한 비용이었다고." 였는데, 그 중 괄호 친 부분을 생략하는 바람에 글의 내용이 불명확해져 두 분께 심려를 끼친 것 같아 죄송합니다. 오해가 없도록 해당 부분을 수정하였습니다. 글 읽어주시고 귀한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앗 의도하신 바 대로 읽었고
저는 다르게도 받아들여져서 나름의 소회를 적어보았습니다.
죄송하실 일 아니십니다 ㅎㅎ
골든햄스
오. 아닙니다. 같은 사회현상을 두고 바라보는 시선이 다른 건 흔한 일인걸요. 저야말로 너무 앞뒤 없이 짧게 소감을 남긴 것 같아 죄송합니다. 아침커피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좋은 풍경과, 좋은 소감 항상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아이스 커피
항상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아침커피
감사합니다. 닉네임이 같은 커피시라 반갑네요 ^^
1
코리몬테아스
계산기를 두드려 보면, 노숙인으로서 행패부려 커피를 커피를 얻는 게, 그냥 5.5달러를 내는 것 보다 더 손해인 행동이 아닐까요. 5.5달러의 물건을 위해 감수해야만 하는 것들이 너무 많음 ㅠㅠ... 그렇게 행패부리지 않아도, 돈 내고 커피 사먹을 수 있는 하루를 사는 내가 이득이다.
사이시옷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빙빙콘
생각이 많아지네요..
뒤없고 잃을게 없는자의 특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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