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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6/12/12 00:52:45 |
Name | 진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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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거지갑 박주민 VS 거지을 진준 |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자신을 불태울 수 있는 것, 설령 그것이 타인과 사회에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얼마나 멋진 일인지. 하물며 약자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변호사나 국회의원이라면 얼마나 멋진가. 한때 학문에 미치고자 했었다. 학문에 온전히 나를 바치고자 했다. 내 인생이 이리 굴절될지 몰랐다.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늘 상상할 수 있는 최악보다 한발짝 더 나아갔다. 설령 사회에, 타인에게 아무런 유익을 가져다주지 못할지언정 지적 자유를 위해 혼을 불태우는 학생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온통 시험에 출세에 목을 매는 이 사회에서 돈도 지위도 가져다주지 않는 공부에 열을 올리는 것은 어리석지만 부끄럽지 않은 일이다. 어리석지만 부끄럽지 않아도 사회는 타인은 어리석다 규정하고 부끄러움을 강요했다. 나를 응원하던 사람은 세상을 떠나거나 변했고 나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비틀거렸다. 그렇게 십대가, 이십대가 가버리고 이제 온통 '현실'을 강요하는 이 틈바구니 속에서 아직도 학문을 부르짖는 나는 얼마나 우매한지. 박주민이 부러웠다. 국민의 선택을 받았고, 선택을 받을 만한 위치에 설 수 있었던 그 개인의 축복이 너무나도 샘이 났다. 사람들은 나를 실패했다 말하고 이제 그만하라 말한다. 왜 그러냐고 철이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막상 내 자신을 수학과 물리 앞에 세우면 제법 괜찮아보이는 건 착시현상인지. 내가 멋진 것이 아니라 수학과 물리가 이토록 아름다운 것을 어쩌란 말인가. 단지 밥벌이가 안 될 뿐인데, 단지 이 사실 하나뿐인데 이것이 전부이자 모든 것이다. 단지 내 생물학적인 나이가 많을 뿐인데, 단지 내 성적이 조금 초라할 뿐인데, 이것이 전부이자 모든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이 마주하지 않으려던 세월호의 진실을 파헤치는 것과 대다수가 외면하는 수학과 물리를 바라보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저 관점이나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우열을 가릴 수 없다. 각자의 신념이다. 폐인, 거지갑이라 불리는 박주민은 축복받은 사람이다. 저렇게 미친, 망가진 모습으로도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다니. 수학과 물리밖에 모르는 내가 저런 몰골로 나다니면 사람들이 눈을 반짝일까.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안 굶어봐서 그래. 노력과 의지가 부족하니 저모양이지. 죽도록 공부했으면 진즉 교수되지 않았겠어? 저 하나를 위해 온 사람 고생시키는 이기적인 녀석이지.] 수도 없는 말들을 쏟아낼 것이다. 그것은 타당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타당하다. 하지만 나에겐 타당하지 않다. 세상은 결국 수학과 물리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박주민이 허접한 몰골로 누워있는 저 땅바닥마저 수학과 물리인 것을. 그는 거지갑이라는 별명을 조금은 부끄러워 할지언정 싫어하진 않을 것이다. 사실, 학문과 연구를 꿈꾸던 그 어린 날부터 이미 너무 욕을 얻어먹어서 이젠 아무런 감흥도 없지만, '거지갑'이 아니라 '거지을'로 불려도 좋으니, 하루하루가 온전히 학문에 바쳐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땅바닥이 아니라 산속에서 변사체로 발견되더라도 그럴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알고 있다. 앞으로 다가올 현실은 학문과 더욱 먼 무엇이라는 것을,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는 여전히 학문을 원하며, 나의 촌스러운 꿈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변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온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 해도 좋으니 24시간 전부가 학문으로 채워질 그 날을 소망한다. 오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지만 결국 이 소망이 나를 먹여살렸음 또한 분명하다. 곧 시작될 30대에, 내 자신이 '거지을'로 불리는 축복이 함께 하기를..... 비록 현란한 수준의 것이 아니더라도 작은 수학과 물리가 늘 함께 하기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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