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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03/23 01:25:31
Name   얼그레이
Subject   [조각글 19주차] 탄생
[조각글 19주차 주제]
무생물의 사랑에 대한 글을 쓰십시오.
- 분량, 장르, 전개 방향 자유입니다.


합평 받고 싶은 부분

무생물이라는 주제를 자의적으로 해석해보았습니다.

제 해석과 전개에 맞는 개연성이 적절한지, 그 외에 어색한 부분은 없는지 부탁드립니다.


하고 싶은 말

뉴질랜드로 이민간 친구가 고스족에게 왜 해골이나 특이한 옷들을 입느냐고 물은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 고스족 친구는 자신이 입고 다니는 옷이나 악세서리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대답해주었다고 합니다.

그 일화에서 착안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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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교복을 입은 소년이 길 한 귀퉁이에 쭈그려 앉아 있다. 파란색 반팔과 회색 교복 바지. 명찰에는 '정 윤'이라 적혀 있다. 가을바람이 제법 쌀쌀한지 윤의 살갗엔 닭살이 올라있다. 아니면 목에 건 은색 목걸이가 간지러워서 일지도 모른다. 윤의 목걸이에는 작은 해골이 달려 있었다. 열여섯살이 되던 927일의 아침. 윤은 자신은 '죽었다'고 생각했다.

     

윤이 쭈그려 앉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하얀 구절초. 윤은 자신이 들여다보고 있는 꽃의 이름을 모른다. 윤은 꽃의 이름을 모른다는 것 조차에도 절망했다. 소년은 꽃을 꺾어 꽃잎을 하나씩 떼어내며 생각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꽃 점'처럼 사랑했으면 참 편했을지도 모른다고. 좋아한다. 안 좋아한다. 좋아한다. 안 좋아한다.

     

산다는 것은 행복한 일보다 괴로운 일이다. 윤에게 있어 이 사실을 알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마지막 꽃잎을 떼어내며 윤은 안 좋아해 하고 중얼 거렸다.

     

윤에게 있어 살아 있다는 것은 능동적이며, 소모적이고, 구차한 일로 느껴졌다. 윤의 그 모든 비관은 윤의 사랑이 갈 곳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실연, 그의 세계에서는 그것은 아주 중요한 절망이 되었다.

     

잃는다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절망이었다. 길 잃은 사랑은 소나기처럼 윤에게 쏟아지기도 했으며, 때로는 윤이 사랑했던 머리칼 언저리에서 서성거리다 훌쩍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경험담처럼, 사랑을 따라 나선 사람들은 길을 잃고 미아가 되었다. 모든 거리가 낯설고, 무서워졌다. 윤은 슬픔을 학습하긴 했지만,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은 하늘과 땅의 거리만큼이나 달랐다. 윤이 느끼고 있는 절망이란 그랬다. 공황과 공포 속에 윤은 아기처럼 무력해졌다. 볼에 묻은 서러움을 훔쳐보아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윤은 낭패한 채로 몇 번이고 자신의 죽음을 상기하였다. 이렇게 울 필요 없어. 더 이상 신경쓰지 않는 걸. 그 애에겐 나는 아무 것도 아니듯, 그 애도 나에겐 아무 것도 아니야.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윤이 속으로 중얼거려보았지만 그렇다고 윤이 죽은 풍경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왜 변하는 게 없을까. 자신이 죽은 세상을 부정하더라도 윤은 결국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만 반증하는 셈이었다.

     

윤의 세상이 죽었으므로, 윤은 오늘은 학교를 갈 이유가 없었다. 윤은 그래도 쉽사리 발을 떼지 못했다.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한다는 것으로 바뀌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올 것이다. 학교에 가지 않으면 부모님과 선생님께 혼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윤의 결정에 구차함을 덧붙였다.

     

윤은 잠시 망설이다가, 자신의 죽음을 목에 걸기로 했다. 죽음을 목걸이에 걸도록 하자. 내 몸에서 떨어지지 않는 대신에, 목에서 덜렁이면서 나를 귀찮게 할 것이다. 윤은 목걸이의 해골 펜던트를 잠시 만지작거렸다. 주변에는 아무도 지나가는 이가 없다. 윤은 잠시 주위를 살피다가 펜던트에 입을 맞췄다. 안녕, 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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