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 16/07/26 23:19:58 | |
Name | 얼그레이 | |
Subject | [35주차] 리노 | |
[조각글 35주차 주제] 다음 주제 중 택일 1. 바다이야기 2. 희곡 주제선정자의 말 1번 주제의 바다 이야기는 사행성 게임은 아니고 주제 그대로 바다를 주제로 한 배경이 바다든지, 바다가 나오는 주제입니다. 갸령 심해라던지 물고기라던지 어부라던지.. 그냥 바닷가 드라이브는 안됩니다. 권장 과제 : 필사 합평 방식 분량은 자유고 합평방식은 자유롭게 댓글에 달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맞춤법 검사기 합평 받고 싶은 부분 하고 싶은 말 본문 바다는 정말 지긋지긋하다. 매일 같이 지나가는 길이라면 이제 익숙해질 법도 됐는데. 도대체 나는 왜 바다가 싫은 거지? 버스 정거장에 내려 부두 근처의 상가를 지나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이유도 모를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물론 짜증의 이유를 찾자면 다 찾을 수 있겠지. 하는 일에 비해 턱없이 적은 돈. 늘어만 가는 나이. 이렇다 할 답이 없는 미래. 늙어가는 부모님. 문장으로 길게 나열하면 아마 여기서 우리 집 까지는 열 번은 왕복할 수 있을 걸. 하지만 그 중 가장 나를 짜증나게 하는 것은 나 자신일 거다. 별것도 아닌 일에 투덜거리고 짜증내는 리노. 부둣가 근처의 시장을 지나가는 길이 집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차라리 버스정류장을 내려 부둣가를 걸을 때는 파도소리만 들으면 됐지. 뙤약볕에 가릴 그늘도 없지만 차라리 거기가 더 낫다. 노점상 차양 밑엔 사람들의 활기가 어찌나 빼곡한지. 인상부터 잔뜩 찌뿌려진다. 오늘 저녁엔 뭘 먹을까. 싱싱한 생선이 얼마. 이 바닥에 안 싱싱한 생선이 어딨냐 외치는 장사치들의 왁자한 웃음소리. 엄마를 부르는 꼬마. 왜 시장에서 자기 자식 자랑을 하고 있는 걸까 싶은 시시콜콜한 인생사까지. 사랑스러운 일상들. 나는 왜 그 사랑스러움을 이토록 증오하나. 길 양옆으로 나와 있는 노점상들엔 늘 사람이 많다. 저녁 시간이니 더 붐빈다. 관광객부터 현지인들까지 모두 하나 같이 활기가 넘친다. 끊임없는 생명력을 과시하는 저 파도들처럼. 시장의 중턱을 걷고 있을 무렵 문득 단골 샌드위치집 사장 조이를 보았다. 인사를 할까 망설이는 찰나 그는 나를 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몇 년 전보다 조이는 훨씬 늙었다. 얼굴에 주름은 늘었고 배는 더 나왔다. 머리가 더 부스스해서인지 피곤해보였다. 바닷 바람에 피부도 제법 많이 상했다. 사실 짜증을 잠재우는 방법은 무척 쉬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한테 친절하게 굴면 된다. 내가 행한 선함에 내 스스로 만족해 행복할테니까. 그래서 나는 어쩌면 조이에게 무안해도 인사했더라면 훨씬 기분이 좋아졌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용기를 내지도 못했고 인사를 시도조차 못하고 포기하고 말자 침울해지기까지 했다. 맛있는 즐거움을 주는 조이의 샌드위치는 나한테나 특별하지, 조이에게 나는 이름도 모를 한낱 흔한 단골손님1일 텐데. 시도하는 것보단 체념이 편하고 익숙하다. 나는 누군가에게 특별해지고 싶은걸까 생각하며 걷다가 이번엔 제니퍼와 눈을 마주쳤다. 제니퍼는 근처 빵집 사장이었다. 빵집이 아닌 길가에서 보니 조금 생경했다. 나는 혹시라도 제니퍼가 날 알아볼까 그녀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눈을 내리깔았다. 날 알아봤으려나? 아님 손님인지 기억은 할까 몰라. 이런 생각까지 미치자 왠지 아는 척 하기가 싫었다. 인사를 나누면 뭐라도 한 마디 주고 받을 텐데 그건 또 너무나도 귀찮았다. 아, 내가 생각해도 내가 싫다. 모른척 하면 모르는 척대로, 아는 척 하면 아는 척 하는 대로 불만이라니. 리노, 넌 도대체 뭐가 문제니. 내가 바다를 가장 싫어하는 이유는 바로 저 소리다. 저 무한한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저 쉴새없는 파도 소리. 그래서인지 바다는 꼴보기도 싫다. 저 짭짤한 바다 냄새. 바다 안에 있는 모든 소금을 손으로 꽉꽉 뭉쳐서 커다란 소금 빙하를 만드는 거다. 그리고 우주에 들고 나가 뻥 차버리는 거지. 우주에선 부피가 없을테니 내가 크게 껴안고 있어도 무척 가벼울거야. 나는 커다란 우주 한 가운데에서 우주복을 입고소금 빙하를 껴안고 있는 나를 상상했다. 아니면 소금 덩어리를 높이 들어올려 스파이크! 뭐, 파도가 치는건 달의 문제이니 소금만 모아 뭉쳐 버린다 하더라도 바다가 조용해지진 않을텐데 말이다. 별거 아닌 상상이었지만 어쩐지 바다의 엉덩이를 차준 것 같아서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어차피 할 엉뚱한 생각이라면… 바다 안에 있는 모든 생물들을 차곡차곡 종류별로 모아보는 거다. 바닷물을 이루고 있는 대부분의 염분을 모았으니 다른 성분들끼리도 차곡차곡 늘어놓는거지. 뭐 플랑크톤 끼리도 모아놓고. 바다를 이루는 성분들엔 뭐가 있더라. 가물가물한 옛 기억은 집어치우고 조금 더 쉬운 생물들을 생각하기로 했다. 고래들을 종(種)별로 늘어놓으면 무척 귀여울 것 같다. 여기는 상어 저기는 삼치, 저기는 고등어. 줄을 지어 세워두면 무척 깔끔할거야. 무언가 차곡차곡 정리한다는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물론 바다에 있는 모든 생물을 종류별로 분류한다는 것은 평생이 가도 다 못 해놓을 작업일지 모르겠지만. 내가 알고 있는 몇몇 어류만을 꼽아보는 것도 은근히 재미있는 놀이가 됐다. 아니, 어쩌면 부둣가를 지나 집에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비로소 조용해졌다. 사람들의 목소리와 바다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주변에 몇몇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려서였을까. 기분 좋은 소리가 났다. 아, 나는 순간 감탄했다. 차 소리도 소음도 존재하지 않고 어느 순간 찾아오는 아주 조용한 침묵의 시간. 오로지 들리는 것이라곤 내 발소리 밖에 없다. 그래 오늘 온종일 짜증나 하고 예민해있던 건 계속 청각적인 자극을 받아서였을지도 모른다. 모퉁이를 돌아 계단을 올라가면서 나는 내 발자국 소리도 괜히 기분이 좋았다. 아, 이번 주도 끝났구나. 오늘 저녁은 뭘 먹게 되려나. 0
이 게시판에 등록된 얼그레이님의 최근 게시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