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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2/12/21 02:26:57 |
Name | 물냉과비냉사이 |
Subject | 나의 군생활 이야기(3) - 주특기 교육 |
훈련소를 수료하고 이등병 계급장을 달았다. 훈련소 생활을 함께 했던 내무실 친구들과는 나중에 꼭 연락하자며 헤어졌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수료하기 전날에야 모두가 어디로 가는지 들었다. 논산훈련소에는 입대 전에 주특기를 정해서 입대한 사람들이 모이는 훈련소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 어쨌거나 대부분은 자기에게 배정된 주특기에 따라 뿔뿔이 흩어졌다. 통신병은 대전으로, 포병이나 기갑, 공병들은 통칭해서 상무대로 불리는 전남 장성으로 갔다. 헤어지면서 눈물을 떨구는 친구들이 많았다. 조교들의 눈빛도 왠지 슬퍼보였다. 우리 소대의 선임조교는 나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너희들과 지내면서 정이 드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런 친구들을 5주마다 떠내 보내고 새로 만나는 일을 계속하는데 헤어질 때 이게 은근히 힘들어" 나에게 이것 저것 시키고 혼내는 훈련소 조교도 나와 같이 끌려온 징집병이다. 모두가 다른 이유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 장갑차 조종수로 입대한 나는 전남 장성의 육군기계화학교로 갔다. 주특기 교육을 통칭해서 '후반기' 라고 하는데 후반기 교육이 이루어지는 곳들은 이등병의 천국이다. 모두가 다 입대 동기인 이등병인 것은 훈련병과 같지만 민간인에서 군인이 되어야 하는 훈련병 때보다는 규율의 강도가 약하기 때문이다. 훈련병 때에는 담배도 금지되지만 이 곳에서는 담배도 피울 수 있다. 내무실에 들어와도 고참은 없고 다들 편한 동기들이니 이등병의 천국인 것이다. 일어나면 밥 먹고, 청소하고, 교육을 받고, 밥을 먹고 쉬었다. 교육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장갑차의 구조를 배우고, 조종하는 법을 익혔다. 사용자 단계의 장갑차 정비를 배웠는데 재미있었다. 조종하는 법을 배우다 보면 밀폐조종이란 것을 하게 된다. 장갑차와 전차에는 해치라는 것이 달려있다. 보통 평시에는 조종수가 장갑차나 전차에서 고개를 내밀고 조종을 하는데 전시에는 고개를 내밀 수 없다. 고개를 내미는 부분에 문이 달려있는데 이걸 해치라고 하고, 전시에는 이걸 닫고 조종해야 한다. 밀폐조종이란 것은 해치를 닫아 머리를 차 내에 집어넣은 채로 조종하는 것이다. 그러면 밖을 어떻게 볼까. 잠망경으로 본다. 그런데 문제는 오른쪽 잠망경 쪽 시야는 연막탄발사기라는 장치가 거의 완전하게 막고 있다. 사실상 정면과 왼쪽만 보는데 그마저도 시야가 협소하다. 장갑차에 겁을 느낀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조종 자체는 쉽다. 그런데 해치를 닫으면 내가 사람을 제대로 못 보고 가볍게 밀고 지나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무생활을 하면서 부업처럼 하는 작은 보직을 해야 했는데 나는 '서무계'라는 것을 했다. 쉽게 말해서 견습 행정병 같은 것이다. 교육이 다 끝난 평일과 주말에는 행정반에서 자리를 지키면서 전화를 받고 가끔은 행정병의 일을 도와주는 일이었다. 군에 입대하고 처음 글을 읽었던 날들이다. 글을 읽고, 쓰고, 말하는 직업을 갖게 된 지금에 돌이켜보더라도 그 때만큼 글이 재미있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 기계화학교에서 같이 교육받던건 나와 같은 3월 말 군번 육군만 있는게 아니었다. 해병대도 상륙용 장갑차를 운용하기 때문에 장갑차 특기병이 있는데 해병대에는 장갑차 조종수를 교육시킬 수 있는 기관이 없기 때문에 해병대로 입대한 친구들도 육군기계화학교에서 위탁교육을 받았고 육군 장갑병들과 같이 내무생활을 했다. 해병대인 친구들은 겉보기에도 구분이 되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다 짧은 머리라 비슷할지 몰라도 해병대의 돌격머리는 육군의 머리와는 다르다. 정말 말 그대로 빡빡 깎아서 손으로 잡기도 힘들다. 옆 머리는 거의 없다시피하고. 제대한 이후에는 왠일인지 옆머리가 없는 듯 짧게 자르는게 유행이 되기도 했지만 그 땐 그게 참 어색했다. 내무실에서 동기들의 두발관리를 담당한 한 친구는 해병대 친구들의 머리를 깎아주면서 "너희들은 해병대니까 해병대 스타일로 깎아줄게"라고 했다. 해병대 친구들도 돌격머리 잘 해달라고 웃으면서 이발의자에 올랐다. 그런데 육군에서는 육군의 규칙을 따라야 했다. 간부는 해병대 친구들의 돌격머리를 보자마자 매섭게 연병장으로 그 친구들을 끌고갔다. 그 친구들은 육군에서 돌격머리를 했다는 이유로 연병장을 돌아야 했다. 그 친구들을 돌격머리로 깎아준 친구는 어쩔 줄을 몰라했고 해병대 친구들이 녹초가 되어 돌아오자 고개 숙여 사과했다. 해병대 친구들은 자기들이 그렇게 해달라고 한 거니까 괜찮다고 했다. --- 시간이 흘러서 자대배치를 받게됐다. 내가 장갑차 조종수를 지원한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내가 갖고 있는 1종보통 운전면허와 나안 1.0 이상의 시력으로 지원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보직이기 때문이었다. 군대를 빨리 가야 했으니 이렇게 선택을 한 것이지만 사실 한 가지 더 고려한게 있었다. 기갑병은 전차나 장갑차를 몬다. 전차나 장갑차는 더럽게 큰 궤도차량이다. 따라서 장갑차가 기동하기 위해서는 도로가 잘 닦여있어야 한다. 전차나 장갑차를 산악지역에서 운용하기는 쉽지 않고 많은 경우 넓은 들판이나 도시에서 활약하게 되는게 기갑이다. 그러므로 기갑병으로 군대에 가면 큰 도시 근처로 갈 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당시 기계화보병부대들은 서울에 가까운 곳에 위치해있었다. 심지어 서울의 수도방위사령부에도 기갑부대가 있었고, 양평이나 양주, 고양, 인천 쪽에 기계화부대가 있다고 들었다. 나는 어디로 가게될까. 기계화학교에 같이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수도방위사령부 근무를 바랬다. 나도 그랬다. 몇 명은 수도방위사령부로 갔고, 그걸 확인하자마자 환호했다. 나는 서울도, 인천도, 경기도도 아니었다. 대전이나 광주, 대구 같은 대도시 근처도 아니었다. 나는 홍천에 있는 11사단으로 배정을 받았다. 기계화학교에서 훈련받는 기갑병들에게는 가장 똥패가 잡힌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기계화학교 친구들과 다시 헤어질 시간이 왔다. 이미 훈련소에서 한 번의 헤어짐을 경험했던 우리들은 다음에 연락하라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결국 그 인사대로 연락 같은 것은 없었지만, 나는 서로에게 건네는 그 인사에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 이야기는 서로 연락할 일 없겠다는 걸 이미 서로 알고 있으면서 하는 빈 말이라는걸. 마찬가지로 두 번째로 훈련 동기들과 헤어지는 해병대 친구들의 말에는 조금 다른게 느껴졌다. 그 날은 그 친구들은 이제 정말 해병대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육군에서 나름대로 편하게 지냈다가 해병대로 돌아가게되어서일지, 그 친구들은 유독 감정적이었고 슬프게 울었다. 또 보자고는 말 하지 못했지만, 잘 지내라고 얘기하고 헤어졌다. 그 친구들의 군 생활은 별 일 없었을까. [전편] 입대: https://kongcha.net/free/13322 훈련소: https://kongcha.net/free/1194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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