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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5/06/28 22:20:27 |
Name | 구밀복검 |
Subject | 2030, MZ세대, 청년 어쩌구를 더 이상 말하면 안 되는 이유 |
먼저 이 글을 쓰게 된 글감으로서 슬로우 뉴스의 20대 남성에 대한 비평을 정리해봅니다. https://slownews.kr/139930 - 명확히 정의되지 않은 ‘극우’라는 공격적 언어로 특정 집단을 규정하면, 그 대상 집단의 정서적, 정치적 반발로 이어져 더 나쁜 결과로 되돌아올 수 있다 - 지난 4월 윤석열 탄핵 직후 KBS·한국리서치 여론조사를 보면..20대 남자도 59%가 잘한 결정, 26%가 잘못한 결정이라고 봤다. - 한 집단의 최소 절반 이상이 ‘탄핵 반대’ 입장이어야 ‘탄핵 반대 집단’이라 이야기할 수 있다.. 20대 남자 60%가 탄핵에 찬성했다는 점에서 이들을 ‘탄핵 반대 집단’이라 부르는 건 무리한 일반화 - 20대 남성 응답자 중 서부지법 폭동은 ‘용납할 수 없다’고 답한 비율은 65%였고, ‘저항권 행사’라고 답한 비율은 19%에 그쳤다. 30대 남성의 67%도 ‘용납할 수 없다’는 데에 동의했고, 21%만이 ‘저항권 행사’라고 했다. - 김문수는 탄핵 반대였지만 이준석은 탄핵 찬성파였다. 탄핵 찬성파 리더를 지지한 걸 극우로 볼 수 있느냐 - ‘탄핵 찬성 집회는 2030 여자, 서부지법 집회는 2030 남자’가 주도했다는 프레임... 하지만.. 서부지법 폭동 직전인 지난 1월 18일 오후 11시 서부지법 집회 참여자 구성은 2030 남자 15.5%, 2030 여자 18.7%였다. 오히려 여성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났다. 대체적으로 제 생각도 비슷합니다. 이게 '극우'라는 낱말 자체가 구미에서 워낙 횡행하다 보니 한국의 논자들도 자연스럽게 차용하는데, 그렇게 쉽게 쓸 말은 아니거든요. 구미에서 그 말을 쉽게 쓰는 건 구미 사회가 한국과 비교할 수 없는 미개한 마계촌이기 때문입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일베충들 펨붕이들 아카라이브 로리충들도 김치맨이긴 해서 기본적 성향은 중립적인 의미로 '규범주의'적이라 봅니다. 젊은 꼰대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라 보네요. 다만, 이건 어디까지나 기술적인 평가고.. 메타적으로 보면 이런 식으로 N대남 M대녀 탐색하는 거 자체가 그리 유의미한 시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별 의미도 없는 사회 현상에 과도한 이름표를 붙이고 있다 보네요. 언제 어떤 때나 청년층 이야기 들어봐야 한다는 우국충정 보이는 사람들이 넘쳐 났지만 결국 지나고 보면 아무 의미도 없던 이야기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따져 보면 자신들이 열린 사람인 양 자기연출하고 싶은 한스 임짐머 같은 사람들이 날뛰었을 뿐인 거죠. 가장 최근(..)의 예로는 우석훈의 88만 원 세대 같은 게 있을 거고요. 지금 그런 담론들의 의미를 누가 음미하겠습니까? 누가 이 담론들의 주장을 현재까지 연속성 있게 이어가고 있습니까? 일단 청년 담론은 대체로 '젊음' 그 자체를 흡혈하면서 수혈을 통해 회춘받고 싶어 하는 어르신들의 판타지에 불과한 경우가 많습니다. 청년이 희망이다, 청년들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 세대가 잘못해서 청년들이 고생이다, 젊은 사람들이 한 번이라도 아파트 가졌으면 좋겠어.. 5년 만이라도 등등. 얼핏 보면 열리고 트이고 깨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일종의 자뻑입니다. '동년배 퇴물들과 달리 나는 나 스스로가 퇴물이라는 것만큼은 알고 있다는 점에서 깨여 있는 존재이며 [젊음]과 아직 왕래 가능한 영역에 머무르고 있다'라는 것이죠. 소크라테스와 유사한 나르시시즘입니다. 그러한 자뻑의 확증을 얻고 싶어서 끊임없이 자신이 아직 세태와 트렌드에 뒤쳐지지 않았다는 것을 호소하려 하고, 또 그 수단이 청년 팔이고. 실상 고령자에게 있어 청년은 젊은 날의 '이성'과 같을 수 있습니다. 청장년층이 이성에게 어필하기 위해 오만 난리부르스를 피우는 것처럼 고령자들은 청년들에게 인정 받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는 거죠. 죽어가고 있는 입장에서는 나보다 죽을 날이 먼 연소자의 인정 = '나 아직 안 죽었어'인 겁니다. 그리고 이런 이들이 전유하는 청년 담론이란 것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겠죠. 그런 고령층 전유라는 맥락을 차치하더라도, 청년 담론 자체가 일회적인 '증상'에 근거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대체로 이런 것들은 그렇게까지 의미부여를 할 일이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 며칠 전에 한국 여성 80%가 '한국을 떠나고 싶다'라고 응답했다는 설문이 나왔습니다. 이 설문 자체로는 진실이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에 대고 '이대로면 다들 한국 떠나서 나라 망한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이치에 닿을까요. 그보다는 '한국을 떠나고 싶냐 떠나고 싶지 않냐고 질문 받으면 떠나고 싶다고 응답하는 게 자연스럽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실제 이민 의사를 반영하지 않는다'라고 해석하는 것이 상식적일 것입니다. 즉 사람들의 하소연과 아우성과 발악을 어느 정도는 [넋두리]로 흘리는 게 실제 현실에 부합할 수 있습니다. 그런 휘발 되는 감정적 표현 하나하나를 스냅샷 찍어 봐야 전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거죠. 오히려 그런 행위에 의해서 현실이 스냅샷을 향해 나아가는 효과가 발생합니다. 이건 현실의 병원을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병원 내원한 환자 이야기만 들으면 앞으로 국토 태반을 납골당으로 만들어야 하나 싶을 겁니다. 모두가 내일이면 죽을 것처럼 굴고 모레면 묘비 세워야 할 것처럼 의사쌤을 괴롭히지만 실제로 MRI 까보릅 해보면 전혀 그렇지 않죠. 신체의 증상, 그리고 그 증상에 대한 환자의 주관적 호소, 궁극적으로 실제 병리는 그렇게까지 필연적인 관계는 없는 것입니다. 릅신이 주관적으로 고트 호소한다고 고트가 아닌 것처럼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이 다 진짜가 아니며, 마찬가지로 청년 유권자가 이야기하는 불만이나 저주나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이유나 지지하지 않는 이유나 노이즈일 확률이 높습니다. 자체로 교란된 데이터인 거고요. 이와 관련해서 2014년에 나온 퓨 리서치 센터의 설문에 의하면,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것은 명확하지만, 막상 정치를 표면화하지 않은 식의 사회 설문류에서는 각 집단의 반응 일치도가 높을 때가 많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즉, 생각 외로 우리는 사회문화적 가치에 있어 점점 닮은 꼴의 사람들이 되고 있다는 겁니다. 특정 키워드만 끼워넣지 않으면, 이 문제가 '정치 문제'가 아니라는 것만 확인되면, 우리는 비슷한 사람이라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되레 정치적 적대감과 이질감은 더 심하게 느끼고 있다는 거고요. 물론 무려 11년 전의 연구고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진부한 설문이라서 옛날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저때 붙은 '가속'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 즉 방향성 자체는 저때 시작되어 지금을 결정했다는 점에서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 https://www.niemanlab.org/2019/08/maybe-facts-dont-care-about-your-feelings-but-political-polarization-is-about-feelings-not-facts/ 여기서 알 수 있는 함의는, 사람들이 표면적으로 발언하는 [정치 발언]이 진짜 그 사람을 말해주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본인 스스로도 그런 말을 하는 본인을 모른다는 거죠. 실제 본인은 걍 평범한 뫄뫄붕이인 건데 그냥 '특정 키워드'에 인터넷 등을 통한 간접 경험으로 학습된 반감이 조건반사적인 반응을 유도하면서 뜬금없이 지랄발광을 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요는 본인조차도 본인의 정체성을 모르고 있을 수 있다는 거죠. 사실은 매우 흔한 사례입니다. 기득권자에 대한 반골심리가 생리적으로 그득그득하지만 북한 이야기만 나오면 김대중 죽여버리라는 이야기자 자동반사적으로 나오는 어르신들 많죠. 이와 마찬가지로 청장년층이 인터넷에서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그 발언 자체에 진지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수사학적 진리를 탐구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오히려 파고 들면 들수록 지는 것일 수 있죠. 갠적으로는 현재의 인터넷 중심 정치적 극단화는 '적'의 메시지를 부분적으로라도 수용하는 순간 자기 진영에서 아싸 내지 박쥐가 될 거라는 두려움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봅니다. 과거처럼 진영 구축 정도가 약한 상황, '나는 신한국당을 지지한다' '나는 국민회의를 지지한다' 정도의 관념은 있지만 정치 이야기를 할 사람이 주변 친구나 직장 동료나 가족들 정도로 제한된 상황에서는 이런 '패거리 관념' 그리고 그와 결부된 '집단 내에서의 인정욕' 같은 게 중요하게 작용하기가 어려웠죠. 지인들끼리 행해지는 이야기니까 적당하게 인정하고 중재하고 하는 게 미덕이기도 했고요. 반면 현대의 인터넷 환경에서는 그런 식의 중용이나 타협이나 절충 같은 걸 꾀하다가는 프락치 소리 듣기 딱 좋고 그래서 말을 못 꺼내게 되죠. 정치 이야기만이 아닌 게 커뮤에서 한창 시끌시끌한 상황에서 중도적으로 온건한 입장 내놓으면 야리돌림 당하기 딱 좋지요. 그게 젠더 관련해서 남초면 서윗 소리 듣는 거고 일본 관련해서 여초면 토왜 소리 듣는 거고. 대세에 동참 안 하고 딴 소리 내면 넌씨눈 되고 눈새 되고.. 그런 프레셔가 항존하는 상황이니 한패들에게 무해한 동지로 인정받고 싶은 인정욕은 만성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고요. 말하자면 충성경쟁 하는 거죠. 리더에게 충성하는 게 아니라 조직에게 진영에게 충성함. 이렇게 가정하면 인터넷의 허상은 아니지만, 어떤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가해지는 '동질 압력', 즉 눈치 보는 짓거리를 빼고 보면 과연 인터넷에서의 발화를 무게감 있게 받아들일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실보다 인터넷에서 더 눈치를 본다는 게 극히 아이러니하고 개탄스러운 상황이기는 합니다만. 여튼 그래서, 언론 기관들이 청년 정치, 이대남 이대녀, 2030 어쩌구를 더 이상 이야기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문제의 핵심을 찌르지 못하는 변죽 울리기 이상이 아니며, 오히려 건들면 건들수록 허상의 문제를 진짜 문제로 만들어버리는 이데올로기적 역할을 할 뿐이므로. 이와 관련해서 아래의 글과 같은 생각입니다. https://pgr21.com/freedom/54744 [아주 솔직한 감상으로 전 ...뭐 그리 대단한 문제라고 300플이 달렸는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저랑 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이 아주 많아 보이기도 합니다. 근데 그 생각을 댓글이나 글로 옮기는 순간 우리들은 ..아궁이에 땔감을 던져넣은 것입니다. 사태의 엄중함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시키는 것이지요. 그런 점을 보더라도 당초의 주제에 대해 우리가 어떤 인상을 받았는가는 그 자체로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닐 수가 있습니다.] 물론 이 글 역시 땔감 하나 투척하는 글이긴 한데, 어차피 이 글로 일어날 확산 효과는 극히 제한적/땔깜은 땔깜인데 물 묻은 땔깜임 이라는 생각으로 하나 던져 봅니다.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5-07-08 08:10)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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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보면 열리고 트이고 깨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일종의 자뻑입니다. '동년배 퇴물들과 달리 나는 나 스스로가 퇴물이라는 것만큼은 알고 있다는 점에서 깨여 있는 존재이며 [젊음]과 아직 왕래 가능한 영역에 머무르고 있다'라는 것이죠.
매우 동감합니다. 청년한테 너무 설설 기는 것도 그렇게 좋아보이지 않아요.
매우 동감합니다. 청년한테 너무 설설 기는 것도 그렇게 좋아보이지 않아요.
SNS 이전 시대의 방식으로 SNS 이후 세대를 평가하는 게 2030 보수화의 원인이자 그들에 대한 반작용만 큰 집중 포화의 원인이라고 봅니다.
사춘기의 대책없고 파괴적인 반항과 기존 체재 부정, 전형적 표현이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청춘의 방황과 불안 불신은 본래 비교적 좁고 내밀한 사적 차원에서 질병처럼 앓았다가 혼자서 성찰하고 반성하는 과정을 거쳐 발전적으로 완치되곤 했죠. 정말 홍역같은 전염병과 유사하네요. 하지만 지금 1020은 이걸 커뮤니티나 SNS를 통해 함께 앓습니다. 홍역 같은 성장 의례적 전염병을 앓는 환자들이... 더 보기
사춘기의 대책없고 파괴적인 반항과 기존 체재 부정, 전형적 표현이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청춘의 방황과 불안 불신은 본래 비교적 좁고 내밀한 사적 차원에서 질병처럼 앓았다가 혼자서 성찰하고 반성하는 과정을 거쳐 발전적으로 완치되곤 했죠. 정말 홍역같은 전염병과 유사하네요. 하지만 지금 1020은 이걸 커뮤니티나 SNS를 통해 함께 앓습니다. 홍역 같은 성장 의례적 전염병을 앓는 환자들이... 더 보기
SNS 이전 시대의 방식으로 SNS 이후 세대를 평가하는 게 2030 보수화의 원인이자 그들에 대한 반작용만 큰 집중 포화의 원인이라고 봅니다.
사춘기의 대책없고 파괴적인 반항과 기존 체재 부정, 전형적 표현이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청춘의 방황과 불안 불신은 본래 비교적 좁고 내밀한 사적 차원에서 질병처럼 앓았다가 혼자서 성찰하고 반성하는 과정을 거쳐 발전적으로 완치되곤 했죠. 정말 홍역같은 전염병과 유사하네요. 하지만 지금 1020은 이걸 커뮤니티나 SNS를 통해 함께 앓습니다. 홍역 같은 성장 의례적 전염병을 앓는 환자들이 개개로 격리되지 않고 한 곳에 보여 서로의 감염과 증상을 확산, 심화시키고 있는 게 지금 상황 아닌가 싶어요. 그러다보니 적당히 앓고 나을 수 있는 개인의 투병 기한이나 병세의 심각함이 필요 이상으로 악화되는 사례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 나물에 그 밥인 사람들끼리 성찰에 필요한 시간이나 거리감 없이 밀착해 떠들다 보니 나온다는 해결책의 수준도 하향평준화 되고 있고요.
대단히 보수적인 아재의 발언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SNS와 반사회, 반공공선적 이념을 공유하고 확대 재생산하는 SNS나 인터넷 공간에 대한 방역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방식에 대해선 섬세하게 고민해 봐야 겠지만요. 존엄한 개인으로서 홀로 조용히 치룰수록 좋은 건 배설이나 샤워, 코딱지 파기 만이 아닌 것 같아요.
아울러 그들의 되바라진 발언과 행위에 대해 기성세대가 정색하며 비판하고 박제하고 모욕하는 것보단, 성장통이나 병을 앓는 환자에게 인류가 보였던 정도의 아량과 이해를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하는 1020들은 표면적으로야 반항할수도 있겠지만.. 제 경험 상 대부분은 고맙게 생각하더라고요.
사춘기의 대책없고 파괴적인 반항과 기존 체재 부정, 전형적 표현이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청춘의 방황과 불안 불신은 본래 비교적 좁고 내밀한 사적 차원에서 질병처럼 앓았다가 혼자서 성찰하고 반성하는 과정을 거쳐 발전적으로 완치되곤 했죠. 정말 홍역같은 전염병과 유사하네요. 하지만 지금 1020은 이걸 커뮤니티나 SNS를 통해 함께 앓습니다. 홍역 같은 성장 의례적 전염병을 앓는 환자들이 개개로 격리되지 않고 한 곳에 보여 서로의 감염과 증상을 확산, 심화시키고 있는 게 지금 상황 아닌가 싶어요. 그러다보니 적당히 앓고 나을 수 있는 개인의 투병 기한이나 병세의 심각함이 필요 이상으로 악화되는 사례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 나물에 그 밥인 사람들끼리 성찰에 필요한 시간이나 거리감 없이 밀착해 떠들다 보니 나온다는 해결책의 수준도 하향평준화 되고 있고요.
대단히 보수적인 아재의 발언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SNS와 반사회, 반공공선적 이념을 공유하고 확대 재생산하는 SNS나 인터넷 공간에 대한 방역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방식에 대해선 섬세하게 고민해 봐야 겠지만요. 존엄한 개인으로서 홀로 조용히 치룰수록 좋은 건 배설이나 샤워, 코딱지 파기 만이 아닌 것 같아요.
아울러 그들의 되바라진 발언과 행위에 대해 기성세대가 정색하며 비판하고 박제하고 모욕하는 것보단, 성장통이나 병을 앓는 환자에게 인류가 보였던 정도의 아량과 이해를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하는 1020들은 표면적으로야 반항할수도 있겠지만.. 제 경험 상 대부분은 고맙게 생각하더라고요.
얼추 동의하면서도 결론에 대해서는 무리데스.. 그것좀 말하지 말지? 라는 식의 입막음이 될리가 없읍니두.. 라는 생각..
구샘께서 쟤네는 이러이러해서 저럴 수밖에 없어.. 에 언론과 기관이 갸들을 특정 방식으로 언급하는 것까지 다 포함된다고 생각합니다..
소위 <댓글까지 템플릿이다>라는거 비슷하게..
허상이 있고 그 허상 속에서 실질을 가려내야 한다는 말씀은 언제나 지당하심..
허상과 실질을 구분하려 애쓰다 보면 [어떤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가해지는 '동질 압력',... 더 보기
구샘께서 쟤네는 이러이러해서 저럴 수밖에 없어.. 에 언론과 기관이 갸들을 특정 방식으로 언급하는 것까지 다 포함된다고 생각합니다..
소위 <댓글까지 템플릿이다>라는거 비슷하게..
허상이 있고 그 허상 속에서 실질을 가려내야 한다는 말씀은 언제나 지당하심..
허상과 실질을 구분하려 애쓰다 보면 [어떤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가해지는 '동질 압력',... 더 보기
얼추 동의하면서도 결론에 대해서는 무리데스.. 그것좀 말하지 말지? 라는 식의 입막음이 될리가 없읍니두.. 라는 생각..
구샘께서 쟤네는 이러이러해서 저럴 수밖에 없어.. 에 언론과 기관이 갸들을 특정 방식으로 언급하는 것까지 다 포함된다고 생각합니다..
소위 <댓글까지 템플릿이다>라는거 비슷하게..
허상이 있고 그 허상 속에서 실질을 가려내야 한다는 말씀은 언제나 지당하심..
허상과 실질을 구분하려 애쓰다 보면 [어떤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가해지는 '동질 압력', 즉 눈치 보는 짓거리를 빼고 보면 과연 인터넷에서의 발화를 무게감 있게 받아들일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실보다 인터넷에서 더 눈치를 본다는 게 극히 아이러니하고 개탄스러운 상황이기는 합니다만.] <= 이런 문제의식에 이르는게 필연인거 같으면서도, 어쩐지 제 눈에는 그것조차 (왤케 진지하시지.. 갸들도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눈치 안보는데.. )이렇게 보여요. 뭐랄까 이방인에서 시종일관 의미없다 ~ 의미없다~ 스탠스 유지하다가 마지막에 갑자기 신부 말에 진지해지는 뫼르소 보는 것 같은.. 근데 또 그래야 작품의 완성이니까 그게 맞는거 같기도 하고.. ㅋㅋ
구샘께서 쟤네는 이러이러해서 저럴 수밖에 없어.. 에 언론과 기관이 갸들을 특정 방식으로 언급하는 것까지 다 포함된다고 생각합니다..
소위 <댓글까지 템플릿이다>라는거 비슷하게..
허상이 있고 그 허상 속에서 실질을 가려내야 한다는 말씀은 언제나 지당하심..
허상과 실질을 구분하려 애쓰다 보면 [어떤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가해지는 '동질 압력', 즉 눈치 보는 짓거리를 빼고 보면 과연 인터넷에서의 발화를 무게감 있게 받아들일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현실보다 인터넷에서 더 눈치를 본다는 게 극히 아이러니하고 개탄스러운 상황이기는 합니다만.] <= 이런 문제의식에 이르는게 필연인거 같으면서도, 어쩐지 제 눈에는 그것조차 (왤케 진지하시지.. 갸들도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눈치 안보는데.. )이렇게 보여요. 뭐랄까 이방인에서 시종일관 의미없다 ~ 의미없다~ 스탠스 유지하다가 마지막에 갑자기 신부 말에 진지해지는 뫼르소 보는 것 같은.. 근데 또 그래야 작품의 완성이니까 그게 맞는거 같기도 하고.. ㅋㅋ
ㅋㅋㅋ 그건 그렇읍니다. 뭔가 찻잔임 -> 아닌가 -> 찻잔 맞다 인식에 필요한 시간이 필요했던거 같기도 하고.. 솔직히 아직까지도 전 잘 모르겠음둥..
요는 환자가 자신의 작은 고통을 부풀려 엄살로 난리부르스 치고 있을 때 의사가 풍부한 임상경험으로 어떤 검사처방을 내리느냐가 중요할거 같읍니다. 어떤 분은 온갖 처방으로 도배하다가 과잉진료라고 욕먹기도 하고 어떤 분은 쪽집게처럼 필요한 검사만 딱 진행하기도 하고 어떤 분은 그러다가 뭘 놓쳐서 의료사고를 내기도 하고..
요는 환자가 자신의 작은 고통을 부풀려 엄살로 난리부르스 치고 있을 때 의사가 풍부한 임상경험으로 어떤 검사처방을 내리느냐가 중요할거 같읍니다. 어떤 분은 온갖 처방으로 도배하다가 과잉진료라고 욕먹기도 하고 어떤 분은 쪽집게처럼 필요한 검사만 딱 진행하기도 하고 어떤 분은 그러다가 뭘 놓쳐서 의료사고를 내기도 하고..
“일단 청년 담론은 대체로 '젊음' 그 자체를 흡혈하면서 수혈을 통해 회춘받고 싶어 하는 어르신들의 판타지에 불과한 경우가 많습니다.” 글쎄요? 까놓고 말하면 나이든 이들의 논지는 청년 시대의 ‘가지 못한 길’에 불과하니 불쌍히 여겨줘야 하지 않나? 라는 이야기로 수렴하게 되어요. 그리고, 그렇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청년층의 견해를 수렴하고자 하는 노력은 인정합니다. 그것이 해당 층위, 그리고 “나는 아직 그쪽이지”라는 더 나이든 층위의 암묵적 지지를 쉽게 받을 수 있는 포지션을 점하는 것도 인정해요. 무엇을 희생하나요? 익히 인정... 더 보기
“일단 청년 담론은 대체로 '젊음' 그 자체를 흡혈하면서 수혈을 통해 회춘받고 싶어 하는 어르신들의 판타지에 불과한 경우가 많습니다.” 글쎄요? 까놓고 말하면 나이든 이들의 논지는 청년 시대의 ‘가지 못한 길’에 불과하니 불쌍히 여겨줘야 하지 않나? 라는 이야기로 수렴하게 되어요. 그리고, 그렇지 않습니다. 선생님이 청년층의 견해를 수렴하고자 하는 노력은 인정합니다. 그것이 해당 층위, 그리고 “나는 아직 그쪽이지”라는 더 나이든 층위의 암묵적 지지를 쉽게 받을 수 있는 포지션을 점하는 것도 인정해요. 무엇을 희생하나요? 익히 인정하시겠지만, 노인층을 목소리 없는 자로 만드는 댓가지요.
중간에 논의의 축을 변경해서 “갠적으로는 현재의 인터넷 중심 정치적 극단화는 '적'의 메시지를 부분적으로라도 수용하는 순간 자기 진영에서 아싸 내지 박쥐가 될 거라는 두려움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봅니다.”로 옮기는 무브, 좋습니다. 그런데 뭘 주장하고 싶으신 건가요? 여러 논지를 포함하면 A도 B도 수렴하는 양비론이 되겠죠. 정작, 주장하고 싶으신 건 뭔가요? 장년층의 주저함? 청년층의 염려? 아님, 모두까기?
글의 현란함, 좋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논지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중간에 논의의 축을 변경해서 “갠적으로는 현재의 인터넷 중심 정치적 극단화는 '적'의 메시지를 부분적으로라도 수용하는 순간 자기 진영에서 아싸 내지 박쥐가 될 거라는 두려움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봅니다.”로 옮기는 무브, 좋습니다. 그런데 뭘 주장하고 싶으신 건가요? 여러 논지를 포함하면 A도 B도 수렴하는 양비론이 되겠죠. 정작, 주장하고 싶으신 건 뭔가요? 장년층의 주저함? 청년층의 염려? 아님, 모두까기?
글의 현란함, 좋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논지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그 인터넷에서 눈치 보면서 형성한 정치의식이 현실에 반영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인터넷 정체성을 공격할 수 있어야 뭐가 바뀐다고 보고요. 물론 극우 딱지를 붙여봤자 피해의식만 강화될 수 있겠죠. 하지만 안 그런다고 피해의식이 약해지는 것도 아니고, 커뮤에 자아의탁하는 게 옳은 양태도 아닌데 꼭 조심스럽게 접근해야만 할 문제인가 싶습니다.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기보다는, 우리가 정보를 해석할 때 특정 발언/특정 현상/특정 세대에 과도한 가중치가 설정되어 있지는 않은지를 점검해 보면 좋다는 생각입니다. 과연 지금의 20대 문제는 10여 년 전에 언론에서 '20대 개새끼론(민주당에 표 주지 않고 투표도 안 하는 너희 때문에 민주주의가 망하는 거임)'와 얼마나 달라진 것인지, 그때의 20대 개새끼론이 지금에 와서 얼마나 덧없는지, 뭐 그런 생각이네요.
관심이라는 게 누가 칼들고 협박해서 가지는 게 아닌 이상 관심을 가질만 하니까 갖는 거고, 갖지 말라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니죠. 코끼리 생각하지 말라는 얘기인데요.. 코끼리는 실재합니다. 다만 저마다 각기 다리만지고 코만지고 뿔 만지고 하면거 실제 모습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을 뿐이죠. 이대남은 왜 생겼나... 페미니즘 반발심으로 나왔다... 아니다 그런 거 없다... 있어도 한줌단이다... 아닌데? 점점 커지는데? 괜히 관심 주니까 더 커진 거다... 계속 무시하자? 뭐 이런 결론은 당연히 아니겠지만, 아주 자연스러운 흐름인지라 말을 하지 말자는 건 별 의미가 없을 듯 합니다. 아직 잘 모른다는 게 더 맞고 말을 안하자는 건 가능하지도 않고 도움이 될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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