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9/04/16 22:29:31수정됨
Name   bullfrog
File #1   IMG_20170416_161824.jpg (3.70 MB), Download : 8
Subject   그냥…그날의 기억


그냥 매일 하루에 몇번은 눈팅하는 홍차넷에, 5주기에, 세월호 글을 한번 써보고 싶었어요.

언젠가 읽은 세월호와 관련된 에세이에 "모든 잠시 환기되는 슬픔은 끊임없이 귀환하는 슬픔에 예를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 라는 문구 (사실 정확한 건 아니에요) 가 가슴에 와서 꽃힌 적이 있어요.

경기도 안산시에 사는 저는 그날 오전도 어김없이 출근을 해서 한창 바쁘게 일을 하고 있었고 무심결에 인터넷에서 안산시 단원고 수학여행…전원구조 라는 기사를 스치듯 본 것 같아요. 안산에서 교사를 하다가 전년도에 첫애를 낳고
육아휴직에 들어간 아내랑 카톡으로 '다행이다 정말' 메시지를 교환했던 기억이 나요.

점심을 먹고 오는 길에, 실종자가 백여명이라는 TV뉴스를 보았고 숫자는 점점 늘어만 갔어요. 그날도 저는 야근을 해야했던 것 같아요. 아홉시쯤인지 열시쯤인지, 안산으로 내려가는 사호선 지하철 안은 무거운 공기가 감싸고 있었고 사람들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어요.

아내의 동료교사가 단원고라는 얘기를 들었고, 다행히 둘째를 임신중이라 수학여행을 가지는 않았다고 해서 안도했어요… 뉴스를 보다가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구나…하고 지친 몸을 뉘었어요.

하루는 원래 내려야 할 역을 하나 다 지나서, 고잔역에 내려서는 분향소로 걸어갔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기억이 잘 나지는 않아요.  하지만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지하철의 무거운 공기는 계속되었음은 생생히 기억이 나요… 아내의 동료교사는 유산을 했다고 들었어요.

이주기인지 삼주기 때는 이제 두살인가 세살인가 된 딸을, 잠든 딸을 안고 분향소로 다시 갔어요. 세월호 티비라는 타이틀을 단 촬영장비를 만지시며 차분히 추모객들을 촬영하시던 아저씨가 기억이 나요. 뿔테 안경을 쓰고 머리는 하야셨던 것 같아요. 제가 분향할 차례 쯤인 것 같아요. 그 분이 갑자기 "아악"하고 소리를 지르셨어요. 가슴이 터질 듯한 단말마였어요. 옆에 왠지 아내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그분을 위로해주셨던 거 같아요.

저에게 세월호는, 어쩌면 이맘때 잠시 환기되는 슬픔일지도 모르겠어요. 끊임없이 귀환하는 슬픔을 가지신 분들이 있을 거에요. 그분들에게 예를 다하고 싶어요. 돌아가신 분들에게도. 계속 기억하는 것만이 도리인 듯 해요. 이 글이 그 어떤 누구에게도 누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16
  • 좋은 글 감사합니다 ㅠ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티타임 게시판 이용 규정 2 Toby 15/06/19 32007 7
15192 일상/생각대체 여기가 어딘지는 모르지만 도달했습니다 2 + 골든햄스 25/01/07 331 4
15191 정치탄핵심판의 범위 및 본건 탄핵심판의 쟁점 3 김비버 25/01/06 297 10
15190 정치시민의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30 + Daniel Plainview 25/01/06 986 15
15189 일상/생각집안에 기강이 안선다고 한마디 들었어요.ㅠㅠ 13 큐리스 25/01/06 648 2
15188 IT/컴퓨터인공지능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말빨" 4 T.Robin 25/01/05 573 7
15187 정치어떻게 내란죄가 입증되는가 10 매뉴물있뉴 25/01/04 1023 10
15186 일상/생각공백 없는 이직을 하였읍니다. 11 Groot 25/01/04 771 21
15185 정치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제2차 변론준비기일 방청기 8 시테 25/01/03 868 24
15184 일상/생각요즘 느끼는 소소한 행복 5 큐리스 25/01/03 501 10
15183 정치한국 정치에 대해 또 다른 주제로 투표하는 미국분들 1 kien 25/01/03 705 0
15182 기타요즘 보고 있는 예능(17) 김치찌개 25/01/02 380 0
15181 방송/연예2024 걸그룹 6/6 6 헬리제의우울 25/01/01 515 26
15180 정치해외도박사이트의 윤석열 4월 이전 탄핵확률 추이 7 kien 25/01/01 1134 0
15178 일상/생각2024년 취미 활동 결산 메존일각 24/12/31 362 8
15176 생활체육2024년 내란모의 GOAT 운동 결산 4 danielbard 24/12/30 695 2
15175 도서/문학마르크스가 본 1848년부터 1851년까지의 프랑스 정치사 3 카페인 24/12/30 578 5
15174 일상/생각지옥길을 걷고 있다면, 7 호미밭의파스꾼 24/12/30 849 37
15173 스포츠[MLB] 코빈 번스 6년 210M 애리조나행 김치찌개 24/12/30 130 0
15172 스포츠[MLB] 폴 골드슈미트 1년 12.5M 양키스행 김치찌개 24/12/30 143 0
15171 음악[팝송] 카일리 미노그 새 앨범 "Tension II" 1 김치찌개 24/12/30 127 0
15170 여행[2024 나의 이탈리아 여행기] 1. To Rome 2 Omnic 24/12/29 259 7
15169 방송/연예오겜2 짧은 후기 3 Leeka 24/12/29 411 0
15168 도서/문학밀란 쿤데라가 보는 탄핵정국 sisyphus 24/12/28 653 1
15167 정치한강과 이영도: 사랑보다 증오가 쉬운 세상에서 2 meson 24/12/28 539 7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