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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02/24 22:20:36
Name   곰곰이
Subject   외계 행성을 (진지하게) 발견하는 방법
트라피스트-1(왼쪽)과 7개 주변 행성들의 상상도 (네이처 제공, 연합뉴스)


지구에서 39광년 떨어진 [항성계]에서 [지구형 행성] 7개가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항성: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천체, 여기서는 트라피스트-1
*항성계: 태양계처럼 항성을 중심으로 여러 행성이 공전하고 있는 계
*지구형 행성: 기반이 고체로 이루어져 있고, 액체 상태의 물이 존재할 수 있는 온도를 가진 천체 (지구랑 비슷한 크기인 경우가 많습니다)


위에 있는 사진처럼 그럴싸한 7개의 행성 이미지와 영상도 함께 공개되었는데요,
이런 이미지를 볼 때마다 아쉬운 건, 
이 행성들을 발견한 과학자들은 실제 저런 모습을 관측하여 발표한 것이 전혀 아닌데,
평소 딱히 우주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정말 저런 모습의 행성을 멀리서나마 본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기 쉽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간략하게나마 2017년 현재, 과학자들이 실제 외계 행성을 관측, 발견하는 방법을
같은 일반인 입장에서 간략히 정리하여 홍차클러 분들께 소개하고자 합니다. 
생각보다 딱딱하지 않고 기발한 방법이라 흥미로워하실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럼 과학자들은 실제로 무엇을 보고 저 항성계에 지구형 행성이 7개 있다고 발표한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은 행성의 모양이나 컬러를 본 것이 아니라
망원경으로부터 오랜 기간 전송받은 '항성 빛의 변화량' 데이터를 '숫자'와 '그래프'의 형태로 만들어 행성의 존재를 '계산'한 것입니다.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아래에 이미지와 함께 설명하겠습니다)

외계행성을 관측할 때 위와 같은 '이미지/사진'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지구에서 태양계 밖에 있는 천체는 항성만 관측할 수 있고 행성은 아예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시광선, 적외선 그 어떤 것으로도 보이지 않습니다)

 
왜 그런 것인지, 가까운 우리 태양계 식구인 명왕성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명왕성은 태양으로부터 빛의 속도로 5시간 반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좌) 허블 망원경이 지구 궤도에서 촬영한 명왕성 vs. (우) 뉴호라이즌스호가 근접 촬영한 명왕성 (http://imgur.com/roceqd3)

오른쪽의 선명한 이미지는 지난 2015년 뉴호라이즌스호가 명왕성에 근접하여 촬영한 이미지입니다.
그리고 왼쪽의 뿌연 이미지는 사실 2015년 이전까지 인류가 촬영했던 가장 좋은 품질의 명왕성 사진입니다.
기존에 알고 있었던 명왕성의 크기, 지각 구성 등도 뉴호라이즌스호의 관측에 의해 모두 다 수정되었습니다. 
우주는 사실 관측하기에 너무 너무 큽니다.


그럼 이렇게 태양계 안의 천체도 직접 가보지 않으면 제대로 관측하기가 어려운데,
수십-수백 광년 떨어진 다른 항성계의 '행성'은 대체 어떻게 발견하는 것일까요?
다행히 '지구 → 외계 행성 관측'의 경우는 '지구 → 명왕성 관측'과는 다른 획기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케플러 우주망원경 관측 상상도 
(그림 우측 상단의 커다랗고 노란 항성과 달리 실제 태양을 제외한 모든 항성은 아무리 정밀한 망원경으로 봐도
작은 '점'으로만 보이며, 행성은 보이지 않습니다)


최근 무더기로 외계 행성을 발견하고 있는 케플러 우주망원경의 경우,
[행성이 자신이 딸려 있는 항성 앞을 공전하여 지나갈 때 항성의 빛을 아주 조금 가리게 되어 발생하는 '광량의 변화'를 관측합니다]
기존 해당 항성의 밝기는 알려져 있으므로, 
어느 날 그 항성의 빛이 1/1000 만큼 어두워졌다가 6개월 후에 다시 밝아지는 것을 관측하게 된다면,
그 항성의 앞을 어떤 작은 행성이 공전하며 6개월 동안 통과해 지나간 셈이라고,
직접 보이진 않지만 그 곳에 행성이 있다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1/1000 만큼 어두워진 이유가 행성 1개가 지나갔기 때문인지, 여러 행성이 동시에 지나갔기 때문인지,
또 그 항성 앞을 지나가는 행성은 항성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우선 몇 년에 걸쳐 동일한 패턴의 빛의 변화를 반복 관측하고, 또 해당 '항성'의 미세한 축 이동을 (점의 위치변화) 관측하여, 
각각 어떤 방향에서 어느 정도의 질량을 가진 행성들이 그 항성을 끌어당겼는지를 복합적으로 계산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행성의 크기와 항성과의 거리 등을 계산하면, 자연스럽게 '지구형 행성'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항성과의 거리가 너무 가깝거나 멀면 생명이 살기 어렵고, 행성의 지름이 너무 크거나 작아도 또 지구형 행성에 부적합합니다.


과학자들은 이렇게 성격 버리기 딱 좋은 지난하고 마이크로소프트한 과정을 거쳐 
비로소 이런 '지구형 행성 발견!'이라는 발표를 하는 것입니다.


다시 쨘.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전부 다른 컬러로 7개나 그리느라 고생했다.


설명을 보셔서 아시겠으나, 이 관측 방법의 실제 오차는 어마어마하게 클 수밖에 없으며,
각 행성 내 물의 존재는커녕 애초에 고체 행성인지 기체 행성인지도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
숫자상으로 태양과 지구 지름 및 공전궤도에 비례하여 적정한 수준이면 그럴 것이다. 추정할 뿐입니다.
(망원경 렌즈에 먼지 하나 묻어도 광량이 1/1000 줄어들 수 있음,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음, 이 방법이 최선임)


일반인 우주항공 덕후 입장에서는, 이러한 과학 발전에 놀라면서도, 
알면 알수록 실제 우주는 더욱 광활하고 동시에 인간의 한계는 너무나 명확하여
본격적인 외계인과의 만남이나 우주 개발의 가능성은 계속 낮아지는 것만 같아 실망스럽기도 합니다.


홍차넷 티타임에 처음 쓰는 글을 '과학' 카테고리에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갑자기 지구 사이즈 행성 7개가 발견되다니...
이왕 이렇게 된 거, 다음번 기회가 되면 이런 '지구형 행성'이 의외로 '지구' 하나 밖에 없을 만한 가능성에 대해서도 써 보겠습니다.
(진지하게) 지구와 지구인들은 우주 전체에서 정말 특별한 존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9


    깊은잠
    그 오차 큰 기대조차 우리가 가진 지각의 최전선에 있으니, 충분히 의미가 있다 할 수 있죠. 아무리 지각능력을 도구로 보완한다고 해도 인간이란 종 자체가 가진 사고방식, 논리전개방식의 한계는 어쩔 수 없지 않나 싶기에(=발전에 한계가 있다고 보기에) 오히려 관측 기술, 지각 능력의 발전을 더 중히 여겨야 할 거란 생각이 듭니다.
    곰곰이
    네 맞습니다. 현재 가장 우수한 지성들이 조 단위의 예산을 투입하고 오랜기간 연구하여 만들어낸 결과물이니 충분히 의미가 있고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런 연구 결과가 미디어에서 소비될 때는 당장이라도 외계인을 찾을 수 있을 것 처럼 부풀려질 때가 많고, 이런저런 오해를 사는 것 같아 간략하게나마 정리해 보았습니다.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헤헤 게을러터진 제 인생도 알고보면 조금은 특별할 지도 모르겠군요. 감사합니다
    곰곰이
    특별할 이유가 너무 많지요 ㅎㅎ
    가끔씩 우주의 스케일을 생각할 때면, 지구에서의 온갖 일들이 참 소소해 보이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정말 특별하게 느껴질 때도 많은 것 같습니다.
    안그래도 저는 exoplanets 를 찾았다는 뉴스가 뜬 날 우연히/아무생각 없이 그리피스 천문대를 다녀와서 이런 저런 생각/느낌이 있었는데 초중딩 과학시간때 배운 것 빼고는 우주에 대해서는 정말 모르는지라;; 그 느낌 조차 실체화 할 수 없어서 머릿속 뒷켠에 모셔만 두다 까먹을 것 같았는데... 이런 재미난 글을 읽으니 이것 저것 찾아 읽어보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당 +ㅅ+
    재밌는 글 감사해요!!!
    곰곰이
    이 건조한 글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이공계의 상냥함이 느껴집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막상 한 번 외계 행성 글을 쓰니 관련하여 몇 가지 더 쓸 거리들이 생각나서 종종 우주 글(?)을 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그리피스 천문대는 꼭 한 번 가 보고 싶네요)
    오 그럼 트라피스트 -1의 저 이쁜 별의 색깔들은 주작이란 것인가요. 그 색의 선정엔 최소한의 개연성도 없는 것일까요..?
    마침 간단한 관련기사를 보고 궁금 궁금 하던 차에 잘 읽었답니다. 감사감사.
    곰곰이
    ^^ 흥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미지 좌측에 보이는 '항성'인 트라피스트-1의 경우에는 실제 밝기를 관측할 수 있기 때문에 거리와 크기, 나이도 추정 가능하고,
    어느정도 다양한 근거를 가지고 흰색부터 - 붉은색까지 컬러를 태양 비슷하게 그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트라피스트-1에 딸린(?) 7개의 지구 사이즈 '행성'들은 정말 별다른 개연성 없이 상상으로 그렸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도 고생한 일러스트레이터를 위해 굳이 근거를 찾아보자면
    항성(트라피스트-1)에 가까울수록 행성의 온도가 높고, 멀 수록 추울 것이... 더 보기
    ^^ 흥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미지 좌측에 보이는 '항성'인 트라피스트-1의 경우에는 실제 밝기를 관측할 수 있기 때문에 거리와 크기, 나이도 추정 가능하고,
    어느정도 다양한 근거를 가지고 흰색부터 - 붉은색까지 컬러를 태양 비슷하게 그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트라피스트-1에 딸린(?) 7개의 지구 사이즈 '행성'들은 정말 별다른 개연성 없이 상상으로 그렸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도 고생한 일러스트레이터를 위해 굳이 근거를 찾아보자면
    항성(트라피스트-1)에 가까울수록 행성의 온도가 높고, 멀 수록 추울 것이다 정도의 추정으로 그림을 그린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각 행성마다 크기, 중력, 구성물질 등이 다르기 때문에 항성에 가깝다고 반드시 온도가 더 높은 건 아닙니다.)
    위 이미지를 보면 항성(트라피스트-1)에 가까이 위치한 행성 2개는 태양계의 수성과 비슷하게 좀 메마른(?) 느낌으로 그렸고,
    중간쯤에 있는 행성 3개는 지구 비슷하게 물과 대기가 있는 모습으로,
    그리고 가장 멀리 있는 행성 2개는 좀 춥고 얼음이 있을 것만 같은 느낌으로다가 그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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