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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02/17 15:32:15
Name   은머리
Subject   현실 직시하기, 그것의 어려움
사회심리학자인 니콜라스 에플리 교수에 의하면 우리는 타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면 없을수록 우리만의 편견으로 그 빈 공간을 채워넣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가 행한 실험에 의하면 우리는 타인이 피력한 의견을 텍스트로 읽을 때보다 타인의 목소리를 들을 때 더 많은 이해심을 발휘하게 된다고 하는데 이건 홍차넷회원 여러분들도 타임라인에서의 사운드클라우드 목소리인증을 들으며 깨우친 바이기도 해요. 그런데 이 말을 뒤집으면 되게 재밌어져요. 텍스트만 읽을 때 인간은 상대방을 덜 인간적으로 상정해 놓는 경향이 있어서 이해심을 발휘하는 데에도 매우 야박해 집니다. 목소리만 듣는 것과 타인을 영상으로 보는 것 사이에는 이해심의 차이가 유의미하게 나타나지는 않았다고 하는군요. 텍스트와 목소리/영상은 차이가 대단했구요.

[1]   텍스트는 미디어의 주요 전달수단이에요. 영상도 마찬가지이고요. 우리는 모든 이벤트들에 대해 텍스트와 영상을 동시에 섭렵하고 살지는 않아요. 그래서 텍스트만을 통해 공포심이나 적개심을 키우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바로 텍스트만을 접하는 경우 타인을 비인간화하기 쉬운 경향 때문에요. 지난 미 대선경쟁 당시 공화당 측 후보였던 마르코 루비오에 대해 리버럴들은, 흑심 가득하고 야망에 불타는 공화당 앵무새라고 폄훼했지만 그의 말에 주의 깊게 귀를 기울여 보면 상당히 이지적이고 이성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합니다.

https://www.washingtonpost.com/news/the-fix/wp/2017/02/09/marco-rubio-just-gave-a-really-important-speech-but-almost-no-one-paid-attention/?utm_term=.7b507dd5b4d3#comments

의회에서의 발언을 들어 보시면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멘트를 해요.

     *국민의 반이 나머지 반을 증오하는 나라가 자국의 문제를 타파하고 산다고 하는 문명에 대해 저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 사회는 점점 토론이 불가능해져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모두를 증오하며 서로 코너로 몰아넣는 바람에 지극히 단순한 문제조차도 해결하지 못하는 공화국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오늘 밤 우리가 처한 위기는 단순한 규정문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급한 안건을 건설적이고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에서 논의하지 못하는 이 세계 최강국의 무능에 있습니다.

대표적인 진보 상원의원인 민주당의 엘리자베스 워렌이 트럼프행정부가 지명한 법무부장관의 부적격성을 연단에서 성토한 날 타의원 비방금지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발언권을 박탈당했을 때에는 많은 언론에서 대서특필을 했었지만 루비오의 목소리는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았어요. 리버럴들에게 그는 그냥 꼴통 공화당의원으로 통하니까요.

[2]   어느 날 UC버클리에 초청된 한 연설자는 학생들의 반대시위로 인해 강연이 행사직전에 취소되는 바람에 연설할 기회를 잃었어요. 그는 마일로 요나폴리스라고 하는 극우 저널리스트였어요. 페미니즘을 암에 비유하기도 했죠. 이 해프닝에 대해 우려를 표한 비영리단체가 있었습니다. 미국 시민 자유 연맹(The American Civil Liverties Union)이라고 하는 단체로 트럼프행정부가 배타적인 이민정책을 발표하자마자 일주일만에 23 밀리언 달러(대략 250억 원)의 풀뿌리후원금을 확보했지요. 성소수자의 권리, 여성의 자기신체결정권, 표현의 자유 등의 가치를 지지하는 곳이에요. 이 단체에서 마일로 요나폴리스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자 단체지지자들이 발끈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Hate speech를 보호해야할 명분은 없다는 것이 그들의 불만이고요.

상위 두 예는 텍스트가 조장한 비인간화가 실재하는 이견을 압도함으로써 상대진영에 대한 혐오가 비현실적으로 커진 상태에서 발생하는 일들이라고도 볼 수 있어요. 실제로 목소리를 접해보면 텍스트로만 접할 때보다는 나은 이해심을 발휘할 수 있건만 그 기회를 완전히 차단하면 사회는 hate speech로부터 보호받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조금이나마 왜곡된 현실을 바로잡을 기회를 박탈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Hate speech에 대한 우려가 밀려온다 하더라도 인간은 결코 자신만의 아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겸손을 갖추는 것이 미덕이라면 충분히 상정해 볼 수 있는 이야기일 거예요.    

[3]   며칠 전에 Wall Street 저널에 아래와 같은 기사가 났어요. 유툽스타 중에 퓨디파이(PewDiePie)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스웨덴 젊은이가 있어요. 이 친구가 무엇으로 그리 유명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튼 인기가 굉장해서 유툽구독자가 5천 3백만이 넘어요. 천문학적인 숫자의 구독자로 인해 벌어들이는 수입도 굉장하죠.
https://www.wsj.com/articles/disney-severs-ties-with-youtube-star-pewdiepie-after-anti-semitic-posts-1487034533 이 사이트 구독자가 아니라 기사는 읽지 못했어요. 대신 동영상은 봤거든요. 저도 영상만 먼저 봤을 땐 뭐 이런 인종차별주의자가 인기가 저래 많나 했어요. 히틀러의 사진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사용하거나 심지어 나치복장을 하고 등장하기도 했죠. 이에 그가 간접적으로 소속되어 있던 디즈니가 사업 상의 결별을 선언했고요. 언론의 포화가 쏟아지자 그는 삐닥하게 자신을 변호하며 반유대주의자라는 낙인에 오히려 더 불을 붙입니다.





최근 급속하게 폭발한 일련의 사태에 대해 퓨디파이가 자신의 입장을 오늘 내놓았어요. 자신의 장난이 지나쳤음을 일단 인정을 하긴 합니다. 그런데 언론과 대중이 자신을 파시스트라든지 반유대주의자라고 레이블링하는 것과, (일확천금이었을지 모를) 디지니와의 사업연계가 파토난 것을 두고 희열에 찬 군중 뒤에서 고난을 겪어야 하는 자기 휘하의 수백명의 스텝들을 언급하며 과연 이 언론의 호도와 군중의 광기가 자신의 치기어린 장난에 대한 댓가로서 정당한가라는 의문을 던져요. 그가 쏟아낸 수많은 분량의 유툽영상 중에서 고작 몇 분의 '지나쳤던 장난'을 모아서 편집하면 그는 누구에게나 단박에 인종차별주의자이지만 그가 만들어온 컨텐츠에 관심이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텍스트로만 그를 접하게 된 우리는 과연 그가 속하기도 하고 우리도 속한 이 현실을 실재하는 현실 그대로 바라보고 있는가, 나의 perception이 '모든 현실'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라고 한다면 우리는 일단은 주저하며 아닐 수도 있음을 상정해 보는 것이 현실을 직시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거예요. 그가 철이 없었음은 명백하지만 우리 자신이 그에게 크게 분노하고 있었다면 이 분노가 정말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분노인가, 과연 이만큼 분노할 필요가 있는가 잠시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 이것만으로도 충분할 거예요.
  


http://nautil.us/blog/its-easy-to-make-enemies-of-people-we-only-read-about
http://www.npr.org/2017/02/12/514785623/the-aclu-explains-why-theyre-supporting-the-rights-of-milo-yiannopoul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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