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7/01/06 17:07:22
Name   제주감귤
Subject   안개의 인사 (시)
너는 한 사람 같았다.
서울의 어느 교실에 혼자 서있는 경우에.

여고 二년.

네가 화를 내는 모습은 학교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고
그건 일곱 개의 조각으로 빛나는
유리새 같았다.

너는 미스트였다.

미스트는 안개라는 뜻이고, 예전에 본 어떤 영화의 제목이었으며
너는 그 영화에 나오는 그 누구도 닮지 않았지만

그곳에 나오는 어떤 사람 같았다.
무언가에 기대고 있는 사람.
무언가에 기대어
한참을 살다가 안개라고 대답하는 사람.

블로그나 쪽지함 따위,
사장시켰던 메모리에도 작은 말로 속삭이는 일들.

그런 것들이 가능했던 너의 손바닥으로
흐득흐득
새까만 빗줄기가 쏟아져 내렸고

그것은 사실 비가 아닌 너의 머리카락이었지만
너에게 받아든 무게는 머리카락도 빗줄기도 아닌
보이지 않는 실이 되어 손 안을 빠져나갔다.

내 손 안에 남아있는 너의 몸에도 한 번 쓸어보지 못해
오래된 먼지처럼 빛나는 곳이 있었고

나는 네가 감기에 걸려
오래된 열을 다스리던 때를 생각했다.

그때
한 개의 씨앗을
안개의 씨앗이라고 속여 너의 몸 깊숙이 넣어두었던 것처럼

나에게도 나의 몸만으로는 썩히지 못해
가시 돋쳐 피워내야 할 인연이 있을까.

그 가느다란 줄기.

폐교 二년.

바람처럼.
다시 말해
소원이 없는 사이처럼.

내가 할 줄 아는 것은 인사였고
네가 할 줄 아는 것은 한계까지 나를 들여다 보는 일.

너는 여기에 없는 한 사람이었고
먼 곳에서 찾아온 안개의 인사였다.



0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4806 창작다이어트와 비빔밥 20 열대어 17/02/08 3892 1
    4796 창작[소설] 달콤하고 씁쓸한. 23 새벽3시 17/02/07 3341 6
    4788 창작내게 등을 돌리고 자는 너 9 마투잘렘 17/02/06 3053 2
    4755 창작그 남자, 그 여자 전화로 연결되다 13 마투잘렘 17/02/03 3053 2
    4746 창작오늘이 아닌 날의 이야기 (3) 10 새벽3시 17/02/02 2874 6
    4737 창작비오는 날의 대화 3 고양이카페 17/02/01 2888 3
    4726 창작오늘이 아닌 날의 이야기 (2) 5 새벽3시 17/01/31 2706 4
    4719 창작오늘이 아닌 날의 이야기 12 새벽3시 17/01/29 2912 4
    4621 창작테크노 하나 올립니다 4 탐닉 17/01/14 3557 0
    4607 창작자작 수수께끼 : 사과, 배, 복숭아 12 SNUeng 17/01/12 3751 0
    4586 창작'항해' - 병영문학상 입선작 6 SCV 17/01/09 4136 0
    4551 창작안개의 인사 (시) 제주감귤 17/01/06 3045 0
    4472 창작'나'로부터 벗어나기. - 삶의 해답은 어디에? 7 SCV 16/12/29 3995 6
    4408 창작첫키스의 맛은 -上 9 16/12/18 4616 0
    4273 창작오래된 인형 (시) 4 제주감귤 16/12/02 3298 1
    4202 창작[한단설] 손 없는 날 3 틸트 16/11/21 4432 9
    4181 창작후각에 대한 단상(斷想) 18 마투잘렘 16/11/18 4211 1
    4152 창작[한단설] 아브라함과 이삭 15 기아트윈스 16/11/14 3596 5
    4060 창작[한단설] 점심 산책 6 SCV 16/11/02 4050 0
    4054 창작[한단설] Once In a Blue Moon 11 SCV 16/11/01 3254 4
    4050 창작한숨 9 givemecake 16/11/01 4069 2
    4048 창작5분만에 때려갈긴(?) 시 : 제목은 님들에게 토스!! (펑!) 9 진준 16/10/31 3142 2
    4046 창작너 누나랑 잘래요? 10 nickyo 16/10/31 4166 4
    3999 창작[한단설] For Sale : Baby shoes, never worn. 9 SCV 16/10/24 3500 12
    3973 창작[한단설] 아내와, 감기와, 아이와, 나. 13 SCV 16/10/21 3402 0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