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6/05/06 01:43:57
Name   Jannaphile
Subject   침개미에 들볶이고 괴로워하다 힘겹게 극복한 이야기.
개미 때문에 괴로워했다고 하면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지 못할 것 같은데요.
제가 겪은 정말 괴로웠던 경험을 공유합니다. 저처럼 힘든 분들이 없었으면 해서요.

편의상 존칭은 생략합니다.
-------------

3월 말 어느 날이었다.

밤새 자고 일어났는데 배와 팔이 간지러웠다. '뭐지?' 하고 살펴 보니 벌레 물린 자국이 있었다.
"벌레한테 물렸네. 아직 쌀쌀한데 벌써 모기가 있나...?"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아내가 말했다. 
"여보, 나도 여기저기 물렸어."
과연, 아내도 목과 팔 쪽에 물린 자국이 있었다.
"흠... 이상하네. 잠잠하던 개미가 다시 나왔나?"

그랬다. 반전세로 1년 반 전 이사온 이 집은 지어질 당시엔 제법 고급주택이었지만 그것도 옛말. 지금은 지어진 지 30년도 훌쩍 넘긴 참이었다. 입주 전엔 집주인이신 사모님이 리모델링을 깨끗하게 해주셔서 잘 몰랐는데 이사를 와보니 어랏? 검정개미가 제법 있었다.
뭔가를 먹고 흘리면 여기저기서 모여드는 개미들. 이건 좀 아니다 싶어 개미약 두어 가지를 사와 개미가 다니는 길목 여기저기에 설치했다.
한 일주일이나 지났을까? 정확한 날짜는 모르겠다. 다만 오래지 않아 개미들이 싹 사라졌던 것만 기억한다. 그리고 해를 두 번 넘겼다.

벌레들이 어디 있나 싶어 방이나 거실 구석 등 개미가 다닐 만한 곳들을 살펴봤는데, 주의력이 부족한 탓인지(?) 잘 찾을 수 없었다.
그래도 간간이 보였는데 이번엔 개미 색깔이 검정이 아닌 적갈색이었고, 크기도 퍽 작았다.
"오호라, 이 녀석들이로군."
인터넷에서 과립형과 겔형 두 가지 약을 주문했다. 약은 다음날 도착했고 집안 구석구석에 뿌려뒀다.
"이제 됐네. 금방 사라지겠지."

며칠이 지났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개미한테 여전히 매일 몇 방씩이나 물리고 있었던 거다.
이 개미는 내가 평소 알고 있는 개미랑 달랐다. [물린 자국은 모기에게 물린 것보다 훨씬 간지러웠고, 물면 그 주변을(아마도 지나가는 길에) 여러 방 무는 것이었다.] 팔뚝이라면, 한 마리가 대여섯방씩 물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보통의 개미라면 꼬리를 물고 떼로 이동하는데, [이 놈들은 자유로운 영혼인지 개체별로 자유롭게 돌아다니더라.]

먼저 침실에 개미들이 많은 것 같아 대청소를 했다. 개미가 다니는 길목이라고 예상되는 곳들도 깨끗이 청소해야 할 것 같았다. 아내는 약국을 가서 1리터짜리 에탄올을 사와 바닥에 뿌리며 걸레로 열심히 닦았다. 또, 남아있는 개미약을 더 짜서 잠자리 주변과 미처 놓쳤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몇 군데나 더 약을 놓았다.

그래도 소용이 없었다. 이런 상황이 일주일을 넘겨 열흘 정도 되니 이제 미칠 지경이었다. 정말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았다.
적갈색 개미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애집개미라고 한다.
'이 약이 애집개미용이 아니어서 그런가?'
당장 약국으로 달려가 애집개미한테 잘 듣는다는 약도 한 종류 더 샀다.
계피가루가 벌레 쫓는데 좋다고 해서 약령시까지 가서 계피를 사왔다. 아내는 일부는 차를 내고, 일부는 가루로 빻아서 잠자리 주변에 뿌렸다. 그리고 지난 번에 사온 알콜을 분무기에 계피가루와 함께 섞고 곳곳에 뿌렸다.

"이 정도면 됐겠지?"
.....는 개뿔. 전!혀! 소용이 없었다. 이후로도 잘 듣는다는 약을 두 종류 더 사왔다. '이걸로 한 방에 처치했다'는 지인들의 말을 참고해가며.
바닥만 봐서 개미가 퇴치되지 않았나 싶어 천장 쪽도 곳곳에 설치했다.
"진인사대천명이야. 이 이상 더 어떻게 해. 며칠만 참아봅시다."
또 며칠이 지났다. ....... 그러나, 여전히, 달라진 건 하나도 없었다.

이쯤 되니 정말 사태가 심각하다고 느껴졌고, 특단의 조치를 강구해야 했다.
[어느덧 한쪽 팔에만 물린 자국이 20~30개씩 됐고 얼굴, 목, 배, 등, 다리 등등 합치면 100군데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물린 곳은 몹시 무척 엄청 간지러웠다! 온 몸이 벌건 물린 자국으로 가득 찼다.

"정말 세x코를 부릅시다." 아내가 말했다.
며칠 전부터 아내가 이 얘기를 하긴 했지만 애써 무시하고 있었다. 입주한지 2년이 딱 지나면 이사를 갈 계획이어서 반 년도 안 남은 이 집에 돈을 쓰기가 애매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이제는 나부터 세x코를 생각할 만큼 상황이 심각했고, 당장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건 날이 때마침 금요일이어서 다음주 월요일에 무료방문을 해주겠단다.
주말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시달리며 방문원만 기다리고 있었다.

'띵~동~'
"아 오셨다!"
기다리던 분이 오셨다! 어린왕자를 기다리던 여우의 심정이 바로 이런 것이었을까?
마침 직장을 그만 둔지 얼마 안 된 참이어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직원 분을 맞을 수 있었다. 백수 만세.
베테랑의 기운을 물씬 풍기던 그 직원 분은 몇 가지를 묻더니 집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천장에 기어다니는 개미들을 보며 "애집개미가 너무 안 잡혀요."라는 내 말에 직원 분은 답했다.
"[이건 애집개미가 아니라 침개미입니다. 꼬리부분에 침이 있어서 그걸로 쏘고 다닙니다.]"
그리고 나서 말을 덧붙였다. "[대단히 심각한 상황입니다. 제가 세x코에 11년째 다니는데 이렇게 심각한 집은 처음 봅니다.]"

곳곳에 설치된 개미약을 보며 말했다.
"[이런 약 하나도 쓸모 없습니다. 어차피 얘네들 무리지어 다니지도 않고, 약을 물고 나르지도 않아요. 오히려 이런 약들이 뿜어내는 유인제 냄새 때문에 더 몰려들 가능성만 있습니다. 전부 떼셔야 합니다.]"
이어지는 충격적인 얘기들.

"[저희 회사 연구실에서도 이 개미 퇴치약을 연구하고 있는데, 아직 개발 단계입니다. 기존 어떤 약으로도 퇴치할 수 없습니다.]"
"원래 썩은 고목 등에서 사는데 집이 오래됐다 보니 그럴 수 있습니다. 천장에 많이 보이는 걸 보니 윗집 바닥과 이 집 천장 사이 어디엔가 서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개미가 있으면 집에 다른 벌레가 싹 없어집니다. 직접적으로 공격할 무기가 있잖아요."
"이사 도중에 개미들이 쓸려왔거나, 집 주변에 화단이 있어 기어왔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걸 보셔서 아시겠지만, 이렇기 때문에 서식지를 찾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 개미들을 잡으려면, 기존의 개미약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살충제를 뿌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효과를 높이기 위해 집안 곳곳, 옷이나 이불 등에도 뿌려야 하는데, 약이 독하기 때문에 약이 닿은 이불과 옷은 다 빨아야 하고 설거지도 다 해야 하고 바닥도 다 닦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걸 세 번 반복합니다."

... 뭐라고? -_-;;
나는 물었다. "그러면 어느 정도 퇴치 효과가 있나요?"
"90% 이상은 확실히 제거 가능합니다. 다만 여왕개미한테까지 타격이 가는 건 아니기 때문에 개미가 다시 늘어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3~5월은 개미 번식기라서 더 그럴 수 있습니다."
....... 그 고생을 해야 하는데 완전 제거도 아니고 다시 생겨날 수가 있다고?
"그러면 비용은 어느 정도인가요?"
"33만원입니다."

직원에게 솔직히 말했다.
"제가 이 집에 이사온지 얼마 안 됐다면 묻고 따지지도 않았을 것 같은데요. 저는 다섯 달만 지나면 이사를 가야 하는데 비용도 비용이고, 그렇게 번거로운 작업을 한다는 게 많이 부담스럽습니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감사하게도 여러 방법을 알려주셨다.
"[그러시면 보일 때마다 잡는 방법이 있습니다. 손으로 잡으면 부담되니까 테이프 클리너(찍찍이 롤러)를 사셔서 그걸로 잡으시면 쉽고 편합니다.]"
"[살충제를 집안 곳곳에 직접 뿌리셔도 됩니다. 에x킬라 개미용 말고 바퀴용으로 사셔서 뿌리시면 효과가 더 좋습니다.]"

직원 분이 돌아가신 후 당장 약국으로 향했다.
"에x킬라 바퀴용 주세요!"
집안의 문이란 문은 다 닫고 곳곳에 살충제를 사정없이 뿌렸다. 하지만 30평대 중반인 이 집을 한 통으로 커버하긴 무리였나보다. 금세 바닥이 나서 한통을 더 뿌렸다. 그리고 집을 나와 4시간 동안 정처없이 다니다 돌아왔다.

놀라운 일이 벌어져 있었다. 비록 바닥은 기름기로 반질반질(...)해져 있었지만 집안 곳곳에 '침개미' 시체가 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오호라, 약효 직빵이네!"
비록 바닥을 다 닦고 통에 들어있는 식기도 다 다시 설거지해야 했지만, 그날은 비교적 편안히 잘 수 있었다.
그날은 잠자는 동안 배 한 방, 팔 한 방 그렇게 두 군데밖에 물리지 않았다! 이런 걸로 기뻐해야 하다니.

다음 날부터 개미와 진정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테이프 클리너로 집안 곳곳을 다니며 개미를 잡아대기 시작했다.
최소 하루에 100마리 이상은 잡았던 것 같다. 그렇게 한 일주일을 지속했다.
일이 있어 아내와 함게 지방을 며칠 다녀왔다. 상경하며 '개미가 다시 많이 늘어났으면 어쩌지?' 이 걱정 뿐이었는데...
집에 와서 보니 개미가 거의 없었다! 꾸준히 잡아댄 게 헛된 노력이 아니었던 거다.

그 사이에 제약회사에 다니던 친구가 효과가 대단히 좋다며 액체99%인 살충제를 몇 통 보내줬다. 약효가 오래 지속되는 것과 안전성이 높은 게 장점인데 이불이나 옷에 그냥 뿌려도 아무 문제 없다고 했다. 개미가 보일 때마다 주변에 이 약을 뿌렸던 것도 제법 효과가 컸겠지.

이렇게, 개미와의 힘겨운 전쟁은 끝났다.

-----------
개미와 전쟁을 벌인지 한 달. 이제 집에는 개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정말 지난 한 달간 벌인 일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아직도 개미한테 물린 자국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아 그때의 참극(?)을 일깨워주고 있긴 합니다만.

글이 무척 길었는데요. 간단히 요약을 해볼게요.
1. [침개미]라는 녀석들은 강한 공격성을 띠고 있고 사람을 직접적으로 쏘고 다닌다.
2. 일반적인 과립형, 겔형, 설치형 약은 [전혀] 듣지 않고, 뿌리는 살충제만이 최선이다.
3. 보통의 개미는 서식지로 독약을 갖고 돌아가게끔 일부러 잡지 않지만, 이 녀석들은 보이는 족족 잡아야 한다.
4. 손으로 잡으려면 한이 없으므로, 테이프 클리너를 구입해 잡는 것이 간편하고 좋다.

정도가 되겠습니다. 혹시 저처럼 '개미가 왜 이렇게 독하지? 자주 무는데 없어지지도 않네.' 생각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제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 문제는 개미가 갔더니 이제 모기가 왔다는 점 정도일까요?
근데 모기도 친구가 준 약이 아직 많이 남아 유용하게 쓰고 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
  • 침 개미때문에 너무 고생하기 때문에 정보를공유하고 싶습니다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2880 일상/생각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2 王天君 16/05/24 4971 4
2879 일상/생각어머님은 롹음악이 싫다고 하셨어 23 Raute 16/05/24 4383 0
2878 일상/생각추억속의 부부 싸움 28 Beer Inside 16/05/24 4235 1
2876 일상/생각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49 nickyo 16/05/24 7210 11
2875 일상/생각강남역을 바라보며 생긴 의문들... 26 No.42 16/05/24 6025 6
2863 일상/생각애니송의 전설, 잼프로젝트를 만났던 이야기 #1 4 Leeka 16/05/23 3174 0
2861 일상/생각일베와 메갈리아 129 Moira 16/05/22 9269 9
2858 일상/생각급진적 인터넷 페미니즘의 승리인가? 34 난커피가더좋아 16/05/22 6298 20
2845 일상/생각220V 콘센트 후기 23 와우 16/05/20 4616 0
2842 일상/생각살女주세요. 넌 살아男았잖아. 가 잊혀지지 않는 이유 27 날아올라무찔러라 16/05/19 6261 4
2840 일상/생각"살女주세요. 넌 살아男았잖아." 61 쉬군 16/05/19 6812 4
2836 일상/생각[조각글?] 토끼의 죽음 7 얼그레이 16/05/19 4230 4
2832 일상/생각[회고록] 그의 손길은 애절했고, 눈빛은 날카로웠네. 4 수박이두통에게보린 16/05/18 3057 4
2816 일상/생각시빌워 흥행을 보며 느끼는 이중잣대 23 김보노 16/05/15 3986 0
2813 일상/생각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카메룬 러셀 7 까페레인 16/05/15 3027 0
2809 일상/생각소회 4 한아 16/05/14 4922 1
2806 일상/생각추억은 사라져간다 3 NF140416 16/05/14 3112 1
2804 일상/생각그래서 나는 어떻게 했나. (우울해요...의 후기) 15 헤칼트 16/05/13 3825 0
2800 일상/생각3일도 남지 않았습니다.(+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 4 난커피가더좋아 16/05/13 3373 0
2799 일상/생각[회고록] 잘못된 암기. 13 수박이두통에게보린 16/05/13 3214 1
2793 일상/생각몽쉘 초코 & 바나나를 먹은 이야기 7 Leeka 16/05/13 3225 0
2790 일상/생각우울해요... 13 헤칼트 16/05/12 4072 0
2781 일상/생각벨빅 정 5일 복용 후기 외 34 nickyo 16/05/11 13595 2
2761 일상/생각주인공이 마치 우리 부부인것 마냥 한편의 영화를 상기시키는 스케치 7 windsor 16/05/08 7630 5
2751 일상/생각침개미에 들볶이고 괴로워하다 힘겹게 극복한 이야기. 10 Jannaphile 16/05/06 21059 1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