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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11/13 20:40:56
Name  
Subject   [조각글 4주차] 미제
제목 : [조각글 4주차] 미제
주제 : '자신'의 첫경험에 대해 써주세요.
1. 짧고 찐득하게 나올수록 좋습니다.
2. 고민이 많이 투영되었으면 좋겠습니다.
3.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파고든 글이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 분량 : 최대 3~4000자 이내에서 마무리 할 것.
주제선정 이유 : 글을 쓴다는건 지속적으로 타자화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서(저 개인적으로는) 한번쯤 자신의 내면에 있는 첫 경험(그게 엄청 진하게 남아있을수도 혹은 별거 아닐수도있지만)을 가지고 에스프레소 내리듯이 찐득하고 진하게 진하게 짧은 글에 표현하는게 글을 쓰는 자신과 마주하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정했습니다.

합평 받고 싶은 부분 : 모난 조각 분들을 믿습니다.
하고 싶은 말 : 홍차넷 첫글이라 설렘니다.
본문 : 하단 첨부

───────────────────────

미제

 비가 왔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 비는 이미 뒷전이었다. 차라리 그런 것따위 마냥 좋을 때가 좋았다. 어떻게 전해야할까. 아니, 전해지기나 할까. 발걸음이 무겁다. 들고 있는 우산마저 머리를 조인다. 이어폰에는 빗소리만 흐른다. 노랫말은 환청일 뿐, 닿는 것은 없다. 아스팔트 위 부서지는 빗물까지도 밉다.

 "학생, 뭐해?"

 지나가는 목소리에 번뜩 정신이 돌았다. 저멀리 초록불이 손을 흔든다. 이어폰 속 환청은 한참도 전에 멎어 있었다. 일단 뛰었다. 누군가 울려대는 클락션 소리가 거칠다. 붕붕 거리는 엔진소리는 아무 망설임도 없이 등뒤를 떠났다. 겨우 그 거리 뛰었다고 숨이 찼다. 분명 원래는 이러지 않았는데, 이러지 않았을 텐데. 괜시리 억울했다. 대체 난 뭘하고 있는 걸까.

 카페는 비싸고 맛없다. 누나도, 동생도 역시 여자애들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늦지. 컴투스 프로야구 2008은 이미 NATE 버튼이 닳을 만큼 해대서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유감스러운 도시는 과연 재미있을까. 어서 그녀만 오면 되었다.

 "오빠, 죄송해요. 진짜 미안미안. 저 갑자기 방송부 일이 생겨서요."

 갑자기 급한 일이라는데, 별 수 없었다. 혹시 안될까 싶어 말꼬리를 잡았지만 역시 안됐다. 이미 투사부일체까지 성공시킨 그들이었으나 유감스러운 도시는 보기 좋게 흥행에 실패할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쓸쓸했다. 아, 망했다. 싫다. 날씨마저 쌀쌀하니 춥다.

 "네? 군대요?"

 아버지는 단호했다. 이미 모든 준비가 되었다며 아무개 소장까지 소개해냈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에는 현실감이 없었다. 선배님 아들 걱정말라는 으레의 인사까지도 내 일일 리가 없었다. 아무 느낌도 없이 오늘이 마냥 길었다. 자정을 넘어서까지 거실에 불이 켜져 있었고, 바뀌는 것은 없었다. 한 달 뒤에는 군대에 가야했다.
 불 꺼진 방으로 돌아왔을 때, 세상은 너무 멀었다. 도망치듯 침대에 누웠다. 이불을 머리 끝까지 끌어올렸다. 숨이 막혔지만 내릴 수가 없었다. 유감이었다.

 "슬픔은 없을 것 같아요. 우산 없이 비오는 거리를 걸어도."

 휴대폰 벨소리에 덜컥 심장이 내려앉았다. 마치 죄 지은 사람처럼 두근거렸다. 잠시 휴대폰을 양손으로 쥐고 있다 슬라이드를 올렸다. 이어 들리는 밝은 목소리. 난 다시 세상으로 나섰다. 오늘 약속 못지켜 미안하다는 이야기. 방송부 녹음은 성공적이었다는 이야기. 채권총론 한번만 더 빠지면 큰일난다는 이야기. 내일 빨리 학교에서 보자며 늦잠 자지 말라는 이야기. 그렇게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이야기.
 어쩌다 잠이 든 것은 휴대폰이 따뜻하다못해 뜨거울 때였다.

 아침부터 비가 왔다. 학교 가는 길은 먹구름으로 가득하다. 어떻게 전해야할까. 아니, 전해지기나 할까. 만난 지 이제 막 한 달이 안됐는데 한 달 뒤에 군대를 간다고? 웃기지도 않다. 발걸음이 무겁다. 들고 있는 우산마저 머리를 조인다. 이어폰에는 빗소리만 흐른다. 노랫말은 환청일 뿐, 닿는 것은 없다. 아스팔트 위 부서지는 빗물까지도 밉다.

 "학생, 뭐해?"

 지나가는 목소리에 번뜩 정신이 돌았다. 저멀리 초록불이 손을 흔든다. 이어폰 속 환청은 한참도 전에 멎어 있었다. 일단 뛰었다. 누군가 울려대는 클락션 소리가 거칠다. 붕붕 거리는 엔진소리는 아무 망설임도 없이 등뒤를 떠났다. 겨우 그 거리 뛰었다고 숨이 찼다. 분명 원래는 이러지 않았는데, 이래선 안될 텐데. 괜시리 억울했다. 대체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버스정류장까지 바짓단이 젖었다.

 버스 안 이어폰을 꽂고 창밖을 보면 온 세상이 영화다. 마침 흐르는 빗물은 그 슬픈 결말의 복선이었을까. 흐릿한 입김에 나도 모르게 너를 쓰고 지웠다.
 나는 군대에 간다. 나는 한 달 뒤면 군대에 간다. 나는 한달 뒤면 군대에 가서 없다. 나는 한달 뒤면 군대에 가서 여기에 없다. 나는 한달 뒤면 군대에 가서 여기에 함께할 수 없다.
 나는 한달 뒤면 군대에 가서 여기에 너와 함께할 수 없다.
 나는 한달 뒤면 군대에 가서 여기에 너와 함께할 수 없다. 사랑하는.

 여전히 비가 내렸다. 버스에서 내려 그녀에게로 가는 길은 웅덩이로 가득하다. 어떻게 전해야할까. 아니, 전해지기나 할까. 발걸음이 무겁다. 들고 있는 우산마저 머리를 조인다. 이어폰에는 빗소리만 흐른다. 노랫말은 환청일 뿐, 닿는 것은 없다. 아스팔트 위 부서지는 빗물까지도 밉다.

 "오빠, 뭐해요?"

 생각보다 나는 단호했다. 이미 모든 준비가 되었다며 아무렇지 않은 미소까지 지어보였다. 강의실 너머의 목소리에는 현실감이 없었다. 기말 범위가 처음부터 끝까지라는 으레의 엄포까지도 내 일일 리가 없었다. 아무 느낌도 없이 강의가 마냥 길었다. 점심을 넘어서 아득한 저녁 때까지 학교에 있었고, 바뀌는 것은 없었다. 한 달 뒤에는 군대에 가야했다.

 카페는 비싸고 맛없다. 너는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애꿎은 휴대폰 슬라이드만 올렸다 내리길 반복했다.

 "미안해. 우리 헤어지자."

 불 꺼진 방으로 돌아왔을 때, 세상은 너무 멀었다. 도망치듯 침대에 누웠다. 이불을 머리 끝까지 끌어올렸다. 숨이 막혔지만 내릴 수가 없었다. 나는 처음으로 너에게 헤어지자 말했다. 유감이었다.
 어떻게 전해야할까. 아니, 전해지기나 할까.

 내가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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