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21/03/07 06:14:07수정됨
Name   아침커피
Subject   소설 - 우렁각시
대학생 때 일입니다. 학생식당에서 과 친구와 점심을 먹고 있는데 친구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누구지 하고 보니 같은 과 여자 동기였습니다. 편의상 A라고 하겠습니다. 저와 친구는 마주보고 앉아 있었는데 친구가 A에게 식사를 같이 하자고 말을 해서 A가 제 옆에 앉았습니다. 셋이서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친구가 시계를 보더니 수업이 있다며 갑자기 자리를 떴습니다.

"야! 이렇게 앉혀놓고 간다고?!"

라고 외쳤지만 친구는 출석체크가 깐깐한 수업이라며 이미 달려가는 중이었고 저와 A는 엉겁결에 수백 명이 있는 학생식당에서 옆으로 나란히 앉아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엄청 당황스럽네."
"그러게."
"내가 반대편으로 갈까?"
"됐어 그냥 빨리 먹고 나가자."

다 먹고 나가는데 분위기가 뻘쭘해서 제가 후식을 사겠다고 하고 편의점에 갔습니다. 음료수를 마시고 있는데 A가 말했습니다.

"땡큐! 다음엔 내가 살게."

A는 진짜로 며칠 후 커피를 사겠다며 저를 학교 앞 카페로 데리고 갔습니다. A와는 같은 학번 같은 과였지만 딱히 엄청 친하지도, 그렇다고 서먹하지도 않은 그런 정도의 사이였습니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의외로 말이 잘 통해서 대화가 길어졌습니다. 한창 이야기 중에 테이블에 올려놓은 제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안 받아?"
"응."
"왜?"
"전여친."

제가 전화를 안 받아서 테이블 위에서 핸드폰이 계속 웅웅 소리를 내며 진동하고 있었습니다.

"안 받을 거면 무음으로 해봐."
"그럴까?"

그게 낫겠다 싶어 전화를 들고 무음 모드로 바꾸려고 했는데 화면을 잘못 눌러서 전화가 연결되어 버렸습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여보세요? 여보세요? 하는 전여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당황해하고 있는데 순간 A가 제 핸드폰을 홱 낚아채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여보세요? 네. P 여자친구에요. 죄송하지만 앞으로는 전화 걸지 말아주세요."

놀란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 저에게 A는 이제 전화가 안 올 것이라며 핸드폰을 돌려주었습니다.

몇 주 후 어느 금요일 저녁 A와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와 카페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A가 갑자기 시계를 보더니 외쳤습니다.

"으악 전철 끊겼다!!"
"어? 벌써?"

전철도 버스도 다 끊겼다며 울상인 A에게 제가 말했습니다.

"나 학교 앞에서 자취하는데 거기서 자고 가."
"뭐? 야 그건 아니야. 됐어."
"그게 아니고, 난 학교 동아리방 가서 잘테니까 너 혼자 자라고."
"아 그런거야? 근데 집에는 뭐라고 말하나..."
"친구네서 자고 간다고 해."
"거짓말하라고?"
"우리 친구 아니야?"
"...친구 맞지."

그렇게 저는 A를 제 자취방에 데려다주고 학교 동아리방에 가서 잤습니다.

다음날 눈을 떠 보니 점심때였습니다. 핸드폰 배터리가 다 돼서 전화가 꺼져 있었습니다. 자취방으로 가 보니 A는 이미 나간 후였습니다. 그런데 자취방이 완전 깨끗하게 청소와 정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책상 위에는 쪽지가 하나 있었습니다.

'인간아, 정리좀 하고 살아라. 전화도 꺼져있네? 인사하고 가려고 했는데 너 언제 올지 몰라서 먼저 갈게. 월요일에 봐. 그런데 나 이젠 너랑 그냥 친구인 사이는 싫다. 친구가 아니라 연인이었으면 좋겠어. 넌 어때? 이거 보면 전화 줘.'

한참을 고민한 후 전화를 집어 들었습니다.


... 와 비슷한 분위기의 영화나 소설 있으면 추천해주세요~

<div class="adminMsg">*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1-03-23 07:35)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div>



13
  • 아..아...아......뭡니까!!!
  • 선생님 다음편이 안보입니다 어디있나요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67 역사경찰사와 영국성 4 코리몬테아스 20/06/08 5683 8
1250 일상/생각7년동안 끊은 술이 생각나는 밤입니다. 32 비사금 22/11/10 5689 44
1141 IT/컴퓨터변화무쌍한 웹 기술 역시 톺아보기 - 1 16 nothing 21/11/05 5690 10
1245 일상/생각"교수님, 제가 생과 사의 경계에 있는 것 같습니다." 24 골든햄스 22/10/20 5718 53
1180 일상/생각일상의 사소한 즐거움 : 어느 향료 연구원의 이야기 (3편) 12 化神 22/03/25 5723 22
1112 정치/사회상호교차성 전쟁 23 소요 21/08/03 5730 11
1354 기타저의 향수 방랑기 31 Mandarin 24/01/08 5733 2
1020 창작그러면 너 때문에 내가 못 죽은 거네 (1) 8 아침커피 20/10/19 5736 12
963 여행[사진多/스압]프레이케스톨렌 여행기 7 나단 20/05/30 5764 15
1118 기타정신분열증의 맥락 - 왜 타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게 되는가? 15 소요 21/08/20 5767 13
1126 기타물 반컵 12 쉬군 21/09/14 5767 63
284 일상/생각보름달 빵 6 tannenbaum 16/10/14 5773 14
1090 체육/스포츠축구로 숫자놀음을 할 수 있을까? 첫번째 생각, 야구의 통계. 11 joel 21/05/15 5776 17
1018 철학/종교타이완바 세계사중국편 (5.4운동) 6 celestine 20/10/15 5780 11
1201 경제최근 한전 적자에 대한 해설 34 Folcwine 22/05/13 5810 10
459 일상/생각급식소 파업과 도시락 3 여름 소나기 후 17/06/30 5819 5
1067 요리/음식중년 아저씨의 베이킹 도전기. 27 쉬군 21/03/08 5830 29
437 일상/생각[회고록] 그녀의 환한 미소 17 수박이두통에게보린 17/05/24 5849 13
1127 역사뉴질랜드와 핵실험, 거짓말쟁이 프랑스. 6 코리몬테아스 21/09/18 5849 18
1236 기타2022 걸그룹 4/6 31 헬리제의우울 22/09/06 5857 30
1094 일상/생각엄마는 내 찢어진 츄리닝을 보고 우셨다 3 염깨비 21/06/04 5881 35
1228 의료/건강아산병원사건 서울대 교수 실명글과 개인적인 견해 20 cummings 22/08/04 5882 23
1052 정치/사회건설사는 무슨 일을 하는가? 13 leiru 21/01/13 5903 16
298 정치/사회시국 단상: 박대통령과 골룸 16 기아트윈스 16/11/08 5904 10
1066 일상/생각소설 - 우렁각시 18 아침커피 21/03/07 5904 13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