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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7/06/23 05:04:50 |
Name | 눈부심 |
Subject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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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언급되는 말들이지만 그렇게까지 신봉할만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개랑 비견될만한 수준의 지능을 지녓다고하는 돼지나 문어를 먹는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개를 먹는것과 비슷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죠. 문어야 몰라도 돼지의 경우 유전적으로 사람-개와의 관계나 사람-돼지의 관계가 그렇게 크게 차이나지도 않을텐데 말이고요.
그냥 인류가 살아오면서 우연히 이런 저런 특성들이 잘 맞아 떨어진 개와 고양이에게 우리가 특별한 의미를 투영하는것이지 무슨 깔끔한 원리에 따라서 그 동물들이 인간에게 더 가깝거나 더 지능적이거나 그래서 그런건 아니라고 봅니다.
개랑 비견될만한 수준의 지능을 지녓다고하는 돼지나 문어를 먹는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개를 먹는것과 비슷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죠. 문어야 몰라도 돼지의 경우 유전적으로 사람-개와의 관계나 사람-돼지의 관계가 그렇게 크게 차이나지도 않을텐데 말이고요.
그냥 인류가 살아오면서 우연히 이런 저런 특성들이 잘 맞아 떨어진 개와 고양이에게 우리가 특별한 의미를 투영하는것이지 무슨 깔끔한 원리에 따라서 그 동물들이 인간에게 더 가깝거나 더 지능적이거나 그래서 그런건 아니라고 봅니다.
아 이 경우는 조금 부연하자면 보편적 차원의 육식 성토론보다는 견육에 국한되는 특수한 비판입니다. 정리하자면 판매를 제외한 사육/도축/유통 전과정에 걸쳐 개에 대한 법적 관리가 행해지지 않으므로 위생과 보건 차원에서 개고기는 신뢰할 수 없는 식재료이며, 고로 개고기 판매는 금지해야한다는 것이죠. 개장수들이 길거리 똥개들 잡아서 잔반 쓰레기 먹이면서 키운 걸 어떻게 시장에서 팔 수 있냐는 요지..근데 사실 이런 위생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결국 개고기 판매 금지론을 주장하고 있는 생태주의자들이나 동물애호가들, 채식주의자들 ... 더 보기
아 이 경우는 조금 부연하자면 보편적 차원의 육식 성토론보다는 견육에 국한되는 특수한 비판입니다. 정리하자면 판매를 제외한 사육/도축/유통 전과정에 걸쳐 개에 대한 법적 관리가 행해지지 않으므로 위생과 보건 차원에서 개고기는 신뢰할 수 없는 식재료이며, 고로 개고기 판매는 금지해야한다는 것이죠. 개장수들이 길거리 똥개들 잡아서 잔반 쓰레기 먹이면서 키운 걸 어떻게 시장에서 팔 수 있냐는 요지..근데 사실 이런 위생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결국 개고기 판매 금지론을 주장하고 있는 생태주의자들이나 동물애호가들, 채식주의자들 등 '녹색그룹'의 반대에 의해 개가 가축으로 지정되지 않아 축산물위생관리법의 통제를 받지 않기 때문이거든요. 즉 문제 자체가 재귀적으로 발생한 것이죠. 개고기는 더러우니 먹지 말자 -> 축산물위생관리법으로 통제하면 되잖아? -> 개는 '가축'으로 간주하면 안 된다 -> 견육의 질적 저하 -> 개고기는 더러우니 먹지 말자 루프...그 결과 개고기는 여전히 비위생식품으로 남아 있고, 공급량도 한정적이죠. 그 때문에 가격은 올라가고 이용자는 줄고 있고요. 이를 두고 녹색그룹은 '어차피 먹는 사람도 얼마 없는데 금지시키자'라고 주장합니다만, 글쎄요. 원래부터 먹는 사람이 얼마 없었던 걸까요 재귀적인 영향이 있던 걸까요.
음...
식욕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포유류가 소와 돼지일텐데 이미 언급했듯이 돼지의 경우 개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높은 지적행동을 보인다고 알려져있고, 흔히 먹는 소가 개보다 지적능력이 떨어진다고 볼 명확한 근거를 접해보지는 못했네요. 논란이 있지만 지능이 높은 포유류로 분류되는 고래의 식용소비에 대한 반발도 개/고양이의 식용소비와는 그 느낌이 다르고요. 애초에 개가 뭐 특별히 똑똑한 포유류라고 전제하고 가는것이 맞나 싶습니다.
사실 동물의 지능이라는걸 어떻게 재냐도 문제인데, 비슷한 방법으로 재도 지능순서와 식용으로 소비 ... 더 보기
식욕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포유류가 소와 돼지일텐데 이미 언급했듯이 돼지의 경우 개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높은 지적행동을 보인다고 알려져있고, 흔히 먹는 소가 개보다 지적능력이 떨어진다고 볼 명확한 근거를 접해보지는 못했네요. 논란이 있지만 지능이 높은 포유류로 분류되는 고래의 식용소비에 대한 반발도 개/고양이의 식용소비와는 그 느낌이 다르고요. 애초에 개가 뭐 특별히 똑똑한 포유류라고 전제하고 가는것이 맞나 싶습니다.
사실 동물의 지능이라는걸 어떻게 재냐도 문제인데, 비슷한 방법으로 재도 지능순서와 식용으로 소비 ... 더 보기
음...
식욕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포유류가 소와 돼지일텐데 이미 언급했듯이 돼지의 경우 개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높은 지적행동을 보인다고 알려져있고, 흔히 먹는 소가 개보다 지적능력이 떨어진다고 볼 명확한 근거를 접해보지는 못했네요. 논란이 있지만 지능이 높은 포유류로 분류되는 고래의 식용소비에 대한 반발도 개/고양이의 식용소비와는 그 느낌이 다르고요. 애초에 개가 뭐 특별히 똑똑한 포유류라고 전제하고 가는것이 맞나 싶습니다.
사실 동물의 지능이라는걸 어떻게 재냐도 문제인데, 비슷한 방법으로 재도 지능순서와 식용으로 소비 호불호가 갈리지 않습니다. 그냥 문화적으로 우리가 친근하게 받아들이는 동물들을 소비하는데에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게 맞죠. 개와 고양이는 (특히 개는) 인간과 소통이 굉장히 활발하고 잘 이루진다고 인지하는 생물이지만 그것도 그냥 우리가 다른 우연한 유전적 특성들이 맘에 들어서 그렇게 되도록 이 종들을 개량시킨건데요 뭐.
아예 늑대와 애완견이 사람의 감정을 읽어내고 소통하는데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연구는 있지만, 애완돼지와 사람의 관계를 개의 그것과 비교하는 연구 같은건 아직 접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개/고양이가 아닌 다른 포유류를 애완/반려동물로 키우는 사례를 생각해보면 인간의 감정을 감지하고 공유하는데 가축화가 마무리된 포유류 사이에서 그렇게까지 큰 차이가있을지 의문입니다. 야생동물로서 사람과 교화가 힘들다고 인지되는 여우들이 두어세대만에 애완동물급으로 가축화가 되었다는 사례보고도있듯이 차이가 좀 있다하더라도 불과 십수년 안에 바꿀수있을 정도로 그 지속성이 약한 특성일수도있고요.
뭐 저도 비생물학자로서 생물학하는 친구들한테 니네 법칙들 다 그냥 적당히 트렌드만 맞으면 되는거 아니냐하고 놀리지만, 이건 그렇게 봐도 룰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합니다. 그리고 현대에서도 각 문화권에서 개/고양이의 애완동물화가 얼마나 널리 자리잡고있느냐에 따라서 개/고양이의 식용문제에 따라 반응하는 정도가 상당히 다른것으로 보면 이게 유전과학적인것보다는 문화적인 영향이 더 크게 작용하는 이슈라고 생각할수있는것 같습니다.
식욕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포유류가 소와 돼지일텐데 이미 언급했듯이 돼지의 경우 개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높은 지적행동을 보인다고 알려져있고, 흔히 먹는 소가 개보다 지적능력이 떨어진다고 볼 명확한 근거를 접해보지는 못했네요. 논란이 있지만 지능이 높은 포유류로 분류되는 고래의 식용소비에 대한 반발도 개/고양이의 식용소비와는 그 느낌이 다르고요. 애초에 개가 뭐 특별히 똑똑한 포유류라고 전제하고 가는것이 맞나 싶습니다.
사실 동물의 지능이라는걸 어떻게 재냐도 문제인데, 비슷한 방법으로 재도 지능순서와 식용으로 소비 호불호가 갈리지 않습니다. 그냥 문화적으로 우리가 친근하게 받아들이는 동물들을 소비하는데에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게 맞죠. 개와 고양이는 (특히 개는) 인간과 소통이 굉장히 활발하고 잘 이루진다고 인지하는 생물이지만 그것도 그냥 우리가 다른 우연한 유전적 특성들이 맘에 들어서 그렇게 되도록 이 종들을 개량시킨건데요 뭐.
아예 늑대와 애완견이 사람의 감정을 읽어내고 소통하는데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연구는 있지만, 애완돼지와 사람의 관계를 개의 그것과 비교하는 연구 같은건 아직 접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개/고양이가 아닌 다른 포유류를 애완/반려동물로 키우는 사례를 생각해보면 인간의 감정을 감지하고 공유하는데 가축화가 마무리된 포유류 사이에서 그렇게까지 큰 차이가있을지 의문입니다. 야생동물로서 사람과 교화가 힘들다고 인지되는 여우들이 두어세대만에 애완동물급으로 가축화가 되었다는 사례보고도있듯이 차이가 좀 있다하더라도 불과 십수년 안에 바꿀수있을 정도로 그 지속성이 약한 특성일수도있고요.
뭐 저도 비생물학자로서 생물학하는 친구들한테 니네 법칙들 다 그냥 적당히 트렌드만 맞으면 되는거 아니냐하고 놀리지만, 이건 그렇게 봐도 룰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합니다. 그리고 현대에서도 각 문화권에서 개/고양이의 애완동물화가 얼마나 널리 자리잡고있느냐에 따라서 개/고양이의 식용문제에 따라 반응하는 정도가 상당히 다른것으로 보면 이게 유전과학적인것보다는 문화적인 영향이 더 크게 작용하는 이슈라고 생각할수있는것 같습니다.
외국인들이 영화 올드보이에서 "산낙지를 생으로 먹는걸" 혐오스럽게 여긴것 처럼, 우리도 낙지를 먹는 걸 못하게 될 날이 오는건가요. 그렇다면 그것은 그냥 먹는 꼴이 보기 싫은건가요. 비윤리적이어서 그런건가요. 그냥 그런 생각이 드는데요. "그냥 먹는 꼴이 보기 싫은거겠지.."
그리고 역사적 흐름상 변화하면 진보라는 주장은 무리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동성애는 인류 역사적 측면에서는 그리스 시대 등을 살펴보면 긍정되었던 시대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는 '비윤리적'이 되었죠. 그렇다면 중세시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 동성애 금지는 진보적인 키워드였다는 이야기가 되고, 동성애를 긍정하는 사람은 그 흐름을 거꾸로 돌리는 사람이 되는거고요. 음..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드는데요.
그리고 역사적 흐름상 변화하면 진보라는 주장은 무리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동성애는 인류 역사적 측면에서는 그리스 시대 등을 살펴보면 긍정되었던 시대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는 '비윤리적'이 되었죠. 그렇다면 중세시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 동성애 금지는 진보적인 키워드였다는 이야기가 되고, 동성애를 긍정하는 사람은 그 흐름을 거꾸로 돌리는 사람이 되는거고요. 음..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드는데요.
사실 '특정한 동물 A의 식용을 금지해야 마땅하다'는 주장은 가언적인 차원에서 할 수 있고(궤가 다르긴 하지만 천연기념물이 해당되죠.), 개가 그 범주에 들어갈만한 대상이냐 아니냐도 논의할 법하죠. 근데 고작 '더러운 고기 먹지 마라'라는 건 좀...그것도 고기를 '더럽게' 만드는 데에 일조하는 이들은 말할 자격이 없는 이야기기도 하고요. 그 점에서 이 경우는 그냥 자신이 개가 이쁘고 사랑스러우니까 남들 못 먹게 만들고 싶으니 걸리는대로 명분을 아무거나 주워섬긴 예라고 할 수 있죠. 비슷한 게 오프라인에서 진영논리적으로 사용되는 불법 드립 같은 것들.
돼지와 개의 경우 가축와의 용도 차이겠지요. 실제로 야생멧돼지는 가축돼지보다 똑똑합니다.
모든 동물의 풀에서 가축화시킬수 있는 종은 굉장히 한정적이기 때문에 인간의 필요에 의해 식용으로 가축화된건 불가피한 결정이었습니다.
근래들어서 가축동물들을 공장에서 찍어내듯 비인간적으로 키우고 도살하는 시스템은 이미 많은 윤리적 비난을 받고 있죠.
필요에 의해 식용화된 돼지나 소를 제외하곤 식용금지 시키는것이나 인간이 친밀감을 느끼는건 영장류, 고래류, 코끼리등인데
지능이 높을수록 혹은 인간과 유전적 거리가 가까울수록 친밀감을 느끼고 식... 더 보기
모든 동물의 풀에서 가축화시킬수 있는 종은 굉장히 한정적이기 때문에 인간의 필요에 의해 식용으로 가축화된건 불가피한 결정이었습니다.
근래들어서 가축동물들을 공장에서 찍어내듯 비인간적으로 키우고 도살하는 시스템은 이미 많은 윤리적 비난을 받고 있죠.
필요에 의해 식용화된 돼지나 소를 제외하곤 식용금지 시키는것이나 인간이 친밀감을 느끼는건 영장류, 고래류, 코끼리등인데
지능이 높을수록 혹은 인간과 유전적 거리가 가까울수록 친밀감을 느끼고 식... 더 보기
돼지와 개의 경우 가축와의 용도 차이겠지요. 실제로 야생멧돼지는 가축돼지보다 똑똑합니다.
모든 동물의 풀에서 가축화시킬수 있는 종은 굉장히 한정적이기 때문에 인간의 필요에 의해 식용으로 가축화된건 불가피한 결정이었습니다.
근래들어서 가축동물들을 공장에서 찍어내듯 비인간적으로 키우고 도살하는 시스템은 이미 많은 윤리적 비난을 받고 있죠.
필요에 의해 식용화된 돼지나 소를 제외하곤 식용금지 시키는것이나 인간이 친밀감을 느끼는건 영장류, 고래류, 코끼리등인데
지능이 높을수록 혹은 인간과 유전적 거리가 가까울수록 친밀감을 느끼고 식용에 거부감을 느끼는건 룰보다는 상관관계가 분명히 있다정도로 보입니다.
문화적인 이유로 개+고양이가 덕을 보는것도 맞습니다.
모든 동물의 풀에서 가축화시킬수 있는 종은 굉장히 한정적이기 때문에 인간의 필요에 의해 식용으로 가축화된건 불가피한 결정이었습니다.
근래들어서 가축동물들을 공장에서 찍어내듯 비인간적으로 키우고 도살하는 시스템은 이미 많은 윤리적 비난을 받고 있죠.
필요에 의해 식용화된 돼지나 소를 제외하곤 식용금지 시키는것이나 인간이 친밀감을 느끼는건 영장류, 고래류, 코끼리등인데
지능이 높을수록 혹은 인간과 유전적 거리가 가까울수록 친밀감을 느끼고 식용에 거부감을 느끼는건 룰보다는 상관관계가 분명히 있다정도로 보입니다.
문화적인 이유로 개+고양이가 덕을 보는것도 맞습니다.
이것에 관해서 아예 다른 주제를 가져와보자면 얼마전 미국에서 논란이 되었던 사형법에 관한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미국의 사형제도는 각주의 주법에 의해서 결정되는데, 사형제도를 아직까지 시행하는 주들에서도 조금 더 '인도적인', 즉 덜 시각적이고, 덜 고통스러운 사형법을 점점 더 선호하는 경향이있다고합니다. 그래서 많은 주들이 과거의 교수형, 총살형, 전기의자 같은 것보다는 약을 통한 제도를 선호한다고하죠. 보통 이 과정에서 2가지 약을 투여하는데 이 중 하나가 실제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약이고, 두번째가 신경계를 통제시켜서 사형수... 더 보기
이것에 관해서 아예 다른 주제를 가져와보자면 얼마전 미국에서 논란이 되었던 사형법에 관한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미국의 사형제도는 각주의 주법에 의해서 결정되는데, 사형제도를 아직까지 시행하는 주들에서도 조금 더 '인도적인', 즉 덜 시각적이고, 덜 고통스러운 사형법을 점점 더 선호하는 경향이있다고합니다. 그래서 많은 주들이 과거의 교수형, 총살형, 전기의자 같은 것보다는 약을 통한 제도를 선호한다고하죠. 보통 이 과정에서 2가지 약을 투여하는데 이 중 하나가 실제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는 약이고, 두번째가 신경계를 통제시켜서 사형수의 고통을 최소화시키는 약이라고 알려져있었다고합니다. 그런데 저 두번째 약이 고통을 최소화 시킨다기 보다는 사형수가 고통을 표현하지 못하게 만들뿐이다라는 주장이 나와서 논란이 됫었다고해요. 어떤 결론이 내려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개와 고양이 처럼 인간과 친근한 종들이 고통을 받는것이 힘들다는 의견을 많은 사람들이 내는데, 그러면 같은 인간에게 합법적으로 고통을 주는 이 과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그것도 흥미로운 주제라고 생각해요. 사형수들의 고통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무감각하다면, 정말 우리는 그들을 금수만도 못한 것들로 인지한다고 볼수도있자나요?
벤젠 C6H6 님// 정확해요, 결국엔 그냥 보는 사람들, 집행하는 사람들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한 눈가리고 아웅이 아니냐라는 비판이 거셌던걸로 압니다. 거기에다가 아마 그 약물제조 자체가 불법인 국가들에서 그 약물을 수입해왔거나 그랬을거에요... 사형제도를 철회한 국가들은 그 약물 생산을 금한다는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특정주에서 사형수들 집행일이 다가와서 사형을 집행해야하기는 하는데 약이 없어서 그러면 '더 폭력적이고 원시적인' 총살 같은걸로 사형을 집행해야하는건지, 근데 총살을 집행한지 오래되서 예전 사형수들은 다 은퇴하거나 다른일하는데 그럼 총살은 도대체 누가 집행해야하는지... 벼래별 문제점들이 동시에 튀어나왔던걸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특정주에서 사형수들 집행일이 다가와서 사형을 집행해야하기는 하는데 약이 없어서 그러면 '더 폭력적이고 원시적인' 총살 같은걸로 사형을 집행해야하는건지, 근데 총살을 집행한지 오래되서 예전 사형수들은 다 은퇴하거나 다른일하는데 그럼 총살은 도대체 누가 집행해야하는지... 벼래별 문제점들이 동시에 튀어나왔던걸로 기억합니다.
개도 키우다 무지개 다리 건너보내고, 지금은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집사입니다.
동물은 정말 다 좋아하고 사랑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돼지와 양도 심지어 병아리도 키워준 사람은 정말 잘 따르고 감정적 교감도 충분히 발생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앞서 논의된 것과 마찬가지로 개와 고양이의 식용이 금지되는 것이 과연 더 나은 선택인가 하는 것에는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진보'라는 단어의 정의는 각자 다르고 그 받아들이는 바도 다를 수 있으니 그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저 선택 자체가 더 나... 더 보기
동물은 정말 다 좋아하고 사랑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돼지와 양도 심지어 병아리도 키워준 사람은 정말 잘 따르고 감정적 교감도 충분히 발생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앞서 논의된 것과 마찬가지로 개와 고양이의 식용이 금지되는 것이 과연 더 나은 선택인가 하는 것에는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진보'라는 단어의 정의는 각자 다르고 그 받아들이는 바도 다를 수 있으니 그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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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도 키우다 무지개 다리 건너보내고, 지금은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집사입니다.
동물은 정말 다 좋아하고 사랑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돼지와 양도 심지어 병아리도 키워준 사람은 정말 잘 따르고 감정적 교감도 충분히 발생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앞서 논의된 것과 마찬가지로 개와 고양이의 식용이 금지되는 것이 과연 더 나은 선택인가 하는 것에는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진보'라는 단어의 정의는 각자 다르고 그 받아들이는 바도 다를 수 있으니 그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저 선택 자체가 더 나은 선택인지에 대한 것조차 의견이 갈릴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제 생각으론 모든 생명이 소중하고 그 생명을 거두는 일은 무겁고 엄중한 일로 처리될 수 있도록
요즘 얘기하는 '동물복지'농장이 확대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것 같습니다.
동물은 정말 다 좋아하고 사랑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돼지와 양도 심지어 병아리도 키워준 사람은 정말 잘 따르고 감정적 교감도 충분히 발생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앞서 논의된 것과 마찬가지로 개와 고양이의 식용이 금지되는 것이 과연 더 나은 선택인가 하는 것에는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진보'라는 단어의 정의는 각자 다르고 그 받아들이는 바도 다를 수 있으니 그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저 선택 자체가 더 나은 선택인지에 대한 것조차 의견이 갈릴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제 생각으론 모든 생명이 소중하고 그 생명을 거두는 일은 무겁고 엄중한 일로 처리될 수 있도록
요즘 얘기하는 '동물복지'농장이 확대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것 같습니다.
뭐 근데 그러라고 시스템이 있는 거라고 봅니다. 예컨대 "법률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소시지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같아서, 보지 않는 것이 좋다."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그 때문에 의회와 행정부가 있고 소시지 제조업자가 있는 것이죠. 결국 어느 분야든 투명하게 처리될 시에 공중公衆 이 추접함을 느낀다든가 비위상한다든가 감정적 거부감이 들 법한 일들은 있기 마련인데, 이것들이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과 업계 종사자들 선에서 조용히 처리됨으로써 사람들은 안위와 평안을 누릴 수 있지요. 언급하신 예를 재활용하자면,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민병대가 아니라 상비군인 것, 그리고 그 상비군을 최종적으로 지휘하는 것이 완전... 더 보기
뭐 근데 그러라고 시스템이 있는 거라고 봅니다. 예컨대 "법률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소시지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같아서, 보지 않는 것이 좋다."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그 때문에 의회와 행정부가 있고 소시지 제조업자가 있는 것이죠. 결국 어느 분야든 투명하게 처리될 시에 공중公衆 이 추접함을 느낀다든가 비위상한다든가 감정적 거부감이 들 법한 일들은 있기 마련인데, 이것들이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과 업계 종사자들 선에서 조용히 처리됨으로써 사람들은 안위와 평안을 누릴 수 있지요. 언급하신 예를 재활용하자면,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민병대가 아니라 상비군인 것, 그리고 그 상비군을 최종적으로 지휘하는 것이 완전히 유리되고 이격되어 있는 행정부 지도자인 것도 같은 이유라고 봅니다. 예컨대 정치가들과 관료들이 전쟁이 가진 '현장감'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게끔, 그리고 그것이 그네들 선에서 끝나지 않고 언론과 전파를 타고 대중들에게 전파되게끔 체계가 구성되어 있다면, 그 체계는 장기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불가능할 것입니다(그야 인면수심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합리적 의사 결정과 불쾌감의 최소화를 위해서는 비인적인 시스템이 반드시 필요하죠. 하이에크도 이런 맥락에서 계획경제에 대한 시장경제의 위대함을 예찬했고(비인적으로 행정이 처리되기에 불만의 대상이 구체적으로 지목되지 않아 책임의 전가가 최소화되고 각자 자기 스스로 알아서 사소한 불만거리들을 감당하고 그것이 사회의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요지. http://redtea.kr/?b=3&n=4816&c=69417)..
여하간 그런 식으로 현장과 관리가 분리되고, 실행자와 이해당사자가 분리되어 궁극적으로는 시스템적 자동화에 의해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만사가 돌아가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어차피 인간은 진실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그걸 감당할 수도 없기에, 굳이 필요한 게 아니라면 각 개인이 진실에 '피폭'될 필요도 없겠지요. 조용히 넘어갈 일을 괜한 혼란을 야기하여 통제 불능으로 만들어버릴 뿐...어 퓨 굿 맨에서 제셉 대령(잭 니콜슨 분)이 하는 말이 핵심을 찌르죠. "You can't handle the truth."
사실 제 솔직한 감상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들의 손에 피를 묻히는 소시지 제조 업자들 덕에 우리 모두 소시지를 보며 일말의 주저함과 머뭇거림도 없이 식욕과 행복감과 만찬의 기쁨을 느끼듯, 잘 정련된 견육 제조 과정이 확립되어 우리 모두 개고기를 보며 죄의식이나 공포감 등의 거리낌이 대뇌피질을 울릴 틈도 없이 순수하게 기쁨만을 느낄 수 있게 되었으면...뭐 그런 거네요.
여하간 그런 식으로 현장과 관리가 분리되고, 실행자와 이해당사자가 분리되어 궁극적으로는 시스템적 자동화에 의해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만사가 돌아가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어차피 인간은 진실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그걸 감당할 수도 없기에, 굳이 필요한 게 아니라면 각 개인이 진실에 '피폭'될 필요도 없겠지요. 조용히 넘어갈 일을 괜한 혼란을 야기하여 통제 불능으로 만들어버릴 뿐...어 퓨 굿 맨에서 제셉 대령(잭 니콜슨 분)이 하는 말이 핵심을 찌르죠. "You can't handle the truth."
사실 제 솔직한 감상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들의 손에 피를 묻히는 소시지 제조 업자들 덕에 우리 모두 소시지를 보며 일말의 주저함과 머뭇거림도 없이 식욕과 행복감과 만찬의 기쁨을 느끼듯, 잘 정련된 견육 제조 과정이 확립되어 우리 모두 개고기를 보며 죄의식이나 공포감 등의 거리낌이 대뇌피질을 울릴 틈도 없이 순수하게 기쁨만을 느낄 수 있게 되었으면...뭐 그런 거네요.
저는 생각을 조금 달리합니다. 늑대에서 개로 분화가 일어난 개와는 달리 고양이의 가축화는 시기적으로 늦었을 뿐더러 정서적으로 크게 인간과 가깝게 진화하지도 않았죠. 인간으로 말미암은 신체적 변화라면 식용으로 길러지고 있는 돼지나 닭 등이 훨씬 크고요.
정서적인 부분에서 보자면 저도 고양이를 매우 좋아하고 타인이 고양이를 먹는다면 조금 불쾌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제 정서적 불쾌함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할만큼 큰지는 잘 모르겠어요. 대만은 그 부분에서 사회적 합의가 일어났을 지는 모릅니다만 그렇다고 그게 진보적 윤리관에 따른 변화라고는 생각하지 않네요.
정서적인 부분에서 보자면 저도 고양이를 매우 좋아하고 타인이 고양이를 먹는다면 조금 불쾌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제 정서적 불쾌함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할만큼 큰지는 잘 모르겠어요. 대만은 그 부분에서 사회적 합의가 일어났을 지는 모릅니다만 그렇다고 그게 진보적 윤리관에 따른 변화라고는 생각하지 않네요.
글쎄요. 동물의 입장에서 동물들이 자기를 키워달라고 한것도 아닌데 인간에 의존하게 만들었다고 인간의 친구라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죠. 젖 안짜면 큰일나는 꼴이 된 젖소가 인간의 도움이 없으면 생존에 문제가 생긴다고 해서 젖소와 인간은 친구에여!라는 주장을 하면 이상하잖아요. 생각에 따라서는 인간이 나쁘다를 외칠만한 문제죠. 실제로 그렇게 외치는 사람도 많고요.
조금은 솔직해 져야죠. "나는 개고양이가 좋앙! 개 고양이 먹는 꼴 보기 싫엉!"..
+ 특정 지역에선 개나 고양이가 인류의 친구가 아닐수도 있죠. 힌두교에서 소가 신성시되는 친구라고 우리가 전부 소를 안먹어야하는건 아닌것 처럼요.
조금은 솔직해 져야죠. "나는 개고양이가 좋앙! 개 고양이 먹는 꼴 보기 싫엉!"..
+ 특정 지역에선 개나 고양이가 인류의 친구가 아닐수도 있죠. 힌두교에서 소가 신성시되는 친구라고 우리가 전부 소를 안먹어야하는건 아닌것 처럼요.
일단 개/고양이가 인간문화에 성공적으로 편입된 종은 맞는데,
지능보다는 특유의 습성이 인간친화적이거나 '표정' 으로 나타나는 희노애락 등을 인간이 어느정도 공감할 수 있다는 면이 크다고 봅니다.
그래서 금붕어나 거북이를 기르는 집도 있는거고..
무엇이 학대인가.. 라는 측면에서 보면,
식용, 투기, 연구 등의 목적으로 사육하는 것과 애완용으로 기르는 식으로 나누는 것이 딱히 의미있는 구분도 아닙니다.
'학대 및 질병/고통에의 배제' 라는 면에서 볼 때, 애완용 동물이 특히 유리하다고 할 수 있는 지점은 딱 하나 "죽... 더 보기
지능보다는 특유의 습성이 인간친화적이거나 '표정' 으로 나타나는 희노애락 등을 인간이 어느정도 공감할 수 있다는 면이 크다고 봅니다.
그래서 금붕어나 거북이를 기르는 집도 있는거고..
무엇이 학대인가.. 라는 측면에서 보면,
식용, 투기, 연구 등의 목적으로 사육하는 것과 애완용으로 기르는 식으로 나누는 것이 딱히 의미있는 구분도 아닙니다.
'학대 및 질병/고통에의 배제' 라는 면에서 볼 때, 애완용 동물이 특히 유리하다고 할 수 있는 지점은 딱 하나 "죽... 더 보기
일단 개/고양이가 인간문화에 성공적으로 편입된 종은 맞는데,
지능보다는 특유의 습성이 인간친화적이거나 '표정' 으로 나타나는 희노애락 등을 인간이 어느정도 공감할 수 있다는 면이 크다고 봅니다.
그래서 금붕어나 거북이를 기르는 집도 있는거고..
무엇이 학대인가.. 라는 측면에서 보면,
식용, 투기, 연구 등의 목적으로 사육하는 것과 애완용으로 기르는 식으로 나누는 것이 딱히 의미있는 구분도 아닙니다.
'학대 및 질병/고통에의 배제' 라는 면에서 볼 때, 애완용 동물이 특히 유리하다고 할 수 있는 지점은 딱 하나 "죽음의 방식" 일 뿐이죠.
나머지는 캐바캐의 문제인데,
애완동물이 가축보다 확연하게 이 부분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서는 애완의 기준이 계속 상향될겁니다.
사육의 기준이 상향이 되고 있어서이기도 하고,
애초에 "이건 괜찮겠지" 싶었던 것들 - 실제로는 학대의 범주에 포함되었던 것들 - 을 계속 수정해야 해요.
결과적으로 애완견 사육의 부담은 점점 커질겁니다. 이미 커져왔고.
이 정신노동, 육체노동의 성격은 육아와 상당히 닮아있기도 한데.. 차이가 있다면 가슴으로 낳아 지갑으로 키운다는 점?;;
그러니까... 음.... 지능때문에 개.고양이가 가치있는건 아닙니다.
두번째로, 애완(반려)상태라고해서 그 동물한테 딱히 잘해주는 범주에 안착한게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그 "종" 의 식용을 합법화하는게 그 "종" 전체의 애완(반려)동물로서의 지위를 부정하는게 아닙니다.
지능보다는 특유의 습성이 인간친화적이거나 '표정' 으로 나타나는 희노애락 등을 인간이 어느정도 공감할 수 있다는 면이 크다고 봅니다.
그래서 금붕어나 거북이를 기르는 집도 있는거고..
무엇이 학대인가.. 라는 측면에서 보면,
식용, 투기, 연구 등의 목적으로 사육하는 것과 애완용으로 기르는 식으로 나누는 것이 딱히 의미있는 구분도 아닙니다.
'학대 및 질병/고통에의 배제' 라는 면에서 볼 때, 애완용 동물이 특히 유리하다고 할 수 있는 지점은 딱 하나 "죽음의 방식" 일 뿐이죠.
나머지는 캐바캐의 문제인데,
애완동물이 가축보다 확연하게 이 부분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서는 애완의 기준이 계속 상향될겁니다.
사육의 기준이 상향이 되고 있어서이기도 하고,
애초에 "이건 괜찮겠지" 싶었던 것들 - 실제로는 학대의 범주에 포함되었던 것들 - 을 계속 수정해야 해요.
결과적으로 애완견 사육의 부담은 점점 커질겁니다. 이미 커져왔고.
이 정신노동, 육체노동의 성격은 육아와 상당히 닮아있기도 한데.. 차이가 있다면 가슴으로 낳아 지갑으로 키운다는 점?;;
그러니까... 음.... 지능때문에 개.고양이가 가치있는건 아닙니다.
두번째로, 애완(반려)상태라고해서 그 동물한테 딱히 잘해주는 범주에 안착한게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그 "종" 의 식용을 합법화하는게 그 "종" 전체의 애완(반려)동물로서의 지위를 부정하는게 아닙니다.
한가지 더... 하자면,
개/고양이에 대한 인식 - 친근함, 사람스러움;; - 이 강화된데는 미디어의 힘도 꽤 크다고 느껴요.
은수저나 마이리틀포니(-_-;;;)를 보고나서 말을 탔더니.. 괜히 등짝 쓰다듬어주고싶고..
워낭소리를 보고 나서는 호주산 수입소만 먹게되고..(??)
톰과제리를 재미있게 봐서 그런지 쥐를 무서워하지 않고.. 실험할 때도 잘 잡고(;;)
...는 농담인데,
여튼, 미디어의 힘 없이 과연 '개와 고양이가 인간에게 이렇게까지 친한 친구였나?' 하는 생각은 종종 듭니다.
이게 어느순간 미디어... 더 보기
개/고양이에 대한 인식 - 친근함, 사람스러움;; - 이 강화된데는 미디어의 힘도 꽤 크다고 느껴요.
은수저나 마이리틀포니(-_-;;;)를 보고나서 말을 탔더니.. 괜히 등짝 쓰다듬어주고싶고..
워낭소리를 보고 나서는 호주산 수입소만 먹게되고..(??)
톰과제리를 재미있게 봐서 그런지 쥐를 무서워하지 않고.. 실험할 때도 잘 잡고(;;)
...는 농담인데,
여튼, 미디어의 힘 없이 과연 '개와 고양이가 인간에게 이렇게까지 친한 친구였나?' 하는 생각은 종종 듭니다.
이게 어느순간 미디어... 더 보기
한가지 더... 하자면,
개/고양이에 대한 인식 - 친근함, 사람스러움;; - 이 강화된데는 미디어의 힘도 꽤 크다고 느껴요.
은수저나 마이리틀포니(-_-;;;)를 보고나서 말을 탔더니.. 괜히 등짝 쓰다듬어주고싶고..
워낭소리를 보고 나서는 호주산 수입소만 먹게되고..(??)
톰과제리를 재미있게 봐서 그런지 쥐를 무서워하지 않고.. 실험할 때도 잘 잡고(;;)
...는 농담인데,
여튼, 미디어의 힘 없이 과연 '개와 고양이가 인간에게 이렇게까지 친한 친구였나?' 하는 생각은 종종 듭니다.
이게 어느순간 미디어에서 푸시했다는걸 저희세대는 아마 느낄걸요..
그리고 그 미디어는 항상 자본과 연관이 있어요.
저는 현재의 애완(반려)동물 수용률은 거품이라고 봅니다.
공급이 수요를 부자연스러운 수준으로 창출했다고 느껴요.
개/고양이에 대한 인식 - 친근함, 사람스러움;; - 이 강화된데는 미디어의 힘도 꽤 크다고 느껴요.
은수저나 마이리틀포니(-_-;;;)를 보고나서 말을 탔더니.. 괜히 등짝 쓰다듬어주고싶고..
워낭소리를 보고 나서는 호주산 수입소만 먹게되고..(??)
톰과제리를 재미있게 봐서 그런지 쥐를 무서워하지 않고.. 실험할 때도 잘 잡고(;;)
...는 농담인데,
여튼, 미디어의 힘 없이 과연 '개와 고양이가 인간에게 이렇게까지 친한 친구였나?' 하는 생각은 종종 듭니다.
이게 어느순간 미디어에서 푸시했다는걸 저희세대는 아마 느낄걸요..
그리고 그 미디어는 항상 자본과 연관이 있어요.
저는 현재의 애완(반려)동물 수용률은 거품이라고 봅니다.
공급이 수요를 부자연스러운 수준으로 창출했다고 느껴요.
눈부심 님// 아니 싱어는 채식주의자니까 당연히 의식을 가진 모든 동물의 식용에 반대하겠죠. 제 말씀은 개와 고양이가 인간과 가까우니까 개들만 차별적으로 먹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에는 반대할 거라고요. 최소한 그의 주장에는 내적 일관성과 합리성이 있죠.
JUFAFA님이 말씀하신 "특정 종이 사람에게 중하게 귀하게 여겨져서 먹으면 안된다는 주장에 따른 공리주의"와 선호공리주의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말입니다.
덧붙이자면 싱어는 의식을 가지고 행복과 고통을 느끼는 동물의 권리를 똑같이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과 가깝다고 어떤 종만 특별 취급을 받아야 할 당위는 존재하지 않아요.
JUFAFA님이 말씀하신 "특정 종이 사람에게 중하게 귀하게 여겨져서 먹으면 안된다는 주장에 따른 공리주의"와 선호공리주의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말입니다.
덧붙이자면 싱어는 의식을 가지고 행복과 고통을 느끼는 동물의 권리를 똑같이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과 가깝다고 어떤 종만 특별 취급을 받아야 할 당위는 존재하지 않아요.
눈부심 님// 그렇다면 꼭 개와 고양이일 필요는 없습니다. 앞서 이어진 인간과 두 가축이 가깝다는 근거에 대한 논의 또한 무의미하고요.
인도는 소 도축을 금지하지만 아무도 인도 법률을 진보적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죠. 그건 동물해방의 차원이 아니니까요. 마찬가지로 종편의적인 생각을 버리고 적극적 동물권의 연장 차원에서 볼 때만 대만의 변화가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피터 싱어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를 개인적으로 좋아합니다. 그의 주장은 "개와 고양이는 인간과 가까우니까 먹으면 안 돼"같은 감성적 주장이 아닌 "우리들 스스로의 이익이 수많은 일련의 이익들 중의 하나이며, 타인이 갖는 유사한 이익 이상의 중요성을 갖지 않는다." 는 전제로 논리적 일관성을 가지고 이야기하거든요.
인도는 소 도축을 금지하지만 아무도 인도 법률을 진보적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죠. 그건 동물해방의 차원이 아니니까요. 마찬가지로 종편의적인 생각을 버리고 적극적 동물권의 연장 차원에서 볼 때만 대만의 변화가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피터 싱어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를 개인적으로 좋아합니다. 그의 주장은 "개와 고양이는 인간과 가까우니까 먹으면 안 돼"같은 감성적 주장이 아닌 "우리들 스스로의 이익이 수많은 일련의 이익들 중의 하나이며, 타인이 갖는 유사한 이익 이상의 중요성을 갖지 않는다." 는 전제로 논리적 일관성을 가지고 이야기하거든요.
눈부심 님// 제 생각을 짧게 정리해볼게요.
"대만에서의 개와 고양이의 식용금지는 진보적 변화인가?"
모릅니다. 대만에서 해당 법률이 제정되게 된 사회적 논의가 어땠는 지 모르니까요. 해당 변화가 장기적으로 모든 의식을 가진 동물의 식용 이용 제한을 위한 과정이라면 그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해당 변화는 결과적으로 동물권리 확대에 도움이 됐는가?"
개와 고양이의 식용 이용이 줄어든 만큼 타 가축의 식용 이용이 늘어나면 그렇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고통받는 동물의 종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절대수가 줄어들어야 하는 게 중요하죠.... 더 보기
"대만에서의 개와 고양이의 식용금지는 진보적 변화인가?"
모릅니다. 대만에서 해당 법률이 제정되게 된 사회적 논의가 어땠는 지 모르니까요. 해당 변화가 장기적으로 모든 의식을 가진 동물의 식용 이용 제한을 위한 과정이라면 그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해당 변화는 결과적으로 동물권리 확대에 도움이 됐는가?"
개와 고양이의 식용 이용이 줄어든 만큼 타 가축의 식용 이용이 늘어나면 그렇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고통받는 동물의 종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절대수가 줄어들어야 하는 게 중요하죠.... 더 보기
눈부심 님// 제 생각을 짧게 정리해볼게요.
"대만에서의 개와 고양이의 식용금지는 진보적 변화인가?"
모릅니다. 대만에서 해당 법률이 제정되게 된 사회적 논의가 어땠는 지 모르니까요. 해당 변화가 장기적으로 모든 의식을 가진 동물의 식용 이용 제한을 위한 과정이라면 그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해당 변화는 결과적으로 동물권리 확대에 도움이 됐는가?"
개와 고양이의 식용 이용이 줄어든 만큼 타 가축의 식용 이용이 늘어나면 그렇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고통받는 동물의 종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절대수가 줄어들어야 하는 게 중요하죠.
동물원 사자에게 닭이랑 오리 던져주는 게 불쌍하다고 먹이를 닭만 던져주는 걸로 바꿔도 대단한 진보적 결정이라고 하실 건 아니잖아요.
"대만에서의 개와 고양이의 식용금지는 진보적 변화인가?"
모릅니다. 대만에서 해당 법률이 제정되게 된 사회적 논의가 어땠는 지 모르니까요. 해당 변화가 장기적으로 모든 의식을 가진 동물의 식용 이용 제한을 위한 과정이라면 그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해당 변화는 결과적으로 동물권리 확대에 도움이 됐는가?"
개와 고양이의 식용 이용이 줄어든 만큼 타 가축의 식용 이용이 늘어나면 그렇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고통받는 동물의 종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절대수가 줄어들어야 하는 게 중요하죠.
동물원 사자에게 닭이랑 오리 던져주는 게 불쌍하다고 먹이를 닭만 던져주는 걸로 바꿔도 대단한 진보적 결정이라고 하실 건 아니잖아요.
눈부심 님// ['우리 강아지 이쁘니까 먹지 말아요'라는 식의 워딩은 극단적인 동물애호가들을 조롱하기 위한 표현일 뿐 실제 인간은 개나 고양이가 식용으로 길러지고 소비될 때 보편적으로 더 많은 고통을 느껴요.] 아뇨.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의견이죠. [실제 이성애자는 동성애를 하는 모습을 볼때 보편적으로 더 많은 고통을 느낀다.]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어요. 그냥 동성애자가 보기 싫은것처럼 개 고양이에 대해 식용으로 대하는게 보기 싫은거죠.
저는 실제로 개고기를 먹는 사람으로써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 첫댓글도 충분히 그런 늬앙스가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실제로 개고기를 먹는 사람으로써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 첫댓글도 충분히 그런 늬앙스가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눈부심 님// "인간은 개나 고양이가 식용으로 길러지고 소비될 때 보편적으로 더 많은 고통을 느껴요." 당장 10억 인도인들만
해도 그렇게 여기지 않을 겁니다. 해당 진술이 사실이라고 해도 인간이 느끼는 정서적 고통은 실제 식용으로 사육되고 도축되는 동물이 느끼는 고통에 비하면 미미합니다. 싱어의 공리주의대로라면 인간이 느끼는 주관적 고통을 다른 동물의 고통보다 더 귀하게 여길 필요도 없죠. 그렇다고 고통의 총량을 줄이기 위해 단일 개체에서 더 많은 부피의 고기를 얻을 수 있는 소나 코끼리만을 사육해야 할까요. 요는, 동물권 논의... 더 보기
해도 그렇게 여기지 않을 겁니다. 해당 진술이 사실이라고 해도 인간이 느끼는 정서적 고통은 실제 식용으로 사육되고 도축되는 동물이 느끼는 고통에 비하면 미미합니다. 싱어의 공리주의대로라면 인간이 느끼는 주관적 고통을 다른 동물의 고통보다 더 귀하게 여길 필요도 없죠. 그렇다고 고통의 총량을 줄이기 위해 단일 개체에서 더 많은 부피의 고기를 얻을 수 있는 소나 코끼리만을 사육해야 할까요. 요는, 동물권 논의... 더 보기
눈부심 님// "인간은 개나 고양이가 식용으로 길러지고 소비될 때 보편적으로 더 많은 고통을 느껴요." 당장 10억 인도인들만
해도 그렇게 여기지 않을 겁니다. 해당 진술이 사실이라고 해도 인간이 느끼는 정서적 고통은 실제 식용으로 사육되고 도축되는 동물이 느끼는 고통에 비하면 미미합니다. 싱어의 공리주의대로라면 인간이 느끼는 주관적 고통을 다른 동물의 고통보다 더 귀하게 여길 필요도 없죠. 그렇다고 고통의 총량을 줄이기 위해 단일 개체에서 더 많은 부피의 고기를 얻을 수 있는 소나 코끼리만을 사육해야 할까요. 요는, 동물권 논의는 개/고양이의 선택적 식용 금지를 옹호하는데 도움이 되는 논의가 아닙니다. 오히려 솔직하게 '인간의' 감정적인 문제임을 인식하고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정서를 이야기하는 게 낫죠. 정서적 문제도 충분히 합리적일 수 있으니까요.
먹거리 자유는 다른 층의의 논의이긴 한데 저도 합리적 근거 없이 타인의 먹거리 자유를 침해하려는 행동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설득력을 갖춰야죠. 결국은 다시 합리성에 대한 이야기에요.
해도 그렇게 여기지 않을 겁니다. 해당 진술이 사실이라고 해도 인간이 느끼는 정서적 고통은 실제 식용으로 사육되고 도축되는 동물이 느끼는 고통에 비하면 미미합니다. 싱어의 공리주의대로라면 인간이 느끼는 주관적 고통을 다른 동물의 고통보다 더 귀하게 여길 필요도 없죠. 그렇다고 고통의 총량을 줄이기 위해 단일 개체에서 더 많은 부피의 고기를 얻을 수 있는 소나 코끼리만을 사육해야 할까요. 요는, 동물권 논의는 개/고양이의 선택적 식용 금지를 옹호하는데 도움이 되는 논의가 아닙니다. 오히려 솔직하게 '인간의' 감정적인 문제임을 인식하고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정서를 이야기하는 게 낫죠. 정서적 문제도 충분히 합리적일 수 있으니까요.
먹거리 자유는 다른 층의의 논의이긴 한데 저도 합리적 근거 없이 타인의 먹거리 자유를 침해하려는 행동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설득력을 갖춰야죠. 결국은 다시 합리성에 대한 이야기에요.
보통 진보라는 말이 어떤 방식으로 쓰이는가를 봤을 때 개념적으로 진보라고 볼 수는 있죠. 원래 확장하는 윤리의 원 안에는 동물은 물론 흑인도 없었고 여성도 없었는데 하나씩 영역을 넓히다 보니 오늘날에 이른 것이고 보통 이를 진보라고 하니까요. animal rights의 논쟁에 있어 기준을 제시할 때 인본주의가 굉장히 합리적인 전제이긴 한데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종종 있고 모든 윤리관이 그렇듯 절대적이진 않으니까요. 그리고 백인/남성 우월주의도 사회에 만연한 '당연'하게 여겨지던 전제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현재 합리적이고 편리한... 더 보기
보통 진보라는 말이 어떤 방식으로 쓰이는가를 봤을 때 개념적으로 진보라고 볼 수는 있죠. 원래 확장하는 윤리의 원 안에는 동물은 물론 흑인도 없었고 여성도 없었는데 하나씩 영역을 넓히다 보니 오늘날에 이른 것이고 보통 이를 진보라고 하니까요. animal rights의 논쟁에 있어 기준을 제시할 때 인본주의가 굉장히 합리적인 전제이긴 한데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종종 있고 모든 윤리관이 그렇듯 절대적이진 않으니까요. 그리고 백인/남성 우월주의도 사회에 만연한 '당연'하게 여겨지던 전제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현재 합리적이고 편리한 기준의 값어치는 시간 앞에 퇴색되죠. 다만 이 건에 대해서는 왜 개나 고양이만 보호해야한냐는 근거가 그다지 강력하지 않고 감성적이라 개념적으로만 진보일 뿐 관련 논점과 좀 결이 다르죠. 오히려 반려견이라는 특수한 문화적인 관습 때문에 생긴 성격이 강하니 이슬람에서 돼지, 힌두에서는 소를 금지하는 정도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즉,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도그마의 탄생으로 보수적 성격을 갖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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