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9/05/22 00:05:25수정됨
Name  
Subject   혼잣말을 하는 버릇
글을 안 쓴지 오래되서 뭐라도 이야기하고 싶은 기분이 드는데 뭘 말할지 모르겠어요. 사실 이야기를 한다는 건 약점을 드러내는 거잖아요. 글은 더 그렇고요.

혼잣말을 하는 버릇이 있어요. 근데 꼭 자책을 해요. 그러지 말걸. 바보같이 굴지 말걸. 이야기한다고 해서 딱히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가끔 그런 생각을 하는데요. 제가 아귀처럼 입을 벌리고 외롭다 외롭다 하고 있는 것 같다고요. 그런데 아시잖아요. 아귀 입에 뭘 넣는다고 그게 나아지나요. 쇠구슬이 되서 뚝뚝 떨어지지.

저는 어렸을 때부터 아귀 이야기를 들으면 그렇게 서글펐어요. 아무리 잘못했다고 해도 그럴 것까지 있어요? 자기가 가지지 못할 것들이 다가오니까 그걸 원하게 되잖아요. 잊을 수도 없구요. 머리가 텅 비면 좋을텐데.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으면 좋을 텐데. 봐요. 바라는 것만 많아지죠.

외로운 건 어쩔 수 없는 거죠. 화가 나는 건 그게 딱히 특별하지도 않다는 걸 알아서예요. 차라리 이게 뭐 세상에 딱 하나 있는 거면 자부심이라고 가질 텐데. 나도 외롭고 저쪽도 외롭고 살다보면 다 그렇고. 그걸 아는 건 당연한 건데 그렇게 기분 좋지는 않잖아요?

요전에 누구하고 같이 있는데, 그 사람도 저도 시큰둥하더라고요. 그냥 멀끔하게 보다가 말았어요. 누구든 한 발을 내딛기가 어렵잖아요. 전에는 제가 그걸 내딛는 게 크게 어렵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래요. 그저 보고 있어요. 아는 언니가 점점 사람 만나는 게 어려워진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저도 그냥 끄덕거렸어요.

애니메이션이나 소설이나 영화같은 걸 보면 뭐 한발짝만 내밀면 돼 어쩌고 하는 이야기 많이 하잖아요. 근데 그거 사정상 축약된 말이죠. 한발짝 내딛는 게 뭐 어려워요. 다가가는 건 쉬워도 돌아설 때는 다른데요. 전 가까워지는 것보다 멀어지는 게 어렵다고 생각해요. 두고 돌아선 상대에게는 자꾸 많은 것들을 만들어내게 되잖아요. 내 시간과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자꾸 꾸며내죠.

그러니까 그 말보다는 어떤 책에서 본 말이 낫겠네요. 사람의 영혼이라는 건 자꾸 작아진대요. 더 멀리 보지 않으려고 하고 자꾸 나아가지 않으면 영혼이 작아지는 거죠. 처음엔 조금씩 줄어들어서 티도 안 나지만 정신을 차려보면 손바닥보다 작아지고, 결국에는 복숭아 씨앗보다 작아진다면서.

그 얘기를 듣고 생각했어요. 클 거라고 생각은 안 들더라고요. 나팔꽃 씨보다 작을지 아니면 저기 해바라기 씨 정도일지. 뭐 그 정도 생각했어요. 무서워서 한 발짝도 안 나간지 오래거든요. 아니 뭐. 집 한 평 사기도 어려운 때인데 마음도 한 뼘 얻기가 이렇게 어려워. 혼잣말을 또 했죠. 그때를 생각하면서요.

그 손을 잡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했는데. 마음이 같지는 않을 지언정 그래도 언제나 따뜻했던 거 같은데. 아마 이제는 손가락 한 마디조차 안 남아버린 건지. 티끌만큼도 누구에게 가까이 가기가 어렵네요. 그 사람이 누구던지 어떤 사람이던지 어떤 결점을 갖고 있던지 상관없이 좋았던 때도 있었는데. 곁에 있으면 안심했죠. 계속 있어달라는 이야기는 절대로 안 했어요. 꿈은 말하면 없던 일이 되잖아요.

아귀는 말이에요. 삼킬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생전에 욕심을 계속 부린 죄값이라고 하는데, 그때도 아마 똑같았을 텐데요. 원하는 것을 얻어도 허전하고, 그래서 계속 배를 곯다보니 또 어리석은 짓이 반복되고. 근데 그걸 죽어서도 반복하는 거죠. 살아서도 하던 건데. 이번에는 끝도 안 날 테고.

예전에 읽었던 책에는 비겁하게도 줄어든 마음을 회복하는 방법이라던지 그런 건 안 나오더라고요. 이럴 땐 운명론이 좋은데. 왠지 전 안 믿고 싶더라고요. 언젠가 씨앗에서 뭐라도 나오길 기다릴래요. 곰팡이든 뭐든. 괜히 뻔한 이야기가 한번 더 하고 싶네요. 기다리면 기적은 아니더라도 뭐든 한번은 이루어질거라고. 생각해 보세요. 모든 옛날 이야기들은 이렇게 끝나잖아요.  

영원히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적어도 위안은 되네요.



26
  • 좋은 글 잘 읽었어요. 공감이 많이 되네요


다람쥐
어리석더라도, 내 텅 빈 속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최선을 다 해 꾸역꾸역 채워넣어볼래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언젠가는 꽉 찰 거라고 저도 믿어요 :-)
감사합니다.
어...타짜의 아귀인줄 알았...(는 뻥입니다)
항상 결핍되어 있고 결핍을 채우고자 하는 갈망은 누구나 비슷한 것 같아요.
어이 고광렬이.... 는 아니고 ㅋㅋㅋㅋ
그렇죠. 사람은 외로우니까요.
레브로
충분히 밤님은 사랑받으실꺼고 사랑할 누군가를 만날 자격이 있을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혼잣말도 하고 혼잣글도 가끔 쓰는데, 비슷한 느낌이 들때 토닥토닥, 쓰담쓰담 같은 남보여주기 부끄러운
수식어를 사용해요.
내 마음에 영양분을 줄 수있는 사람은 연인이나 가족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여야 하니까요.

조금 늦게 감사히 글 읽고 갑니다.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티타임 게시판 이용 규정 2 Toby 15/06/19 32814 7
15381 IT/컴퓨터링크드인 스캠과 놀기 T.Robin 25/04/13 138 1
15380 역사한국사 구조론 7 meson 25/04/12 525 3
15379 오프모임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5/4 난지도벙 13 치킨마요 25/04/11 718 3
15378 스포츠90년대 연세대 농구 선수들이 회고한 그 시절 이야기. 16 joel 25/04/11 884 8
15377 일상/생각와이프가 독감에걸린것 같은데 ㅎㅎ 2 큐리스 25/04/10 449 11
15376 일상/생각지난 일들에 대한 복기(직장내 괴롭힘에 대한 판단) 3 셀레네 25/04/10 727 5
15375 일상/생각우리 강아지 와이프^^;; 6 큐리스 25/04/09 688 5
15374 기타[설문요청] 소모임 활성화를 위한 교육과정에 대해 도움을 요청드립니다. 21 오른쪽의지배자 25/04/09 551 4
15373 과학/기술챗가놈 이녀석 좀 변한거 같지 않나요? 2 알료사 25/04/09 581 1
15372 과학/기술전자오락과 전자제품, 그리고 미중관계? 6 열한시육분 25/04/09 433 3
15371 꿀팁/강좌3.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감정 36 흑마법사 25/04/08 741 18
15370 기타만우절 이벤트 회고 - #3. AI와 함께 개발하다 7 토비 25/04/08 407 12
15369 정치깨끗시티 깜찍이 이야기 3 명동의밤 25/04/08 393 0
15368 일상/생각우연히 폭싹 속았수다를 보다가.. 8 큐리스 25/04/08 656 0
15367 영화지쿠악스 내용 다 있는 감상평. 2 활활태워라 25/04/08 373 1
15366 경제[의료법인 법무실] 병원관리회사(MSO) 설립, 운영 유의사항 - 사무장 병원 판단기준 1 김비버 25/04/08 435 1
15365 정치역적을 파면했다 - 순한 맛 버전 5 The xian 25/04/07 790 13
15364 정치날림으로 만들어 본 탄핵 아리랑.mp4 joel 25/04/06 428 7
15363 경제[일상을 지키는 법] 전세사기 피해자를 위한 '보증금 반환' 방법 2 김비버 25/04/06 543 5
15362 일상/생각조조와 광해군: 명분조차 실리의 하나인 세상에서 4 meson 25/04/05 411 2
15361 정치"또 영업 시작하네" 10 명동의밤 25/04/05 1226 10
15360 일상/생각계엄 선포 당일, 아들의 이야기 6 호미밭의파스꾼 25/04/04 990 36
15359 오프모임내란 수괴가 만든 오프모임(4) 5 노바로마 25/04/04 924 4
15357 정치2024헌나8 대통령 윤석열 탄핵사건 선고요지 전문 15 즐거운인생 25/04/04 2996 11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
회원정보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