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9/04/02 12:33:33
Name   아재
Subject   2년뒤에 써보는 산티아고 순례길 후기
벌써 이 길에 갔다온지도 2년이 넘었네요.
인생이 힘들고 괴로운 와중에, 스페인 하숙 예능을 보고, 옛날 생각도 나고, 다시 가고 싶지만, 현재는 갈 수 없는 그 길이 떠올라서 글을 써봅니다.

[그 길에 가는 이유1. 현재의 삶이 복잡하고 힘들 때]

개인적으로 이 길에 가기 전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내가 다니는 이 직장이 맞는 직장인가, 정령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이 일인가, 인생은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순례길은 삶이 괴로울 때, 이 길은 직접적 해결책이 되진 않지만, 예상치 못한 해결책으로 나를 인도하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길을 걸으며, 매일 같은 삶을 반복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어젯밤 미리 준비한 아침을 먹고, 20~30키로미터의 길을 걷습니다. 걷는 동안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배고플 때 주변 바에서 라떼와 요깃거리를 먹은 후, 알베르게(여관)에 도착해서, 주변 식료품점에서 식료품을 산 후(시에스타 전에 사야 함.),
점심을 먹고, 빨래를 하고 널고, 낮잠 좀 자다가, 밖에서 저녁을 먹고, 술 좀 마시다가 다음 알베르게와 코스를 찾아보는..

동일하게 반복되는 삶이 직장 생활과 다를바 없어 보이지만,
걷다보면, 주변을 둘러싼 상황이 아닌 상황을 맞딱뜨리는 나의 마음이 변한 것을 알게 됩니다.
복잡한 상황을 어렵지 않게 대처하는 나의 의연함을 발견하게 되죠.



같은 생각도 스페인 시골길을 보며 걸어서 그런 것인지
멀리 해외에 떨어져서, 현실과 거리를 둬서 그런건지
길을 걷다 다른 외국인들과 대화하며 삶의 시야가 넓어져서 그런건지
아니면 매일 술을 마시고 자서 그런건지
걷다가 몸이 혹사되서 그런건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걷다 보면, 달라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겁니다.


[그 길에 가는 이유2. 걷는 동안 발견하는 의외의 선물]


매일걷는 순례길은 고통의 연속입니다.
걷는 발과 베낭을 맨 어깨가 아픈 것은 기본이고, 알베르게에 시끄러운 사람들이 밤새 술마셔서 휴식을 망친다든지,
매일마다 비가 엄청 온다든지, 방목해서 소를 길러서 가는 길에 소똥이 천지라든지..
그 고통 가운데서도 중간중간 소소한 선물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위의 사진처럼 순례객들을 위해 간단한 간식을 놓는 분도 있고,


같이 길을 걷는 동물 친구들을 발견하기도 하고,
유난히 많이 만나는 덴마크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 바디랭귀지를 섞어가며, 여러가지를 같이 영어로 얘기하기도 하고


좋은 풍경이 마음의 위로를 주기도 합니다.


가성비 좋고, 맛있는 음식도 그렇구요.

삶이 고통밖에 없다고 느낄 때, 순례길이 주는 소소한 행복들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물론 돌아오고 나서도 저의 인생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패기 좋게 사직을 하였지만, 구직을 못하는 을의 입장에서 취직 준비를 하였고,
매일마다 집에 있다보니, 순례길동안 빠졌던 살이 복구 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죠.

하지만 중요한 것은 상황이 아닌 상황을 받아들이는 저 자신이었습니다.
지금은 저 곳에 다시 갈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때 가졌던 마음들을 리마인드하며, 이직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사춘기를 겪고 있는 아이를 데리고 언젠가 저 길을 다시 걷는 그 날이 어서 오기를..



6
  • 선추천 후감상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719 여행부산 식도락 여행 후기(주의:음식사진다수) 7 야근하는밤비 19/09/27 5988 8
9712 여행몽골 여행기 - 1부 : 여행 개요와 풍경, 별, 노을 (다소스압 + 데이터) 8 Noup 19/09/26 4658 10
9607 여행[두근두근 미서부] 여행은 지르는 겁니다. 4 9 지옥길은친절만땅 19/09/01 4951 1
9602 여행[두근두근 미서부] 여행은 지르는 겁니다. 3 16 지옥길은친절만땅 19/08/31 5124 2
9601 여행[두근두근 미서부] 여행은 지르는 겁니다. 2 14 지옥길은친절만땅 19/08/31 4368 3
9599 여행[두근두근 미서부] 여행은 지르는 겁니다. 1 17 지옥길은친절만땅 19/08/30 4572 14
9596 여행여행지 장단점 간단정리 (4) - 방콕 12 그저그런 19/08/29 5515 6
9540 여행여행지 장단점 간단정리 (3) - 코타키나발루 11 그저그런 19/08/12 7121 3
9528 여행여행지 장단점 간단정리 (2) ... 타이페이 16 그저그런 19/08/08 4679 7
9315 여행아키하바라 메이드 카페에 다녀왔습니다 15 T.Robin 19/06/13 5961 22
9024 여행2년뒤에 써보는 산티아고 순례길 후기 4 아재 19/04/02 5709 6
8973 여행타베로그 이용 팁 7 温泉卵 19/03/18 5492 12
8940 여행휴양지 장단점 간단정리 (1) - 하이난 14 그저그런 19/03/06 5934 1
8799 여행그저그런의 일본항공 일등석 탑승기 (2) 23 그저그런 19/01/25 5056 16
8794 여행그저그런의 일본항공 일등석 탑승 후기 (1) 36 그저그런 19/01/24 6397 26
8785 여행혼자 3박 4일 홋카이도 다녀온 이야기 (스압) 20 타는저녁놀 19/01/21 8128 20
8635 여행멍청한 실시간 하노이 여행기 12 무더니 18/12/13 3968 0
8599 여행알래스카항공 마일과 함께하는 북반구 미니세계일주 발권놀이 12 졸려졸려 18/12/03 4871 2
8586 여행온천, 온천을 가보자 32 Raute 18/11/30 5389 26
8496 여행일본여행 뜬금포 고생기 11 felis-catus 18/11/09 3939 4
8428 여행이름부터가 북쪽의 땅 - 노르웨이 16 호타루 18/10/28 5918 16
8372 여행이별 후 홀로 여행 7 곰돌이두유 18/10/14 5635 31
8296 여행긴 역사, 그리고 그 길이에 걸맞는 건축의 보물단지 - 체코 6 호타루 18/09/29 5411 12
8192 여행유럽이라고 다 잘 사는 건 아니라만 - 몰도바 9 호타루 18/09/09 6110 7
8121 여행미국 동부지역 여행 후기 3 풀잎 18/08/27 7227 3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