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4/11/05 20:55:33
Name   아재
Subject   마흔 직전에 발견한 인생의 평온

...
홍차넷 청년회에서 보기에 마흔은 어린이에 가까울 수 있지만,
20여년을 불안의 파도에서 날고 익사하기를 반복하다,
이제 서야 뭔가 마음의 평온을 찾은 듯 합니다.
쓰려는 건 뭐 대단한 걸 자랑하려는 건 결코 아니고,
그렇다고 혼자 메모장에 쓰면 작성의 동기가 크지 않고,
지금의 깨우침을 한번 더 뇌와 손가락에 새겨넣기 위함이라 보시면 됩니다.


1. 비정상행동 찾기 -> 상황 찾기 -> 발작 버튼 찾기 -> 해결책 찾기

돌이켜보면 우울함의 트리거가 되는 비정상행동이 있었습니다.
- 군대 시절, 분대장 집체교육 때 교관의 지시를 잘못 이해해, 4박5일 휴가를 받을 것을, 동기가 받고, 난 왜 3박 4일 받은 휴가에 분노했는가?
- 같은 팀에 있던 동료 동생이 좋은 평가를 받고, 상대적으로 고과를 받지 못해 왜 난 혼자 부들부들 했는가?

혹은
- 교환학생 갔을때 나 빼놓고 회식 자리를 가진 것에 난 왜 그렇게 우울해했는가? 왜 난 숙소에 다른 사람 초대하려고 원치도 않은 치킨을 시켰을까?
- 그냥 옆자리 동료가 피곤해서 퉁명스러운 것에 왜 난 과민하게 남의 눈치를 봤는가?

어떨때는 분노에 치를 떨었고, 어떨 때는 과하게 아닌 척하며 관심을 끊은 적 또한 있었습니다.
네. 사실 이렇게 공개된 곳에서 말하긴 쪽팔린 일이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죽음, 재정적 실패 등 남들이 가진 인생의 파고는 훨씬 더 크고 치명적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아무렴 어떻습니까? 아니 오히려 좋습니다.
나나 남들이 다들 힘들어 할만한 이슈보다 별거 아닌 이슈인데 크게 발작하는 이슈야 말로,
내 마음을 건드리는 진정한 [발작]버튼 이니까요.

위 상황과 20대 중반의 MMPI(다면적 인성검사) 검사 결과를 종합해 내린 나만의 발작 버튼은
[과하게 남을 신경쓰며, 나를 비교한다.]
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했던 선택은


2. 크게 보지 않고, 나의 인생에서 작은 부분을 성취하는 것에 집중하기

입니다.
입시 공부 이후로 계속 발목잡힌 나의 영어 실력에 우울해하지 않는 것. 오늘 하루 영어 공부 했다는 것에 만족하는 것.
몸무게가 세자리여서 우울해하지 않고, 숨이 다소 헐떡거릴 정도로 따릉이를 타고 회사에 왔다는 것에 만족하는 것.
와이프와 관계가 좋지 않은 것에 우울해하지 않고 피드백에 두려워하기 보다, 그냥 와이프가 좋아할만한 행동을 하는 것.

이루지 못한 것에 막막해하지 말고,
매일의 삶의 실천에 집중하고 만족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현재 제가 다니는 회사는 흑자를 기록한 적이 없고, 언제 망할까 하루 이틀 노심초사 하고 있고,
이직하기 전 동료는 이직하지 않고 꽤 좋은 평가를 받고 있고,
다른 동료는 이런 불경기에 좋은 기업에 2차 면접에 갔습니다.

아무렴 어떻습니까?
다른 사람의 행복이 나를 흔들지 못하게,
삶의 어느 순간에는 다소 이기적이더라도 나의 하루 하루 행동에 집중하는 중입니다.

가끔은 홀로 살아가는 이런 방식이 간단한 답인데도 대체 난 왜 답을 못찾았을까?


3. 삶의 보람 찾기.

아이러니하게도 [가까운 지인에게 도움을 주고, 관계를 돈독히 쌓는 것이 삶의 지향점]이기 때문이죠.
나는 어느 부분에서 행복을 느낄까 고민을 하고 나왔던 결론 중 가장 그럴싸한 결론이 위의 지향점이었습니다.

남을 도와주고 관계를 돈독히 쌓지만,
반대로 초라한 나와 달리 잘 나가는 나를 보면 우울감에 빠지는 상황.

한 때는 초라하지 않게 실력을 쌓는 게 답이라 생각했지만, 언제든 나보다 잘난 사람은 계속 있었고,
결국 초라함을 극복 못하면 비교와 우울은 나의 하루 하루를 잠식하고 노력조차 갉아 먹더라구요.

보람과 우울을 파도처럼 넘나들다 찾은 이상적인 타협점이
[남과의 관계에서는 나의 보람에 맞게 이타적인 행동을 하고, 혼자 있는 시간 동안 자신의 삶의 작은 부분에 집중하는 것.]
인 것이지요.


4. 자신을 찾기 위한 노력

나는 어떤 상황에서 남들과 다른 이상 행동을 보이고,
충분한 원인이 없었음에도 난 왜 우울과 분노 등 이상한 감정상태를 보였는가?
상황과 행동을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도 중요한 듯 하구요.
저는 우울과 불안함이 커서 그런지 상담도 많이 받고, 심리 검사도 많이 받았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MMPI 검사, MBTI, 애니어그램 등 다양한 심리 검사를 받았죠.

1차로는 자신에 대한 이해를 주기에 이러한 생각들이 의미가 있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광적인 정도의 MBTI 열풍도 나쁘게 보지는 않았습니다.)

2차로는 건강한 삶의 밸런스를 위해서, 반대로 움직이려는 노력이 자신을 더욱 건강하게 만든다 봐요.
저는 INFP입니다만, 대부분의 우울과 불안함은 [혼자서 큰 그림 그리다 감정적으로 빠지며] 생기는 것들이 많아지더라구요.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니 이런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라는 메세지를 타인과 내 자신에게 강요하기 보다는,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반대로 움직이는 것들이 나를 좀 더 윤택하게 만들더라구요.
그래서 지금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타인에게 도움이 되려 하며, 작은 것부터 일단 실행부터 하고 보고, 우울의 감정을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합니다.]


...

사실 뭐 그렇게 대단한 삶의 깨달음을 얻어서 평온이 찾아온게 아니고,
그냥 나이들고 호르몬의 변화가 생기다 보니 좋은 것일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괜찮다 말해도 다시 또 우울해질수도 있죠.
회사가 하루 아침에 나를 정리해고 하고, 체력과 멘탈이 와장창 흔들릴 수도 있죠.

그래도 다행인건 예전의 저라면 이런 상황에서 우울함에 시간을 놔버렸겠지만,
지금은 쿠팡 물류센터든 음식 배달이든 노가다든 뭐든 할 수 있는 맨탈의 건강함이 조금은 생긴듯 합니다.
(아직 상황이 안 닥쳤으니 장담은 못하겠습니다만 ...)

가만히 있어도 건강하고 몸이 좋고,
강철같은 맨탈에 머리가 좋고 내가 뭐 그런건 아니지만,
이런 나를 내가 사랑해주지 않으면 누가 사랑해주겠습니까?
우울한 내 자아도 나라고 생각하고 가면 좋을 듯 합니다.
40년 정도 살아보니 적어도 남 뒤통수는 치지 않을 나쁘지 않은 사람 같으니 나라도 나를 보듬고 살겠습니다. 허허



24
  • 마흔도 안 됐는데 아재를 참칭하셨다구요?
  • 자기 성찰 추천드립니다 저와 유사점이 좀 있으신듯요.
  • 춫천
  • 역시 멋있어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티타임 게시판 이용 규정 2 Toby 15/06/19 31945 7
15154 문화/예술한국-민족-문화의 정체성에 대한 소고 meson 24/12/24 86 0
15152 정치이재명이 할 수 있을까요? 70 + 제그리드 24/12/23 1259 0
15151 도서/문학24년도 새로 본 만화책 모음 6 + kaestro 24/12/23 291 5
15150 게임최근 해본 스팀 게임들 플레이 후기 1 손금불산입 24/12/23 241 5
15149 사회그래서 통상임금 판결이 대체 뭔데? 7 당근매니아 24/12/23 549 11
15148 정치윤석열이 극우 유튜버에 빠졌다? 8 토비 24/12/23 761 9
15147 정치전농에 트랙터 빌려줘본 썰푼다.txt 11 매뉴물있뉴 24/12/22 1034 3
15146 의료/건강일종의? 의료사기당해서 올려요 18 블리츠 24/12/21 927 0
15145 정치떡상중인 이재명 56 매뉴물있뉴 24/12/21 1812 15
15144 일상/생각떠나기전에 생각했던 것들-2 셀레네 24/12/19 565 9
15142 일상/생각플라이트 시뮬레이터로 열심히 걸어다니고 있습니다~~ 7 큐리스 24/12/19 503 2
15140 정치이재명은 최선도, 차선도 아니고 차악인듯한데 43 매뉴물있뉴 24/12/19 1823 7
15139 정치야생의 코모도 랩틸리언이 나타났다! 호미밭의파스꾼 24/12/19 377 4
15138 스포츠[MLB] 코디 벨린저 양키스행 김치찌개 24/12/19 130 0
15137 정치천공선생님 꿀팁 강좌 - AI로 자막 따옴 28 매뉴물있뉴 24/12/18 736 1
15135 일상/생각생존신고입니다. 9 The xian 24/12/18 611 31
15134 일상/생각산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데.. 5 Picard 24/12/18 432 7
15133 도서/문학소설 읽기의 체험 - 오르한 파묵의 <소설과 소설가>를 중심으로 1 yanaros 24/12/18 290 4
15132 정치역사는 반복되나 봅니다. 22 제그리드 24/12/18 741 2
15131 여행[2024 나의 이탈리아 여행기] 0. 준비 7 Omnic 24/12/17 358 7
15130 정치비논리적 일침 문화 7 명동의밤 24/12/16 868 7
15129 일상/생각마사지의 힘은 대단하네요 8 큐리스 24/12/16 781 7
15128 오프모임내란 수괴가 만든 오프모임(2) 50 삼유인생 24/12/14 1868 5
15127 일상/생각떠나기전에 생각했던 것들-1 6 셀레네 24/12/14 865 5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