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8/05/23 15:06:29수정됨
Name   No.42
Subject   왜 한국야구를 안보나요?에 대한 바른 대답
안녕하세요, 42번입니다. 평소 자주 겪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늘 그렇듯이, 신변잡생각입니다.

"한국 야구 어디 좋아해요?"
- 안봐요.
"왜요?"
- 안좋아해서요.
"왜요?"

대화가 여기까지 이어지면 그 다음 대답은 신중해야 합니다. 평소 생각하는대로 돌직구가 스타일입니다만, 그랬다가 싸움난 일이 꽤 되거든요. 제 취향은 기왕 보는 거 제일 잘하는 거 보자입니다. 야구장 직관을 싫어하는 것도 한 몫합니다. 가봐야 진짜 게임은 잘 보이지도 않고, 시끄럽고, 사람 많고, 오가기 귀찮고. 이게 딱 제 성향이에요. 집에서 편안하게... 플레이 하나 하나 완전 집중해서 잘 볼 수 있게 화면 잘 나오고, 심지어 지금 던진 공 구속에 변화폭까지 거의 실시간으로 딱딱 뜨는 어플 켜두고 보면 그게 파라다이스죠. 헌데, '메이저리그만 본다' '한국야구 안본다'의 취향은 어떤 분들에게는 퍽 불편한 것인가 봅니다. 반기~1년에 한 번은 꼭 이걸로 시비 거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래서 곧이곧대로 한국리그에 대한 생각 이런거 말하는 게 언젠가부터 꺼려집니다. 그래서 위 대화에 이어지는 대답으로 뭐라고 둘러대면 될 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 정 가는 팀이 없어요.
"그래요? XX팀 어때요? 같이 응원해요. 우리 팀 OOO가 얼마나 잘하는데요~"
- ....(아놔)

뭐 이런 식의 영업도 엄청 당하고요. 그렇게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다가 드디어 답을 찾은 것 같았습니다. 저의 과거를 적당히 각색하여...

"왜요?"
- 후우... 때는 바야흐로 2002년. 월드컵의 열기가 가시지 않았던 그 때에 상대적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투혼으로 4위를 차지했던 저의 영웅들은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거쳐서 대망의 한국시리즈에 나섰지요. 부상자가 속출하고 체력이 말라가는 혹독한 상황 속에서 우승을 향한 집념을 불태우던 우리의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사투를 벌였어요. 영웅 야생마 선수가 모두의 기대를 업고 마운드에 섰으나... 마포, 승짱의 백투백홈런으로 Again 1994의 숙원은 잠실 그라운드의 먼지가 되어 사라졌던 것입니다. 피눈물을 쏟으며 그 광경을 목격한 저는 실로 낙담하였으나, 반드시 다시 강철같은 의지로 이를 극복하고 왕좌를 탈환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후 삼총사와 야생마를 배신하며 팬들의 열망을 무시한 구단의 처사에 분노하여 저는 이를 갈고 하늘을 우러러 내 다시는 잠실의 그라운드를 보지 않으리라 맹세하고.... 주절주절주절

다들 저의 어깨를 토닥이며 이해해준다고 하더군요. 이걸로 한 몇 년 버텼었는데... 이레귤러들이 등장합니다.

- 마! 8888577 겪어봤나!
- ....나는 행복합니다
- Cubs win!! Cubs win!!!!

아하, 이거 좀 난감합니다. 완전 공감되다보니... 그러다가 다른 정서적인 접근을 해보았습니다.

"왜요?"
- 담배나 피우러 가시죠... (총총) 쓰으읍... 후우우우우.... 한국 야구를 보면.... 그녀가 생각나거든요...
"(왈칵)"

연초 시절에 듀퐁이나 지포 소품을 사용하였다면 더 좋았을 텐데, 아이코스 사용중이라 그다지 뽀대는 안납니다만... 이거 먹힙니다. 어떤 스토리냐고 조심스레 묻는 분도 있습니다만, 그냥 목소리 좌악 깔고 '그 얘기는 하고 싶지 않네요...'라고 하면 패스입니다. 이걸로 어느 정도의 세월은 버텨낼 수 있겠습니다.

물론, 생각나는 그녀는 없습니다만... '_'



11
  • 춫천
  • 지나가던 lg팬....ㅂㄷㅂㄷ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티타임 게시판 이용 규정 2 Toby 15/06/19 31956 7
15156 오프모임정자역~죽전역 금일 저녁 급 벙개.. 2 + Leeka 24/12/26 91 5
15155 일상/생각청춘을 주제로 한 중고생들의 창작 안무 뮤비를 촬영했습니다. 2 메존일각 24/12/24 451 7
15154 문화/예술한국-민족-문화의 정체성에 대한 소고 meson 24/12/24 320 2
15152 정치이재명이 할 수 있을까요? 73 + 제그리드 24/12/23 1672 0
15151 도서/문학24년도 새로 본 만화책 모음 6 kaestro 24/12/23 383 5
15150 게임최근 해본 스팀 게임들 플레이 후기 1 손금불산입 24/12/23 296 5
15149 사회그래서 통상임금 판결이 대체 뭔데? 7 당근매니아 24/12/23 629 11
15148 정치윤석열이 극우 유튜버에 빠졌다? 8 토비 24/12/23 846 9
15147 정치전농에 트랙터 빌려줘본 썰푼다.txt 11 매뉴물있뉴 24/12/22 1085 3
15146 의료/건강일종의? 의료사기당해서 올려요 22 블리츠 24/12/21 993 0
15145 정치떡상중인 이재명 56 매뉴물있뉴 24/12/21 1864 15
15144 일상/생각떠나기전에 생각했던 것들-2 셀레네 24/12/19 576 9
15142 일상/생각플라이트 시뮬레이터로 열심히 걸어다니고 있습니다~~ 7 큐리스 24/12/19 510 2
15140 정치이재명은 최선도, 차선도 아니고 차악인듯한데 43 매뉴물있뉴 24/12/19 1864 7
15139 정치야생의 코모도 랩틸리언이 나타났다! 호미밭의파스꾼 24/12/19 385 4
15138 스포츠[MLB] 코디 벨린저 양키스행 김치찌개 24/12/19 138 0
15137 정치천공선생님 꿀팁 강좌 - AI로 자막 따옴 28 매뉴물있뉴 24/12/18 752 1
15135 일상/생각생존신고입니다. 9 The xian 24/12/18 618 31
15134 일상/생각산타 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데.. 5 Picard 24/12/18 446 7
15133 도서/문학소설 읽기의 체험 - 오르한 파묵의 <소설과 소설가>를 중심으로 1 yanaros 24/12/18 306 4
15132 정치역사는 반복되나 봅니다. 22 제그리드 24/12/18 764 2
15131 여행[2024 나의 이탈리아 여행기] 0. 준비 7 Omnic 24/12/17 371 7
15130 정치비논리적 일침 문화 7 명동의밤 24/12/16 881 7
15129 일상/생각마사지의 힘은 대단하네요 8 큐리스 24/12/16 802 7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