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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2/14 03:28:59수정됨 |
Name | No.42 |
Subject | fan letter for BBoy The End, BBoy Born |
안녕하세요, 42번입니다. 비주류 문화임에 분명했던 힙합이 젊은층에 스며들어서 소위 인싸 콘텐츠가 된 듯 보이는 지금이지요. 흔히 힙합 문화를 구성하는 4대요소라고 해서 랩, 디제잉, 그래피티 그리고 비보잉을 꼽기도 합니다. 그 중 랩은 대중음악계에 동화되기도 하고 나름 독립적인 영역을 구축하기도 하면서 완전히 주류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았어요. 디제잉의 경우도 클럽의 인기와 더불어 셀럽 디제이들이 대표적 인플루언서로 꼽히는 등 입지가 커졌죠. 다만 아직 그래피티와 비보잉은 앞선 두 콘텐츠에 비해서는 인기가 덜한 듯하다는 주관적인 감상입니다. 2천년대 초중반에 한국에 정말 대단한 비보이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납니다. 삼국지에 준걸들 나오는 급으로 말이죠. 한때는 세계적인 비보이 대회는 한국 vs 비한국, 한국의 우승저지 레이드라고 봐도 될 만큼 한국이 비보잉 강국의 면모를 보였어요. 당시 어반 컬처나 비보잉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쟁쟁했던 비보이의 이름이나 크루들은 들어보신 기억이 나실 거라 생각합니다. 리버스, 드리프터즈, 갬블러즈 등등… 저는 춤은 커녕 박자도 제대로 못잡는 박자장애인입니다만, 어째서인지 비보잉의 매력에 홀딱 빠졌습니다. 피겨스케이팅을 백날 봐도 넘어지네 안넘어지네만 구분하던 이들이 김연아의 등장 이후로 점프 죄다 구분하는 일이 왕왕 있었듯이, 저도 비보잉에 관심을 가지며 과연 이 배틀이라는 게 무슨 기준인지, 어떤 비보이가 잘하는 지 눈동냥으로 슬슬 알아갈 수 있었어요. 피겨에 스텝, 스파이럴, 점프, 스핀이 있듯이 비보잉에도 몇몇 시퀀스가 있습니다. 먼저 리듬을 타며 서서 춤을 추는 것은 탑락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바닥으로 내려가는 동작은 고다운, 바닥에 몸을 낮춘 채로 추는 춤은 플로어 무브라고도 하죠. 그리고 바야흐로 뭔가 힘을 써서 돌거나 꽂거나 버티거나 하는 것들을 파워무브라고 합니다. 탑락과 플로어무브 등 파워무브가 아닌 동작들을 스타일무브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박자에 맞춰 어떤 자세로 딱 멈추는, 일시정지와 같은 것을 프리즈라고 해요. 하지만 뭐 이건 뭐다 저건 뭐다 범위가 딱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기에, 그냥 아 대충 이런 순서로 하는구나만 알아도 재미있게 볼 수 있습니다. 비보잉의 대표적인 무대는 배틀인데, 보통은 양 측에서 번갈아 라운드를 진행하며 무브를 선보입니다. 가끔 복수의 비보이가 같이 무브를 하거나 릴레이처럼 연달아 무브를 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것은 루틴이라고 합니다. 상대방의 라운드를 보고 이것을 어떻게 되받아치면서 보다 완성도 있는 라운드를 구성하느냐가 배틀 승부의 관건 중 하나입니다. 좀 더 세부적으로 보면, 음악과 무브가 어떻게 어우러지는 지를 따지는 뮤지컬리티가 있습니다. 지금 음악이 뭐건 박자가 어떻게 흐르건 냅다 팽이처럼 신나게 돌아제껴도 좋은 인상을 받을 수만은 없는 겁니다. 간단한 스텝이나 동작으로 비트를 딱딱 맞추어서 추는 춤이 큰 환호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비트킬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무브와 무브가 어떻게 연결되느냐, 그 플로우를 봅니다. 물 흐르듯 자연스레 동작이 길을 따라 가는 것이 최고죠. 어색하게 갑자기 주저앉거나 냅다 물구나무서거나 하면 서툰 티가 납니다. 그리고 오리지널리티가 중요합니다. 저거 누가 하던건데? 어디서 본 건데? 이런 무브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습니다. 상대방에서 두 팔을 겹쳐 툭툭치며 ‘너 그거 표절이야’라고 야유하는 바이트사인을 내겠지요. 서론이 길어졌는데, 여튼 이러이러한 것들을 알아가면서 보다 보니, 한국에 정말 어마어마한 비보이들이 몰려있더라 이 이야기입니다. 비보잉하면 무엇이 생각나시나요? 일단 바닥에 엎어지거나 누워서 팽이처럼 돌아가는 모습이 생각나시지 않나요? 비보잉의 꽃은 바로 그 파워무브죠. 당시 우리나라엔 세계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파워무버들이 있었습니다. 먼저 갬블러즈 크루의 비보이 디엔드가 생각이 나네요. 어릴 적부터 될성부른 파워무버였던 디엔드는 갬블러즈 크루와 함께한 배틀에서 다른 비보이의 플로우를 두세 단계 앞지른 획기적인 무브를 보여줍니다. 갬블러즈 크루는 1세대 비보이 크루인 오보왕시절부터 파워무브의 대부로 유명한 비보이 다크니스, 그리고 디엔드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던 에어트랙 장인 비보이 브루스리, 뒤이어 디엔드의 고향인 울산 후배로서 파워무브의 신기원을 이룩한 비보이 킬의 계보가 장강의 물결처럼 흐르는 파워무브 명가입니다. 디엔드는 이름 그대로 배틀의 종결자였습니다. 다른 비보이들이 힘겹게 간신히 하는 무브들을 그냥 숨쉬듯이 쉽게 구사하는 것은 물론, 다른 비보이들이 엄두도 내지 못할 무브들을 연달아 선보이곤 했어요. 윈드밀, 플레어(토마스), 나인틴 등의 기본적 무브는 물론, 이 무브의 연계도 자유자재였고, 파워무브의 에센스라고도 불리는 에어트랙(에어플레어)의 아름다움은 정말 최고였죠. 특히 그 에어트랙을 양손이 아닌 한손으로 들어가는 압도적인 힘과 밸런스, 그걸 넘어서 손이 아닌 팔꿈치를 대고 몸을 띄우는 엘보우트랙, 심지어 한번 팔꿈치로 내려갔다가 다시 손으로 올라오거나 엘보우트랙 연타를 자유로이 하는 모습은 압권입니다. 그리고 정점을 찍는, 마지막 체어자세에서 프리즈를 잡은 채로 회전하는 체어스핀에 이르러서는 외계인 소리 나오지요. https://youtu.be/OUfyiQJBdFg 이 디엔드와 브루스리 같은 파워하우스들이 있었는가 하면, 비트를 타고 넘나드는 스텝과 플로우로 ‘간지를 뿜어낸’스타일러도 있습니다. 리버스 크루의 비보이 본이 그렇죠. 혹자는 비보잉의 마이클 조던이라고까지 불러요. 저는 오히려 비보잉의 김연아라고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트리플악셀같은 파워무브가 없이도 완벽한 기본기와 아름다운 구성, 빈틈없는 연기만으로 여왕의 자리에 오른 김연아처럼, 비보이 본도 완벽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그만의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더불어서 패션도 너무 멋있었죠. 비보이 본이 전세계적으로 여러 비보이들에게 영향을 주며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한 것은 부정할 수 없어요. 비보이 본은 파워무버들처럼 팽팽 돌아가거나 미친 근육을 선보이는 모습은 잘 보여주지 않아요. 파워무브는 딱 필요한 만큼만 살짝…이라고 할까요. 대신 비보이 본의 라운드는 나올 때부터 들어갈 때까지 멋이 넘쳐흐르는 하나의 물결처럼 보이죠. 특히 비트와 가사에 맞춰 무브를 구성하는 능력은 입신의 경지에 가깝습니다. 비보잉을 자주 접하지 않은 사람일수록 비보이 본의 무대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조금이나마 내공을 쌓고 다시 보면 어디 계시는 지는 몰라도 그 때는 제가 뭘 몰라서 그랬다고 죄송하다고 사과할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비보이 본은 한국 비보이 사이에서 특히 큰 입지를 지니게 되는데요. 2천년대 초중반 한국이 무적의 포스를 뽐낼 때에도 서구권 비보이나 비보이 팬들 사이에서는 백안시당하는 일이 많았어요. 한국 비보이들은 파워무브에 치중해서 라운드마다 나와서 꽂고 돌다 들어가는 일이 많았거든요. 저것은 그냥 곡예이고 기술이지 춤이나 비보잉이 아니다… 뭐 그런 시각을 크게 바꿔 놓은 비보이가 몇몇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본입니다. 본의 탑락과 플로우무브는 본토 뉴욕의 비보이들보다 훌륭하면 훌륭했지 뒤처짐이 없었고, 오히려 그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했죠. https://youtu.be/Jzek6ZR1sP0 비보이 본은 세계적으로 레전설 대우를 받는지라 여기저기 저지(심판)으로 나서는 일도 많은데요. 그 중 2009년 프랑스 힙옵세션에서 비보이 본의 판정에 불만을 품은 참가자가 콜아웃을 신청합니다. 여러 스포츠에서 심판의 판정에 챌린지를 하거나 비디오 판독을 요청하는 일이 있는데요. 비보잉에서는 심판의 판정이 마음에 안들면 ‘니가 그렇게 비보잉을 잘해? 옥상으로 올라와’를 시전합니다. 그게 바로 콜아웃이죠. 보통 콜아웃은 관중들 없는 옥상이나 뭐 그런 곳에서 하는데, 이례적으로 스테이지에서 그대로 콜아웃이 진행된 경우였습니다. 당시 콜아웃을 신청한 것은 비보이 유세프라는 듣보잡 비보이인데, 당당히 비보이 본을 불러냅니다. 그리고 뭔가 좀 까불까불하다가 들어가…자마자 본이 분노의 고다운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폭풍처럼 스타일을 뿜어내서 그냥 첫라운드만에 이미 승부를 결정짓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후 담배를 버리는 제스쳐를 취하는데, 이것은 I smoke you, 즉, '내가 너 발랐어'라는 뜻이죠. 그리고 굳이 두 손을 모아 인사를 하며 설명도 해줍니다. ‘미안해, 내가 너 발랐어’라고요. 이게 비보이들 사이에서 명언이자 밈이 되기도 했지요. https://youtu.be/kAmtYchrThc 유튜브가 신기한 것이 최근에 비보이 관련 영상을 자꾸 저에게 들이밀더군요. 덕분에 다시 보고싶었던 영상들도 찾을 수 있었고, 새로운 비보이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어요. 오늘 특히 재미있게 보았던, 제가 아주 좋아했었던 비보이들의 영상을 공유해보고 싶었습니다. 혹시 재미가 있으셨다면, 다음에 정말 제가 가장 좋아하는 비보이를 소개해볼게요. (조금 아시는 분들이라면 누군지 예상 완전 가능…?) Salute to 김연수 a.k.a. BBoy The End Salute to 유현 a.k.a. BBoy Born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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