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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8/03/09 17:40:50
Name   성공의날을기쁘게
Subject   위수령관련 뉴스를 보니 무섭습니다.
탄핵기각이 됐다면 위수령(계엄령이랑 같다고 하네요.)이 발효 될 뻔 했다는 뉴스를 듣고
그 시절에 헌법재판소 근처의 직장에 다니다보니 있었던 기억들을 올려봅니다.

위치상 헌법재판소는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에서 바로 보이고, 필동 언덕으로 올라가는 마을버스(종로 1번, 종로 2번)가 서는 정류장이 가깝게 있습니다.

저는 안국역에서 내려 헌재 앞 정류장에서 마을버스로 갈아타고 통근했습니다.


처음 촛불집회가 있었다고 들었을 때는 그 이전의 일상이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촛불집회에서 나누어 주던 인쇄물은 커녕 쓰레기 하나 없이 길은 깨끗했습니다.

마을버스 중 몇 대에서 뉴스공장소리가 작게 나올 때면 기사님 괜찮으실까 살짝 걱정하며 출근을 했을 정도 였습니다. (처음엔 기사님 자리와 바로 붙어있는 자리에서나 겨우 들리던 김어준의 뉴스공장의 소리가 탄핵 결심공판에 가까워질 수로 뒷자리에서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소리가 커졌습니다.)

바뀐 부분은 몇몇 가게들이 촛불시민들을 응원하듯 화장실을 개방하고 커피를 나누어 주는 등 관련한 글이 가게 문에 붙어있었습니다. 헌재 앞에서는 태극기 집회 참여자 분들 일인시위를 하고 있던 정도 였습니다.

촛불집회는 평화적이고, 퇴근길 집회는 광화문에서 하니 별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국회에서 탄핵결정이 나고 부터는 상황이 무거워졌습니다.

헌재 앞에서 한두명 일인 시위를 하던 분들이 인도를 점령해서 시위를 하고
그 집회를 감시하기 위해 경찰들이 집회자분들 밖으로 인간띠를 만들어 일반인들과 직접 닫지 않는 것은 좋았지만 인도가 점령당해 도로로 다니는 것은 좋지 않았습니다.
헌재 앞 횡단보도의 차량 통행을 경찰분들이 해주셔서 초등학교 시절(저는 초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아재라고 하셔도 좋습니다.) 녹색 어머니회 분들이 등굣길 차량 통행지도를 받는 느낌이었습니다.

헌재 앞에 한 대만 서있던 경찰버스가 감사원 언덕 넘어까지 늘어나면서 회사 근처에 일반인보다 경찰들이 더 많아 져 갔습니다.


탄핵 결심공판 D-3일

마을버스가 헌재 앞으로 다니지 못했습니다.

그 전부터 헌재부터 감사원이 있는 언덕 넘어까지 전국의 경찰버스가 양쪽 차선을 막아 일반 차량도 다니기가 힘들 정도 였는데, 아예 차량이 지나 다니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매일 계시던 태극기 집회자 분들이 있던 자리는 경찰로 채워졌습니다.

삼청동 쪽으로 일을 보러 갔을 때는 헌재 앞보다 더 무거운 분위기였습니다.

삼청동과 필동의 작은 골목엔 한 골목당 3명 이상 경찰들이 막고 있었고 헌재 앞으로 지나갈 때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회사원처럼 보이는 사람만 통과 시켜주는 분위기 였습니다.

헌재 앞에 도로가 막아져, 언덕 위(감사원, 베트남 대사관 등 공관들이 좀 많이 있습니다.)사는 사람이나 일하는 차로 확인된 차들만 경찰들의 확인을 받고 겨우 다닐 수 있었습니다.

회사에서도 분위기가 좋지 않았습니다.
결심공판이 기각이 되던 인용이 되던 우리는 퇴근하기 힘들겠다. 어떻게 가야하냐가 주요 대화 내용이 였습니다.

산책로를 따라 성균관대로 넘어가서 4호선 혜화역으로 가는게 좋을지 (확실히 갈 수 있지만 길이 험함)
정독 도서관 쪽 골목을 통해 인사동으로 가서 종로 3가역으로 갈지 (길은 평탄한테 막혀있을 가능성이 높음) 고민했습니다.

탄핵 결심공판 D-1일

안국역 2번 출구(헌재가 바로 보이는 출구)는 막혀서 (지하철역 아래 경찰들이 방어막을 세우고 방어막 뒤에 2겹으로 서 있었고 벽으로도 경찰들이 줄줄이 서있었습니다.
열려있는 3번 출구에는 경찰들이 길을 막아 한 두 명이 나갈 수 있는 틈을 주고 역 위에서 사복을 입은 경찰분이 사람들의 얼굴을 일일이 확인했습니다.

경복궁역, 안국역, 종각, 종로 3가 넘어까지 전국의 경찰 버스가 다 올라온 것 마냥 무장한 경찰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점심시간에 점심을 먹으러가면 식당에 경찰분들이 차있어서 밥 먹는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경찰분들이 쳐놓은 방어벽 넘어에 태극기 집회 시위자 분들과 일반 시민들과 직접 마주치지 않도록 버스로 벽을 쳐놓고 그 사이에는 경찰들이 서 있었습니다.

탄핵 결심공판일

헌재로 통하는 길은 모두 막혀있었습니다.
저는 안국역은 아예 서지 않아 경복궁역에서 걸어서 출근했습니다.
안국역이 폐쇄된다는 말을 듣고 일찍 나왔지만 보통 때보다 늦게 출근했습니다.
헌재 앞의 큰 도로마저 막혀 인근 상인분들은 창경궁 앞에서 도로가 차단되어 창경궁부터 헌재근처까지 걸어오느라 힘들었다고 토로했습니다.

사무실의 모든 신경이 뉴스로 향해있었습니다.

회사 분위기가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이야기하지 않는데 그날따라 자신의 성향을 내 비치는 분들이 보였습니다.

오후가 되자 일을 하다가도 뉴스를 확인했습니다.
오후 3시정도 되었던가 탄핵인용판결이 나자 몇몇분들은 조용히 환호했고,
이내 모두 퇴근은 어쪄지 고민을 했습니다.

저는 점심을 같이 먹는 두 명의 동료분과 막혀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인사동 방면으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다음날 들으니 성대방면으로 가시는 분들은 많이 없었습니다. (그 길이 꽤 험합니다.)

웬만큼 큰 골목길은 경찰들로 막혀있었습니다.
근처 회사 직원으로 퇴근하는 길이라고 사정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였습니다.
진짜 무슨일 나는 것 같은 분위기 였습니다.
(태극기 집회 중 2분 버스에서 떨어져 병원으로 이송됐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골목을 돌아돌아 인사동을 통해 겨우 퇴근했습니다.


역사적인 현장 근처에서 근무하고 있어 생생하게 탄핵의 상황을 보던 것이 나름 인생의 좋은 기억이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2016년 말, 2017년 초를 서울시 중구에서 보낸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그저 그런 기억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그 뉴스를 듣기 전까지는 요.

위수령 관련 뉴스가 사실이고 만약, 탄핵기 기각되고 위수령이 발효되었다면 광주 5.18항쟁을 무색하게 하는 상황이 생겼을 것이라고 하니 오한이 들었습니다.

헌재부터 삼청동, 필동 일대가 완전 통제되어 퇴근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그때 제가 살던 집도 서울성곽 안쪽인데, 거기까지는 통제 구역이 되었을 텐데 어떤 일이 생겼을지, 그리고 저보다 더 멀리 살던 동료들은 어땠을지 생각하니 무서워집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무서운 생각을 하는 것은 저의 개인적인 상황과도 관련되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광주 5.18항쟁 때 광주 근교의 군대에서 상근으로 복무하고 계셨습니다.
5.18 전부터 분위기가 좋지 않았고, 5.18때는 집으로 퇴근해야하는데 지금 광주로 들어가면 못나올지 모른다는 말을 듣고 퇴근하는 것을 말렸다고 합니다.
집이 걱정된다며 겨우 사정하고 퇴근해서 정말 힘들게 광주로 들어가 가족들의 상황을 확인하셨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그때 아버지가 사시던 동네가 구 전남도청에서 가깝게 걸어 다닐 수 있던 거리에 있었습니다.)

어린시절 들었던 5.18항쟁의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 아찔해 집니다.

탄핵이 되고 지금까지 지내온 시간들이 얼마나 다행인지.
가슴을 쓸어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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