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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8/02/09 15:18:38
Name   epic
Subject   자아비판 - 커뮤니티의 유혹



최근에 트위터를 시작했다. 대단한 용도는 아니고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단상을 메모하고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 정보를 얻고자 하는 정도다. 홍차넷 타임라인마냥 신상을 드러내지도 소통을 바라는 것도 아니니 팔로워는 하나도 없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렇게 두 달 동안 70개 가량의 멘션을 허공에 쏟아부었으니, 혼자 놀기여도 꽤 재밌는 취미가 하나 생긴 셈이다. 혹시라도 내게 팔로워가 생긴다면 전혀 기분좋지 않고 대신 '대체 왜...'하는 의구심이 훨씬 앞설 것이다. 오히려 아무도 보지 않는 공간임을 알기에 멘션을 쓸 의욕이 생기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통을 완전히 거부한다면 거짓말이다. 그게 전부라면 요새 유행하는 말처럼 메모장에 썼다가 지우거나 개인적으로만 저장하면 될 일이다. 알고 있으면서도 트위터 계정을 파고서야 평생 안하던 메모라는 것을 하게 된 이유는 분명히 있다. 그건 (헤겔의 유언을 비틀어) '나를 이해할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하는 욕구 때문이다. 이중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 내 멘션을 본 사람들 수를 확인하는 것도 소소한 재미다. 즉 내 욕망은 차폐막을 설치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차폐막을 뚫고 들어올 자격이 있는 사람을 원하는 것이다.


인싸들, 그러니까 (트위터에서의) 나와 달리 소통을 분명하게 갈구하고 즐기는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양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것은 차폐막의 범위 뿐이다. 이 넓은 차폐막 안에선 '나'뿐만이 아니라 '나와 같은 의견을 가졌거나 나와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있는 사람들'이 꽁냥댄다. 그건 랜선 관계에 기반한 트위터나 현실 관계에 기반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은 물론 엠팍, 듀게, 일베, 여시 등 올드한 커뮤니티 사이트도 마찬가지다. 홍차넷이라고 다르지 않다. 여기서도 나름의 주류 정서는 존재하며, 활동이 잦은 회원들이 (의도는 없어도) 그것을 더욱 강화해나간다. 정서를 공유한다는 느낌이 진해질수록 그 커뮤니티에 대한 애정도 깊어진다. 그래서 커뮤니티는 유혹적이고, 이는 소규모일수록 더하다. 트위터가 근래 들어서 영향력이 강해진 건 역으로 그것이 쇠퇴했기 때문이다.


트위터를 통해 페미니즘을 배웠다는 이들은 한결같이 '새로운 것', '남다른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들에게 트위터는 다름을 가르쳐 준 공간이다. 현실의 관계에선 전혀 접할 수 없던 관점이기 때문이다. 남과 같을 것만을 강요하는 현실은 정서의 공유 이전에 수많은 제약이 있고 눈치를 봐야하는 것과 다르게 인터넷의 관계는 양심에 있어 자유롭고 제약이 없는 드넓은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차폐막으로 드넓은 공간을 스스로 좁혀버린 꼴이라는 점을 그들은 모르고 있다. 페미니즘에 경도된 트위터 뿐만이 아니라 안티 페미니즘을 표방하며 트위터리안들을 '자기들만의 생각에 갇혀 있다'고 조롱하는 남초 커뮤니티 또한 동일한 함정에 빠져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본질은 같음을 강화하는 공간이다. 아니, 한병철의 진단에 따르면 우리 시대가 '같은 것의 지옥'이다. 
[우리는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면서도 하나의 경험도 하지 못한다. 모든 것을 인지하면서도 어떤 것도 인식하지 못한다. 정보와 데이터를 쌓으면서도 어떤 지식에도 도달하지 못한다. 체험과 흥분을 애타게 추구하면서도 언제나 같은 상태로 남아 있다. 친구와 팔로워를 쌓으면서도 어떤 타자도 만나지 못한다. 사회 매체들은 사회적인 것의 절대적인 소멸 단계를 보여준다. 전면적인 디지털 네트워크와 소통은 타자와의 만남을 쉽게 해주지 않는다. 그것들은 오히려 낯선 자와 타자를 지나쳐 같은 자와 같은 생각을 지닌 사람들을 발견하도록 하고, 우리의 경험 지평이 갈수록 좁아지게 만든다. 그것들은 우리를 무한한 자기 매듭 속으로 얽어 넣고, 결국에는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표상들을 주입시키는 자기선전"으로 이끈다.]  <타자의 추방>


이러한 같음의 강화가 다름으로 포장되는 것은 '고구마와 사이다'에 연결지을 수 있지 않을까. 현실은 답답하고 토로할 데도 없는데 내가 힘들여 노력하지 않아도 닿을 수 있는 어느 공간에선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고 좋은 생각들도 많은 것 같다. 과격한 표현으로 분노를 쏟아내도 사이다라며 통쾌하게 여겨준다. 안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커뮤니티가 배격되어야 할 문화는 아니다. 대부분의 문제는 도구보단 사람에게서 비롯되는 것이고, 인터넷 상의 소통은 마약같이 해악만 있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가끔 마시면 상쾌한 사이다 같은 것이니까. 홍차넷 활동을 한지 일 년이 조금 넘어간다. 처음엔 타 사이트에서의 키배와 어처구니없는 운영원칙에 질려 관조하고자 가입한 이곳에서 나도 모르게 옛날의 태도가 다시 드러나고 있었다는 것을 여태 모르고 있었다. 내가 영감을 자주 얻는 어떤 이의 글에선 "쓰레기를 치우는 것에 인생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물론 쓰레기는 치워야 한다. 현실의 문제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이 내 인생의 최우선 목표가 되어선 곤란한 것이다. 그런 것은 그런 걸 따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스스로를 투쟁하는 청소부라고 여기는 많은 사람들은 사실 불나방에 불과하다. 나의 에너지와 가능성을 고작 불나방이 되기 위해 쓰는 것은 어찌나 무가치한 일인가. 에픽테토스는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인지 가늠하되 아니라면 무시하라"고 말했다. 성별과 정치 성향을 막론하고 항상 열이 뻗쳐 있는 사람들, 그리고 열받음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 폭주하는 나 자신에게 이 말이 필요할 때다.

"과몰입 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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