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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11/30 00:07:03
Name   tannenbaum
Subject   자취방 거머리들 퇴치썰
대학생 시절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는 친구 집은 아지트가 되기 쉽상이다. 그 나이 또래 시커먼 사내놈들에게 친구의 차쥐방이 얼마나 매력적이겠는가. 딱 내 자취방이 그짝이었다.

처음엔 동아리 뒤풀이 후 만취한 놈 얼어죽을까봐 한 번 재워준 게 화근이었다. 이후로 별로 친하지도 않는 동기들까지 시도때도 없이 우르르 쳐들어 왔다. 이러저러 하니 오지말라 이야기 했지만 씨알도 안먹혔던 건 뻔하고... 나중엔 지네 마음대로 열쇠까지 복사해서 들락거렸다. 화내고 욕하고 별 지랄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문을 안열어 주면 온 동네 떠나가라 내 이름을 부르며 소리를 질렀다. 인근 주민들의 신고로 경찰이 왔으나.... 나만 나쁜놈이 되었다. 친구가 왔는데 왜 그렇게 야박하냐며 세상 그렇게 살면 안된다며 혼만 났다.

계속되는 스트레스를 더이상 참을 수 없었던 나는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막무가내인 그놈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구원의 손길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나타난다. 한달쯤 지났을까..... 그렇게 매일매일 난장판 나날이던 어느 날 거머리같은 놈들과 널부러져 자고 있던 일요일 아침 주인 아주머니가 내 방문을 부서져라 두드리며 우리를 깨웠다. 눈을 부비며 일어 난 나에게 아주머니는 세상 누구보다 크고 날카롭고 무섭게 쏘아 붙이기 시작하셨다.

"착실한 학생인 줄 알고 방 줬드만 시방 뭣하는 짓거리여? 아이 한 두번도 아니고 밤마다 시끄러워서 살 수가 없당께!!! 혼자 산다 그래가꼬 방줬드만... 워메 워메 하루 이틀도 아니고 시방 몇명이 사는거시여!!! 어쩐지 이렇게 우르르 몰려와가꼬 사람 수대로 물을 틀어싼께 쩌번 달 두배가 넘게 나왔구마잉. 새벽까지 화장실 물써싸코(공용 화장실이 마당 한켠에 있었음) 새백까지 그라고 떠드는 거시 시방 생각이 있는 사람이여? 그냐고!! 다 필요 없은게 당장 짐싸서 나가!! 빨리 안나가!!!! 나가라고!!!!!"(겁나 순화된 표현입니다. 실제론 더 살벌했음)

겉으로는 죽을 상이었지만 속으론 쾌재를 불렀다. 이 거머리 같은 것들 더이상 안오겠구나. [아주머니 좀 더... 좀 더 쎄게 해주세요. 더 쎄게... 하악 너무 좋아] 거기서 나는 [연기]를 시작했다. 세상 더 없이 죄송하고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눈물을 뚝 흘리며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게 하겠습니다' 연신 읍조렸다. 친구들은 당황해서 어찌할 줄 몰라하다 슬금슬금 옷을 챙겨 입고 하나 둘씩 밖으로 나갔다.

'누구 죽었능가!! X달고 태어나가꼬 욕 좀 들었다고 울고 난리랑가!! 워메 워메... 누가 보면 때린 줄 알것네. 차라리 XX 떼불소!! 그래가꼬 어따 쓴당가? 오늘은 넘어갈라네만 한번만 더 친구들 몰고 와가꼬 이라고 지랄하믄 그땐 진짜로 쫒아 내불랑께 그런 줄 알아잉!!!'

겉으로는 더없이 슬픈 표정으로 훌쩍거리고 있었지만 속으론 [그럼요. 그럼요. 친구들 못오게 해야죠.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하나요] 좋아서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상황이 종료되자 한놈이 슬적 들어와 나를 밖으로 불러냈다. 밖에 나가보니 돌아간 줄 알았던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연신 '미안하다. 아주머니 너무하네. 우리가 조심할게..' 등등 사과를 했다. 하지만 난 만족하지 않고 거기서 결정타를 날렸다. 살작 눈물을 흘리며

'느그도 다 알자네. 나 집에서 나온거. 지금 여서 쫒겨냐면 갈데도 읍씨야. 이 방도 돈 없어가꼬 포도시 구했는디 인자 나 어째야쓴대? 글 안해도 요즘 과외도 잘 없어서 방세도 밀렸는디 우짠대....(뻥이다. 사글세라 월세 낼 일도 없고 과외도 하나 더 새로 시작했다.)'

울먹이는 내말에 친구들은 정 안되면 우리집으로 오라는 둥, 자기랑 같이 살자는 둥, 이런저런 위로말을 건넸고 난 어떻게든 아주머니께 잘 말해볼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돌아가라고 했지만!!!!! 속마음은.... '이 망할것들아. 너네만 없으면 난 행복하다고. 제발 좀 꺼지라고 좀!!!'을 외치고 있었다. 그렇게 친구들은 돌아갔고 모처럼 혼자만의 편안한 일요일을 보냈다. 그날 밤이었다. 아주머니가 내 방에 찾아와 날 불렀다. 문을 열어보니 김치를 새로 담았다고 보새기에 가득 담아 밑반찬 몇가지 같이 들고 오셨다.

'아까는 내가 좀 심했제이? 인자 우리 아들도 고등학생이라 공부해야 되는디 하루이틀도 아니고 친구들이 맨날 와가꼬 밤마다 떠들믄 공부에 방해가 안되것는가? 긍께로 내가 화가 겁나 나부렀당께. 나도 tannenbaum 학생 착실한거 다 아는디 그래도 너무 시끄런께 그랬제 내가 미워서 그랬것는가? 담아두지 말고 툭 털어블소. 알것제이? 근디 친구들은 인자 쪼가 안왔으면 쓰것는디. 친구들한티 말 좀 잘하소. 나 학생만 믿고 인자 갈라네이'

연신 죄송하다고 다시는 못오게 하겠다 말씀드리며[그럼요 그럼요. 제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실거에요. 좀 더 화끈하게 해주셨으면 더 좋았을텐데요. 촤하하하하] 약속을 드렸다. 그 이후로 친구들은 내 자취방에 발을 끊었고 난 행복한 캠퍼스라이프를 즐길 수 있었다.



p.s. 그 사건 이후 좀 지나고 난 주인집 아들 과외를 새로 시작했다. 과외 시작 후 다행히 아들놈 성적이 아주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고 아주머니는 우리 아들 더 잘 부탁한다며 국이며 반찬이며 김치등을 수시로 넣어 주셨다. 그 집에 사는 동안 난 반찬걱정 없이 아주~~~ 잘 먹고 잘 살았다. 거기다 과외로 돈도 벌어 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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