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6/05/13 19:09:14
Name   Terminus Vagus
Link #1   http://blog.naver.com/kidy8914/220708943259
Subject   스포주의) 곡성(哭聲), 종교를 가장한 사회적 영화
곡성을 보고 네이버 블로그에 정리를 해두었던 글입니다. 홍차에는 저보다 글을 잘 적고, 더 깊이 사유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올리는 이유는 제가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봄과 동시에 많은 비평들을 부탁드리며 부끄러운 글을 올리려합니다. 블로그 글이다보니 경어체인점 죄송하다는 말을 드리며 시작해보려 합니다.

우선 글을 쓰는 전제는, 나는 영화를 즐겨보는 사람일 뿐이며, 영화에 대한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라는 것. 즉 배우의 연기, 카메라의 앵글 등 이런 영화 내의 장치에 대해 논할 수 있는 것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게 첫 번째 전제이며, 곡성이라는 영화는 보는 사람마다 제각각의 해석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요리에서 쉐프라 할 수 있는 감독이 완성된 요리를 가져와 맛을 보시라고 하는 게 아니라, '이런 요리를 가져왔는데, 마무리를 해보자.' 이런 뉘앙스였던 것 같다. 게다가 글을 적는 재주도 아직 더럽게 없는 편이기 때문에 내가 적는 글이 온전한 글이 될지 모르겠다.

먼저 스포일러가 다량 함유되어 있으며,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이 글을 읽지 않을 것을 권한다.

그리고 영화 내 설정에 관한 해석은 이미 인터넷에 많이 돌아다니고 있으니 그런 해석보다는 다른 해석의 방향을 잡아보려는데 잘 될지 모르겠다. 개인적인 정리가 될 것이며, 내가 보는 시선이 영화의 정답은 아니니 이 글을 적는 사람의 시선은 이렇구나! 정도로 봐주셨으면 좋겠고, 혹여 놓친 부분이 있다면 공유했으면 좋겠다.

시작해보겠다

1. 왜 누가복음인가?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부분은 바로 성서의 말씀이었다.

그들은 너무나 놀랍고 무서워서 유령을 보는 줄 알았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왜 그렇게 안절부절못하고 의심을 하느냐? 내 손과 발을 보아라. 틀림없이 나다!
자, 만져보아라. 유령은 뼈와 살이 없지만 보다시피 나에게는 있지 않으냐?"

누가복음 24장 37절~39절(공동번역)

가장 궁금했던 점인데 많은 사람이 왜 논하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 바로 이 점이다. 예수의 복음은 총 4가지이다. 왜  누가복음인가?

누가복음의 저자인 의사 '누가'는 지역으로는 안디옥 출신이었고 직업은 의사였다. 그가 적은 복음의 대상은 주로 대상은 주로 헬 라인들이다. 그중 높은 지위에 있었던 개종한 이방인 테오빌로에게 믿음의 더 많은 것을 알리기 위함이다(행 1:1). 헬 라인(이방인)을 위한 복음서로 처음부터 저자, 글을 쓰게 된 경위, 수신자 등 글을 쓰게 된 목적을 분명히 제시하고 예수님의 비유를 더욱 많이 기록하였으며, 예수님의 개인적 생애와 성격 묘사에도 큰 비중을 두고 예수님의 생애를 생생하게 묘사하였고 ‘엠마오 도상의 사건’을 통한 그의 부활은 본서의 절정을 이루게 된다.

곡성에서 외지인으로 등장하는 일본인은 마을인 곡성의 입장에서 이방인이라 할 수 있다. 이 이방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복음의 메시지가 누가복음인 것은 분명 의도된 모습일 것이다. 그와 더불어 영화에서 이야기하는 이방인은 바로 ‘관객’일 것이다.

성서 구절의 ‘의심’이라는 원어(διαλογισμοι 디알로기스모이)는 ‘생각들, 변론들, 의심들’이라는 뜻이다. 곡성의 포스터에 적힌 '현혹되지 말라'하는 말은 의심이라는 단어를 내포하고 있다. 포스터 4장의 인물들은 각각 현혹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영화 캐릭터들 간의 경고인 동시에 감독이 관객들을 향한 메시지이다.

영화 속 캐릭터들은 끊임없이 의심을 주고받는다. 그 의심과 더불어 그들의 손과 발을 보고, 만지기도, 만져보라고도 이야기하는 그들을 향해 우리는 계속해서 의심한다. 나홍진 감독이 만든 곡성이라는 세계의 이방인으로 초청된 우리는 의심하지 말라던 나홍진 감독의 말에 더욱더 의심을 하고, 비로소 영화가 끝나고서야 여러 가지 품었던 의심들이 풀어지게 된다.


2. 곡성에서 자연은 무엇인가?

음…. 아마 억지 같은 해석이 될 법한데, 곡성에서 나오는 자연=토속신=무명(천우희 분) 일 것이다.

영화 내에서 어떤 사건이 벌어지게 된 다음, 비가 내리게 된다. 비라는 것은 예컨대 토속신의 눈물일 것이다. 자신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생명, 그 생명이 이젠 함께 살아갈 수 없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기독교를 비롯해 종교라는 것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요소가 더욱 많다. 적어도 우리나라의 기독교에서 신을 대하는 태도는 무척 잘못되었다 생각한다. 무조건 신에게 복을 내려주십시오! 내가 부자가 되게, 건강하게 해주십시오! 라고 외친다. 근데 이게 이뤄지지 않게 되더라도 비나이다 비나 이라는 무속신앙과 겹쳐지게 되자 더욱더 신에게 기도하는 것에 몰두하게 된다. 몰두한 결과, 만약에 자신의 소원이 이뤄졌다는 가정하에 말 그대로 신에 대한 신봉자가 되는데, 이렇게 되면 뭐 이 신을 믿은 사람은 그야말로 이 종교의 신실한 신자가 된다. 종교가 쌓아온 교리적 규범들은 이미 온데간데없고, 내가 소원하는 것을 이뤄주는 신만이 남게 된다.

다시 넘어가 질문을 던졌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자신이 고통을 당하면 왜 당하는 거지 대한 물음을 던짐으로써 내가 왜 고통을 당하고, 그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로 행동을 옮겨주는 역할은 신적인 부분에 의지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선택으로 행동해야 한다. 나는 예수가 단순히 신의 아들로 이 땅 가운데 온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몸을 빌려 사회를 바꾸려고 했던 사람으로 생각한다.

"왜 우리딸 인겁니까?"
"그냥 낚시에 걸린 거야. 낚시에 뭐가 걸릴지는 모르지~"

무명과 종구의 대화 중

신(또는 자연)은 인간을 도와주려고 애쓴다. 인간의 모습으로 현현하기도 하고, 미리 경고를 보내기도 한다. 모든것을 아는 신은 인간이 선택해야 할 상황이 닥칠 때, 어떤 것도 하지 않는다. 따라서 신은 이미 자신의 역할을 다한 것이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의지로 운명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종구의 끊임없는 의심 또한 자신의 선택이라 볼 수 있다.

더불어 음…. 외지인(악마)은 이렇게 생각한다. 세 번째 챕터에서 적겠지만, 이 사회의 가장 악한 부분들에 대한 상징이 아닐까? 이런 부분들이 우리의 삶에 종교로 자리 잡고 있다. 돈, 쾌락, 권력 등은 이미 우상으로 자리 잡고 있지 않나? 이런 관점에서 '신에 대한 믿음'을 가진 신부 이삼마저 자신이 지닌 종교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모습은 오늘날 종교인들의 모습과 무척 닮아있다. 일광은 이런 외지인의 신봉자일 수 있고, 외지인과 뜻을 같이하는 사회의 한 인간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3. 곡성은 종교를 가장한 사회적 영화이다.

영화의 메인 플롯은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다. 현실에서 피해자가 왜 피해자인가라고 했을 때 원인은 가해자의 심리와 상태인데 그거 말고 피해자의 피해당하는 원인을 얘기하고 싶었다. 피해자가 되어야 할 이유는 딱히 없지만 그건 충격적인 문제다.
인간존재 이유와 직결된다. 존재 이유가 분명한데 존재가 사라질 때 이유가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럼 존재 이유마저 없어지는 게 아닌가? 인간존재의 이유는 신과 연결되어 있는데 신에게 묻고 싶었다.
<곡성> 메가 토크에서 이동진 평론가의 질문에 답하는 나홍진 감독의 이야기

곡성은 내가 보기에 세월호 이후 세월호 사건과 가장 밀접함을 다룬 최초의 영화가 아닐까? 하는 질문을 해본다. 곡성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비록 악마의 의식으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모습을 통해 나홍진 감독은 '피해자'는 왜 '피해자'가 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이 피해자가 고통당할 때 '신'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가? 라는 질문을 영화에 넣어두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말 그대로 제 상상력) 2010년 나홍진 감독이 황해를 만든 다음 6년 만에 차기작이 나왔는데, 이 6년 사이에 한국에서는 많은 일이 일어났었다. 그 중 '세월호 사건'을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다. 이 무기력한 사건 속에 죽어간 피해자들은 왜 죽어야 했으며, 이들의 죽을 때, 신은 무엇을 했는가?'라고 질문할 수 있지 않나?

나홍진 감독의 더 자세한 이야기가 없었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죽음에 대한 공포, 그리고 언제 피해자가 될지 모르는 우리네 현실에서 나홍진 감독은 신에게 물음을 던지는 영화를 만든 것일 것이다.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이딴 글을 적고 뭔 마무리하냐 라고 하는데, 아는만큼 보인다고 나는 이 정도로 영화를 보았다. 그 외의 디테일한 부분들 또는 다른 해석은 다른 곳을 참조해주어야 할 것 같다.

개인적인 별점은 왓챠기준으로 5점을 주었다.

교회에서 예배가 시작되고 설교자가 말씀을 전한다음,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묵상'이라 한다.

이런 묵상 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준 나홍진 감독님께 다시 한 번 존경과 감사를 표하며 어색하고 긴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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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멋진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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