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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5/01/07 02:09:41수정됨 |
Name | 골든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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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대체 여기가 어딘지는 모르지만 도달했습니다 |
((글이 그냥 난잡 그 자체입니다 날것의 삶의 경험)) 안녕하세요, 골든햄스입니다. 저도 여기를 구글링으로 발견했기에, 가정폭력(아동학대) 및 섬유근육통과 가난 등에 대하여 그냥 읽을 글 자체가 양이 별로 없는 것을 알기에 생생한 후기를 적어두려고, 누군가 외롭지 않도록 추후에 발견하길 바라는 맘에 그동안 이것저것을 적어왔습니다. 만일 누가 제 글을 하나둘 따라왔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요? 그건 제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만의 진실을 향한 여정에 제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기쁠 것 같습니다. 저는 그간 노력한 결과 많은 증상들이 호전되었고, 맞는 정신과 약을 찾았고, 파트너를 찾았으며, 반려동물을 키우고 마음에 드는 집에서 파트너와 반려동물과 ‘가족’을 이루고 사는 중입니다. 신앙을 갖고, 정치조직체에 들어갔으며,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려고 노력하는 중이고요. 이 과정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또 많은 행운이 있었고, 다행히 많은 분들이 도와준 끝에 여러가지가 개선된 상황입니다. 아직은 몸도 두뇌도 풀 컨디션은 아니지만 그렇기에 이 과도기에 느끼는 의아함들을 생생하게 남겨둘 수 있는 때 같기도 합니다. 이것을 도저히 정갈한 글로 곱게 정돈해서 쓸 정도로 제가 이 낯선 느낌들에 적응하진 못한 상태라, 좀 두서없이 글을 남겨볼까 합니다. 따라서 글이 난잡할 텐데, 양해를 부탁드리고, 혹여 관련하여 좋은 연구나 문헌이 있으면 추천 부탁드리고, 혹 연구자 분들은 제 글을 향후 연구에 마음껏 쓰셔도 좋습니다. 1. 가난의 느낌. ‘피해의식’ 혹은 ‘다른 세계’? 우리는 흔히 어떤 사람들에 대해 ‘피해의식이 있다’고 쉽게 말을 합니다. 전혀 나쁘지 않은 뜻의 신호를 그 사람이 곡해해서 나쁘게 생각한단 거인데요. 제가 한창 가난과 폭력의 데미지를 겪고 있을 때, 전 공공장소에서 유의미하게 사람들과 자주 부딪쳤고 시비에 걸리거나 하는 일이 많았으며 주위 사람들이 절 꺼리고 옆자리에 앉기 싫어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버스정류장 같은 곳에 서있을 때 사람들과 ‘한 무리’를 이루고 있다고 느껴지고, 사람들이 절 불편하지 않게 느낀다고 느껴집니다. 우리가 흔히 직장이나 학교 등, 혹은 연애과정에서 서로의 기색에 얼마나 민감하며 이런 ‘촉’ 또는 ‘신호’에 대해 얼마나 호들갑을 떨고 의미를 부여하는지는 다들 알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것에 대해서 다들 그다지 틀리지 않다고 생각하고요. 그럼 내가 가난하고 위축되어있을 때 느낀 주위의 ‘적대감’은 정말 그저 ‘피해의식’이었나…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하나같이 소리모아 피해의식이라 하는 부분이긴 하죠. 주위는 나중엔 아마 저를 기억조차 못했을 겁니다. 그러면 정말 나만의 피해의식? 그런데 왜 꼭 이때만 개인의 위축감, 인격 미도야로 인한 문제로 전부 귀속되는 걸까요? 주위 사람들의 무의식적 방어기제(사회기준에 일탈된 사람에 대한)가 상대에게 ‘촉’으로 전달되는 경우는 없을까요? 학교 교사들이 불우한 환경의 아이들에게 짜증을 부리거나 막말하는 등 차별대우를 해서 당했단 경험은 흔한 이야기고(범죄자들의 과거 회상에도 많이 나오는 이야기죠) 저도 겪어본 일입니다. 이것도 아마 그 교사 당사자들은 기억 못할 거예요. 흔히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는 ‘깨끗하고 선량한 모범 시민 보통 사람들’과 ‘혼자 괜히 열등감에 절어 상대를 공격하는 일탈자들’ 식으로 사람들을 분류하기도 하고, 저도 사람들의 속내를 모를 일이니 그냥 ‘내 피해의식인가?’ 했었습니다. 실제로 병원에 가서 위의 제 경험을 얘기하면 바로 약 줄 거예요. 그런 식으로 생각 말라고요. 근데 그러면 내가 처지가 나아져서 나의 위축감이 사라진 것만으로 이렇게 거리를 다니는 느낌이 달라진다고? 싶기도 하고 실제로 주위와의 상호작용 중 긍정적 경험이 늘어갑니다. 말투의 공격성이 사라져간다고 평가를 받기도 하고요. 점점 잘 사는 사람들과 친해질수록 가난한 사람들을 차별하고, 증오하다시피(?)까지 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고 사람들을 가려 대하는 것 자체는 기본적인 집안 교육인 경우도 많이 보고요. 그니까 어느정도는 이 모든 게 상호적인 게 아니었나 싶더라고요. 음. 다들 너무 당연히 잘 알 이야기겠지만 학대받으면서 집에서 인터넷 커뮤니티만 보고 자라니 순전 일탈자 혐오만 보고 자라서 잘 몰랐어요. 근데 확실한 건 차별하는 쪽이 설사 있다 해도 인간은 자신의 비도덕적(이라 어느 측면에선 보일 만한) 일들은 합리화하거나 잘 잊기에, 피해자는 있어도 가해자는 없어서 정신병적 망상처럼 정말 스스로 느껴지더라고요. 만일 이렇게 상호적인 것으로 이 현상을 본다면 이건 사람들의 선제적 방어심리가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소외감을 가속시키는 경우 같은데.. 다양한 실험으로 증명도 가능할 거 같고요 (보통 시민들의 방어적 적개심이 낮춰지는 협력 상황을 준다든지 등등 해서 차이를 보는..) 2. 경찰의 차별 대우는 의식적인가, 무의식적인가? 경찰들의 술자리서 떠돌 이야기들이 궁금합니다만 제가 가정폭력 신고 정보공개청구 다 씹혔듯이 또 주위만 봐도 딱 괜찮은 가족과 시스템이 뒤따라올 것 같은 사람과 아닌 사람에 대해 대우가 다르게 느껴지는데 … 심지어 서면으로 사건 접수 기록 자체를 그냥 안 남겨버리는 일이 흔해서 따지기도 어렵게 하더라고요.. 이런 건 ‘일을 줄이려고’ ‘후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에게 달리 대하는 것이 fact겠죠? 그걸 염두에 두고 사리에 밝은 사람들은 세상을 살 때도 경찰을 대할 때도 행동하는 거겠죠? 다만 판사님들은 적어도 지금껏 제가 느끼기에는 공정하셨기도 하고. 경찰들도 적어도 점점 시대에 따라 더 친절해지고 사건 접수하려 하는 경향은 늘었다고 느끼긴 해요. 제가 진짜 사람들의 네트워크 속에 못 들어가서 한국 사람들의 찐심 소리를 못듣고 공익광고 책 인터넷만 보고 자라서 .. 모든 게 신기하더라고요. 다들 언제부터 이 모든 걸 알고 행동했을까. 그리고 차별받는 사람들은 사회 인프라가 하나하나 자기에게 차별적인 걸 알면 마음이 비뚤어지지 않기가 쉽지 않지 않을까?? (학교, 경찰 등등이 전부.. 난 차별 안 해 라고 의식으로는 생각, 근데 몸으론 행동??) 근데 그걸 그 사람 탓을 하는 게 대세적 여론이란 게 가능한 걸까?? 등 많은 의문이 들더라고요. 3. 가족이 있다고 느껴지니 확 생겨나는 안전감. 그럼 없는 사람들은? 서로 속이지 않고 약속을 지킬 가족이 생겼다, 게다가 지킬 새끼(강아지)까지 같이 돌본다고 느끼니 저는 그 순간부터 정신건강이 많이 좋아졌어요. 심지어는 그동안 아무리 운동해도 근육이 순간적으로는 붙어도 다시 녹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래서 제가 거미처럼 말랐었죠.- 운동 뒤 근육이 남게 됐어요. 근육을 붙이는 데 소모되는 에너지와 쉼을 몸이 감당할 수 있다고 느끼게 된 것 같아요. 예전에는 늘 위기 200% 상태를 상정해 몸이 근육 만들 영양소 소모조차 용납 안하는 느낌이었던 거죠. 그리고 사람들을 대할 때 작은 불일치나 차이에도 민감하고 작은 갈등도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가족이 뒤에 있다고 생각이 드니 모든 게 전보다 덜하게 느껴졌어요. 무엇보다 친구들에게 많은 걸 기대하지 않게 됐어요. 진짜 찐심 얘기는 가족이랑 하는 거고. 찐 멘탈 터지거나 건강 문제 생겨도 돈 문제 생겨도 그건 가족이랑 처리하는 거니까. 그리고 혼자 있어도 아 지금 내 가족이 일하고 있지, 싶어서 늘 경제적 불안이 오던 때랑 다르게 쉴 수 있어졌어요. 원래는 화장실에서만 겨우 숨돌릴 수 있는 느낌이었거든요. (그래서 화장실을 좋아했어요.. ^^… 징그럽죠. 남 같지 않은 삶은 뭔가 징그러운 구석들이 이렇게 생겨요!) 암튼 그러다보니 친구들에게 적당한 정서적 거리를 두게 되고 그러자 이것에 기가 막히게 친구들이 제 카톡이 귀여워지고 재밌어진 것처럼? 반응하고 대화가 더 길게 이어지고 더 일상을 공유하게 됐어요. 그리고 현대사회의 많은 뉴스와 많은 이슈에 대해 ‘보편 다수’의 반응과 정서적 반응이 유사해져가요. 아직도 대형사고, 참사에 남들만큼 슬프진 않지만요. 이건 비도덕적인 걸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사람들 굶어죽게 하고 학대받게 하고 놔두고 있잖아 왜 어떤 일은 슬퍼하고 어떤 일은 슬퍼하지 않을까? 생각이 늘 있어요) 그리고 닌텐도로 하는 종류의 밝은 색감의 게임들 (동물의 숲, 젤다 등) 이 이전엔 이상하게 무섭고 답답했다면 이젠 조금 그런 현상이 덜해요. 예전엔 젤다 게임이 너무 색감이 밝아서 무서웠어요. 가족이 있고 없는 것의 차이는 음… 우주가 있고 없고 정도의 차이??로 느껴져요… 예전엔 형사재판 방청가면 피고인들이 전부 홀어머니 얘기를 하며 양형 참작 부탁드리는 게 무슨 뜻인가 그리고 어떻게 하나 같이 결손가정이지, 했는데 아 미국에 인종이라면 한국에 가정 형태구나? 이제야 알았어요. 근데 이것도 사실 은연중 다들 결혼 상대를 거르는 기준 등으론 쓰던 거 보면 이미 다들 알던 얘기란 거잖아요…?? 근데 뭐랄까.. 어.. 내가 정상 가족이면 너무 미안할 거 같아요. 내가 그런 혜택받은 층이고 다른 사람들은 정말 평생 노력해도 못 가질 뭔가 위에 서있고 우리끼리만 말과 정서가 통한단 게. 거기서 쌓아올려지는 게 또 문명이고요. 그런 의미에서 공부 특히 법 경제 같은 공동체를 가르치는 건 어느정도 중산층 가족 경험을 해야 잘 읽히더라고요. 그런 기준으로 또 세상이 굴러가고 공부도 그런 거로 시험 성적을 매기고 채점하고 .. 아니 이거 .. 그냥 다 이런 거였어?? 뭔가 숨쉬듯 잔인한 세상이었던 건데 내가 몰랐던 거였어?? 하고 연신 기분이 이상해요. 3-2. 가족이 없거나 불우할 때 ‘정신승리’를 하게 되기도 하고, 무언가 소통의 차원 자체가 낮아지는 느낌도? 제가 학부에서 잠시 공부 성적이 원활했던 이유 중 하나가 절 학대했던 아버지를 용서하고 학대자 아버지와 방관자 어머니도 이제는 좋은 가족을 이룰 수 있을 거라 믿어서였는데요. (아버지와 어머니도 사랑과 이용할 맘의 퍼센트가 각각 몇퍼센트인진 몰라도 엄청 제게 연극하며 대단한 부모인 척 했죠. 나중에 제가 몸이 아파지니 다들 외면했지만.) 그런 식으로 사실은 서로 잘 대하고 있는 가족이 아닌데 억지로 애틋한 척 그래도 우리 가족.. 이렇게 묶어서 어떻게든 그 정신을 겨우 유지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어릴 때부터의 친구 한명도 그랬는데, 그래선진 몰라도 뭔가 가족이란 늪 안에서 허우적거리는 거 같고 남에 대한 소통과 연민 이런 자질이 너무 없더라고요.. 그걸 또 제가 같이 피해자고 어릴 땐 몰랐어요. 저도 초중고딩땐 정말 멍——했던 기억이 나거든요. 소통도 되게 못하고요. 저한테 억울한 일이 생겨도 멍하고요. 그런데 제가 뼈를 깎는 노력을 하며 ‘이게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닐 거야’ 라고 생각하고 더 나은 관계를, 더 좋은 사람을 좇다보니 점점 그 친구가 기이할 정도로 남에게 무관심하고 정신승리만 가득한 사람으로 느껴지더라고요. 사실 변한 건 저였겠죠. 그 친구 가족이 정말 좀 기이하고 상호 폭력이나 바람 등 많은 이슈가 있는 경우였는데 그 친구와 지냈던 20년간 그 친구와 속깊은 얘길 해본 적도 없고 무언가의 컴플렉스나 외부 세계와의 불화 다툼 얘길 해본 적도 없어요 기이할 정도로 가장 가까운 몇 안되는 친구에게도 자기 사정을 밝히지 않았는데 -대학에서 큰일이 있고 이래도- 근데 그게 제가 불우한 집안에 있을 때 그 구성원끼리나 구성원들에게 생기는 특성과도 비슷해요 기이할 정도로 소통이 줄어들고 자기 일에도 무감각해지는 거. 그니까 뭔가 정서적으로 더 건강한 쪽으로 갈수록 많은 일을 교과서적 윤리나 네티즌식 분노로 대충 싸매거나 회피하지 않고 골고루 상황과 나의 대처 등을 얘기하며 누군가와 공감을 찾고 건강한 균형을 찾게 되더라고요.. 그 친구가 자긴 직업이 네티즌이다 할 정도로 인터넷에 빠져있던 친구라 종종 인터넷의 단순한 담론을 볼 때 거기에 외로운 가족 속의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 (저도 가만히 보고 있지만은 않았고 언제 그 친구에게 진지하게 넌 가족을 떠나야 한다고 밥 해주고 방 내주겠다고 해서 그 친구도 나오려 했는데 부모가 마친듯이 잡아서 무산됐던 기억이네요…. 그때 나왔음 어땠을까) ((참고로 나중에 제가 집에서 밥해주며 취준 도와준 대학 친구도 부모가 저학력층에 아버지는 음모론에 빠진 육체노동자고 소통도 안 되고 이랬더라고요. 그래서 대학 때 그나마 나랑 말이 통해서 붙어다녔구나 싶고 ..; 그 친구가 제조업 등을 선호하고 노동자들을 좋아하고 대기업은 자긴 절대 무리라 생각하는 등 실력에 비해 늘 자신없던 일도 이해가 가더라고요..)) 3-3. 주위 고성취자들 대부분의 특징 = 부모와 각별한 유대관계, 그것이 특별한지 모를 정도로 당연한 세상의 감각 학벌 좋은 사회서 제가 작은 표본만 보고 하는 말일 수 있지만 그랬어요 .. 애초에 요즘은 입시를 위해 하나하나 스펙이나 생기부 만드는 과정이 다 가정의 안정과 지원이 필요할 거 같네요. 4. 온갖 정신과 질환 진단들이… 우울증 조울증 등 별 진단 다 받고 약 받았는데 소용이 없었어요 현재 불안 위주로 약을 먹는데 이게 제일 맞는데 약도 좀 특이하게 쓰고 있어요 하나하나 의사 선생님과 도전해보고 다른 약도 과감하게 쓰는 식으로요 특히 아버지가 양극성 장애 질환으로 진단을 받은 적이 있었어서 항상 저도 양극성 장애로 일단 분류되곤 했는데, 그쪽 약 중에 맞던 게 없고 대학병원 전문 교수님을 찾아뵈니 오진일 수 있다 하더라고요 물론 제가 기분 기복도 있었죠 근데 그게 거의 돈, 진로 때문에 미칠 거 같을 때 생겼어요 티비만 켜도 다들 비싼 타르트 정돈 기본으로 먹고 있고 이러니 변호사시험 처음 실패했을 때 제가 정신이 자글자글 끓더라고요 ((난 이제 모든 걸 걸고 집을 나와서 오직 변시에 올인했는데 어쩌지? 몸도 여전히 아프고.. 어떻게 하지 이 가난을? 평생 변두리를 떠돌러 가야할까? 와 세상의 기본은 이미 좀 돈 있는 사람이고 다 돈이 있는데 어쩌지 가난한 여자로 보이면 또 성범죄나 온갖 시도 있을 텐데 날 지키며 종잣돈 모을 수 있을까 등등..)) 근데 이때 그래서 모텔 숙식 알바해야할까 이런 글 썼다가 로스쿨 커뮤니티에서 존나 욕먹었어요 그 사람들 입장에서 평범치 않은 얘기 = 정신 이상이구나 유별나구나 싶었던 거 전 숙식을 해결해야해서 생각한 건데 -.- … 근데 가난이 나으면 정신질환이 싹 사라져요 그럼 뭐가 병이었던 거지 그리고 저에게 조울증 특유의 말투가 있다 의사들 임상 경험이 그렇다 까지 말한 의사쌤까지 있는데 현재 조울증 치료를 받냐면 그렇지 않아요 … 인생에 명백한 조증 삽화 기간이 있었냐면 그것도 애매하고… 나는 애초에 무슨 병인 거고 뭔 치료를 받아온 것이며 받아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정신과 의사랑 소통 자체가 되게 힘들어요 보통 좋은 중산층 집안에서 자란 의사 분들에게 제가 느끼는 고통을 날것 그대로 가난한 집안의 언어로 얘기함 잘 이해를 못하세요 그래서 언젠가부터 꼭 증상 관련 찾아보고 그 언어로 말하는 습관이 생긴.. 약간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달까.. 꼭 정신과 의사 아니여도 평소에 잘 자란 집안 사람들 언어 따라하는 기분으로 늘 살아요 그 사람들 기분까지 배우려 노력하고 그럴수록 그게 정상(?)으로 진단되고(??)… 제 생각에 가난하고 학대받는 사람의 정신속은 아직 아무도 몰라요 연구된 적도 없고 5. 세계를 이루는 많은 게 논리보단 정서다.. 같은 생활 세계를 공유하는 이들의 정서적 뭉침과 흐름.. 헌재 심판을 보면 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아주 추상적인 문제들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합의하는가 법은 그걸 특유의 비슷하게 자란 어떤 엘리트 집단의 정신적 흐름에 맡긴 거고 보통 사회는 힘있는 자들이 더 대표되기에 실제 통계보단 안정된 집안 사람들이 더 대표되는 어떤 문화에 의해 돌아가고.. 특히 법 공부가 힘들었을 때 아주 논리적인 행정법은 차라리 좋았는데 민법은 경제적 경험 감각을 쌓기 전엔 너무 힘들었어요 6. 보는 컨텐츠, 가는 장소까지 다 다르다.. 그래서 같은 나라서 다르게 살고 있다.. 아프리카 여캠을 보는 사람과 한경아르테 tv를 보는 사람 정서는 다를 수밖에 없겠죠.. 너무 흔하고 뻔한 얘기 같지만.. 어릴 땐 그냥 가도 불친절한 가게를 많이 가고 무시도 많이 당했고 컨텐츠도 자극적이고 현실을 엄청 잊기 위한 걸 보면서도 스스로 그런 상태인지도 몰랐어요 비버랑 연애하며 생긴 가장 좋은 것 중 하나가 둘이 가는 길들이 생겼단 거예요 혜화에 가면 동양서림 서점에 들른다든가 하는 것들.. 그럼 무슨 충격이 일어날 리가 없죠 근데 어렸을 때 제가 엄마/아빠의 학대 방임 등을 받아 길거리에 꼬꼬마로 혼자 나갔을 때는 스파게티 가게를 갔다가도 비웃음을 당하고 카페를 갔다가도 무시를 당하고 미용실을 가면 어버버 하다 호구잡히고 옷가게를 가도 비웃음을 사고.. 그러다 대학 친구들 보니 아 엄마랑 같이 다니는 거더라구요 아파트 단지 미용실을 가든가요 .. 그럼 그런 일 당할 게 없죠 제가 미용실 갈 때마다 이를 악물고 가던 게 이 친구들에게는 모를 일이겠더라고요 카광 채널 같은 걸 보면 불우한 가정 사람이 엄청 흔하고 절반 이상이에요 제가 어릴 때 열정을 쏟던 오타쿠 사이트는 이제 위키에 보면 ‘여성 오타쿠 식의 일베’ 였다고 써있어요 어리고 외로운 맘에 말 통하고 재밌고 자극적이던 사이트는 어쩔 수 없이 비슷하게 이상한 사람들이 있던 곳인 거죠 그래서 더 악순환으로 세상을 이상하게 보게 되고 .. 그런 사람이 세상엔 많겠죠? (트럼프 등 극화 현상들도..) 제가 딱 한번 랜덤 채팅으로 사람 만나봤을 때 (한번 만나서 대화만 하고 말았지만..) 방에 있으면 엄마가 부엌칼을 문 밑으로 넣었다는 사람이 나오더라고요.. 어느 순간.. 외롭고 이상한 사람들은 사실 그만한 사연이 있는데 사회는 그걸 해소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너무 신기한 게 가족 없는 여자를 성범죄자들이 기가 막히게 노리고.. 와 저도 비버랑 만날 때랑 헤어졌을 때 주위 사람들 태도랑 묘한 그 시도들이 달라요… 그러다 서울대 로스쿨 가면.. 시험 끝나면 부모들이 차 갖고 강아지 데리고 데리러와있고 애들은 제 얘길 이해 못해서 세상 어떤 부모가 그러냐고 절 혼내죠 그리고 다 같이 마라탕 흑당버블티 얘길 하고 깔깔 웃고 아 공부하기 싫다~ 하지만 정작 하면 그냥 편하게들 하고.. 이 모순이 법에도 글에도 묻어있어서 서울대식 특히 서울대 법대식 문체를 제가 느껴요 이걸 너무 현란하고 어렵게 쓴다 고 보통 사람은 느끼는데 학교에서는 되게 선호하고 애들도 어렵다고 못 느끼던.. ((이게 이어져서인지 김앤장이 로펌 중 문체가 현란하고 오묘하고 글 길게 쓰는 거로 알려지기도.. 지킬 게 많은 자들의 현란해지고 안개낀 듯 첩첩이 알 수 없는 오묘함을 띠게 되는 증상..)) 논리란 것도 거의 없더라고요 법은 특히 형식 논리학이 아니라 삼단논법에 의하는데 삼단논법은 사실 수사학에 가깝지 논리는 아닌 거 같아요 ((무식해서 잘 모르지만)) 그래서 제일 기이했던 게 인권이었어요 어 지금 학대받고 가난한 사람 나 존나 많이 아는데.. 이 사람들은 왜 난민에 이렇게 열중일까? 그건 자유주의 엘리트적 논리에 기반해서 봤을 때 특히 약자로 보이는 자들이더라고요 뭔가 인권이란 거 자체가 사실 정서더라고요 정서 기분 그니까 기분인 거죠.. 우리가 진심으로 롤즈 윤리를 실천하거나 피터 싱어처럼 최소 생활비 빼고 제3세계에 다 기부하는 식으로 어떤 수식을 세울 것도 아니고 하니까.. 모든 게 기분의 문제더라고요 그 기분을 잘 공유하는 다수 속에서 크면 한국에서 그래도 소외되는 느낌은 덜할 거고 엘리트 속에 크면 엘리트 집단 속 평생 살다 가는 거고요 7. 그래서 ?? 이 긴 허접한 글을 왜 썼는지 저도 모르겠지만 어릴 때 전 제가 이렇게 힘든 걸 나랏님들(?)이 알면 당연히 도와주실 테니 설마 그정도 똑똑한 분들이 그정도 연민도 없으실까 다들 모르시나보다(??) 하고 알리려고 이런 처지의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리려고 공부하다 학벌을 최고봉을 찍었어요 근데 결론은 .. 사실 다들 알고 있었던 거였어요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이 맘이 외롭고 힘드니 음모론에 빠져 악을 한 축으로 몰거나 인권 동물권 이런 무슨 아름다운 것이 특별히 있어 추구하면 다 나아질 거라 생각하거나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외치지 어.. 사실은 그냥 다 정책의 범위였고 “감안되는 희생”이었어요 그게 제 경험의 결론이고 나중에 이 글을 읽게 될 친구들에게 할 말입니다 너희의 가난과 비통함 매순간 고문을 당하듯 살갗이 찢기듯 아픈 그 마음 혹은 실제로 고문을 당한 것들 그런 것도 그냥 이 세상의 일부다.. 그게 내가 미련하게 여기까지나 와서 느낀 거고 미안하다… 그리고 여기까지가 지금 내가 도달한 곳이다. 앞으로는 모르겠다… 여기까지가 제가 도달한 곳입니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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