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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5/10/29 00:52:31 |
Name | 삼공파일 |
Subject | 김영하 산문집 [말하다] 중에서 |
밑에 헤칼트님이 쓰신 글을 보고 이 인터뷰가 생각났습니다. 최근에 읽은 글인데 제 마음에 너무나도 새겨졌습니다. 저도 고등학교 때 참 불만이 많았습니다. 친구들도 싫었고 선배들도 싫었고 선생님들도 싫었고 시스템도 싫었죠. 그래서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학보사를 했는데 정말 몸을 불살랐었죠. 좋은 신문 만들어보자면서 며칠 방에도 안 들어가고 신문만 만들었던 기억이 수없습니다. 교수들과 싸우는 일도 많았고요. 이후에는 등록금 투쟁 비스무리한 것에 참여하기도 하고 현실을 비탄하면서 술로 밤을 지새웠고요.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렇게 살지 않고 싶습니다. 뭐, 그렇게 똑같이 살게 되더라도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을 가질 겁니다. 그 시간에 잠을 더 자고 책을 더 읽고 맛있는 것도 먹고 가급적이면 주변 사람들 다 무시하고 행복하게 나를 위해서 살았을 겁니다. 고등학교 시스템이 어쨌든 학보사의 운명이 어쨌든 좀 더 즐기면서 살았을 겁니다. 불만을 가지고 불태우면서 노력했어도 사명감이 아니라 다가온 일이기에 해야하는 의무감만 남긴 채 재미있게 해봤을 겁니다. 선생님한테 반항도 해보고 학보사에서 밤도 새워보는 일들을 즐겼을 겁니다. 사회에 나가면 책임감과 스트레스가 비교도 안되지만 또 그저 그렇게 즐기면서 살았을 겁니다. 제 앞에 놓인 일이 불의에 항거하고 내가 다칠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 된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찾아온 일이니 내가 해야만 한다면 하겠습니다. 혁명 전사처럼 살아볼 기회는 흔치 않은데 잡아야 겠죠. 뭐, 그냥 그렇습니다. 돌이켜보니 중요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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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다른사람의 외침덕에 대면하게도 되고, 오로지 내 안에서만 나온다는 것들도 전 허구적이라고 봐요. \'진정\'은 나에게만 있는것도 아니고 나에 대한 사색이 \'진정\'을 담보한다는 생각도 바뀌었거든요. 외면은 그래서 \'현실\'에 대한 외면을 뜻한게 아니라 자기 이외의 것들에 대한 외면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주체성과도 이어지는 부분이 있을것 같은데, 전 주체 \'효과\'를 사색에서 얻을수는 있지만 주체성 자체가 주체효과와 동일하지는 않다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거짓된 삶\'이라는 관용적 표현도 솔직히... 더 보기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다른사람의 외침덕에 대면하게도 되고, 오로지 내 안에서만 나온다는 것들도 전 허구적이라고 봐요. \'진정\'은 나에게만 있는것도 아니고 나에 대한 사색이 \'진정\'을 담보한다는 생각도 바뀌었거든요. 외면은 그래서 \'현실\'에 대한 외면을 뜻한게 아니라 자기 이외의 것들에 대한 외면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주체성과도 이어지는 부분이 있을것 같은데, 전 주체 \'효과\'를 사색에서 얻을수는 있지만 주체성 자체가 주체효과와 동일하지는 않다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거짓된 삶\'이라는 관용적 표현도 솔직히 말하자면 사후효과에 기대어 자신의 삶을 부정하고 싶은 욕구의 일환이라고 생각하고요.. 거짓된 삶이 존재하는 것 처럼 보임으로해서 나의 선택과 고민이 진실을 담보하는 효과를 보이게 하는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저는 그보다 훨씬 많은 외부적 조건들이 있고, 내부적 조건들 역시 그냥 있을 뿐이며 이건 단지 동등한 조건들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참 거짓의 위에 세운다기보다는요.
음, 뭔가 겉도는거 같네요. 저는 \'눈치 보면서 흔들리고 시간 낭비하고\'같은 전제들이 후속적 효과라고 쓴건데, 그걸 전제로 두시니까 결론은 일관되게 \'항상 아무 소용 없다\'로 귀결되는거 같아요. 저는 이런 생각 자체가 이런 생각을 안 하게 해줄 도구인 아주만족스런 결과, 혹은 당시의 진중하고 주체적 선택이었음을 믿을만하게 해줄 자신의 고민이 부재했다면 드러내고 싶은 하나의 관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나 그게 어쨌든간에 일은 했고, 결정은 했으며 그것은 실현된 거잖아요. 그건 그냥 \'그럴 뿐\'이라는 입장인거죠. 찾아온 일... 더 보기
음, 뭔가 겉도는거 같네요. 저는 \'눈치 보면서 흔들리고 시간 낭비하고\'같은 전제들이 후속적 효과라고 쓴건데, 그걸 전제로 두시니까 결론은 일관되게 \'항상 아무 소용 없다\'로 귀결되는거 같아요. 저는 이런 생각 자체가 이런 생각을 안 하게 해줄 도구인 아주만족스런 결과, 혹은 당시의 진중하고 주체적 선택이었음을 믿을만하게 해줄 자신의 고민이 부재했다면 드러내고 싶은 하나의 관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나 그게 어쨌든간에 일은 했고, 결정은 했으며 그것은 실현된 거잖아요. 그건 그냥 \'그럴 뿐\'이라는 입장인거죠. 찾아온 일이라거나.. 소용이 있다거나 없다와는 상관없이요. 그래서 처음에 사색이 과대평가되었다는 생각도 남긴거구요. 후회없고 행복한 삶 같은 개념은 시간의 선상에서 볼때 좋은 결과도 요구하지만 \'후회하지 않을\' 이유도 요구할텐데 전 이런 과정이 이뤄지는 이유 중 하나가 본인의 사색이 가져다주는 진정성의 믿음이나 그 시간과 고민들이 갖는 하나의 효과이지 그래서 이렇지 않은 삶은 거짓이야! 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이걸 3인칭적으로 받아들인다기보단, 그냥 삶에서 결정하고 이행하는 선택과 행동들은 그냥 그렇게 세상에 표현될 뿐이고, 그런 과정들은 내적 외적 조건들이 동등하다는거에요. 삶을 참 거짓이나 행복과 불행으로 나누기보다는요.
특히 이런 입장에 더 거부감이 드는 이유는, 외부적 조건에 의해 내적 조건의 변화가 일어나기도하고 여전히 그렇게 살아가고 변하고 결정하는 사람들의 삶을 죄다 바보처럼 만드는 것 같아요. 그들은 진정한 행복을 몰라 라거나, 후회할거야 라거나. 혹은 그렇지 않았던게 좋았을거라는 개별적 평가에서 그들을 규정하거나. 저는 이런 방법론 자체를 부정하는 편이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이런 접근은 위험한 것 같아요. 엄청 보편적으로 여기저기서 나오는 이야기긴하지만... 누군가의 결정과 삶을 몇가지 방법론에 대한 믿음으로 규정하는건 그 자체만으로도 분명 효과를 갖게되는데 그게 진리효과인지 아닌지에 대해 전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네요. 그게 진리효과라고 느끼는 분들은 그래서 그러시는것 같고요.
흐흐흐. 친한 친구 한 명이 얼마전에 페이스북에 아무것도 모를 때허공에다 막 퍼다 버리던 그 시간들 지금 가져다가 쓰고싶다 흐흐흐.. 라고 적었는데
그때 저랑 다른 친구 한 명이 적은 게 \'그 때 그 시간.. 알아도 그때라면 절대 안해 크크크크\' 였었거든요.
저도 음악 듣거나 악기 연습하거나 글 쓰고 책 읽고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데 사실 그때 시간으로 지금의 생각을 가지고 가는게 아니라면 아마 또 그러고 있을 것 같아요 -.-;;
그래서 한국 돌아가면 하고 싶은 거 열심히 하면서 살고 싶은데.. 되려나 모르겠어요 크크;
그래도 취미로 사진은 찍어 남겼으니 이득이여유(읭?;;)
그때 저랑 다른 친구 한 명이 적은 게 \'그 때 그 시간.. 알아도 그때라면 절대 안해 크크크크\' 였었거든요.
저도 음악 듣거나 악기 연습하거나 글 쓰고 책 읽고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데 사실 그때 시간으로 지금의 생각을 가지고 가는게 아니라면 아마 또 그러고 있을 것 같아요 -.-;;
그래서 한국 돌아가면 하고 싶은 거 열심히 하면서 살고 싶은데.. 되려나 모르겠어요 크크;
그래도 취미로 사진은 찍어 남겼으니 이득이여유(읭?;;)
저도 대학에서 2년 간 학생 운동 조직에 있었던 터라 비슷한 과정을 거쳐봤고, 개판 나는 과정도 거쳐봤기에 본문의 이야기에도 구구절절 동의합니다. 하지만 시행착오를 겪어보기 전에는 아무도 옥석을 모르는 법이지요. 저런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 자체가 경험이 가르쳐 준 소중한 깨달음이겠지요. 그러한 시행착오를 가급적이면 더 어린 나이에 하면 더 좋을 테고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학생들에게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은 채 학업에만 몰두시키고, 별 인간적인 유대와 영혼의 교감 없이도 자연스럽게 친소관계를 가질 수 있는... 더 보기
하지만 한국에서는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학생들에게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은 채 학업에만 몰두시키고, 별 인간적인 유대와 영혼의 교감 없이도 자연스럽게 친소관계를 가질 수 있는... 더 보기
저도 대학에서 2년 간 학생 운동 조직에 있었던 터라 비슷한 과정을 거쳐봤고, 개판 나는 과정도 거쳐봤기에 본문의 이야기에도 구구절절 동의합니다. 하지만 시행착오를 겪어보기 전에는 아무도 옥석을 모르는 법이지요. 저런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 자체가 경험이 가르쳐 준 소중한 깨달음이겠지요. 그러한 시행착오를 가급적이면 더 어린 나이에 하면 더 좋을 테고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학생들에게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은 채 학업에만 몰두시키고, 별 인간적인 유대와 영혼의 교감 없이도 자연스럽게 친소관계를 가질 수 있는 교실이라는 공간으로만 인간관계의 영역을 한정시키죠. 그 사이에서는 진짜배기 인간관계를 겪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대학에 와봐야 이놈이고 저놈이고 인생 경험과 역량과 관록이 없고 자의식에 가득찬 풋내기들일 따름이고, 그들은 아무 영양가 없는 자기과시적이고 자의식과잉적인 헛짓거리 속에서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고 뒤늦게 사춘기를 겪지요. 너무 늦은 나이까지 반편으로 남게 됩니다. 교육 과정에서 부모를 비롯한 사회와 어른들이 가져야할 덕목이라면 미성년들의 미숙함에 대해 억압하지 않고 그네들의 잠재력을 제한시키지 않는 관용과 이해심, 그리고 도전적이고 자력적인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성장의 필요성을 본인 스스로 깨닫게 할 수 있게끔 할 수 있는 프레셔, 이 양 축이라고 보는데, 한국은 양쪽 모두 부족하죠. 아이들에게 자유를 부여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닦달하면서 레벨업 시키지도 않아요. 그 결과 아무 것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반편의 아이들이 양산되고요. 연애도 서툴고 대인관계도 서툴고 일처리도 서툴고 취미도 사려도 고민도 초보 수준인, 인간으로서의 깊이가 얕디 얕은.
그래도 다행히 현대로 오면서 평균 수명도 연장되고 건강 연령도 늘어났으며 노화의 속도는 늦춰졌으니 이제부터라도 일어서면 되는 것이겠지요. 아재가 되기엔 우리 모두 너무 젊고 살 날이 많이 남았어요. Too young to die.
하지만 한국에서는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학생들에게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은 채 학업에만 몰두시키고, 별 인간적인 유대와 영혼의 교감 없이도 자연스럽게 친소관계를 가질 수 있는 교실이라는 공간으로만 인간관계의 영역을 한정시키죠. 그 사이에서는 진짜배기 인간관계를 겪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대학에 와봐야 이놈이고 저놈이고 인생 경험과 역량과 관록이 없고 자의식에 가득찬 풋내기들일 따름이고, 그들은 아무 영양가 없는 자기과시적이고 자의식과잉적인 헛짓거리 속에서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고 뒤늦게 사춘기를 겪지요. 너무 늦은 나이까지 반편으로 남게 됩니다. 교육 과정에서 부모를 비롯한 사회와 어른들이 가져야할 덕목이라면 미성년들의 미숙함에 대해 억압하지 않고 그네들의 잠재력을 제한시키지 않는 관용과 이해심, 그리고 도전적이고 자력적인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성장의 필요성을 본인 스스로 깨닫게 할 수 있게끔 할 수 있는 프레셔, 이 양 축이라고 보는데, 한국은 양쪽 모두 부족하죠. 아이들에게 자유를 부여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닦달하면서 레벨업 시키지도 않아요. 그 결과 아무 것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반편의 아이들이 양산되고요. 연애도 서툴고 대인관계도 서툴고 일처리도 서툴고 취미도 사려도 고민도 초보 수준인, 인간으로서의 깊이가 얕디 얕은.
그래도 다행히 현대로 오면서 평균 수명도 연장되고 건강 연령도 늘어났으며 노화의 속도는 늦춰졌으니 이제부터라도 일어서면 되는 것이겠지요. 아재가 되기엔 우리 모두 너무 젊고 살 날이 많이 남았어요. Too young to die.
이와 관련해서 예전에 지인과 대화한 적이 있는데, 한국에서 대학 캠퍼스 생활은 마치 전근대사회의 신부의 결혼식 같죠(사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내 인생에 한 번이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결혼식 만큼은 절정의 환희 속에서 보내고 싶다는, 그 정념이 대학에 갓 들어온 신입생들이 대학생활에 대해 느끼는 감흥과 비슷할 거에요. 평생 억압만 받고 살아오며 자신과 사회의 경계가 어딘지도 모르고 무념무상으로 살아오다가 갑자기 자유를 허락받고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시기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죠. 마치 수십 년 동안 실험실에 갇혀 있다가 실험실 밖으로 나오고서 희열감에 경도되는 침팬지나 소들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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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서 예전에 지인과 대화한 적이 있는데, 한국에서 대학 캠퍼스 생활은 마치 전근대사회의 신부의 결혼식 같죠(사실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내 인생에 한 번이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결혼식 만큼은 절정의 환희 속에서 보내고 싶다는, 그 정념이 대학에 갓 들어온 신입생들이 대학생활에 대해 느끼는 감흥과 비슷할 거에요. 평생 억압만 받고 살아오며 자신과 사회의 경계가 어딘지도 모르고 무념무상으로 살아오다가 갑자기 자유를 허락받고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시기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죠. 마치 수십 년 동안 실험실에 갇혀 있다가 실험실 밖으로 나오고서 희열감에 경도되는 침팬지나 소들처럼 말이죠.
https://www.youtube.com/watch?v=x7PAMgNEtSY
https://www.youtube.com/watch?v=kUZ1YLhIAg8
그래서 나치의 프로파간다 영화인 <의지의 승리> https://www.youtube.com/watch?v=B4gVcHE2HcU
그렇게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일까요? 그나마 우리네는 이불킥 수준이지, 영상에 나오는, 이미 죽었거나 쓸쓸히 늘그막을 맞이하고 있을 그네들처럼 자신들의 가장 찬란했던 리즈 시절이 흑역사로 남아 국가와 사회와 개인의 기억에서 통편집되어 추억하고 간직할 수 없게 되고, 그리하여 젊은 날을 인생에서 모조리 박탈당하진 않았으니까.
https://www.youtube.com/watch?v=x7PAMgNEtSY
Release of chimpanzees, 30 years after undergoing experiments
https://www.youtube.com/watch?v=kUZ1YLhIAg8
"happy Cows" Kuhrettung Rhein Berg english subtitles / vacas liberadas
그래서 나치의 프로파간다 영화인 <의지의 승리> https://www.youtube.com/watch?v=B4gVcHE2HcU
를 볼 때, 참 우리네와 다를 것 없다 생각했어요. 대학생 쯤 된 젊은이들이 캠프 놀러가서 수돗가에서 물장난치고, 캠프화이어하고, 노래 부르고, 술 마시고...그러던 와중에 독일 국민의 위대함과 우리 모두 하나임을 변설가들이 역설하고. 그 분위기와 아니모에 경도되고 도취되는 것도 당연하다 싶죠. 물론 그런 것들이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니에요. 제 말은, 거기에서 보이는 사람들의 심리적 반응과 언행들을 보면 우리네와 전혀 다르지 않은 활력과 정열과 건강성, 확장 동기를 볼 수 있다는 것이죠. 아마 당시 독일의 젊은 여남 남녀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거에요. \'어휴 슈밤 전쟁도 깨지고 공황도 나고 먹을 것도 없고 죽겠네 이놈의 헬독일 ㅜㅠ\' \'읭? 히틀러란 아재가 사람들 불러 모아서 캠프 열고 파티 한다고? 가면 교회 오빠 교회 누나...아니 나치 오빠 나치 누나도 많다는데? 어차피 헬독일인 거 가서 신명나게 놀아볼까?\' \'으캬캬캬캬캬 씐난다 글구 히틀러나 괴벨스란 아재는 왤케 말빨이 좋다냐. 교주님 급이네 후덜덜덜\' \'오오★☆승리의 헤븐 독일 헤븐 나치 짱짱맨★☆오오\' 뭐 단순화 해보자면...
그렇게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일까요? 그나마 우리네는 이불킥 수준이지, 영상에 나오는, 이미 죽었거나 쓸쓸히 늘그막을 맞이하고 있을 그네들처럼 자신들의 가장 찬란했던 리즈 시절이 흑역사로 남아 국가와 사회와 개인의 기억에서 통편집되어 추억하고 간직할 수 없게 되고, 그리하여 젊은 날을 인생에서 모조리 박탈당하진 않았으니까.
김영하 소설은 별볼일 없는데 인터뷰 내용은 좋네요. 하지만 친구는 중요해요. 다만 어떤 친구냐에 따라 그 내용은 조금 달라지죠. 혼자 있는 시간을 온전히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시시한 친구 만나서 킬링 타임 안하죠. 그가 친구를 만나며 보내는 시간이란, 혼자서도 충만하지만, 만나면 전혀 다른 충만함으로 채워지겠죠. 그런 친구는 인생에 한두명이면 족하죠. 삼공파일님이 요새 좀 변하신거 같아요. 예전에 피지알에서 처음 글읽었을 때랑 또 다른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나쁘게 말해서 아재가 되가고 계시네요. 크크크 이상 아지매였습니다.
저는 어느 정도가 아니라 아예 공감합니다. 인간 관계라는 것은 결국 수단이지 목표가 아니죠. 돌이켜보면 얻을 수 있던 가장 소중한 것은 주변의 사람과 그 사람들 사이의 관계일 수도 있고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살아가는 과정에서 부수적인 획득물이지 그 자체를 향해서 우리가 노력하거나 거기에 안주할 수가 없거든요. 내향적인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자기 자신과의 대화에 열중하고 거기에서 행복을 찾고, 또 그것을 오답인양 말하는 사회 속에서 견디는 법을 배워야해요.
외로움으로부터의 도피가 무슨 행복의 입구이고 진리인... 더 보기
외로움으로부터의 도피가 무슨 행복의 입구이고 진리인... 더 보기
저는 어느 정도가 아니라 아예 공감합니다. 인간 관계라는 것은 결국 수단이지 목표가 아니죠. 돌이켜보면 얻을 수 있던 가장 소중한 것은 주변의 사람과 그 사람들 사이의 관계일 수도 있고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살아가는 과정에서 부수적인 획득물이지 그 자체를 향해서 우리가 노력하거나 거기에 안주할 수가 없거든요. 내향적인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자기 자신과의 대화에 열중하고 거기에서 행복을 찾고, 또 그것을 오답인양 말하는 사회 속에서 견디는 법을 배워야해요.
외로움으로부터의 도피가 무슨 행복의 입구이고 진리인 것처럼 자신을 속이는 건 한계가 옵니다. 짧은 만족과 유희를 위해 시간을 버리는 것은 오래가지 못하죠. 저도 예전에는 왜 그렇게 스스로를 속이며 타인과의 교류에 그렇게 목을 맸을까 하는 후회가 종종 듭니다.
외로움으로부터의 도피가 무슨 행복의 입구이고 진리인 것처럼 자신을 속이는 건 한계가 옵니다. 짧은 만족과 유희를 위해 시간을 버리는 것은 오래가지 못하죠. 저도 예전에는 왜 그렇게 스스로를 속이며 타인과의 교류에 그렇게 목을 맸을까 하는 후회가 종종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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